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5·18을 기념하는 공간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어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쓴 글입니다. 기념공간을 계획하고 만들고 운영하는 주체들은 그동안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누가 기념공간 조성을 주도하게 되는가에 따라 기념공간이 무엇을 기억하는가, 무엇을 추모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추모하는가에 대한 내용도 같이 달라집니다. 기념공간이 만들어진 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그 기능과 의미는 계속 변해 왔습니다. 기능과 의미가 달라지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답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념을 위한 기억에는 ‘국가의 공식 기억’과 ‘시민의 억압된 기억’이 있습니다. 이 기억들이 공식화되어 가면서 점차 집단기억으로 발전되어 나타나게 되고, 이 집단기억들은 기념공간에 반영됩니다. 집단기억이 공식화되고 이것이 기념공간에 투사된다는 것은 기념공간 조성에 결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고, 또 이에 대한 시민들의 정치적 투쟁의 결과가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군사독재정권, 민주정권,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정권에 따라 기념공간 조성에 영향을 끼쳐 왔고, 시민들도 그 정치적 요인에 의해 기억의 유지, 계승, 발전을 위한 관점과 방식을 다르게 표출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5·18기념공간은 152곳입니다.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라 이 기념공간의 성격을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이를 시기적으로 나눠 보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독재정권이 집권하면서 ‘항쟁공간을 배제하고 방치한 시기’입니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독재정권의 철저한 탄압과 배제로 인해 기념공간이 거의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시민사회에서 주도하여 항쟁의 의미를 강조하는 기념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항쟁기억의 재현과 기념 시기’입니다. 1993년부터 2007년까지를 말합니다. 이때는 체제 안정을 위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고 기념사업의 주체로 국가가 나서게 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제도권과 함께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주체가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이들이 주도하는 기념공간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국가 주도로 넓은 면적의 기념공간을 확보하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민주묘지, 기념공원, 사적지 등 기념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아울러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어 개인 열사들의 항쟁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도 곳곳에 조성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기념공간의 훼손과 왜곡 시기’입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입니다. 이때는 5·18에 대한 왜곡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이와 동시에 5·18기록물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으며 지자체와 교육청이 주체가 되어 항쟁기억을 위한 사건현장 중심의 공간 조성이 나타나기도 한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의 시기 동안 5·18을 기념하는 담론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요? ‘항쟁공간의 배제와 방치 시기(1980~1992)’에는 국가와 시민사회 간에 치열한 집단기억투쟁이 있었습니다. 5·18에 대한 국가의 ‘공식담론’과 시민사회의 ‘저항담론’이 첨예한 마찰을 일으킨 때입니다. ‘항쟁기억의 재현과 기념 시기(1993~2007)’에는 5·18에서 광주가 빠진 ‘5·18민주화운동론’이 나타났습니다. ‘5·18의 전국화, 세계화론’이 나오고, ‘인권도시론’, ‘문화도시론’도 등장하였습니다. ‘전국화, 세계화론’은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주로 논의되었고, ‘인권도시론’이나 ‘문화도시론’은 광주지역에서 지역의 발전을 위한 논리로 대두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불가피하게 여러 문제점들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지역성’이라는 프레임입니다. 국가가 주도한 기념공간의 대부분이 광주에 집중되다 보니 전남이 소외되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5·18의 전국화,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광주라는 지명을 삭제하는데 시민사회가 동의는 하였으나 여전히 지역의 한계성을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두 번째는 구묘지와 신묘지 사이의 갈등입니다. 신묘지 조성 전까지 망월묘지에는 5·18열사들과 5·18 이후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진 많은 열사들이 같이 안장되어 있었지만, 신묘지 조성 후에는 5·18영령들만 그곳으로 이장되면서 다른 민주화세력들과 갈등이 조장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지역주의’라는 프레임입니다. ‘기념공간의 훼손과 왜곡 시기(2008~현재)’에는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5·18을 민주화운동이라 명명하면서도 지역주의에 의한 역사 왜곡을 심화시켰습니다. 북한사주설을 주장하는 보수세력은 교과서 개정을 통해 역사 왜곡을 공식화했고, 기념공간을 훼손하고 방치하였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 시기에 등장한 ‘문화도시론’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5·18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발전론’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에서는 ‘지역발전론’을 내세우면서도 ‘문화도시’와 ‘5·18’을 분리시켰습니다. 또한 광주광역시와 다른 지역 간에도 형평성을 들먹이며 지역 간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옛 전남도청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하면서 5·18사적지를 크게 훼손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5·18은 주체에 따라 담론이 바뀌고, 이에 따라 기념공간도 기능과 의미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배제, 포용, 방관 등 다양한 주체성을 드러냈습니다. 여기에 대응해 시민사회는 진실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국가에 적극적으로 저항도 하고, 국가의 담론을 일부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주체성을 계속 재구성해 왔습니다.
국가에서는 기억투쟁이 활발했던 망월동과 상무대 옛터 등에 재현공간을 건립하여 국가의례와 기념공간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시민들은 여기에 더해 의례와 기념 외에도 소통, 교육, 문화, 연대의 장소로 활용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5·18기념공간은 5·18의 역사적 의미가 커지고 세계적으로도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인정을 받아 그 활용 범위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점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5·18의 진실규명이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못한 데에서 기인합니다. 5·18은 아직도 국가의 공식기억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4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가 변해가고 있으며, 다양한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해 물리적 장소를 점하는 기념공간이 더 이상 기억의 매체로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18기념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급선무는 5·18이 국가의 공식기억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구심점으로서 종합적인 기념관이 조성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점으로 흩어져 있는 기념공간들을 선으로, 면으로 연계하는 체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교육기관 그리고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자체는 5·18을 지역발전의 매개체로 삼아 지역의 정체성 확립, 지역관광산업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교육기관은 5·18의 정신을 공교육과 연계시키고, 기념공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숭고한 5·18의 정신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시민사회는 5·18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대중매체 연계 및 활용과 더불어 현장성에도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5·18기념공간과 관련한 여러 문제점들과 그 해결 방안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5·18기념공간의 생성,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이 공간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주제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기념을 위한 기억에는 ‘국가의 공식 기억’과 ‘시민의 억압된 기억’이 있습니다. 이 기억들이 공식화되어 가면서 점차 집단기억으로 발전되어 나타나게 되고, 이 집단기억들은 기념공간에 반영됩니다. 집단기억이 공식화되고 이것이 기념공간에 투사된다는 것은 기념공간 조성에 결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고, 또 이에 대한 시민들의 정치적 투쟁의 결과가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군사독재정권, 민주정권,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정권에 따라 기념공간 조성에 영향을 끼쳐 왔고, 시민들도 그 정치적 요인에 의해 기억의 유지, 계승, 발전을 위한 관점과 방식을 다르게 표출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5·18기념공간은 152곳입니다.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라 이 기념공간의 성격을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이를 시기적으로 나눠 보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독재정권이 집권하면서 ‘항쟁공간을 배제하고 방치한 시기’입니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독재정권의 철저한 탄압과 배제로 인해 기념공간이 거의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시민사회에서 주도하여 항쟁의 의미를 강조하는 기념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항쟁기억의 재현과 기념 시기’입니다. 1993년부터 2007년까지를 말합니다. 이때는 체제 안정을 위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고 기념사업의 주체로 국가가 나서게 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제도권과 함께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주체가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이들이 주도하는 기념공간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국가 주도로 넓은 면적의 기념공간을 확보하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민주묘지, 기념공원, 사적지 등 기념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아울러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어 개인 열사들의 항쟁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도 곳곳에 조성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기념공간의 훼손과 왜곡 시기’입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입니다. 이때는 5·18에 대한 왜곡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이와 동시에 5·18기록물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으며 지자체와 교육청이 주체가 되어 항쟁기억을 위한 사건현장 중심의 공간 조성이 나타나기도 한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의 시기 동안 5·18을 기념하는 담론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요? ‘항쟁공간의 배제와 방치 시기(1980~1992)’에는 국가와 시민사회 간에 치열한 집단기억투쟁이 있었습니다. 5·18에 대한 국가의 ‘공식담론’과 시민사회의 ‘저항담론’이 첨예한 마찰을 일으킨 때입니다. ‘항쟁기억의 재현과 기념 시기(1993~2007)’에는 5·18에서 광주가 빠진 ‘5·18민주화운동론’이 나타났습니다. ‘5·18의 전국화, 세계화론’이 나오고, ‘인권도시론’, ‘문화도시론’도 등장하였습니다. ‘전국화, 세계화론’은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주로 논의되었고, ‘인권도시론’이나 ‘문화도시론’은 광주지역에서 지역의 발전을 위한 논리로 대두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불가피하게 여러 문제점들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지역성’이라는 프레임입니다. 국가가 주도한 기념공간의 대부분이 광주에 집중되다 보니 전남이 소외되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5·18의 전국화,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광주라는 지명을 삭제하는데 시민사회가 동의는 하였으나 여전히 지역의 한계성을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두 번째는 구묘지와 신묘지 사이의 갈등입니다. 신묘지 조성 전까지 망월묘지에는 5·18열사들과 5·18 이후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진 많은 열사들이 같이 안장되어 있었지만, 신묘지 조성 후에는 5·18영령들만 그곳으로 이장되면서 다른 민주화세력들과 갈등이 조장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지역주의’라는 프레임입니다. ‘기념공간의 훼손과 왜곡 시기(2008~현재)’에는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5·18을 민주화운동이라 명명하면서도 지역주의에 의한 역사 왜곡을 심화시켰습니다. 북한사주설을 주장하는 보수세력은 교과서 개정을 통해 역사 왜곡을 공식화했고, 기념공간을 훼손하고 방치하였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 시기에 등장한 ‘문화도시론’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5·18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발전론’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에서는 ‘지역발전론’을 내세우면서도 ‘문화도시’와 ‘5·18’을 분리시켰습니다. 또한 광주광역시와 다른 지역 간에도 형평성을 들먹이며 지역 간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옛 전남도청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하면서 5·18사적지를 크게 훼손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5·18은 주체에 따라 담론이 바뀌고, 이에 따라 기념공간도 기능과 의미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배제, 포용, 방관 등 다양한 주체성을 드러냈습니다. 여기에 대응해 시민사회는 진실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국가에 적극적으로 저항도 하고, 국가의 담론을 일부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주체성을 계속 재구성해 왔습니다.
국가에서는 기억투쟁이 활발했던 망월동과 상무대 옛터 등에 재현공간을 건립하여 국가의례와 기념공간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시민들은 여기에 더해 의례와 기념 외에도 소통, 교육, 문화, 연대의 장소로 활용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5·18기념공간은 5·18의 역사적 의미가 커지고 세계적으로도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인정을 받아 그 활용 범위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점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5·18의 진실규명이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못한 데에서 기인합니다. 5·18은 아직도 국가의 공식기억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4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가 변해가고 있으며, 다양한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해 물리적 장소를 점하는 기념공간이 더 이상 기억의 매체로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18기념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급선무는 5·18이 국가의 공식기억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구심점으로서 종합적인 기념관이 조성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점으로 흩어져 있는 기념공간들을 선으로, 면으로 연계하는 체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교육기관 그리고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자체는 5·18을 지역발전의 매개체로 삼아 지역의 정체성 확립, 지역관광산업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교육기관은 5·18의 정신을 공교육과 연계시키고, 기념공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숭고한 5·18의 정신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시민사회는 5·18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대중매체 연계 및 활용과 더불어 현장성에도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5·18기념공간과 관련한 여러 문제점들과 그 해결 방안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5·18기념공간의 생성,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이 공간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주제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5·18과 기념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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