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백주년의원불교:한국종교사의기적
2016년올해로‘개교’(開?)1백주년을맞이한원불교(圓佛?)는동학과증산교의뒤를이어우리땅에서자생한대표적인개벽(開闢)계열신종교가운데하나이다.
널리알려져있듯이,원불교교조(?祖)소태산박중빈대종사(少太山 朴重彬, 1891-1943,이하소태산)는1860년에성립된동학(東學)과1901년에창시된증산교등이앞장서서실현하고자했던‘개벽’(開闢)의꿈을창조적으로계승하여한반도발(發)인류문명개벽을실현하고자1916년에원불교를창시하였다.
그러나일제강점기라는민족적수난의시기에그첫걸음을시작한원불교가걸어온길은순탄하지못했다.원불교는개교초기부터조선총독부당국으로부터크고작은탄압에시달려야했으며,1945년8.15해방이후에는해방정국의좌우갈등과한국전쟁이라는동족상잔의고통스런시대를감내해야만했다.뿐만아니라,1960년대부터1990년대까지약30년동안은권위주의군사정권아래에서산업화와민주화라는이중의과제에대응해야만하는어려운시기를보냈다.
역경에역경을거듭해온한국근현대사와그길을나란히걸어온원불교의현재모습은괄목할만하다.원불교는현재국내6백여개의교당과2백여개소의사회복지시설,수십곳을헤아리는교육기관을경영하고있는외에,최근에는텔레비전방송국까지개국하여활발한포교활동을펼치고있다.원불교는비단국내에서만크게성장한것이아니라해외포교분야에서도타종단의부러움을살정도로활발한활동을펼치고있다.해외23개나라에교당이설립되어있고,‘삼동인터내셔널’이라는국제봉사단체를통한해외봉사에도큰실적을쌓고있다.지난5월1일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열린백주년기념대회에서는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등10개언어로번역된원불교경전이해외에서참가한원불교교도들에게전달되기도하였다.이뿐이아니다.원불교는영산성지고등학교를비롯한대안교육분야,교당별햇빛발전소설치를통한탈핵운동분야,전남영광에있는간척지‘정관평’을활용한유기농운동분야,북한어린이돕기를비롯한통일운동분야,1960년대부터참여한종교간대화와협력운동분야등에서도모범적인활동을펼치고있다.그리하여원불교가지난1백년간쌓아온성과는학계와종교계에서‘한국종교사의일대기적’이라고까지칭송을받고있다.
그렇다면민족적시련이거듭되던19세기말부터20세기초에걸친어렵고힘든시기를걸어온원불교는어떻게해서‘한국종교사의일대기적’을이룩할수있었을까?그해답은바로교조소태산이보여준‘특별했던삶’과그‘특별했던삶’을닮아가고자소태산에게남먼저귀의하여원불교발전의초석을놓았던‘구인선진’,곧소태산의아홉제자들이보여준‘지공무사(至公無私)’한삶에있었다는것이원불교교단안팎의통설이다.
소태산교조와그의아홉제자
조선왕조말기,서세동점아래에서국운이기울어져가던1891년에태어나일제의가혹한식민통치가자행되던1916년에진리를깨달아원불교를창시하고,이후28년간에걸쳐‘정신개벽(精神開闢)’을기치로한새문명건설운동을펼치다가1943년에53세를일기로생을마감한원불교교조소태산의‘특별했던삶’은비교적이른시기부터교단바깥으로부터주목받은바있다.그중에서도소태산의특별했던삶과사상을알기쉽게풀어널리소개한이는한겨레신문의윤석인기자였다.한겨레신문은창간초기에한국근현대에활약했던다양한분야의인물들을발굴하여지면에소개하는특집을꾸몄는데,그특집에서윤석인기자는소태산을종교분야를대표하는인물가운데1인으로선정하여소개함으로써원불교의대중적인지도를한단계끌어올리는데일조하였다.(『발굴현대사인물』상,한겨레신문사,1991참조)
개교1백주년이된올해에소태산의삶과그의가르침은다시한번한국사회로부터주목을받기에이르렀다.김형수작가에의해누구나쉽게읽을수있는소태산의평전이나왔고(『소태산평전』,문학동네,2016),소태산의가르침을담은언행록『대종경』이이철수화백의손에의해판화로새겨져전시됨으로써소태산은시민들사이로한걸음더가까이다가오기에이르렀다.
이처럼비교적이른시기부터교단외부인사들로부터주목받았던소태산교조와는달리,초기불교당시석가모니의10대제자,공자의제자들인공문십철,그리고예수의십이사도등에비견되는소태산의아홉제자는원불교교단바깥사람들에게는여전히베일에가려져있었다.그이유는여러가지가있지만,원불교가떠들썩한선전이나공개적인포교활동보다는이른바‘조용한포교’즉자기수양과내실위주의성장정책을펼쳐온것도한가지요인이었다고할수있을것이다.
소태산의아홉제자가교단안팎에서새롭게주목받게된계기는지난해에교단최고의결기관인수위단회(首位團會)의의결로부터비롯되었다.즉,원불교수위단회는2015년5월에소태산의아홉제자를종사위(宗師位),곧교조소태산다음반열의'성인'(聖人)으로추존할것을결의하는동시에,개교1백주년을기념하는기념식전(2016.5.1)에서‘종사위’추존서훈의식도함께거행할것을결정하였다.이같은결정에따라원불교의교립대학인원광대학교원불교사상연구원측에서는기념대회직전인지난4월8일에아홉제자의거룩한삶과사상을기리는대규모학술대회를개최하기에이르렀다.이로써그간베일에쌓여왔던소태산의아홉제자의인간적면모와그들이보여준종교적삶의모습이한국사회에널리소개되기에이르렀다.
이책은총3부로구성되어있다.
<제1부:소태산대종사와구인선진>에서는교조소태산과그의아홉제자들이만나게되는과정에서부터,이른바‘영산시대’로불리는1916년부터1919년까지전라남도영광군백수읍길룡리를무대로원불교창립의기초를다지는과정을다루고있다.이시기에소태산의아홉제자는저축조합이라는일종의협동조합을창설하여새로운공동체건설운동을시작하였고,그성과를토대로간척지개척운동을벌여3만여평의농지를확보하는데성공하였으며,간척지개척을마무리지은뒤에는‘창생을위해서는죽어도여한이없다’는정신으로기도결사운동을전개함으로써새종교원불교창립의정신적기초를닦은것으로확인되고있다.
<제2부:구인선진의생애와사상>에서는소태산의아홉제자각각의삶과사상이다양한필진에의해새롭게조명되고있다.연구결과에따르면,아홉제자의대부분은교조소태산의친척이나지인들이었으며,소태산보다나이가연상이대부분이라는사실이확인되고있다.이것은교조소태산이고향을떠나지않는가운데구도(求道)와대각(大覺;진리를깨달음)을이루는동시에,초기포교활동역시고향에서부터시작했다는사실을웅변해준다.뿐만아니라,경상북도성주출신의정산송규를수제자로삼는소태산의파격(破格)에대해서다른여덟명의제자들이혼연일체가되어지지를보여주었다는사실도주목할만한내용가운데하나라고할수있다.
<제3부:구인선진의종교사적위상>은주로원불교교단바깥의연구자들이소태산의아홉제자가보여준종교적삶과그가르침에나타난종교사적의의,신앙적의미등을주로다루고있다.그중에서도소태산의아홉제자들이남긴삶의발자취가‘인물콘텐츠스토리텔링’자료로써도전혀손색이없을정도로‘재미와교훈’이풍부하다는사실을논증한스토리텔링전문가의연구결과는주목에값하는의미있는성과의하나라고할수있을것이다.
아홉제자의종교적면모의일단
『원불교구인선진,개벽을열다』에서다루고있는소태산의아홉제자란일산이재철(1891-1943),이산이순순(1879-1945),삼산김기천(1890-1935),사산오창건(1887-1953),오산박세철(1879-1926),육산박동국(1897-1950),칠산유건(1880-1963),팔산(1879-1939),정산송규(1900-1962)등9인을지칭한다.이하에서는그들아홉제자들의종교적면모의일단을간단하게소개하기로한다.
일산이재철(1891-1943)
소태산과같은해에태어나같은해에열반했다.그의부친은동학농민군으로1894년동학농민혁명에참여한바있다.원불교초창기에재정산업분야에서혁혁한공을세웠으며,외교에도능했다.소태산교조가전개했던저축조합운동을모범삼아고향에‘신흥저축조합’을결성하여경제자립운동을펼치기도하였다.함평이씨문중에서는그의뒤를이어수십명의교역자가배출되었다.
이산이순순(1879-1945)
소태산교조보다12세연상으로소태산과같은동네출신이다.젊은소태산이힘겨운구도를계속하던1900년대에정신적,물질적으로소태산을후원하는역할을맡았다.소태산이진리를깨닫고새로운종교운동을시작하자남먼저귀의하여저축조합운동,간척지개척운동,기도결사운동참여하여아홉제자의한사람으로뽑혔다.기도결사운동을마친뒤에재가(在家)교도로써활동하였다.
삼산김기천(1890-1935)
1928년에스승소태산으로부터원불교최초로‘견성’(見性:진리를깨달음)인가를받을정도로수행이깊고철저했으며,진리에대한탐구열이강했다.1917년소태산이전개했던저축조합운동을모델로삼아자신의동네에‘천정조합’이라는조합을결성,협동조합운동을전개한바있다.1933년에지은「교리송」,1935년에지은「심월송」등은그의오도(悟道)의경지가유감없이표현되어있다.그의『철자집』이란저술은지금도원불교교단에서한문교재로널리사용되고있다.
사산오창건(1887-1953)
소태산교조재세당시、늘지게에무거운짐을싣고운반하는고역(苦役)을기꺼이감당할만큼체면과형식을뛰어넘은알뜰한제자이다.얼굴모습이소태산을많이닮아‘리틀(작은)소태산’이라는애칭이붙었다.원불교초창의모든교당건축공사감역을도맡았으며,특히1937년부산초량교당신축당시이제갓기초만세운교당이폭풍우에무너질까밤새워공사현장을지켰던일화는큰감동으로전해져오고있다.
오산박세철(1879-1926)
키도작고얼굴은볼품없었지만소태산이‘조선총독과도안바꿀인물’이라고말했을정도로‘세상과창생을위한희생적삶’을살다간전형적인공심가(公心家)이다.소태산보다12세연상이며、아홉제자가운데에서는가장먼저열반에든제자이다.그는사후에원불교교단최초로‘법강항마위’즉‘성인’의위에추존되었다.
육산박동국(1897-1950)
소태산의친동생이다.소태산이구도에몰두할때형을대신하여가족을부양하는책임을도맡았다.1916년에형인소태산이진리를깨달아새로운종교운동을시작할때,혈육의관계를뛰어넘어제자로입문하여원불교창립의경제적,정신적기초를닦는데헌신하였다.한국전쟁기전남영광을중심으로한좌우대립과정에서희생당하였다.
칠산유건(1880-1963)
소태산의외삼촌으로11세연상이다.제자로입문한직후에는소태산과‘맞담배를피우는사이’였지만,곧바로“(소태산이비록)육신은생질(조카)이지만도덕은지존(至尊)이시다”라며앞장서서소태산을스승으로모시는모범을보여주었다.아홉제자가운데1차간척지공사(1918-1919)및2차(1956-1960)간척지공사에모두참여한유일한제자이며,가장마지막까지생존한인물이기도하다.
팔산김광선(1879-1939)
소태산과같은동리출신으로12세연상이다.소태산의구도당시부터정신적,물질적으로후원하는역할을맡았으며,1916년에소태산이새로운종교의교문을연이후에도한결같은정성으로보필하였다.1919년4월에준공한간척지둑에구멍이생겨둑이유실될염려가있을때온몸을던져무너져가는둑을막은일은너무나유명하다.1939년에팔산이열반하자소태산은<팔산의영을위하여>라는특별법설을내릴정도로그의죽음을슬퍼했다.그의장남인김홍철역시소태산에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