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 : 고통에서 삶의 치유로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 : 고통에서 삶의 치유로

$13.00
Description
전업주부로 살다가 마흔에 등단한 여성 작가, 박완서!
박완서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는 여성학자 양혜원이 연구한 박완서 이야기로, 박완서에게 글쓰기란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박완서 작품을 통하여 전하며, 저마다의 상처로 힘겨워하는 우리를 치유로 이끈다.
저자는 박완서 소설을 꿰뚫는 5가지 키워드인 ‘평등과 연애’, ‘섹스와 임신’, ‘트라우마’, ‘고통’, ‘독립’ 속에서 공감적 연구를 보여줌으로써,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마흔 입문자들에게 위로와 힘을 실어준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마흔에 등단한 박완서에게 글쓰기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가족을 챙기는 것 이외에 개인적 욕망을 가진 아내 혹은 엄마로 비칠세라 초창기에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만의 일”이라 칭하기도 했으나, 1996년 인터뷰를 보면 “취미로 하기엔 힘든 일”이라 하였다. 박완서에게 글쓰기는 전신을 던지고 자신을 버리는 고통인 동시에 온전한 나로 다가서는 이기적인 도구였다.
인생 후반 완전한 독립을 위해 글쓰기를 꺼내 최선을 다해온 박완서처럼, 진정 나다운 삶으로 가기 위해 어떤 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우리에게 마흔 줄에 인생 이력을 바꾼 박완서의 이야기는 등대가 되어준다.
저자

양혜원

서울대학교불어불문학과를졸업하고수년간기독교서적전문번역가로일했다.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에서여성학석사를수료했으며미국ClaremontGraduateUniversity에서종교학석사및박사학위를받았다.일본난잔종교문화연구소의객원연구원을거쳐,현재이화여자대학교한국여성연구원에서연구교수로재직하고있다.지은책으로『유진피터슨읽기』『페미니즘시대의그리스도인』(공저,이상...

목차

프롤로그
책을위한변명

1.박완서의마흔
글쓰기를시작하다
계기가있었고,시작했고,끝까지했다
자신에대한존중

2.평등,그리고연애
개인이된다는것
중년주부를살아있는여자로
자기마음의기준

3.섹스와임신
딸과아들
선택적아들낳기
무엇을위한섹스인가
엄마될권리

4.트라우마
트라우마를들어줄귀
아무도알아듣지못한말
쉬운답을거부한다

5.고통
신마저침묵하는고통
스스로이유를찾고납득되어야
다시산자의자리로
그의빈자리

6.독립
감정적독립
“틈바구니”에서다
홀로서기
한사람의몫

에필로그
글쓰기는계속된다

인용한작품및단행본목록

출판사 서평

평등과연애
남편은왜아내의일을질투하는가

《서있는여자》에나오는작가의말에서박완서는,“아내가한눈파는게외간남자가아닌자신의‘일’일때우리의미풍양속은그여자에게어떤벌을내릴것이며,남편은이새롭게대두된라이벌에게어떻게대처할것인가?”라는문제를다루어보고싶었다고한다.일-가정양립의문제를이렇게참신하게표현하다니,역시박완서답다.
지금은남자도일하는아내를원하는시대가되었으니남편에게아내의일은더이상라이벌이아니다.하지만그렇다고해서일하는아내만큼자신도가사를하는남편이드문것을보면,역시아직도남편은아내의일을라이벌로생각하는지도모른다.심지어아내가일을하지않으면먹고살기힘든데도집에서손하나까딱하지않는남편들을보면,아내가한눈파는‘자신의일’이라는라이벌에대한남편의질투는제법거센가보다.
그래서우리는오늘도《서있는여자》(1985)의연지처럼“부부간의대화속에남녀평등의문제를끌어들이는매력없는여자”들로살아간다.연지의그매력없음이우리에게는여전히오히려매력적이고유효하다.

섹스와임신
거부당한것은‘엄마될권리’

박완서는딸넷을낳고마지막에아들을낳았다.적게낳아야하는시국에아들을보겠다고저렇게많이낳았는가하는시선을느꼈음직하다.그래서일까,그는성감별낙태에유독민감했다.<해산바가지>(1985),<꿈꾸는인큐베이터>(1993),《아주오래된농담》(2000)에는선택적아들낳기라는‘신기술’을자기이익을위해이용하거나이용을강요당하는여자들의이야기가나온다.요즘이야아들딸에대한구분을굳이두지않지만,합법적으로태아성별을확인하여선택적아들낳기가가능했던시절이있었다.
우리는흔히섹스를충동적인본능의행위라고생각하지만사실섹스는매우계산된행위이다.특히임신의가능성을생각할때더욱그렇다.《그남자네집》의‘그여자’는섹스를하고싶은상대와하지못하고,임신을해도괜찮은상대와섹스를했다.다행히소설속그여자의다음다음세대쯤되는여자들은그렇게하지않아도된다.피임법을알기때문이다.
최근몇년간낙태죄폐지혹은낙태권이여성계의중요한이슈로떠올랐지만,박완서의소설을읽다보면낙태의권리이전에우리에게과연엄마가될권리가있었는지생각하게된다.박완서의소설속에비친대한민국은적어도여자들에게낙태를거부하는나라가아니었다.오히려여자들이거부당한것은엄마가될권리였다.그래서박완서는뱃속의아이가남자든여자든,부자든가난하든,그녀에게남편이있든없든―이이야기는<그대아직도꿈꾸고있는가>(1989)를보라―여자들의엄마될권리를응원한다.자신의흙수저인생을대물림하고싶지않아서출산을포기하는요즘정작우리가박탈당하고있는것은낙태의권리가아니라엄마될권리인지도모른다.

들어줄귀를찾는‘트라우마’
치유가시작되는순간

트라우마는자신의의지와는무관하게반복되는기억을끝없이말하도록한다.그래서항상이야기를들어줄귀를찾는다.박완서는1992년에펴낸《박완서문학앨범》에서자신이소설가가된것은결국전쟁경험의트라우마때문이라고했다.처음에는전쟁중사망한오빠의망령에서벗어나려는몸부림이었다가,나중에는이전쟁경험이자신의발꿈치에붙어다니며떨치려야떨칠수없는기억이되어자신의글쓰기를지배했다고했다.들을귀를찾아그토록글을써왔던박완서였지만인생말년고독감에봉착할수밖에없었던이유는쉬운답을거부하는트라우마의속성때문이다.누가더참혹하게당했는지비교자체가불가능한트라우마는타자의트라우마를늘사소하게만들고,그렇게우리의트라우마는서로만날길을잃는다.트라우마는언제나스스로풀어야하는숙제임을알게한다.
트라우마로글쓰기를시작한박완서가1년가량붓을놓았던시간이있다.“구원의가망이없는극형”이라표현했던극심한고통은25세아들을사고로잃은사건이었다.신마저침묵하는고통은길기만했다.1993년에발표된단편집《나의가장나종지니인것》은화자가한사람이고,처음부터끝까지그의독백으로이어진다.게다가그독백은전화에대고하는독백이다.공감도답도얻을수없는독백은고통중에가장고독함을보여준다.고통은묘한성격이있어서누군가알아주었으면하면서도,또한편으로는그누구도내고통을이해할수없다는절망이공존한다.그러나마지막장면에이르러타인의쓰임은예상치못한모습으로드러난다.절벽같은침묵속에들리는흐느낌!누군가나와함께울어준다는것을깨닫는순간우리의고통은비로소치유로돌아선다.
트라우마와고통의무게로보자면,언제나가장큰것은자신의것이다.다만박완서의경험과해법은출구를찾은우리에게담담한울림을건네힘을더해준다.

중년주부를살아있는여자로
박완서의글쓰기는현재진행형

마흔에데뷔한작가에게서풋풋한연애이야기를기대하기는힘들것이다.하지만박완서에게는오히려그것이힘이었다.아무도중년주부에게관심을두지않던시절,그들에게개성을입히고목소리를입혀살아있는여자로만들어냈다.비단자기일을가지는것만이아니라,사랑에서도제도에매이지않을것을과감히피력하며지붕밑을벗어난여자의진정한독립을이야기했다.
작가가표출해온지붕안팎의평등과연애,여자들의엄마될권리는박완서가1931년생여성작가라는점을감안한다면신선하다못해파격적이라해도과언이아니다.뿐만아니라전쟁이라는한반도의현대사속에서벗어날수없었던한가족이겪은트라우마와고독,자식을먼저떠나보낸어미가떠안아야했던극단의고통,그리고중년여성의홀로서기는한개인의사유이면서동시에우리모두가공유하는사회적경험이기에박완서의글쓰기는여전히현재진행형이며우리삶에등대가된다.

저자는독자로시작하여박완서연구자가되었지만,박완서를학술적연구대상이아닌보다일반독자에게다가갈수있는존재로그려내어항상우리곁에살아있기를바랐다.이야기의효능을믿었고자신의이야기가다양한효능을발휘해독자를위로하고웃기기를바랐던박완서의뜻처럼.
연구자나소설가는늘그들이알면더고통스러운것들을파헤친다.하지만그애씀을멈출수없는이유는별개의몸으로존재하는인간들이서로연결되기위해서는그방법밖에없기때문이라고저자는말한다.《박완서마흔에시작한글쓰기》에고스란히담긴박완서의고통은우리모두의고통과조우하고,우리는이렇게연결되어있다는것만으로위로받고서서히치유로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