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모든시는어떤형태로든침묵을품고있습니다.
권누리의시는지금이순간세상군데군데숨겨져있다고여겨지는온갖형태의침묵을가장끈질기게비집으며시작됩니다.
시인은침묵의자리를다른소리체계가꿈틀대는곳임을적극적으로감지하고,그곳으로부터지금세계가원하는답을거절하는질문이경쾌하게새어나오도록둡니다.
한걸음걸을때마다흰발목양말이
흘러내려요걷다멈춰서고,다시
그걸반복해요왼쪽이그러면오른쪽이그러는것처럼
나란히무너지고있거든요내일이그러나
이미사랑하고있답니다사랑을
나에게스스로말할용기는없지만,
걸어가도아무도마주치지않을거예요
어차피나는천천히
타들어갈텐데요빛이빛을부수는것처럼.
-「하트*어택」부분
빛
오늘우리의몫이란비록눈물을참지못하겠더라도기죽지않고“창너머로”“찰랑”이는“노란빛”을동료삼아“옷장맨밑칸서랍을열어상자를꺼”내고,“미래”의냄새를맡는것입니다.
권누리시에서빛은아무도들여다보지않는곳에자주찾아감으로써오래전부터그자리에있었던사물들,존재들이감춰왔던감정에제색채가깃들도록돕습니다.
이제는아무도오지않는방꾸미는일을한다
그것이이번생내게주어진일이다
블라인드를바닥까지길게내려도
물결처럼들이치는빛
이런눈부심은지구에서가장멀리있는
죽음도깨울수있겠지
나는눈을뜬이방에서큰계획을만들어본다
(중략)
요람은더욱푹신해지고몸을구겨도
더는돌아갈수없는어린이용침대곁에서
웅크린채잠든다높이매달아둔모빌은
파르르돌아간다소용돌이의소용돌이의소용돌이가무수한소문을만들어내면거기에는
여름의조각에비싼값을매겨
사랑하는사람들에게팔아대는나의영원하고
무용한사랑이있다
-「여름모빌」부분
스테인드글라스너머에서축복이들이친다호되게.굴절은쉽게빛을꺾어버리지만빛을조각하는것과는다르다그러나인간이조각한정교한다이아몬드모양의빛은발치에있다고개숙이면보이는그것의색은샛노랑빛이빛을모사하고있다하지만어떤이유를가져다붙여도샛노랑다이아몬드투과한빛은샛노랑다이아몬드모양의빛.
-「섬섬」부분
언뜻아무런의도도없는듯싶어무심해보이는‘빛’은바로그러한이유로지금세계가잘모르는이야기의문을엽니다.아주멀리떨어져있는곳에서잠들어있는무언가도깨웁니다.
투명한창을통해비치는굴절된이미지를치열하게경유하면서도리어세계와합일되지않는다른삶의방식도있음을알리기도하고,다른누군가에게는잘보이지않는관계에최대한몰입함으로써지금여기에있는모종의감정이거짓이아님을알리기도합니다.
권누리의시는압니다.“그러면안되었다고말하는인간들틈”이이루는암전된세상에서지금을“전부라고믿는마음”에등을돌리는법에대해서요.뿐만아니라거기에서섬섬(閃閃)한문양을빚어내는방식까지도요.
사랑
권누리의시는“우주와우주사이에존재하는것에대해”“시간과시간사이에서”“완전히놓친것”을들여다보게함으로써“우리의언어로”여기,사랑이있었음을그리고사랑을하는사람이있었음을발음하게합니다.
이제우리는권누리시의몸짓을침묵에잠긴세계를위해적극적으로다정을시도하는모습으로상상할수있습니다.눈물을참지않고,차오르는감탄을억누르지않으며,“멈추지않는그네”처럼“마음이찰박거리”는상태를자원삼아사랑을무럭무럭키워낼줄아는이의움직임으로요.
내가믿는것을언니도믿을까?
좋아하는음악을큰소리로들을수없는얄팍한유리벽으로만들어진이세계에서낱낱이훑어보는검은눈동자
비치는건우리의작은방
한켤레의흰양말
(중략)
아직도생의무한한나선계단을돌아내려가고있다니
납작한지구위에더납작하게엎드려회전을인내하는마음,언니는알까?
나더위협적으로굴려고
투명한바닥위에서쿵쿵뛸거야
(중략)
언니,한번밖에가보지못한클럽의네온사인기억해?
나는이제제법길을잘찾는다
지도를읽는건진달래와철쭉을구분하는일
(중략)
누군가난간에버리고간라이터를쥐고딸깍이며걷자나는앞으로더무시무시해질거니까
-「내비게이션미래」부분
시에서‘나’는무엇을해야하는지알고있습니다.“투명한바닥”위에서“쿵쿵”뛰면서“얄팍한유리벽으로만들어진”세계가안기는착각에속지않는방법을알고있습니다.지금내가겪는감정이품고있는진실을따르는방법을알고있습니다.끝까지무정하지않으려는이는지금무엇을해야하는지알고있습니다.
사랑을사수하기위해서다정을발휘하는이에게미래는다르게열립니다.이것을믿어도된다고,그러니쭈뼛거리며다정으로부터멀어지지않아도된다고,권누리의시는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