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믿음생활은아는것과사는것으로이루어집니다.아는것도지식이고사는것도지식이지만둘은전혀다릅니다.사랑을아는것과사랑으로사는것의차이라고도말할수있습니다.물론진리를아는것이중요합니다만,아는것은항상아는것에머물러있어서문제입니다.교인들은하나님말씀을읽고듣고배웠기에누구보다도하나님의뜻과진리를알고있습니다.당연히세상사람들보다더진리로살것같은데실상은진리로살지못합니다.이것이바로아는지식의한계입니다.―‘머리말’에서
은어와마찬가지로영적인성도는1급수같은교회환경에서만살수있습니다.영적인성도는거짓선지자,율법주의,세상풍조,돈사랑으로혼탁해진교회에서는살지못합니다.오염된환경에서는믿음이죽고영적생활도죽게됩니다.내몸을성전삼아함께하시는성령을따라거룩하게살지못합니다.교회의영적환경이3급수라면,영적인믿음의사람은살지못합니다.
교회의영적환경이오염되는것은죄악때문입니다.성도들영혼이죄악으로더러워졌기때문입니다.
―94쪽‘1급수교회’에서
방수가안되면집이상하고,주거하는사람들건강도해치게됩니다.신앙생활에서도방죄(防罪)능력이있어야합니다.그래야온전한신앙생활을할수있습니다.물이스며들듯죄가스며들면,영혼이더러워지고하나님과함께사는생활을할수없습니다.
죄를막는힘은믿음입니다.성령의능력입니다.우리능력과결심으로죄를막을수는없습니다.성령이우리안에계시면이길수있습니다.요한은“하나님께로부터난자는다범죄하지아니하는줄을우리가아노라.하나님께로부터나신자가그를지키시매악한자가그를만지지도못하느니라”(요일5:18)라고했습니다.
―106쪽‘방죄防罪’에서
언제부터인가부끄러움을느껴발개지는얼굴을보지못했습니다.사람들이부끄러움이없을정도로깨끗하게살고있기때문은아닐것입니다.옛날보다부끄러운짓을더많이하지만부끄러움을모르는사회가되었기때문이아닌가생각해봅니다.
사회는그렇다치고,교회도부끄러움을모르는곳이되었습니다.옛성도들은조금이라도양심에거리끼는것이있으면부끄러움에괴로워하다가잠도자지못하고눈물로회개하여형제를찾아가용서를구하고관계를회복해천국으로살았습니다.오늘날에는그런모습이보이지않습니다.
―138쪽‘부끄러움을모르는교회’에서
참된교회는사람들이세울수없습니다.영혼들이예수그리스도를믿고회개하고구원받는것이전적으로주님의일이듯이,교회를세우는것도전적인주님의일입니다.그래서주님은“내가이반석위에내교회를세우리니음부의권세가이기지못하리라”(마16:18)라고말씀하셨습니다.…
“내가교회를위해서…했다”라는표현은자신의유익과영향력을지키기위한말일수도있습니다.일제강점기에신사참배를한목사들과장로들은한결같이교회를지키기위해서한일이라고말했습니다.그러면서신사참배를거부하고옥고를치른주의종들을향해서는되레교회를지키지못한자라고정죄했습니다.그러므로“내가교회를위해서…했다”라는말이얼마나불신앙의말인지깊이생각해야합니다.
―180~181쪽‘내가교회를위해서…’에서
교회안에는네종류의교인이있습니다.첫번째는사람을따라가는교인,두번째는교회를따라가는교인,세번째는교회만다니는교인,네번째는주님을따라가는교인입니다.
사람을따라가는교인은교회에서유능하고유력한사람의말을듣고그말을따라삽니다.교회를따라가는교인은교회에내려오는전통을따라삽니다.교회가하는대로따라가는것입니다.따라가는교회가변질된곳이라면그결과는말하지않아도빤할수밖에없습니다.교회만다니는교인은교회를다니기만할뿐실제로는세상을따라삽니다.세상의영향을받고세상을사랑하는사람입니다.
이사람들은모두주님의말씀에순종하지않는자들입니다.아니,순종할수도없는자들입니다.모두하나님을사랑하지않는다고봐도틀리지않습니다.
―274쪽‘네종류의교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