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산업화와선진화의설계자김재관
주인공김재관(1933~2017)은경기화성에서태어났다.서울대기계공학과재학중6·25사변으로부산으로피난,학업을계속하며미군부대통역을맡다가특수강에눈을떴다.졸업후한국산업은행에입사했다가독일정부장학생으로뮌헨공과대학에유학,금속재료학전공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데마크(DEMAG)철강종합기획실에서근무하며혼자서「한국의철강공업육성방안」보고서를작성하여1964년독일을방문한박정희대통령에게전달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창립때해외유치과학자1호로참여,제1연구부장과특수기재연구실장,이후상공부초대중공업차관보,국방과학연구소(ADD)부소장을거치며포항제철설립을비롯해기계·조선·자동차등을핵심으로하는한국의중화학공업화와방위산업육성의청사진을제공했다.
산업화를넘어선진화로도약하기위해국가표준제도가절실함을내다보고한국표준연구소를설립,5년간소장으로있으면서한국표준시확립등의성과를내고,헌법에‘국가표준’을명문화하는데기여했다.공직에서물러난후인천대학교기계공학부교수와대학원장을지내며후학을양성했고,편역서『묄렌도르프』를통해구한말독일인재정고문묄렌도르프가조선의산업화에기여한면모를재조명했다.
뮌헨의박정희에게건넨보고서
제5대대통령취임1년후인1964년12월,박정희는독일(서독)방문길에오른다.‘고속도로구상’과‘차관(借款)구걸’,‘광부와간호사의눈물’로익히알려진그방문이다.귀로에오르기전날박정희가뮌헨의숙소에서독일유학생과교민들에게베푼조찬에서일어난조그만사건하나가대한민국의역사를바꾼다.
“여러분들께서혹시저에게하시고싶은말씀이있으시면기탄없이해주십시오.”
박정희를바라보고있던유학생일행이일제히김재관을향해고개를돌렸다.이미유학생들은김재관이그동안준비한「한국의철강공업육성방안」을박정희대통령에게전달하기로계획하고있었다.대통령은독일방문중여기저기가는곳마다유학생들과교포들로부터5·16혁명을일으킨것에대해비판의목소리를듣고있었고,유학생들은이를익히알고있었다.하지만유학생들은“적어도우리는발전적인의견이나제안을하자”고합의를했고,이에그동안김재관이준비한종합제철계획안을전달하기로한것이었다.
김재관은초조한마음으로대통령을향해천천히발을내디뎠다.그의손에는책자가세권들려있었다.그중하나가「한국의철강공업육성방안」이었다.그는두손으로책자를박정희대통령에게건넸다.대한민국산업발전역사에한획이그어지는순간이었다.
-“2.대한민국의100년미래를준비하다”중
2년여뒤KIST가발족하고해외에서연구생활을하고있던과학자18명을‘유치과학자’1호로불러들일때,유일하게비(非)미국유학파로포함된게김재관이었다.김재관은한국최초의종합제철소설립자금을마련하기위한‘대일청구권자금’협상의전면에나서연산(年産)103만톤규모의제철소설립안을관철해자금을따내고,그가손수설계하고말뚝을박아구획한포항제철(현POSCO)평면은20년동안생산규모가5배로증가할때까지도기본설계변경이필요없을정도였다.2021년세밑에51세나이로퇴역한포스코‘고로(高爐)1호’가바로김재관이고집스레설계한103만톤그용광로다.
산업화넘어선진화로,그이면의과학자들
정주영의‘500원지폐거북선’전설의바탕에도,최초고유모델국민차‘포니(PONY)’의배경에도김재관이있었다.그는KIST부장·실장을거쳐국방과학연구소(ADD)부소장으로방위산업의기틀을닦은김재관은상공부초대‘중공업차관보’로서현대의고유모델자동차생산결단을이끌어냈다.신설된한국표준연구소(현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초대소장으로서대한민국‘시간독립’을이뤄냈다.표준연홈페이지(kriss.re.kr)첫화면인그‘대한민국표준시’다.
김재관의마지막숙원은선진국다운표준제도를확립하는일이었다.헌법에명문화하는일이었다.박정희의예기치않은서거후에도표준연소장으로서‘표준제도조항의헌법명문화’를추진하고,정치적격동기에사인(私人)으로돌아가서도국회와정당,주무부서를문지방닳도록드나들며설득한결과가,1980년제5공화국헌법부터현행헌법까지이어지고있는“국가는국가표준제도를확립한다”(제1272항)라는조항이다.
윤계섭서울대명예교수,이상희·채영복전과학기술부장관,김명자전환경부장관,정낙삼표준연1호유치과학자,신성철전KAIST총장이추모와추천의글들을썼다.이들은“한국의경제기적뒤에가려진김재관박사같은과학기술자들의업적과헌신이재조명되고널리알려질계기가되기바란다”라고입을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