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2 (다산의 두 하늘, 천주와 정조)

파란 2 (다산의 두 하늘, 천주와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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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격랑의 한 시대를 앙가슴으로 부딪치며 살았던 다산에 관한 놀랍도록 낯선 이야기!
한쪽 어깨에 조선 천주교회의 역사가, 다른 쪽에는 정조 대왕의 꿈이 얹혔던 젊은 날 다산 정약용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들여다보는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 제2권. 청년 시절 18년, 강진 유배 18년, 해배 후 18년으로 나누어 세밀하게 인간 다산을 따라가 본다. 다산의 청년 시절은 벗들과의 우정과 배신, 유학과 서학 사이에서의 번민, 정조의 총애와 천주를 향한 믿음, 형님들의 죽음과 유배, 숱한 친지의 순교 등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절체절명의 위기마다 다산은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던 것일까?

저자는 다산이 직접 쓴 글과 로마교황청 문서 그리고 조선 천주교 관련 연구 기록 세 가지 사료를 삶이라는 조명으로 비추고, 학술 영역에서 다룰 수 없었던, 그러나 한 사람 생에서 절대적이고도 중요했을 주변 사건들을 통해 다산을 생생히 되살려냈다. 다산의 사람됨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작업 과정, 절망과 고통에 처한 인간의 고뇌와 상황 대처 능력, 사각지대에 놓인 자료의 발굴에서부터 그의 인간적 결점과 그늘까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본다.
후학들은 다산에게서 완전무결한 지성을 보려하고, 일말의 흠집조차 용인치 않으려 들지만, 사실 다산은 자주 이러지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고 그때마다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택했으며 그 때문에 많은 불이익을 당했지만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10∼30대 젊은 다산의 시간은 정조와 함께한 18년, 동시에 천주와 만난 18년이었다. 정조와 천주교는 젊은 날 다산의 두 하늘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산에게 영향을 끼친 정조의 목소리 한 줄과 천주의 목소리 한 줄을 나선형으로 엮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인 면의 안쪽과 바깥쪽의 또 다른 면을 보면서 다산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저자

정민

한양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우리시대웅숭깊은인문학자이자고전학자.연암을10년넘게공부하며박제가와이덕무를만났고,18세기지성사를파고들다다산과해후했다.이후『다산선생지식경영법』,『다산증언첩』,『다산의재발견』,『삶을바꾼만남』등의저술로다산이오늘날우리에게던지는현재적의미를짚어왔다.
정민의다산독본『파란』은새로이만난젊은날의다산이다.학술영역에서다룰수없었던,그러나한사람생에서절대적이고도중요했을주변사건들을통해다산을생생히되살려냈다.삶의자취를따라알려지지않은사료를발굴하고이를치밀하게조직해서,다산의청년기를곡진하게펼쳐냈다.위대성만부각하기보다뾰족하고거침없으며모순적내면까지솔직하고세밀하게드러내,살아숨쉬는‘인간다산’을그렸다.
그동안연암박지원의산문을꼼꼼히읽은『비슷한것은가짜다』와『고전문장론과연암박지원』을펴냈다.18세기지식인에관한연구로『열여덟살이덕무』,『잊혀진실학자이덕리와동다기』,『18세기조선지식인의발견』,『미쳐야미친다』등이있다.청언소품(淸言小品)에관심을가져『일침』,『조심』,『석복』,『한서이불과논어병풍』,『돌위에새긴생각』등을선보였다.한시의아름다움을탐구해『한시미학산책』과『우리한시삼백수』를썼다.틈틈이쓴산문을모은『체수유병집』과『사람을읽고책과만나다』,조선후기차문화의모든것을담아낸『새로쓰는조선의차문화』등다수의책을출간했다.

목차

7장격돌과충격

반격과반전27
사람은사람으로만들고책은불태워라|이승훈의반격과권이강의상소|다산과이기경의긴악연

사형집행과초토신상소36
내게이럴수가있는가?|사형윤허와옹색한법적용|이적과기적

진산사건의종결47
이기경의유배와꼬이는관계|재앙이여기서비롯될것이다|정면돌파형과권모술수형

정약용과정약종57
긴장성두통|아버지의상경과셋째형정약종|신선술과천지개벽을믿었던정약종

하담을바라보며67
공자의사당에절하지않은이승훈|홍문관수찬임명소동과대통천거|갑작스러운부고|망하루의슬픈눈길

후회하는마음의집78
아버지께바친다짐|나는뉘우침이많은사람|나를지키는

8장신도시의꿈과밀고

안동별시와영남만인소89
영남을족쇄에서풀다|네가이미알지않느냐?|영남유생1만인의2차에걸친연명상소

놀라운화성설계100
그를불러성제를올리게하라|단계별사유와합리적인공정|놀라운조선형기중가의탄생

금등지서와화성건설112
채제공의상소와금등지서|나는후회한다|수원화성공사시작과다산의탈상

채제공과의갈등과다산의안목122
균열과틈새|고비에서빛난순발력|현륭원식목부정리,엑셀의원리를꿰뚫다

주문모신부의입국과한영익의밀고134
주문모신부의입국과밀고|주신부를피신시킨다산|최인길의대역행세와3인의순교

9장배교와금정시절

다산은정말천주를버렸을까?145
밀고자한영익은다산의사돈|장작광에숨어든주문모신부|다산,채제공을협박하다

도발과응전154
권유의상소와박장설의직격탄|이것도상소냐?|자네집에서도제사를지내는가?

다산,금정찰방으로좌천되다165
이가환의해명과성균관유생의맞불상소|삼흉의좌천과유배|다산의정치적일기장

금정찰방다산의역할175
금정역의위치와찰방의역할|다산이관찰사유강과홍주목사유의에게보낸편지|다산의천주교도문초와회유

내포의사도이존창검거기185
성주산의이존창|다산,이존창을직접체포하다|모종의묵계,또는거래

10장전향선언

전향과충돌197
이삼환과이인섭|냉랭한시선,이도명과의논전|제2차논쟁

봉곡사에서열린성호학술세미나207
어찌저리설쳐대는가?|봉곡사의학술세미나|이삼환의다산평

성호에대한다산의평가217
「서암강학기」참석자명단에누락된이승훈|이승훈과주고받은편지|성호의학문에대한다산의평가

서울에서온편지227
위로와격려|처량하고비장한말|이기경이보내온뜻밖의편지|경악과분노

또하나의반성문,「도산사숙록」236
금정에서의세번째미션|한수만잘못둬도판을버린다|커져가는비방과부끄러운상경

차려진밥상을걷어찬다산246
임금의계획|정조의진노와미뤄지는복귀|죽란시사결성과미묘한시선

11장목민관다산

회심의승부수「변방소」259
무관직에대한정조의집착|답답함을하소연하다|동부승지사직과「변방소」|진작써둔상소문

곡산부사로다시떠나다268
빗나간승부수|자라나는싹을어이꺾으리|왜들저러는지모르겠다|장하다,무죄방면한다

신임부사의놀라운일처리277
곡산백성이안도의한숨을쉬다|너희가주인이다|사람들이기이하게여겼다|대체어쩌시려고요?|기미를먼저알다

침기부종횡표의위력288
정당에내걸린곡산지도|위력적인침기부종횡표|표한장에한마을이들어가다|남당리리포트분석예

밀사와밀정,그리고명도회298
주문모신부의행보|2년만에나타난조선밀사황심|천주교조직내부로스며든밀정조화진|교회를지키려는눈물겨운노력

한양복귀와암운307
연암박지원의탄식|강이천의비어사건과김건순|채제공의서거와다산의복귀

12장닫힌문앞에서

쓰러진거목과굳게닫힌문319
영원한작별과재앙의기색|태풍의눈속에든조선교회|책롱사건으로체포된다산형제|다산의거짓말

처형과유배329
추국청의형제|다산을살린정약종의문서|하늘을보며죽겠소|유배지로떠나는다산

귀양지의다산과주문모신부의순교339
하담의작별인사|신부의자수와조정의곤혹|처형장의기상이변|20세기초중국에서지은연극대본『주문모약전』

장기의노래350
흉몽|분노와자조|추록마이야기|『촌병혹치』,주변약초로엮은처방

황사영백서사건360
황사영과배론토굴|13,384자의깨알글씨,황사영백서|다시끌려온다산형제|「토사주문」과황제의어이없는답장

강진가는길371
악연의끝자리|주마등같이스쳐간기억|놀란기러기|말은오열이되고

글을닫으며380

출판사 서평

‘청년다산’에관한놀랍도록낯선이야기
젊은날다산의키워드는정조와천주교이다.
정조임금의그늘이그를키웠고,
천주교는그에게생애전체에걸쳐절대적인영향력을행사했다.
40세이전,다산에게서이둘을빼고나면다산은없다.
젊은다산의한쪽어깨에조선천주교회의역사가얹혔고,
다른쪽에는정조대왕의꿈이올려져있었다.
그는자주이러지도저럴수도없는처지에놓이곤했다.
그때마다다산은우회하지않고정면돌파를택했다.
그때문에많은불이익을당했지만한번도후회하지않았다.

정민의다산독본(茶山讀本)이란?
정민의다산독본은다산정약용의알려지지않은삶을들여다봅니다.청년시절18년,강진유배18년,해배후18년으로나누어세밀하게인간다산을따라가는여정입니다.다산의사람됨과과학적이고합리적인작업과정,절망과고통에처한인간의고뇌와상황대처능력,사각지대에놓인자료의발굴에서부터그의인간적결점과그늘까지를총체적으로살펴보는살아있는다산평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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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청년다산’에관한놀랍도록낯선이야기

“청년다산에관한책을쓰면서나는지금까지반쪽다산(강진시절의다산)만보았음을뼈저리게느끼고있는중입니다.이런다산을본적이없었어요.당황스러울정도입니다.내가그동안반토막만봤음을…….”

젊은날의다산에대한글을집필하면서정민교수가긴숨을내쉬며한말이다.『다산선생지식경영법』,『다산의재발견』,『다산증언첩』등600∼800여쪽에이르는책을출간하고,『미쳐야미친다』,『삶을바꾼만남』,『다산의제자교육법』등18세기지식인그리고다산의공부와교육을오늘의삶과연결해들여다본정민교수의짧은소회는예사롭지않다.
다산은1930년대최익한선생의「『여유당전서』를독함」에서부터박석무다산연구소이사장,정민교수에이르기까지오랫동안우리사회에호출되었다.그리하여1990년대까지는애민정신과실학사상가로,2000년대이후에는지식경영자(편집자)로서재조명되었다.우리가보고듣고사유한다산은강진유배기에이뤄낸수많은저작과당시삶으로구성된다산이었다.완성된인간을밑그림으로,무결한글로다산의윤곽을완전하게그려냈다.흠결하나없는인간이었다.
정말그랬을까?우리가겪는갈등과고뇌와쓰러지고다시일어서는시간은없었던것일까?다산의청년시절은벗들과의우정과배신,유학과서학사이에서의번민,정조의총애와천주를향한믿음,형님들의죽음과유배,숱한친지의순교등……그야말로파란만장했다.절체절명의위기마다다산은어떤판단과선택을하며,자신만의길을걸어갔던것일까?
정민교수는맥락이맞지않았던다산의글들을의심하고,행간이건네는말을들었다.다산이직접쓴글과로마교황청문서그리고조선천주교관련연구기록세가지사료를‘삶’이라는조명으로비추었다.학술영역에서다룰수없었던,그러나한사람생에서절대적이고도중요했을주변사건들을통해다산을생생히되살려냈다.삶의자취를따라알려지지않은사료를발굴하고이를치밀하게조직해서,다산의청년기를곡진하게펼쳐냈다.위대성만부각하기보다뾰족하고거침없으며모순적내면까지솔직하고세밀하게드러내,살아숨쉬는‘인간다산’을그렸다.그결과‘정민의다산독본’『파란―다산의두하늘,천주와정조』(전2권)라는새로운다산평전이탄생했다.

나는박제화된성인다산을만들생각이없다.그도우리와같이숨쉬고고통받고고민하던청춘이었다.그의인간적인면모를우리는사실그대로받아들일필요가있다.그의문집은사료로치면오염된부분이적지않다.다산은자기검열을통해불리하거나불편한내용은삭제하고,일관성확보를위해많은글에손을댔다.하지만이것을다른기록과겹쳐보자다산이썼다가지웠던부분들이얼핏드러났다.이책에서는다산이지웠음직한자료를,날것그대로맥락없이남겨진다른자료와겹쳐읽음으로써지워진부분을복원해보려고애를썼다.……1938년최익한은신문지상에「『여유당전서』를독함」이란글을65회에걸쳐연재했다.다산저작과사유의전모를최초로드러낸기념비적글로,지금으로부터꼭80년전일이다.그때그가『여유당전서』,즉‘다산의책’을꼼꼼히읽었다면,나는다산의책이아닌‘다산이라는책’을읽고싶다.……다산은격랑의한시대를앙가슴으로부딪치며살았다.후학들은그에게서완전무결한지성을보려하고,일말의흠집조차용인치않으려든다.세상에그런인간은없다.―「글을열며」에서

2.‘청년다산’의두하늘,천주와정조

10∼30대젊은다산의시간은정조와함께한18년,동시에천주와만난18년이었다.그간국학에서는다산이신자였다가배교한뒤유학자로돌아왔다고했으며,천주교측에서는만년에회개하여신자로죽었다고했다.그러나그의천주교신앙은일반적범위를훨씬상회하는심각한것이었다.정민교수는‘전부냐전무냐’로싸워서는안된다고말한다.그는다산에게영향을끼친정조의목소리한줄과천주의목소리한줄을나선형으로엮고,뫼비우스의띠처럼꼬인면의안쪽과바깥쪽의또다른면을보면서다산을입체적으로드러낸다.

정조와천주교는젊은날다산의두하늘이었다.그의생애에서천주교는벗어날수없는굴레요족쇄였다.다산은온몸으로천주교를받아들였다.정조또한다산의삶을붙들어맨또다른굴레다.수험생시절부터정조는다산을유심히지켜보았고,깊이아꼈다.정조는천주교로계속문제의중심에선다산을끝까지감싸주며곁에두었다.임금의지극한사랑때문에다산은자의반타의반으로천주교를떠났다.정조라는배경이없었다면다산은진작에적당에게끌려가죽었을사람이었다.―「글을열며」에서

정조가다산과이학규에게『어정규장전운』을정리하는작업을시켰다.책이완성되어올라갔다.임금이보니‘부(父)’자의풀이에‘시생기(始生己)’란말이나왔다.시생기란처음나를낳아준분이란뜻이다.
정조가불쑥물었다.“이뜻풀이는어느책에나오는것이냐?”
천주를아버지라부르는것은처음나를낳아주신분이기때문이라는교리서설명중에나오는대목이었다.이문제로신하들사이에『규장전운』을훼판해야한다는비난이비등했지만정조는애써무시했다.
한번은‘홍수’를제목으로문신들에게시를짓게한일이있었다.다산이올린응제시중에놀랍게도‘나아방주(?亞方舟)’의일,즉성경속노아의방주이야기를인용한내용이들어있었다.
왕이다시물었다.“방주의일은어느책에나오느냐?”
다산이대답했다.“신이전하를모시고읽을적에그책에서이뜻을보았나이다.”
시생기와노아의방주는모두천주교서적에나오는이야기였다.정조또한그책을다산과함께보았다는의미이기도했다.―1권151~152쪽,「다산과천주교」에서

3.세상을바꾸고자한다산의생각은어떻게잉태되었을까

다산은어릴때부터유학을공부했고,10대후반에는서학(과학기술·사상·종교)을만났으며,20대초반정조와긴밀한관계를맺었다.다산에게는사회를개혁하려는열망이가득했고,‘조선,이렇게하면될것이다’하는자기만의비전을품었다.
세상을바꾸려고애쓴한사람의생각은어떻게잉태되었을까?20대에과거급제후정치에본격적으로참여하면서구체화하려했던기획들은,실현의욕망이좌절되고18년동안강진에유배된동안이론화되어‘다산학’이만들어진것은아닐까?
청년시절다산은정조의많은기대와사랑을받았다.다산은정조의국가미래구상과연결되어있었다.정조는노론벽파를잡고싶으나힘이없었고,저들과공존하려면견제세력을길러야했다.그핵심인물이채제공·이가환·정약용트로이카였다.정조는세사람을작심하고기르기위해인큐베이팅을시작했고,문제가생기면계속덮어주며엄호했다.이들이잘커야노론벽파의전횡을막을수있기때문이었다.정조는이3인과함께새로운시대의서막을열고자했다.

젊은날의다산은정치적감각이남달랐다.그는벼슬길에오른이후채제공사단의참모와돌격대장역할을도맡았다.그는본능적이고동물적인감각으로당시복잡한정쟁의전면에서문제와정면으로부딪쳤다.가려운데를먼저긁었고,행동뒤에는반드시결과를얻어냈다.채제공이든그를이용해정권의무게중심을남인쪽으로옮겨오려던정조에게든다산은간이딱맞았다.다산은이쁜짓만골라서했다.노론이남인의기세를꺾기위해이진동을해치려했던음모는,다산의구출로인해긁어부스럼이되어정국의주도권을남인에게넘겨주는부메랑으로돌아왔다.―1권294∼295쪽,「이진동구출작전」에서

4.다산은신부였다

다산에게서학,즉천주교는평생헤어날수없었던굴레였다.조선천주교회의창립과확산,그리고참혹한박해의과정에서다산은늘한복판에있었다.조선천주교회창립주역인이벽은큰형수의동생이었고,최초로세례를받고돌아와조선천주교회창설의리더역할을맡았던이승훈은누나의남편이었다.형님인정약전과정약전의스승권철신,권일신형제도초기교회창립의핵심주역이었다.형정약종은평신도대표였다.
다산은천주교에관한한어떻게하더라도헤어날수없게깊이얽혀있었다.그는이승훈에게자청하여세례를받아약망(若望)즉요한이라는본명을받았다.한때과거시험공부도팽개친채여럿이모여천주교교리서를공부하다가물의를일으키기도했다.명례방의종교집회에참석해적발된일도있었다.자식들이천주학에깊이빠진것을뒤늦게안아버지정재원이곁에두고철통감시까지했어도다산의마음을돌릴수는없었다.정조의기대를차마저버릴수없어배교의길을선택했지만,그의마음속에서신앙의불씨가완전히꺼진적은한번도없었다.

다산이천주교활동에한창열을올렸던1785년과1786년,그리고26세가되던1787년까지3년간『사암연보』의기사를보면성균관유생으로각종시험에서우수한성적을거두었다는내용밖에없다.천주교관련사실은입도뻥끗하지않았다.연보속다산은공부밖에모르던,연거푸우수한성적을거둬정조의기대를한몸에받던모범적인수험생일뿐이었다.추조적발사건은물론,이벽의죽음조차한줄도기록하지않았다.……1786년가을에는교세가나날이확장되면서각지역의신자들을관리하고미사를집전하는역할을담당할열명의신부를이승훈이직접임명했다.로마가톨릭교회의공인없이자기들끼리임의로신부를임명하면서교단을출범시킨것이다.이를교회사용어로는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라하는데,이때가假는‘가짜’가아닌‘임시’라는뜻이다.……1786년가을,신부를결정하던모임에는권일신,이승훈,정약용형제가참여했다.임명한신부가10인이라했는데,확인된명단은권일신,이승훈,이존창,유항검,최창현등5인뿐이다.별도의기록에홍낙민과최야고보가더보인다.나머지확인되지않은3인은누구일까?적어도이중두사람은확실히알수있을것같다.다산과그의형정약전이다.두사람은조선교회의출범당시부터핵심중핵심이었다.두사람의이름이어째서빠졌을까?다블뤼나달레가애초에다산의『조선복음전래사』에서이기록을가져왔기때문일것이다.다산은이부분을기술하면서자기형제의실명을빼고‘그밖의여러사람’속에숨어버렸다.다산과그의형정약전은이승훈이임명한10인의신부속에포함되었던것이틀림없다.다산은신부였다.―1권215~218쪽,「교회재건과10인의신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