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 유진오 평전 (헌법기초자)

현민 유진오 평전 (헌법기초자)

$15.17
Description
대한민국 헌법 기초자 유진오의 생애를 돌아보는 인물평전
대한민국 헌법의 초석을 세운 유진오
그가 역사에 남긴 빛과 어둠

대한민국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그의 공과를 공정하게 살핀 책.
1948년 7월 17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날이다. 해방 후 황무지 같던 우리나라에서 선진적·진보적인 헌법안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유진오의 공이 크다. 하지만 생애 한편 ‘권력의 부역자’라는 짙은 그늘 역시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은 유진오의 공과를 공정하게 기록해 역사의 법정에 한 사료로 삼기 위해 집필됐다. 더불어, 시대의 고비 앞에 보여준 유진오의 태도를 통해 지식인의 역할과 소명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

김삼웅

저자김삼웅
독립운동사및친일반민족사연구가로,현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공동대표를맡고있다.
『대한매일신보』(현『서울신문』)주필을거쳐성균관대학교에서정치문화론을가르쳤으며,4년여동안독립기념관장을지냈다.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위원,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위원,백범학술원운영위원등을역임하고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자문위원등을맡아바른역사찾기에부단히노력하고있다.
역사·언론바로잡기와민주화·통일운동에큰관심을두고,독립운동가와민주화운동에헌신한인물의평전등이분야의많은저서를집필했다.
주요저서로는『곡필로본해방50년』,『한국필화사』,『백범김구평전』,『을사늑약1905그끝나지않은백년』,『단재신채호평전』,『만해한용운평전』,『안중근평전』,『이회영평전』,『노무현평전』,『김대중평전』,『안창호평전』,『빨치산대장홍범도평전』,『김근태평전』,『독부이승만평전』,『안두희,그죄를어찌할까』,『10대와통하는독립운동가이야기』,『몽양여운형평전』,『우사김규식평전』,『위당정인보평전』,『김영삼평전』,『보재이상설평전』,『의암손병희평전』,『조소앙평전』,『백암박은식평전』,『박정희평전』등이있다.최근의저서로는『신영복평전』이있다.

목차

여는말

1장출생과가계
2장경성제국대학시절
3장문학청년시절
4장보성전문학교교수시절의친일행위
5장해방공간의활동
6장각계로부터제헌헌법초안의뢰받아
7장제헌헌법에담긴민주공화주의
8장대학경영자의1950년대
9장4월혁명과5ㆍ16쿠데타시기
10장정계에투신,야당의길
11장신민당총재로서3선개헌반대투쟁
12장정계은퇴이후유신시대
13장은둔기와사망

닫는말

출판사 서평

헌법제1조1항
“대한민국은민주공화국이다”

광장의시민들이적폐세력을향해부르짖은헌법제1조.
대한민국은민주공화국이며,대한민국의주권은국민에게있고모든권력은국민으로부터나온다는것.유진오의큰업적은바로이나라의정치인들이결코잊지말아야할엄청난메시지가담긴헌법을기초했다는사실이다.
해방이후,헌법제정을위해여러기관및단체에서과도적헌법안이나왔다.유진오는당시‘조선유일의헌법학자’신분이었기에해방정국3대주도세력으로부터각각헌법초안을의뢰받는다.헌법초안을작성할때앞선과도적헌법안외에세계주요각국의헌법전과여러학자들의저서를참고하여여러날고심한끝에헌법초안을작성하게된다.심의과정에서내용이추가되거나수정된것은있지만대부분유진오의초안이그대로통과되었다.즉,유진오가작성한헌법초안은그만큼상당히선진적이고진보적인헌법안이었다는말이다.헌법제정이개인의공적일수는없지만,해방후황무지같던상황에서이런헌법안이나올수있었던건빼어난헌법학자였던유진오의공이크다.
게다가법제처장으로임명되어신생정부의각종법률안과조약안을만든그는명백하게대한민국발전에기여한인물이라단언할수있다.

대한민국발전에기여한공로
하지만명백한친일반민족행위자였던지식인

그의공로는정부수립초기에만그치지않는다.어려운시기에야당을이끌며치열하게3선개헌반대투쟁을벌였고,총장재직시절고려대학교를발전시켜명문으로만든것도유진오였다.
그럼에도그의생애한편에는짙은그늘이드리운다.일제에협력한친일반민족행위자,5·16쿠데타이후맡았던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의직위,전두환정권하에서지낸국정자문위원및국토통일원고문자리등등.그때그때시류에맞추어처신해왔기에그의태도는일관성이없고모순적이다.고려대학교를가장크게발전시킨그였지만,오죽하면사후빈소를학교내에마련하지못하게한‘유진오빈소시위사건’이일어났을까?
유진오의일생에서특히부끄러운시기는일제강점기이다.친일단체의간부직을지내며각종강연과친일작품등으로일제의식민정책을옹호·지지하고침략전쟁을미화·찬양했다.훗날그는일제가자신의명성을이용하고자무단으로이름을도용한것이라고하였으나,직접나섰던각종강연이나기고,좌담등의발언은변명의여지가없다.
‘유진오’를검색해보면‘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꼬리표가늘따라붙는다.물론우리가너무잘알고있는천재적인지식인중에도‘친일반민족행위자’가상당수이다.식민지배하에있었다는시대의특수성을완전히배제할수는없겠지만,그런시대에도변절하지않았던훌륭한지사들이많기에면죄부가될수는없다.더욱이지식인의경우어려운상황(처지)에서도참과정의,민족과국민의편에서야한다며,이것이필부초동과지식인의처신이달라야하는이유라고저자는외친다.

시대정신이결여된지식인
유진오의삶은어떤교훈을남기는가?

이런관점에서유진오의삶역시안타까움을자아낸다.이런천재가조금더역사의식이뚜렷했다면현대사가다른판으로짜일수있지않았을까?
1906년에태어나1987년에사망한유진오의일생은아주거친역사의한가운데있었다.하지만반대로그의삶은아주무탄하기만했다.우수한두뇌와타고난재능으로문학인,법학자,관리,대학인,교육자,정치인,저술가의분야에서그는모두일가를이루고더러는명성과권위를얻었으며,역사의한자락에남는삶을살았다.일제에저항하지않았고이승만과는맞서지않았다.박정희의3선개헌장기집권때는업히다시피제1야당신민당총재가되어개헌반대투쟁에앞장섰으나전두환정권에는한쪽다리를얹혔다.
분명유진오가대한민국발전에기여한공이크다.그럼에도그에게찍힌‘권력의부역자’라는낙인은지식인의역할과사명에충실하지않았기때문이다.즉그는시대정신에충실하지못한지식인이었다.현실에는예민한감각의소유자였으나역사의식은크게무뎠던것같다.
그래서공로와과오를함께안고있는유진오의삶은여러모로우리에게의미가있다.그의친일행위와권력지향성의처신은‘반면교사’로,헌법초안과3선개헌반대투쟁은‘정면교사’로서의의미가있겠다고판단했다는저자의말처럼,그의공과를공정하게기록한이평전이역사의법정에한사료가되기를바라본다.
더불어수많은공로를지녔음에도‘유진오빈소시위사건’이왜일어나게되었는지,지식인이시대정신을잊지않는게왜그렇게중요한지,오늘날의지식인이이사회에서해야할역할과소명을다시한번생각해보는계기가될수있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