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0월 폭동, 제주 4 3 사건, 여 순 반란사건

대구 10월 폭동, 제주 4 3 사건, 여 순 반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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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해방공간의 시대상을 면밀 분석한 책!
1946년 10월 1일의 대구 폭동, 1948년 4월 3일 일어난 제주폭동,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서 발생한 여수ㆍ순천 반란사건은 해방공간에서 대한민국의 탄생을 폭동과 반란을 통해 저지하고자 스탈린과 소련공산당, 그의 충실한 하수인인 김일성, 그리고 남로당 괴수 박헌영과 남한 내 좌익들이 합작하여 일으킨 폭동ㆍ반란 3종 세트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사회가 좌회전하면서 미증유의 살육극이 벌어졌던 폭동ㆍ반란 3종 세트의 용어가 완전 세탁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탄생과 건국을 방해하고자 했던 폭동 주모자와 반란자들이 마치 통일 조국 건설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영웅인 양 예우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해 기획된 『대구 10월 폭동, 제주 4 3 사건, 여 순 반란사건』은 대구 폭동, 제주 폭동, 여ㆍ순 반란사건이 벌어진 해방공간의 시대상을 면밀 분석하고, 발생원인과 진행경과, 후폭풍을 정밀 복기하여 이 세 사건이 스탈린의 지령과 남북 공산주의자들의 합작품이란 사실을 증명해내고 있다.
저자

김용삼

저자김용삼(金容三)은대전고,중앙대문예창작과,경남대북한대학원에서공부했다.조선일보기자,시사월간지편집장,경기도대변인,경기콘텐츠진흥원감사를역임했다.월간조선기자로활동하며50여개국현지취재를통해전ㆍ현직국가원수네명을특종인터뷰했다.현재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기획실장,격월간잡지편집장으로활동중이다.
황장엽망명사건특종보도로제1회대한민국언론상수상,2008년해양사상보급에공헌한공로로장보고대상을수상했다.2013년『이승만과기업가시대』로전경련시장경제대상우수상,2015년『대한민국건국의기획자들』로전경련시장경제대상을수상(공동수상)했다.
주요저서로『이승만과기업가시대』(북앤피플),『이승만의네이션빌딩』(북앤피플),『이승만깨기』(공저ㆍ백년동안),『시간을달리는남자』(공저ㆍ백년동안),『한강의기적과기업가정신』(프리이코노미스쿨),『김일성신화의진실』(북앤피플),『대한민국건국의기획자들』(백년동안),『재미로읽는조선왕조실록』(전3권ㆍ월간조선),『조선5백년역사대탐험』(동방미디어)등이있고,이승만대통령이감옥에서쓴『청일전기』를류석춘연세대교수,김효선씨와함께번역해제했다.

목차

목차
머리말:반란사건제대로보기
1부한국,공산주의의세례를받다
2부1946년10월1일,대구의비극
3부피로물든제주
4부국군제14연대,대한민국에반역하다
5부축복으로끝난비극

출판사 서평

해방공간의남한사회를강타한
좌익들의폭동ㆍ반란3종
14연대반란사건참여자들은대한민국의국민되기를거부하고조선인민공화국에충성하며,무상몰수ㆍ무상분배에의한토지개혁을주장하고나섰다.대한민국영토내에서대한민국법령을인정하지않고,정권을부정했으며,공산주의를해야한다고무장반란을일으킨사건이었으니이승만정부에겐‘내부의적’이누구인지를분명하게인식시키는계기가되었다.
독일의법학자칼슈미트는정치의핵심은적군과아군을구별하는것이라고설파했다.14연대반란사건을계기로‘외부의적’보다더위험한존재가‘내부의적’이란사실도확실하고분명하게밝혀졌다.신생대한민국은죽느냐사느냐의갈림길에서생존을위해공산세력과처절한전쟁을벌여야했다.
자신들의체제를부정하고적의승리를돕는내부의적을“같은민족이니까”하며구경만할정신나간정부는이세상에존재하지않는다.적을먼저타도하지못하면내가타도당하는것이전쟁터의살벌한교훈이다.
중국의국공내전과정에서장제스의국부군군대가마오쩌둥의군대에쉽게무너진가장큰원인은군내부에침투한공산당의책동때문이었다.미국이제공한최신무기와장비로무장한장제스의국부군은내부에공산당이대대적으로침투하여사기를저하시키고,인민해방군을만나면싸우지도않고미국이제공한무기와장비를가지고집단투항한사례가비일비재했다.
14연대반란은비극으로점철된사건이었지만,한편에선새옹지마(塞翁之馬)의계기였다.이사건을계기로숙군작업을통해군부에침투한붉은세력을거의대부분제거함으로써대한민국국군은6ㆍ25남침을당했을때와해되지않고용맹하게싸워이나라를구해냈다.이런차원에서볼때14연대반란(여ㆍ순반란)사건은존메릴이말한것처럼‘축복으로끝난비극’이었다.
-본문중에서
▶내용소개
1946년10월1일의대구폭동,1948년4월3일일어난제주폭동,1948년10월19일여수에서발생한여수ㆍ순천반란사건은해방공간에서대한민국의탄생을폭동과반란을통해저지하고자스탈린과소련공산당,그의충실한하수인인김일성,그리고남로당괴수박헌영과남한내좌익들이합작하여일으킨폭동ㆍ반란3종세트다.
흥미로운것은한국사회가좌회전하면서미증유의살육극이벌어졌던폭동ㆍ반란3종세트의용어가완전세탁되고있으며,대한민국의탄생과건국을방해하고자했던폭동주모자와반란자들이마치통일조국건설을위해싸우다희생된영웅인양예우를받고있다는점이다.
이뒤집혀지고있는현대사의광란속에서역사적사실(historicalfact)의추적을통해폭동ㆍ반란의본질을제기한문제의저작이바로이책이다.
대한민국의정체성을바로잡기위해기획된『대구10월폭동/제주4ㆍ3사건/여ㆍ순반란사건』은대구폭동,제주폭동,여ㆍ순반란사건이벌어진해방공간의시대상을면밀분석하고,발생원인과진행경과,후폭풍을정밀복기하여이세사건이스탈린의지령과남북공산주의자들의합작품이란사실을증명해내고있다.
특히이책에서저자는해방직후남한사회가급격히좌경화된이유로여운형이정권을이양받는조건으로조선총독부의엔도류사쿠(遠藤柳作)정무총감에게받아낸정치범의석방과식량배급권을지적하고있다.여운형의강력한요구에의해1945년8월16일오전9시,일제하에서공산주의활동을하다수감된1만여명의사상범이일시에석방되면서남한사회는순식간에좌익으로기울어졌다.
또남로당들이격렬한폭력투쟁전술로이행한문제와관련하여1948년2월19일부터인도의캘커타(현콜카타)에서열린‘동남아청년대회’를주목한부분은의미심장하다.이회의를통해모스크바로부터캘커타회의에참여했던각나라들에무장투쟁이지령되었고,소련은각국의무장투쟁을적극지원했다.
캘커타회의에서소련은동남아의공산주의자들과직접접촉을함으로써회의이후수개월내외에말레이반도,미얀마(현미얀마),필리핀,인도네시아등동남아일대와한국에서일제히일어난무장투쟁은모스크바의명령과깊은관련이있다고본다.
지금까지북한을비롯하여좌파학계에서는여ㆍ순반란사건은남로당이나북한의조직적인지도하에일어난사건이아니라14연대의좌익맹동분자들이일으킨사건이라고발뺌을해왔는데,그로부터두달후발생한제주폭동,8개월후벌어진여ㆍ순반란사건이캘커타회의와어떤연계가있는지학계의연구를자극하는기폭제가될것으로보인다.
임동원의연구에의하면1948년2월부터1950년4월까지남로당의폭력투쟁으로인한피해는사망3만6,000명,부상1만1,000명,가옥손실5만호와이로인한피해자가31만여명에달했다.해방후한국의상황을연구한브루스커밍스는빨치산투쟁이절정에달했던1949년10월무렵빨치산규모는8만9,900여명,빨치산의출몰횟수는1,330회나되었다고추산했다.14연대반란사건이발생한1948년10월부터1949년8월사이에전개된빨치산토벌작전에서빨치산9,500여명이사살,부상또는생포되었다.
14연대반란은비극으로점철된사건이었지만,한편에선새옹지마의계기였다.이사건을계기로숙군작업을통해군부에침투한붉은세력을거의대부분제거함으로써대한민국국군은6ㆍ25남침을당했을때와해되지않고용맹하게싸워이나라를구해냈다.이런차원에서볼때14연대반란사건은존메릴이말한것처럼‘축복으로끝난비극’이었다.
책속으로추가
P.268
반란사건여파로숙군작업이계속되어1949년7월에일단종료되었는데,이시기까지총4,749명의장교와하사관,사병들이사형ㆍ유기징역ㆍ불명예제대등의처벌을받았다.또숙군조사과정에서체포위험이닥치자군내부의남로당원및좌익적색분자5,568명이탈영했다.군총병력의10퍼센트에해당하는1만317명이좌익공산세력이거나그와관련이있는세력이었다는뜻이다.
좌익공산세력을솎아낸자리는훈련된우익청년들과월남한서북청년단등우익단체요원들이입대하여메웠다.1948년12월20일서북청년회위원200명이대전제2여단에입대했고,대동청년단원4,000명이경찰에들어갔다.국군은청년단들로부터병사들을충원받아1949년3월현재6만9,000명으로증강되었다.
P.253
14연대반란사건을계기로대한민국은명실상부한반공국가로탈바꿈하기시작했다.이승만의반공을위한강력한의지는1948년12월1일,법률제10호로국가보안법이제정되고,12월20일공포되는것으로표출되었다.
국가보안법은반란의단계에이르지않더라도반란을꾀하는단체의구성이나이적행위만으로도처벌이가능하도록되어있었다.이것은14연대반란사건으로공산반군의위험성과무서움을뜨겁게체험한이승만정부가비상시에위험을사전제거하기위한예방적조치가가능하도록한특별형법이었다.
P.325
14연대반란사건참여자들은대한민국의국민되기를거부하고조선인민공화국에충성하며,무상몰수ㆍ무상분배에의한토지개혁을주장하고나섰다.대한민국영토내에서대한민국법령을인정하지않고,정권을부정했으며,공산주의를해야한다고무장반란을일으킨사건이었으니이승만정부에겐‘내부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