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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작가.소장역사학자이자박물관마니아.혼자박물관과유적지를찾아감상·고증·공부하는것이휴식이자큰즐거움이다.대학에서는법을공부했다.유물과미술작품에대한높은안목으로고미술에서부터현대미술까지관련일을하며집필활동을이어가고있다.역사교양을대중화하고자글을쓴다.삼국시대와신라에특히관심이많다.《일상이고고학,나혼자가야여행》,《일상이고고학,나혼자경주여행》,《일상이고고학,나혼자백제여행》,《김유신말의목을베다》,《도자기로본세계사》,《박물관보는법》
프롤로그1.여행의시작KTX광명역KTX를타고삼국시대탐라국목포역도착통일신라시대탐라국2.국립해양유물전시관박물관소개최영이지휘한선박314척중국배,고려배튼튼한고려배가탄생한배경3.배를타고제주로목포항국제여객터미널고려시대제주도중국남부와일본사이의제주도해남우수영여객선터미널퀸스타2호4.추자도의전설삼별초의난제주도로간삼별초추자도의최영사당제주도에도착5.제주도에서하루숙박제주읍성동문재래시장제주목관아관덕정6.국립제주박물관아침을먹고박물관소개쿠빌라이를만난성주양호고려전시실불탑사로가는길7.제주도돌로만든상징들불탑사오층석탑공민왕의대반격돌하르방유래복신미륵의모자제주도로이주한몽골인들8.상륙한최영부대와의치열한전투항파두리성최영의이력명월포와명월성목호의저항새별오름9.몽골이남긴제주도남부유적제주진미마돈가추사유배지한때제주도최대사찰이었던법화사몽골사람들이주로살던지역하원동탐라왕자묘강정동대궐터범섬에필로그《갑인의변》참고문헌
관광지도에는없는제주여행고고학으로만나는전혀새로운제주이책은기존제주여행의관념을뚫고,고고학의눈으로제주와만나는역사여행에세이다.현지인은‘탐라’라했지만,육지인들에겐단지물건너고을이었던곳‘제주(濟州)’.이명칭의거리만큼이나느낌과입장의차이가존재했던곳.그렇다면오늘날제주는어떤곳일까?제주하면흔히이국적인휴양지를떠올리는우리에게저자황윤은흥미진진한역사속한장면을내민다.고려말최영장군의병사로징집,제주로떠나는입장이되어비행기가아닌일부러배를타고서….덕후출신소장역사학자인저자의편견없는가설과다양한문헌해설,그리고부지런한발품으로만나는제주탐사여행은흥미진진함을넘어모험에가까운쾌감을전한다.호남지방통계청에의하면제주도는이미한해관광객이1500만명이넘었고(2019년기준),올해4월부터코로나이전수준을회복하였을만큼폭발적인인기관광지임에도불구하고,역사여행도서및역사여행상품을찾아보기힘들다.따라서이책은우리가찾던전혀새로운제주도여행책이라할수있다.그동안자연체험과문화유산관광에만국한되었던제주도가최근에는맛집,여행지,카페등감성여행으로이어졌지만이책은의외로제외되어있던제주도의역사를개괄한다.특히전혀접해보지못한고대사부터고려시대까지의제주를들여다봄으로써제주에말이많은까닭,제주의심벌돌하르방의기원,옛날사람들은배타고어떻게제주에갔는지,탐라및제주도명칭의유래라든지,제주의정체성등등을현재남아있는유물유적과문헌속에존재하는실제역사를통해고증함으로써알게해준다.1374년제주원명교체기의영향속에벌어진참혹한사건〈삼국사기〉,〈고려사〉를비롯해〈후한서〉,〈삼국지〉위서동이전,〈일본서기〉,〈당회요〉등주변국사서에언급된‘탐라국’을문헌적으로개괄하며신석기시대부터고려시대까지살펴본다.저자는그중에서도유독1374년당대최고명장인최영장군을총사령관으로314척의배에2만5,605명의병력을제주도로파견하여소위‘목호의난’을진압한사건에주목한다.목호의난은몽골이세운원나라에고려가복속된후제주를탐라총관부(耽羅總管府)라는몽골의자치령으로운영하다가,원나라가무너지고고려가제주도에대한지배권을회복하고자할때,원나라정부에의해제주도로파견되어말을키우며살다현지화가된몽골인들이크게저항한사건이다.최영의2만5천대군이제주로출병한까닭은고려의병사가되어배를타고떠나보다당시제주도인구가3만명수준이었음을감안하면최영장군의병력은엄청난대군이었다.그렇다면최영장군의병사력은왜이렇게어마어마한숫자였을까?공민왕(재위1351~1374)시절몽골의원나라를쫓아내고중국을확보한명나라에서황제주원장이직접고려공민왕을힐난하는글을보내온다.그글에는고려가외구들이마음대로침범하는데도이를막지못하는것을언급하며명나라는이번에왜선13척을잡았다고자랑하고,왜구와제주도목호가손잡고대항하기전에고려가이들을빨리처리해줄것을닦달하고있다.또황제주원장은침범한왜구를제대로막지못한명나라장교의목을엄벌로베고반대로왜선을나포하여본보기로죽이니바다가잠잠해졌다면서고려왕도이처럼하라며깐죽대는행동을보인것이다.이에화가난공민왕이1374년최영에게계책을준비하도록명하자최영이발끈하여무려배2,000척을건조하여왜구를잡고자하였다.이때만든배314척을이용하여최영은제주도에서벌어진목호의난을제압하였던것이다.당시말한마리는장정3명의가격이었다.제주에는총1만여마리의말이사육되고있었는데,이정도면최영이2만5천의군대를파병할가치로충분했던것이다.이에저자황윤은최영장군부대에징집된안양쯤에사는고려시대사람이되어배를타고제주도에가보기로했고,목포까지가서배를타고추자도에들른뒤제주도에도착했다.제주에도착해서는최영장군과목호의흔적을찾아열심히돌아다니며보고듣고느낀생생한내용들을수집하였고,그과정에서몽골이제주도에미친영향이수백년이지난지금까지도여전히남아있다는것을알게되었다.여행을마친저자는집으로돌아가지금까지탐방하며조사한내용을바탕으로역사소설을쓴다.제목은〈갑인의변〉.그래서이책은책속책의형태를띤아주독특한책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