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백은하 소설집)

의자 (백은하 소설집)

$14.03
Description
폭력적인 세계에 저항하는
문학의 윤리
- 백은하 소설집 『의자』

1996년 <일간스포츠> 신춘대중문학상으로 등단한 백은하 작가가 소설집 『의자』(문학들 刊)를 출간했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세계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얻어맞은 인물들이 어떻게 저마다의 욕망을 표출하는지를 보여 준다.
표제작 「의자」의 작중 화자인 진경은 (운니 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에 불덩이 하나를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녀는 독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잉게보르흐 바하만의 시를, 파울 첼란의 시를 원어로 읽는다고 해서” 그녀의 일상이 호사스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독일어로 읽고” 싶었을 뿐이다. 그 자그마한 소망에 가해진 세계의 폭력은 가난이었다. 그녀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하던 큰아버지가 큰 마음먹고 어렵게 마련한 농협 자리를 거절하고 할머니에게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저자

백은하

1968년전남나주에서태어났다.1996년일간스포츠신춘대중문학상소설당선으로등단했다.소설집『무지개에는왜검은색이없을까요?』,『별의시간』,장편소설『블루칩시티』,『마녀들의입회식』을출간했다.현재문화잡지『대동문화』기자로일하고있다.

목차

의자 9
마음의얼음 33
햇빛모으기 71
탐조등 97
별의위로 123
실스마리아의구름 151
귀향 179
어디에도없는곳 205
동전 233
바람꽃 263

해설슬픈짐승과집안의천사_송민우 287
작가의말 303

출판사 서평

“할머니한번만도와주세요.”
나는방바닥에엎드려서엉엉울었다.할머니가내등을쓱쓱문질렀다.그런데나는대학을가고싶었고,독문학을하고싶었다.그다음은어떻게되든지심지어그것이내인생의끝이라해도,어떤대가를치른다해도대학만큼은가고싶었다.
-20쪽

세계의폭력은이처럼소박하게일을마무리하지않는다.진경은할머니가지닌금붙이를팔아대학입학에성공하지만매학기마다등록금을내야한다는또다른폭력과마주한다.1년내내아르바이트를해도마련할수없는현실앞에서그녀는마흔살가량된김사장의젊은애인이된다.하지만그러한폭력을견뎌낼수있었던것도“독일어로된문장을읽으면서뼛속까지차오르는푸른기운”을느낄수있었기때문이었다.
“신음소리가흘러나오는내몸을”아는여자가되어버린진경이운니언니가운영하는찻집동다송에서‘의자’에앉아보는행위도폭력에대항하는하나의방식이라할수있다.운니언니가말하기를,‘그의자에앉으면천년만년자신과살아야한다’고했기때문이다.몸안의불덩이를견뎌내기위해‘소설쓰기’를택한것도지속되는세계의폭력에납작엎드려대항하는방법이다.

그의자는내몸을지상에서분리시켰다.몸에서완전하게힘을빼자,잠도아닌명상도아닌그런시간이시작되었다.머릿속이고요하게가라앉았다.끝없이펼쳐져있는검푸른바다를항해하는것같았다.엄마의팔을베고있다.할머니의팔을베고있다.나는보호받고있다.사랑받고있다.
-12쪽

“소설을쓰고싶어.”
“소설?글쓰는거?그거쓰면되지뭐가어렵나.어차피사는기소설인디.뭘그렇게어렵게생각하나?내이야기써라.사는게이리별거아닌데소설이뭐별거겠나.”
운니언니가담배연기를내뿜으면서,혀꼬부라진소리로말했다.그날밤나는울다가잠이들었다.
-19쪽

그렇다.소설이별거인가.백은하작가가이번소설집에서내보이는리얼리즘은세계의폭력속에서별거아닌이들이꿋꿋하게살아가는이야기다.남편과이혼하고인터넷채팅에서만난호루스와폭행과도같은섹스를하면서결국그의아이를갖게된채원의이야기(「마음의얼음」)나그린벨트와맞닿아있어가치가거의없었던땅에서30년을살아온김병수가“세상에존재하지도않은돈”13억원을빼앗긴것과같은느낌을받으며화병에걸린것(「햇빛모으기」)도,1950년대의특정한사건을소환하여세계가우리에게가한폭력을고발하며씻김굿을하려는「귀향」에서도,결국―인생에서마지막임신일지도모르기에아이를낳고자결심함으로써―마당에쏟아지는햇빛을떠올리며30년의세월동안조금씩쌓아올린추억으로화병을이겨냄으로써―“칠흑처럼어두워서한치앞도가늠할수없는나머지인생길”도손을맞잡고함께나아감으로써저항한다.
“멀리있는불빛을보면서한걸음한걸음어둠속을뚫고걸어가는사람”(「탐조등」)처럼,“저멀리에있는빛이미약하다는것을알면서도꿋꿋이걷는행위,거기에바로문학의윤리가있다”는송민우문학평론가의해설은일상의가치가얼마나소중한지를말하는백은하작가의리얼리즘을이해하는단초가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