1.오늘도살아가는당신에게『토지』가건네는말
―한국문학의고전『토지』를리라이팅하다
교양교육의새지평을연경희대학교후마니타스칼리지최고의고전강의‘고전읽기:박경리『토지』읽기’가『나,참쓸모있는인간』으로출간되었다.지은이김연숙은후마니타스칼리지출범한직후인2012년부터2017년까지매학기50여명의학생들과『토지』를함께읽으며삶과세상,타인과나와의관계에대해고민하며스스로의별을찾아나가는경험을했다.
그는학생뿐아니라숱한인문학현장에서만난어르신들과도소통하며,익숙하지만제대로완독하지못했던우리의고전『토지』야말로자기삶을긍정하기위한이들의고군분투임을깨달았다.그리하여600여명인물들이표출하는가족이라는굴레,경제적궁핍함,사랑에의집착등을새로이해석하며,더이상아무것도할수없다고느낄때조차결코도망치지않는보통사람들의위대함을드러내는『나,참쓸모있는인간』을집필하였다.
“제가하고싶은글쓰기는고전―특히문학―이어떻게우리삶을가치있게이끌어나갈수있는지,그래서힘있게살아갈수있는지에대한것입니다.토지에서발견한인문학적사유를자기삶에적용하고,구체적인현실에서‘사용’하도록하고싶었고,『토지』의재구성을통해의미있는삶의가치들을진단하는글을쓰고자했습니다.나아가어떻게고전을읽을것인지,어떻게문학을내삶의실용적인힘으로받아들일것인지를깨닫게하고싶었습니다.”
2.9개의단어로쓰인책『나,참쓸모있는인간』
―인간,계급,가족,돈,사랑,욕망,부끄러움,이유,국가로『토지』를말하다
박경리의『토지』는한말에서해방까지약60여년간을배경으로우리민족의지난한역사와삶을분명하고도생생하게재현하고있는,한국의고전이다.『토지』는그특성상중요사건과주요인물로전체가수렴되지않는열린이야기다.이것이큰장점이기도하지만,때때로독자들에게는갈피를잡을수없다는막막함을주기도한다.
김연숙교수는지금여기를살아가는사람들에게유의미한삶의가치를모색하고자『토지』에등장하는다양한인물과장면을제시한다.우리시대를살아가는이들에게큰고민은‘일,돈,배우자’일것이다.그는이런고민을인간,계급,가족,돈,사랑,욕망,부끄러움,이유,국가라는9개의낱말로소설을해석하고재구성함으로써독자들이『토지』를생생히체험하게한다.고전공부의새로운유형에대한모델을제시한다는점에서독창적인에세이라할수있다.
누가제게『토지』가어떤책이냐고묻는다면아마도이렇게말할거같습니다.
“겁나…….”
『토지』는겁나많은사람이나와서,겁나많이지지고볶고물고뜯고죽고……그와중에또겁나많이사랑하고헤어지고슬퍼하고기뻐하고……그런이야기라는거지요.만약질문한이가내게‘장난하지말라’라고눈을흘기면,정색을하고다시말할터입니다.
경남하동평사리의지주집최참판댁이몰락하고나서,무남독녀서희가갖은고생을겪으며집안을일으켜세운이야기라고.으음,복수극?그런셈이지.(중략)그러나나는금세다시이렇게말할게분명합니다.그건줄거리가아니야.이야기는‘겁나’많아.(중략)
『토지』가서희의복수극이라는것도‘틀린’말은아닙니다.그럼에도불구하고『토지』는서희의이야기가아닙니다.서희는『토지』를가능하게하는배경일뿐입니다.최참판댁과평사리사람들,최참판댁이망하고나서쫓기다시피간도로떠난평사리사람들,간도에사는조선사람들,그리고간도에서다시평사리로돌아온사람들,그모든장면아래에놓인배경일뿐입니다.『토지』에서는그‘서희’를바탕삼아600명이넘는사람들이등장합니다.착한사람,나쁜사람,욕심많은사람,이렇게사는사람,저렇게사는사람등등그야말로별의별사람들이다나와서,어떨때보면이사람이나같고,또다른때는저사람과내가닮은것같고,어떤때는이사람이괜찮고,그러다가저사람이맘에들고,1권과2권을읽을때는,뭐이딴사람이다있어?하며진저리를치다가도,3권쯤에이르러서는그럴수도있겠다며고개를끄덕이게되기도합니다.『토지』는수많은사람의수많은삶의굴곡을마주볼수있는‘인간백화점’인셈이지요.―본문17~18쪽에서
[인터뷰]
어중간이가말하는어중간한인생이야기
―『나,참쓸모있는인간』김연숙교수인터뷰|진행이수연편집자
왜?왜하필그때가아니고지금이야?
“어릴때부터저는특별하지가않았어요.뭐든지딱히잘하지도,못하지도않았어요.뾰족한구석이없었다고할까요.공부도그렇고,연구도그렇구요.성격은조금말을잘하고활달한정도에,이렇다할특기가없이그저그런정도.국문과를나와서문학을쓰려고해보았지만잘되지않았어요.그래서평론을써보려고했지만그것도잘되지않았어요.엄청난미문을쓰는것도아니고,날카로운비평이나철학적통찰이있는것도아니었거든요.이제남은것은대학원을나와서석박사하고,강사하다교수가되는전형적인코스였는데서른살에시도했던임용도수차례떨어진거죠”
이후저자는새로운공부를해보겠다며학교를떠나소위‘제도권밖’연구공동체를그것도여러곳을경험했다.하지만역시나,거기서도적당히는하는데딱히뾰족하게잘하지는못했다고.그런데‘어쩌다가’‘우연히’다시학교에자리잡게되었고,나이50세에‘덜컥’교수가되어버렸다.
“참많은생각이들었어요.‘왜하필지금일까,이게뭐지?내가30대에그렇게원할때는안되더니,왜하필지금이야?지금내가제대로가고있는거야?’덜컥겁이났던거죠.”
토지는‘사람’의이야기다
“저는정말겁이많아요.지금도이게맞는일인가하는두려움이불쑥불쑥들어요.하지만이책준비를하고,토지를다시읽으면서정말‘나계속공부할수있겠구나’,‘내가내걸음으로갈수있겠구나’하는생각이들었어요.계속해도되겠다는확신을받은거에요.토지로부터허락을받은것같은느낌이라고할까요.그게토지가저에게준제일큰변화에요.(웃음)
토지를처음만났던25살의저는혈기왕성한대학원생에싱글,세상에못할게없는것처럼느껴졌어요.토지로논문을쓰고학위를받겠다는불순한시도를한것도그때의일이네요(웃음)비록그때는그방대한분량에기가질려오만방자하게‘이건문학이아니다’하며포기해버렸지만요.그런데40대후반이되어서다시토지를읽으니그때는‘사람’이느껴지더군요.”
『토지』로논문을써서업적을남기려했던‘오만방자’한25세의대학원생이어느덧50이되었다.그리고『토지』를연구대상으로붙잡고혼자서읽어내려갔던대학원생은이제대학에서교수가되어20대대학생부터60대나이지긋한어르신들까지,다양하고수많은사람들속에서그들과함께『토지』를읽게되었다.그러자『토지』가분석과비평의대상이되는‘텍스트’로보이는것이아니라,수많은인생들로,‘사람’으로보이기시작했다고.
“모든사람들의삶이다느껴졌어요.사람이느껴졌어요.20대때는‘이사람은나쁜사람,이사람은좋은사람’하고구별할수있었다면,40이넘어다시읽었을때는600명이넘는토지의모든사람들을전부‘그럴수도있었겠다’며이해할수있었고,그들의좋고나쁨을함부로말할수없겠다는느낌을받았어요.그것이‘이제내가나이가먹어서그런가’했는데저와함께토지를읽었던젊은대학생들도그렇게말한다는것에굉장히놀랐죠.”
박경리선생은토지를한마디로‘연민’이라고말했다.모든이들의인생에명암이있음을이해하고,인생의어두움앞에서무너지는사람에게나,떨쳐내려고안간힘을쓰는사람에게나차별없이따뜻한공감과위로의시선을보낸다.그래서선생은토지의인물중그어느누구에게도선또는악을단정하여구분짓지않았다.그래서토지는읽는우리로모든인생들에따뜻한시선을보내며공감할수있게만든다.
박경리를생각하다
저자에게질문을던졌다.어떻게사람이사람을이렇게까지이해할수가있나,‘박경리를박경리로만든것은도대체무엇이었을까’.그리고저자는아득하게‘알수없어요.정말모르겠어요’라고답했다.
“박경리선생님댁앞에작은돌마당이있었대요.선생님이글을쓰시다가잘안되면마당에나가서돌을하나씩눌러박고또들어가서글을쓰고하면서만들어진...그게뭘까요.글을쓰다가나와서마당에돌을하나박아넣는마음은또어떤마음이었을까요.외람되지만당시선생님의상황을생각해보면사위는감옥에가서언제나올지모르고,딸은청상과부신세에,어린손자하나있고,선생님이원고써서밥벌이하는처지였는데그때그마음이무엇이었을까저는상상할수가없어요.마찬가지로박경리선생님을박경리라는작가로만든것이무엇이었을까,한사람이어떤것에그토록마음을바치게하는것이무엇이었을까도알수가없어요.”
고통스러운삶의무게를지고글을쓰며그러다지칠때면마당에돌하나박아넣는것으로위안삼으면서선생이잡고싶었던것은도대체무엇이었을까.어쩌면선생그자신도잘알지못하는채로잠깐씩반짝하고빛나는나의별,그무언가를따라갔던것은아니었을까.
저자는말한다.어쩌면우리들자신도우리의그빛나는하나가무엇인지정확히알수없는것이아닐까라고.어떤때는이길이맞는것같다가아닌것같기도하고,‘이게나야!’싶다가도‘지금내가연극을하나?’싶기도한.잠깐반짝했다가사라지는통에별의별마음이다들지만그래도꿋꿋이걸어가고그렇게인생이이어지는것이아닐까라고.어쩌면우리들은막상그반짝이는무언가가‘이게너의별이야,너는이걸따라가야만해’하고우리품에확안겨든다면따라가지못할것이라는말도덧붙인다.우리는알수없기때문에계속그별을따라갈수있는것이라고.
끊임없이묻고,또있는그대로인정하는용기
저자는삶에대해이렇게말했다.무엇이변화하는삶이고,어떤것이잘사는삶인지묻는다면그건아무도모르겠지만,다만모든순간에서‘정말내가스스로결정한것인가’라고끊임없이질문하는것만은중요한것같다.그다음으로중요한것은그결정이만족스럽지않더라도‘그래,나는지금은여기까지다’인정하고받아들일수있는용기다.우리가항상최대의아웃풋을내거나대단한결정만할수는없으니까.
“제가벌써어언1년반을일주일에최소3번이상수영을하고있어요.수영에서제일중요한게힘을빼는것이라는데,도무지힘이안빠져요.강사선생님에게만날야단맞는게‘물하고싸우지좀말라’는거에요.힘을빼고내가떠가는것을느껴야하는데그게잘안돼요.그래서지금은살랑살랑한바퀴50m가는게목표입니다.이번여름방학목표(웃음)아,또있네요.박경리선생님어록을내고싶어요.딱들으면마음이찡하고위로가되는말들이많거든요.예를들면한창원고쓸때우리아이가재수를하고있었는데,토지를인용해서‘어떻게될지는알수없지만,그래도우리그물코하나엮는셈치고가보자’라는말을편지에써줬어요.당시에는아이가별말안했지만얼마전에‘곧엄마책이나온다’고자랑했더니,수험생시절그말이너무기억에남았고친구들에게도다이야기해주었다고말하더라구요.그렇게누군가의가슴속에서빛나는말들을엮어내고싶어요.이건정말꼭해야할버킷리스트에요.”
억지로무리하게힘주지않고부드럽게흘러가듯이살아가는삶.『토지』는말한다.그런삶이사소해보이지만,실은오히려정말대단한정성으로지켜내는삶이라고.저자의버킷리스트들도언뜻사소해보이지만,자세히들여다보면결코그렇지않다.그꿈과소망속에는대단한정성과지혜,염원이담겨있기때문이다.인생첫번째책으로새로운그물코하나를엮는저자김연숙.작은시도이지만,대단한정성이담겨있는책이다.『토지』가말하듯,‘사소하지만대단한정성으로’오늘도걸어가는저자김연숙을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