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4년제주
원명교체기의영향속에벌어진참혹한사건
<삼국사기>,<고려사>를비롯해<후한서>,<삼국지>위서동이전,<일본서기>,<당회요>등주변국사서에언급된‘탐라국’을문헌적으로개괄하며신석기시대부터고려시대까지살펴본다.저자는그중에서도유독1374년당대최고명장인최영장군을총사령관으로314척의배에2만5,605명의병력을제주도로파견하여소위‘목호의난’을진압한사건에주목한다.목호의난은몽골이세운원나라에고려가복속된후제주를탐라총관부(耽羅總管府)라는몽골의자치령으로운영하다가,원나라가무너지고고려가제주도에대한지배권을회복하고자할때,원나라정부에의해제주도로파견되어말을키우며살다현지화가된몽골인들이크게저항한사건이다.
최영의2만5천대군이제주로출병한까닭은
고려의병사가되어배를타고떠나보다
당시제주도인구가3만명수준이었음을감안하면최영장군의병력은엄청난대군이었다.그렇다면최영장군의병사력은왜이렇게어마어마한숫자였을까?공민왕(재위1351~1374)시절몽골의원나라를쫓아내고중국을확보한명나라에서황제주원장이직접고려공민왕을힐난하는글을보내온다.그글에는고려가외구들이마음대로침범하는데도이를막지못하는것을언급하며명나라는이번에왜선13척을잡았다고자랑하고,왜구와제주도목호가손잡고대항하기전에고려가이들을빨리처리해줄것을닦달하고있다.또황제주원장은침범한왜구를제대로막지못한명나라장교의목을엄벌로베고반대로왜선을나포하여본보기로죽이니바다가잠잠해졌다면서고려왕도이처럼하라며깐죽대는행동을보인것이다.이에화가난공민왕이1374년최영에게계책을준비하도록명하자최영이발끈하여무려배2,000척을건조하여왜구를잡고자하였다.이때만든배314척을이용하여최영은제주도에서벌어진목호의난을제압하였던것이다.당시말한마리는장정3명의가격이었다.제주에는총1만여마리의말이사육되고있었는데,이정도면최영이2만5천의군대를파병할가치로충분했던것이다.
이에저자황윤은최영장군부대에징집된안양쯤에사는고려시대사람이되어배를타고제주도에가보기로했고,목포까지가서배를타고추자도에들른뒤제주도에도착했다.제주에도착해서는최영장군과목호의흔적을찾아열심히돌아다니며보고듣고느낀생생한내용들을수집하였고,그과정에서몽골이제주도에미친영향이수백년이지난지금까지도여전히남아있다는것을알게되었다.
여행을마친저자는집으로돌아가지금까지탐방하며조사한내용을바탕으로역사소설을쓴다.제목은<갑인의변>.그래서이책은책속책의형태를띤아주독특한책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