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공족 朝鮮王公族

조선 왕공족 朝鮮王公族

$15.00
Description
나라를 넘기고 일본의 ‘왕공족’이 된
대한제국 황실의 ‘그 후’를 파헤친다!
‘덕수궁 이태왕’ 고종과 ‘창덕궁 이왕’ 순종을 비롯, 조선 왕공족 26명의 행적을 파헤친다.

한일합방은 총 한 방 안 쏘고,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종이(조약) 위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대한제국 황실은 ‘가(家)의 제사의 보전’을 대가로 나라를 일본에 넘기고, 일본제국 황실에 ‘조선 왕공족’으로 편입되었다. 고종과 그 형, 순종과 그 후손들까지, 제국 일본의 신민(臣民)이 된 4대 26명은 일제 강점기를 어떻게 살아갔으며, 해방 후에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저자

신조미치히코

1978년일본아이치(愛知)현에서출생했다.2009년규슈(九州)대학교비교사회문화학부에서박사학위를취득하고같은해규슈대학교한국연구센터강사(연구원),2011년조교가되었다.2012년니가타(新潟)대학교대학원현대사회문화연구과조교를거쳐2015년부터페리스여학원대학교국제교류학부준교수,2022년부터교수로있다.전공은동아시아근대사이다.지은책으로『천황의한국병합(天皇の韓國倂合)』(2011),공저로『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2011),『대한제국의보호와병합(大韓帝國の保護と倂合)』(2013)이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머리말
조선왕공족가계도

서장제국이란무엇인가:동아시아의황제

제1장한국병합과황제의처우:폐위됐지만신하는아니다
이토히로부미의대한(對韓)정책
왕공족의탄생:‘대공(大公)’대신‘왕’
이왕책립:서구근대의규칙을중시

제2장제국일본에뿌리내리는왕공족:각자의처세술
준황족대우:「왕공가궤범」을둘러싼분규
왕공족26명의민낯:공순(恭順)인가반항인가
I이왕가:대한제국의적류(嫡流)와황족출신의비
II이강공가:품행불량한초대당주,빈궁한후계자
III이희공가:쿠데타를계획한음지의계보
궁내성의『왕공족보』편찬

제3장‘황제’의승하와제국일본의고뇌
이례적인‘국장’선택:조선인회유를위해
묘비와만장에‘황제’기재요구
이태왕과이왕실록편수:제국의정통성을위하여

제4장쇼와시대의왕공족,그들의조국은
‘프린스리’이은의서양행
육군장교의생업과충의:왕공족군인3인
종전,상실,그리고빈곤:차디찬눈길

종장제국에있으면서무슨생각을했는가

후기
참고문헌
옮긴이의

출판사 서평

가문존속을대가로나라를넘긴임금,
일본황실의왕족·공족이된그일가족―
조선왕공족,그들은누구이며무엇을하였는가

총한방안쏘고나라를넘기다

조선은왕이국가를사적인세습재산으로취급하던가산제(家産制)국가였다.나라가원래왕의것인데,그래서왕이나라를팔겠다는데뭐라할수있겠는가?(옮긴이의말,321~322쪽)

1910년의한일합방을이보다더직설적으로일갈할수있을까?『조선왕공족』(신조미치히고지음,이우연옮김)은나라를일본에넘기고그들자신은일본제국황실에‘조선왕공족’으로편입된고종과그형,순종과그후손들까지,제국일본의신민(臣民)이된4대26명의이후행적을파헤친책이다.
한일합방조약조인직후연회에서,당시조선통감이고합방후초대총독이되는데라우치마사타케는무력으로침입한임진왜란에서뜻을이루지못하고패퇴한가토기요마사와고니시유키나가를회상한다.그의감회처럼한일합방은“군인한명움직이지않고,피한방울흘리지않고”근대적조약의형식을빌려이뤄낸쾌거였다(한국어판서문,6~7쪽).
흔히‘을사오적’이라지목하는중신(重臣)들은차치하고,대한제국황제는어떻게그토록순순히나라를통째로내줄수있었을까?저자는이씨황실이란‘가(家)’의제사의보전이그대가였다고지적한다.조선은물론대한제국도군주1인만이주권을갖는전제군주제국체(國體)였기에가능한일이었다.

왕공족그들은어느나라사람인가?

한일합방으로대한제국황제와직계및그배우자들은일본의왕족으로,방계와배우자들은공족으로편입되었다.덴노(천황)를정점으로한일본제국황실아래편입된이들‘조선왕공족’의면면을보자.아들에게양위하고‘덕수궁이태왕’으로물러난고종과그형인흥왕이희,합방조약의당사자인‘창덕궁이왕’순종은독립한조선을보지못하고눈을감았다.순종의형제자매들인영왕(영친왕)이은,의왕(의친왕)이강,덕혜옹주와2대후손들까지,책은모두4대26명의조선왕공족을조명한다.망국의책임에서자유로울수없는이들대부분은철저히일본황족의일원으로스스로자리매김하며살아갔다.저자가일본인이기에거침없이쓸수있었으리라는것을감안해도,일본제국에대한이들의충성스러운태도나일부인사들의조신하지못한사생활은같은한국인이읽기에낯부끄러울정도다.
‘망국의임금’순종이일본제국과덴노를대하는마음가짐을극명하게말해주는것은1917년창덕궁에대화재가일어난직후순종이한발언이다.이완용은화재를복구하기까지잠시덕수궁으로이어(移御)할것을추진했으나,막상순종은합병때덴노가하사한덴노와황후의진영(眞影)이소실된것을안타까워하고,“천황폐하로부터받은창덕궁이기때문에움직이지않겠다”는입장을고수했다(117~119쪽).
순종의이복동생으로서황태자에책봉되고이토히로부미의눈에들어어린나이에일본에유학한영왕이은은일본황족과마찬가지로육군사관학교를나와제국군인의길에충실했다.태평양전쟁중일본항공대가미국에연전연패할때는아들이구에게“폐하께면목이없다”고했고(252쪽),도“우리들왕족은일본의황족사람들과마찬가지로남자는특별한신체사정으로폐하의허락이있는경우외에는육·해군어느쪽인가의길을골라야한다”(288쪽)고타일렀다.책은그밖에이은·이강보다덜알려진그들의2대후손들까지의일화로그득하다.
한편이은은일본덴노의방계인마사코공주(이방자)와결혼했고,이복여동생덕혜옹주는쓰시마번주(藩主)의후손인소다케유키(宗武志)백작과결혼했다.이런일들은조선지배를공고히하고자하는일본의계획에따른정략결혼아닌가?책은그렇게만볼수없다고단언한다.신분제도가아직공고하던일본에서,아무튼황족에편입된조선왕공족과혼인으로연결되는것은일본의황족·왕족·지방귀족의입장에서도가문과위세를유지하는데확실히보탬이됐다는말이다.

대한제국황실,쓸쓸한말로

국권을회복한후옛황실을다시모시려는복벽(復?)의움직임은없었을까?철저히일본황실의일원으로살아간이은자신부터뜻이없었다.결국대한제국황실의적통(嫡統)은이은의외아들이구(李玖)가하필이면이은의도쿄사저였던아카사카프린스호텔에서객사(2005)함으로서끊기고,제사는이강의손자가이구의양자로입적해계승하고있다.혈통으로가장적류(嫡流)에가까운인물은이구사망(2005)당시일본가이세이(開成)고교감으로있던모모야마고야(桃山孝哉,이강의손자)이지만그는스스로“백퍼센트일본인으로생각한다”고선언했고,한국에서는이강의서녀(庶女)를여제(女帝)로선포하고전주이씨대동종약원과다투는단체도있다(282~283쪽).
한일각자의국가적,민족적자존심문제를넘어객관적이고중립적인시각이아쉬운부분들도있다.헤이그밀사사건(1907)후고종의황제양위를압박하며“사직이중하고임금은가볍다”고한이완용의말(43쪽)에서‘사직’은과연황실의가문만을의미하고나라를뜻하는것은아니었을까?고종과순종인산(因山)날의3·1만세운동(1919)과6·10만세운동(1926)을한갓‘소요’로치부할수있을까?그리고한국에는음으로양으로독립운동에가담한거의유일한황실인물로알려진의왕(의친왕)이강을반골·부랑아처럼만기술한것등,일본인의입장에서작심하고쓴만큼향후제대로치열하고따라서더생산적일수있는논쟁거리도책은풍부하게담아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