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저항,정체성이얽힌세계의경기장을해부하다
축구의역사가인간의자유와연대의역사였음을증명하는
가장지적이고뜨거운세계사
『풋볼리티카』는스페인카탈루냐출신역사학자라몬우살이쓴,축구와정치의얽힘을탐구한세계사적저작이다.저자는“축구는정치와무관하다”는통념을부정하며,축구의역사를통해세계사의이면을새롭게읽어낸다.책의제목풋볼리티카(Futbolitica)는‘축구(futbol)’와‘정치(politica)’를결합한조어로,축구가단순한경기이상의사회적·정치적현상임을드러낸다.19세기산업화한영국에서근대축구가탄생한이후,클럽은도시와공동체의정체성을상징하며,때로는독재에저항하고,때로는권력의도구가되어왔다.
우살은영국,프랑스,스페인,발칸,중동,아프리카,남미등전세계55개클럽의사례를통해축구가‘총체적사회적사실(totalsocialfact)’로작동해온과정을추적한다.이는일반적인스포츠사의나열이아니라,축구를통해근현대정치사의구조를읽어내는작업이다.저자는클럽이태동한사회적배경,억압과해방의역사,그리고팬문화가만들어낸연대의정치를분석하면서,경기장이곧사회의축소판임을증명한다.
이책은특히‘축구를권력이이용한방식’과‘축구가권력에저항한방식’의두가지흐름을교차한다.축구를둘러싼억압과저항,계급과정체성,젠더와식민,자본과연대의역사를해부하며,바르셀로나와레알마드리드의정치적대립,리버풀팬들이대처정부에맞선저항의상징이된사건,식민지시대아프리카에서축구가독립운동의장이된사례,그리고자본과이미지정치가결합한현대의‘스포츠워싱’현상까지,축구사를세계정치사의미시적기록으로재구성한다.축구사와정치사,문화사를횡단하는이책을통해축구가언제나사회의가장깊은균열을비춘다는저자의주장을이해할수있다.
제국주의와독재에맞서유일한자유의공간이된경기장
권력은공을소유했지만,경기는언제나민중의것이었다
지역별로9개장으로분류해실은이책의축구클럽들중가장돋보이는주체는제국주의와독재에저항한민중의팀이다.축구는종종독재정권의정당성을뒷받침하는수단으로이용됐지만,권력의언어보다저항의언어로더많이기억된다.스페인의프랑코가레알마드리드를이용하려하고,포르투갈독재자살라자르가SL벤피카로국제적고립을극복고자했으며,이탈리아파시스트무솔리니(유벤투스FC),루마니아의차우셰스쿠(스테아우아부쿠레슈티),칠레의피노체트(콜로-콜로)도축구클럽을선전도구로활용했으나,민중은늘경기장에서자유를찾아내며축구를자신들의역사로만들어왔다.
1939년,스페인내전이끝나고프랑코가권력을장악하자,카탈루냐의언어와문화는금지됐다.그리고바르셀로나는‘분리주의의본거지’로지목됐다.프랑코는FC바르셀로나를체제에흡수하려했지만,구단은정반대의길을택했다.홈구장캄프누에서는스페인국기가아닌카탈루냐깃발이은밀히흔들렸고,관중들은억압된언어카탈루냐어로노래를불렀다.그곳은경기장이아니라,억압받은언어의마지막피난처였다.레알마드리드가프랑코체제의‘스포츠외교도구’로쓰일때,바르셀로나는시민저항의상징이됐다.프랑코가죽고수십년이지난오늘날까지,바르셀로나는여전히“그라운드위의카탈루냐”로불린다.
포르투갈의우익정권인에스타두노부는축구경기장에서거대한저항에직면했다.중부도시코임브라에서대학생연합이창단한아카데이마데코임브라가1969년포르투갈컵결승전에서격렬한시위를벌인것이다.축구연맹이코임브라팀의검은색완장을금지하고,정부는경기장주변에대규모경찰병력을배치했으나,결승전에는독재정권에반대하는깃발과현수막이휘날렸고경기장을가득메운관중은시위에나선학생들을보호하며함께구호를외쳤다.1990년크로아티아자그레브에서디나모자그레브주장이크로아티아팬을폭행하던세르비아경찰을무릎으로가격한장면도유명하다.이날은크로아티아자유독립을위한폭력투쟁의시작을알린날이되었다.
나라잃은소수민족과식민지의팀들은축구경기장을자신들의영토로삼았다.식민지시절알제리에서프랑스인과알제리인이함께뛰던라싱유니베르시테르알제는표면상‘통합의팀’이었다.그러나프랑스본토리그에선그들을‘2등시민’으로취급했다.이모순속에서자란청년이바로철학자이자골키퍼였던알베르카뮈였다.카뮈는“도덕과인간성은축구장에서배웠다”고회고했다.전원팔레스타인난민으로구성된알웨흐다트SC도있다.이팀은요르단암만의난민캠프에서창단했다.요르단정부는이팀의민족주의를경계했지만,팬들은경기마다팔레스타인깃발을흔들었다.그들의외침은단순한응원이아니라,존재의선언이었다.
공장굴뚝아래태어난연대의축구,
현대자본주의방식에맞선지속가능한축구
축구는억압과불평등,차별에맞서는연대와해방의정치적언어로작동하기도했다.『풋볼리티카』는신자유주의의심장부였던1980년대의영국리버풀에서리버풀FC가노동자연대의공간이었다고분석한다.대처정부가신자유주의개혁으로산업도시의노동자들을해고와빈곤으로몰때,축구장은노동자들의유일한공동체공간이었고,붉은색유니폼은그들의자존심이자생존의상징이었다.이는보수당정부에대한반대가팬정체성의핵심으로자리잡게만든배경이됐다.팬들은리버풀의다양한사회운동과연대하는의미로대처반대구호를외쳤다.
피아트자본이세운클럽인유벤투스FC가버티고있는이탈리아토리노에는공장노동자들이만든팀인토리노FC도있다.한도시안에서노동과자본의대립이축구로형상화한격으로,토리노의관중석은작업복을입은팬들로가득했고경기장의응원가는노동조합의구호와닮아있었다.파시스트정권이1944년에팀이름을‘토리노피아트’로바꾸기도했으나,축구로독재를유지하려던시도는실패로끝났다.스포츠적인성과면에서는유벤투스FC가우위에있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토리노FC는피에몬테주도에서가장사랑받는팀으로남아있다.한때노동자들이고용주를이길수있게해준클럽이라는역사적기억이여전히강하게작용하고있기때문이다.
스페인마드리드외곽의노동자지역바예카스에서1924년창단한라요바예카노또한노동자공동체가권력과자본의축구에맞선상징적모델로제시된다.이지역주민대부분이저소득노동자와이민자로구성돼,구단은일찍부터저항의정서를품었다.스페인1부리그가은행이름을달고있는상업화한환경에서,이클럽은최근에도은행빚으로쫓겨난노인을돕는등지역에대한헌신과계급의식을유지하고있다.2010년에정부의노동시장‘개혁’에반대하는총파업에동참한유일한팀이며,팬클럽또한2012년유럽연합주도의긴축정책에반대하는총파업시위에활발히참여했다.비록규모는작지만,라요바예카노는많은경쟁팀이잃어버린존엄성을간직한클럽이며,자신의뿌리를자랑스럽게여기는노동자계층의팀이다.
영국의비건구단이던진,‘축구는무엇을소비하는가’에관한질문도흥미롭다.자본의논리를거부하고,환경과생명중심의새로운축구문화를창조한포레스트그린로버스의사례는축구가사회운동의실천장이될수있음을보여준다.석유자본이리그를장악하고,팬들은일회용플라스틱컵을들고응원하던시대,작은리그의구단포레스트그린로버스는‘지속가능한구단’을표방했다.모든식단을비건으로바꾸고경기적전력을태양광으로전환하며잔디는유기농방식으로관리됐다.이책은포레스트그린로버스가축구가기후위기대응이라는전지구적투쟁에어떻게기여할수있는지보여주는상징적사례라고평가했다.
축구가평등을배우는과정
‘참여할권리’를쟁취한경기장의주인들
2023년여름,스페인여자대표팀이처음으로월드컵우승을차지했다.그러나트로피보다더큰파문을일으킨건시상대위의단한장면이었다.스페인축구협회장루이스루비알레스가스타선수헤니페르에르모소의동의없이입을맞춘것이다.스페인사회는순식간에들끓었다.“우리는우승했지만,아직평등하지않다.”사건이후루비알레스는사퇴했고,연맹은남녀대표팀의실질적평등조치를약속했다.저자는이것이축구가원래정치적현상임을보여주는사건이라고본다.여자축구가2017년이후대중의주목과찬사를받으며급부상했지만,여자선수들은여전히평등과거리가먼대우를받고있었고,여자리그에대한언론의높은관심은여성의권한강화와성평등을위한투쟁이축구를통해전개되고있음을보여준다.
이책에서세계최초의여성축구팀으로소개된브리티시레이디스FC는1895년영국에서결성돼남성중심사회에여성도경기장에서뛸수있다는메시지를던졌다.창단목표는축구를넘어,여성의사회적평등과참정권을주장하는것이었다.언론은그들을조롱하고‘여성의품위를잃었다’고비난했지만,런던데뷔전에1만명의관중이몰렸고,여성들은코르셋을벗고경기해복장규범에도전했다.사회적비난속에서도이팀은1년간100회이상의시범경기를치르며여성해방의실천을열었다.브리티시레이디스FC는여성의신체적자유와사회적평등을요구한최초의스포츠정치행위로평가된다.
미국의게이남성들이모여만든뉴욕램블러스는,‘정상성’의규범을깨는축구였다.이들은동성애자차별이극심하던1980년대초에“성소수자도축구를즐길수있는안전한공간이필요하다”는인식에서창단했다.많은축구클럽이노동계급과진보적정치성향에뿌리를두고있음에도,전세계축구경기장은오랫동안동성애혐오가만연한공간이었다.축구팬다수가남성으로구성되어있고,이스포츠가전통적으로강한남성성을강조해온탓에,경기장에서가장흔히들리는모욕은상대선수를동성애자로조롱하는것이었다.램블러스는주류리그참가가금지되자독자적인게이리그조직에참여해국제교류를이끌었고,성적지향에따른배제에맞선사회운동적공동체로성장했으며오늘날까지이어지는게이축구팀의선구자로자리매김하고있다.
축구가사회를비추는거울이라면
우리는지금어떤사회를보고있는가
『풋볼리티카』의독창성은‘축구사를곧정치사로읽는방식’에있다.많은책이축구의전술,스타,경기결과를다루지만,이책의저자는‘왜,어떤클럽이존재하는가’라는근본적인질문에서출발한다.그는축구를통해권력과저항,제국과식민,남성과여성,자본과연대의역사를동시에조명한다.또한이책은단순히과거를복원하는데그치지않는다.카타르월드컵의‘스포츠워싱’,사우디의투자,여자축구를둘러싼성평등논란등오늘의축구와세계정치의구조적문제를날카롭게드러낸다.축구가자본과국가권력의이미지세탁도구로전락하는현실을지적하면서도,여전히그안에서연대와해방의가능성을찾는다.
아울러이책은학문적깊이와대중성을동시에갖추고있다.학문적으로는노르베르트엘리아스,이그나시오라모네등의사회학전통을잇고,서술면에서는다큐멘터리처럼생생한리포트구조를취한다.각장의클럽은작은단편같지만,전체를합치면‘근현대세계사의정치지형도’가완성된다.또하나의특징은축구를통한‘집단기억의정치학’을다루었다는점이다.각클럽은특정한집단의기억,곧도시의노동자,소수민족,여성,난민의기억을담고있으며,그들의목소리를사회의중심으로끌어올린다.축구는억압받은이들이자신을표현할수있는가장대중적인언어이자,그자체로저항의예술이었다.
따라서이책을읽는것은단지‘축구를아는것’이아니라,세계가움직이는방식을새롭게이해하는일이다.정치학자에게는대중정치의미시적사례집으로,사회운동가에게는연대의언어로,축구팬에게는자기열정의뿌리를돌아보게하는텍스트로다가올것이다.저자라몬우살은“축구의역사는언제나인간의역사였다”고말한다.경기장바깥의함성,그함성에담긴시대의목소리를듣고자하는독자에게이책은탁월한길잡이가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