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떠나온 한국은 멀어져 가고
이민 온 캐나다는 잡히지 않는
불안하기만 한 중간지대에 살지만
양쪽 모두 선명하게 보이는 건 장점
이민 온 캐나다는 잡히지 않는
불안하기만 한 중간지대에 살지만
양쪽 모두 선명하게 보이는 건 장점
〈작가의 소개글〉
“내가 서울 사투리를 쓴대요.”
얼마 전, 직장생활 2년차에 접어든 딸이 말했다. 한국에서 온 또래 친구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저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딸아이는 세 살 때 캐나다로 살러 왔으니, 한국 말을 부모한테서 배웠다.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서울 사투리’라고 부르는 것은 ‘예전 서울 말투’라는 얘기다. 나도 처음 캐나다에 살러왔을 때, 이곳에서 수십 년 살아온 선배 이민자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외국살이란 한 마디로 이방인의 삶이다. 모든 이의 삶 자체가 불안의 연속일 테지만 이민자의 삶에는 불안의 요소가 하나 더 얹히게 마련이다. ‘붕~’ 떠 있는 느낌,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지대에 사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나는 캐나다에서는 한국 사람(코리언 캐네디언)이고, 한국에 가면 캐나다 사람이다. 법적 신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내 한국어는 이미 ‘서울 사투리’가 되었고 내 영어는 앞으로도 계속 ‘외국인 발음’이다. 이민 1세로서 캐나다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캐나다 사람이 될 수 없고, 모국을 떠난 지 오래 되어 정서적으로 더 이상 한국 사람이 아니다. 캐나다는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한국은 점점 더 멀어져간다. 이것이 바로 내 나름대로 알아차린 불안함의 정체였다.
양쪽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중간지대 혹은 경계의 삶은 묘하게 슬프다.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에서 이런저런 정책을 펼쳐가며 나 같은 이민자를 우대해준다 해도 이런 슬픔까지 어루만지지는 못한다. 그것은 이민자의 숙명 같은 것이다. 양쪽의 이방인이 되는 숙명.
그나마 나로서는 다행스러웠던 것이 캐나다에서 사는 삶에 한국의 매체와 독자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은 내가 사는 곳의 삶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에서 발생하는 비슷한 사안을 두고 캐나다 사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캐나다에 살면서 보면 한국은 어떻게 보이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했다. 나는 전직 기자답게 사실에 근거해 쓰려고 노력했다.
나 같은 사람이 갖는 장점 하나는 양쪽 사회를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중간지대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는 한국 저녁 뉴스를 보고, 저녁에는 캐나다 저녁 뉴스를 본다. 양쪽을 비교해서 보면 사안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의미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바로 그런 것이다.
-캐나다 이방인, 한국 이방인
“내가 서울 사투리를 쓴대요.”
얼마 전, 직장생활 2년차에 접어든 딸이 말했다. 한국에서 온 또래 친구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저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딸아이는 세 살 때 캐나다로 살러 왔으니, 한국 말을 부모한테서 배웠다.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서울 사투리’라고 부르는 것은 ‘예전 서울 말투’라는 얘기다. 나도 처음 캐나다에 살러왔을 때, 이곳에서 수십 년 살아온 선배 이민자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외국살이란 한 마디로 이방인의 삶이다. 모든 이의 삶 자체가 불안의 연속일 테지만 이민자의 삶에는 불안의 요소가 하나 더 얹히게 마련이다. ‘붕~’ 떠 있는 느낌,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지대에 사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나는 캐나다에서는 한국 사람(코리언 캐네디언)이고, 한국에 가면 캐나다 사람이다. 법적 신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내 한국어는 이미 ‘서울 사투리’가 되었고 내 영어는 앞으로도 계속 ‘외국인 발음’이다. 이민 1세로서 캐나다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캐나다 사람이 될 수 없고, 모국을 떠난 지 오래 되어 정서적으로 더 이상 한국 사람이 아니다. 캐나다는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한국은 점점 더 멀어져간다. 이것이 바로 내 나름대로 알아차린 불안함의 정체였다.
양쪽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중간지대 혹은 경계의 삶은 묘하게 슬프다.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에서 이런저런 정책을 펼쳐가며 나 같은 이민자를 우대해준다 해도 이런 슬픔까지 어루만지지는 못한다. 그것은 이민자의 숙명 같은 것이다. 양쪽의 이방인이 되는 숙명.
그나마 나로서는 다행스러웠던 것이 캐나다에서 사는 삶에 한국의 매체와 독자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은 내가 사는 곳의 삶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에서 발생하는 비슷한 사안을 두고 캐나다 사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캐나다에 살면서 보면 한국은 어떻게 보이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했다. 나는 전직 기자답게 사실에 근거해 쓰려고 노력했다.
나 같은 사람이 갖는 장점 하나는 양쪽 사회를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중간지대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는 한국 저녁 뉴스를 보고, 저녁에는 캐나다 저녁 뉴스를 본다. 양쪽을 비교해서 보면 사안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의미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바로 그런 것이다.
-캐나다 이방인, 한국 이방인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