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전주 여행 -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5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전주 여행 -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5

$18.50
저자

황윤

작가.소장역사학자이자박물관마니아.대학에서는법을공부했으나역사와박물관에관심이더많았다.역사자료를찾고박물관과유적지를찾아감상,고증,공부하는것이휴식이자큰즐거움이다.역사인물,고미술에관한교양을대중화하고자글을쓴다.삼국시대와신라에특히관심이많다.

저서:《일상이고고학,나혼자국립중앙박물관》《일상이고고학,나혼자전주여행》《일상이고고학,나혼...

목차

프롤로그

1.그옛날전주의시작

전주라는지명
금암우족탕
백제영토문제로당나라와대립

2.국립전주박물관

박물관소개
고창봉덕리금동신발
부안죽막동제사유적
통일신라와전주
견훤과전주
이성계어진을보다가

3.견훤과이성계

도플갱어
경기전가는길
경기전과전동성당
경기전으로들어서다
조경묘
후백제왕이된견훤
견훤의가계

4.전주의새벽

새벽에일어나서
등산
동고산성
하산
개국과망국이함께하는오목대
후백제의성벽이?

5.전북대학교

대학박물관
완주봉림사지
봉림사지삼존석불
최고의학식을포기하고

6.남원으로떠나다

전주시외버스공용터미널
남원경의흔적
이성계의황산대첩
황산대첩비
신라3최(崔)중최승우

7.남원실상사

달리는버스안에서
불교역사와실상사
실상사의보물들
편운화상부도를찾아서
실상사의연못

8.금산사와왕자의난

금산사로가는길
두영웅의편지
요동정벌을둘러싼대립
금산사도착
왕자의난

9.미륵을꿈꾸던장소

금산사의역사
미륵불과김복진
새시대의미륵을꿈꾼사람들
여행계획추가

10.두영웅의마지막

함흥차사
조사의의난
금산사를탈출한견훤
논산역도착
후백제의멸망
개태사와왕건
개태사삼존석불을보고

에필로그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전주(全州),지명으로시작하는고고학여행
백제영토인데,이름은신라가지었다?

전주는삼국시대때백제영토였는데도신라에서먼저명명한지명이라는점이아이러니하다.전주(全州)는‘완전한고을’이라는의미로,전주이전에는완산주(完山州)라는지명이었다.완산주의완(完)역시‘완전하다’는의미로,지금도한옥마을,경기전등이전주시완산구(完山區)에모여있다.그런데《삼국사기》를읽다보면완산주라는지명이처음사용된장소는뜻밖에도경상남도창녕으로되어있다.

“비사벌(比斯伐)에완산주(完山州)를설치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진흥왕16년(555)1월

처음에는신라가대가야견제를위해설치한것이었는데,이후실제전주(全州)지역을두고완산주(完山州)라는명칭이언급된것은신라와당나라가백제영토의지배권을두고전쟁중이던672년때다.나당전쟁중이던신라의문무왕은군단을정비하며오주서(五州誓)를창설하는데,그중하나인완산주서를삼한일통의큰그림하에아직미점령지였던전주를위해미리정해두었던것이다.주(州)도없는데소속군부대창설이먼저이루어진것이다.한창당나라와결전중인곳에군대부터먼저창설했다는것은당나라와싸워승리한후백제영역을반드시신라의것으로만들겠다는의지의표현이었다.
신라의삼국통일후신문왕5년685년에이르러신라를9주로새롭게재편하는과정에서완산주는비로소지금의전주에자리잡게되고,그후757년경덕왕때에전국의지방행정구역을한자식지명으로바꾸는과정에서전주로고쳐졌으니,드디어전주라는지명이역사에등장한다.

신라는왜전주에특별한관심을두었을까
신라의의도적인서쪽으로의영역확대

백제무왕은6세기에대가야를둘러싼경쟁에서신라에패한이후한강유역확보라는꿈을잠시뒤로하고,562년신라에게멸망한대가야지역을백제영역으로확보하는데힘을쏟는다.미륵사와왕궁리유적에서볼수있듯이무왕은익산에수도급위상을부여함으로써백제의중심권을전라북도일부까지확대하였다.그러나660년백제는멸망하고,신라는백제무왕이만든익산근처에신라의신도시전주를새롭게구축하여이지역세력을재편시키고자했다.힘의균형추를신라로옮겨오도록만든것이다.신라주도로만들어진전주는익산을대신하여전라북도를통치하는중심지로자리잡게되고,전주→남원→고령→대구→경주로의교통로를재정비하여전라북도지역에대한통제권을완벽히확보했던것이다.이는신라의의도적인서쪽으로의영역확대라는국가적염원의결과라할수있다.
강력했던신라의지배력도시간이지나자서서히한계에봉착한다.후삼국시대와함께견훤이등장하면서전주를둘러싼역사는다시한번드라마틱한시대를연다.

도플갱어견훤과이성계의도시

조선왕조의고향이자후백제의수도였던전주와오버랩되는두인물,이성계와견훤.이둘의공통점은둘다호족출신의아버지가있었고,젊은날무장으로등장하여큰공을세웠으며,전주와남다른인연이있는데다가,각기신라말,고려말이라는변혁기때활약했다.또한최승우,정도전이라는당대를대표하는문인을옆에두었으며,한국가를창립한후왕이된데다,해당국가는각기과거국가의이름을그대로가져온경우였으며(백제→후백제,고조선→조선),둘다아들의반란으로왕위를빼앗겼는데공교롭게도두사람모두장자가아닌후처의아들에게왕위를물려주려다생긴변이었다.둘다불교를믿었고,견훤70세,이성계73세로당시로는장수하여,기묘하게닮은인생을살았다.
저자는이렇듯묘하게닮은견훤과이성계의이력에이끌려경기전,동고산성,오목대등전주곳곳을시작으로남원에서는황산대첩비와실상사를,김제의금산사,논산의개태사를오가며,견훤과이성계의등장에서부터죽음에이르기까지의이야기를생생히들려준다.
덕후출신소장역사학자인저자의편견없는가설과다양한문헌해설,그리고부지런한발품으로만나는전주여행!아기자기하고고풍스런전주의이면에는승자와패자의다이나믹한역사의장면들도있음을상기시킨다.

이성계의도시,조선왕조의고향전주

전주는이성계의도시라해도지나치지않다.한낱변방의무장이었던그가500년조선왕조의기틀을세웠다는사실만으로도전주의얼굴이되기에충분하다.한옥마을이한눈에내려다보이는곳에있는오목대는고려후반1380년,이성계가남원부근의황산에서왜구를상대로큰승리를거둔후들른장소다.이성계는황산대첩을계기로일약대스타에오르는데,개성으로돌아가는도중자신의본관이있는전주에들러큰잔치를베풀며술에취해<대풍가>를부른것으로유명하다.<대풍가>는과거한나라를세운고조유방이천하를얻은후자신의고향에서불렀던노래로서,이성계는<대풍가>를통해일찍이남다른야심을드러낸셈이다.
전주의경기전은이성계의유일한어진을볼수있는곳으로,조선을건국한태조이성계를위해지은사당이자전주의상징적인건물이다.이성계의아들태종이방원에의해1440년처음전주에건물이지어졌을때만해도단순히어용전이라했지만,세종때에경기전으로고쳤다.경기전은경사로운터를위한궁궐이라는의미로,전주가이성계의시조가난곳,즉전주이씨의뿌리가시작된곳임을강조한것이다.
영조때에는전주에시조의사당을세우기에이르는데,사도세자의아들이자자신의손자인세손에게정통성있는왕위를물려주는방안을고민하던중얻어낸묘책이었다.전주이씨의시조를높이는일에세손을참가시킴으로써정조를정통성있는왕가의후손으로세우는명분을쌓을수있었다.이렇게생긴사당이전주의조경묘다.경기전에이어조경묘까지자리잡은전주는명색이조선의관념적인뿌리를넘어실제적인왕실의고향으로써오늘에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