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혼후 (지워진 황제의 부활 | 27일 천하, 한폐제 유하의 무덤 발굴과 전기적 일생)

해혼후 (지워진 황제의 부활 | 27일 천하, 한폐제 유하의 무덤 발굴과 전기적 일생)

$22.20
Description
마왕퇴 귀부인 이후 가장 온전히 보존된 한나라 황실 유적
진시황 분서갱유 이후 죽간 1만 매 등 고문헌 대량 출토
가장 이른 시기 공자상,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타악기 ‘순우’, 가장 큰 옥벽(玉璧) 발굴
‘왕-제-평민-후’ 드라마틱한 삶을 산 ‘해혼후’ 유하
한무제의 손자, 제9대 황제 한폐제 유하의 무덤 발굴과 전기적 일생
이 책을 편 독자는 아마 적어도 두 번은 놀랄 것이다. 책 앞쪽에 실려 있는,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2천 년 전의 진귀하고도 세련된 여러 가지 문물의 모습에 눈이 번쩍 뜨일 것이고, 그 막대한 양의 문물 주인이 어느 대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당시 중국의 남쪽 변방에 살았던 일개 제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또 놀랄 것이다.

2011~2015년에 걸친 최초 발견과 지속적인 발굴을 통해 중국 고고학계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린 장시성(江西省) 난창(南昌) 한나라 시대 고분의 주인은 ‘해혼후 유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하는 비록 저 유명한 한무제(劉徹, 서기전 141~서기전 87)의 손자이기는 하지만, 황제의 자리에 단 27일밖에 있지 못하고 폐위된 까닭에 중국사에 제법 익숙한 사람이라 해도 그의 이름은 낯설다.
유하(劉賀 서기전 92~서기전 59)는 한무제와 이부인 사이에 출생한 유박의 아들로 산동성 거야(巨野)에 출생해서 아버지를 이어 5살에 창읍왕에 봉해졌다. 한무제를 이은 한소제 유불릉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한무제의 탁고 대신 곽광에 의해 19세에 황제로 등극했다. 그러나, 유하는 황제가 된지 1달도 되지 않아 곽광에 의해 쫓겨난다.
문헌에는 유하가 “평소에 나라에 있으면서 광종(狂縱)하고, 동작에 절제가 없었다.” 심지어 국장기간 중에도 “놀이와 사냥을 그치지 않았다.”(<자치통감>)는 기록이 보인다. 제위에 오른 유하는 곽광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었다. 황제에 오른 유하가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곽광에겐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창읍의 관리들 모두 장안으로 왔고, 왕왕 파격적인 관직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정무를 처리했다. “옥새를 받은 이래 27일 동안 일을 시키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혔고, 각 관서에 보내는 조령들만 해도 1,127건에 이르렀다.”
한나라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인 27일 천하를 호령하던 유하는 다시 서민으로 강등되어 창읍으로 돌아온다. 창읍에서 폐위된 왕족으로 지낸 지 10년, 한선제 유병이는 유하에게 해혼(현재 지명 장시성 난창)에 봉지를 내려 그곳으로 옮겨 살게 했다. 그는 29세에 1세 해혼후로 책봉되어 지역을 다스리다 33세에 생을 마감한다.
그런 그가 ‘한대 고고학 발견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부장품과 함께 불쑥 세상에 다시 나타났으니, 어찌 보면 애처롭고 또 어찌 보면 한심한 그의 인생에 때아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이 책의 남다른 장점은 화보집 수준을 넘어서 출토 문물과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유하의 일생을 근거 있고 합리적인 역사적 상상력을 잘 발휘하여 촘촘하게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역사소설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동시에 유하의 기구한 일생이 은연중에 제시하고 있는 철학적/정치학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저자

리롱우

저자리롱우(黎隆武)
강서성무녕(武寧)출생.대학에서중문과를졸업하고,오랫동안공안및홍보일에종사했다.문학을열렬히사랑하고역사에푹빠진채살고있다.특히전한(前漢)시대황제무제(武帝)가족사연구에일가를이룬다.『해혼후,지워진황제의부활』은그가창작한첫번째역사다큐멘터리작품이다.이책은출간한달만에10만부를돌파하는등중국에서큰반향을일으켰다.이러한인기는한나라역사상재위기간이가장짧은황제였지만젊은나이에왕,제,후,평민으로산드라마틱한인생유전도한몫을했다.책이출간되자마자영화,TV드라마,애니메이션,모바일게임업체에서각색권을사겠다고나섰으며,이미중국에서는웹드라마가방영되었다.현재저자는베이징대,칭화대,푸단대,하버드대등국내외50여개대학에서초청되어강연릴레이를펼치고있다.

목차

서막대묘를열다
-한나라시대고고학발견중최고-

제1장하늘에서떨어진황제자리
-행운하유하-

제2장빛나는삶
-무제의손자유하-

제3장이룬것도곽광이고망친것도곽광이다
-유하의운명-

제4장나이가어려쉽사리방정을떨다
-장읍왕유하-

제5장제멋대로보낸27일
-한폐제유하-

제6장십년을꾹참다
-서민유하-

제7장파양호반에서마음껏소요하다
-해혼후유하-

제8장남은이야기
-역사의반향-

후기
추천사
역자후기

출판사 서평

2015년세밑,5년동안의발굴작업을거친해혼후묘가마침내신비의베일을벗었다.30°경사진묘도(墓道)를따라천천히무덤문으로들어가면‘회(回)’자형넓은곽실(?室)이나온다.70㎡규모의주곽실에는4면을둘러싼회랑형저장고가있고복도로격리되어있었다.

고고학자들은유물의양에깜짝놀랐다.남(南)저장고는복도와동서거마고(車馬庫)로구성됐다.이곳에서외출할때사용했던수레와말,수행원토용(土俑)이대량출토됐다.시계방향으로돌아들어가는서(西)저장고에서는청동병기,갑옷,바둑판,칠기,이루다셀수없을만큼의죽간과100여개가넘는목판이발견됐다.

유물양이가장풍부한곳은북(北)저장고였다.여기에서높이2m의‘돈산(錢山)’이발견됐다.이‘돈산’즉오수전의무게가10여톤으로동전약200만개가있었다.당시계산법으로환산하면황금50kg가량의가치다.또완전하게보존된악기세트도발견됐다.동(東)저장고에서는주방도구와식기가발견됐다.여기서발굴된삼족청동기는오늘날의‘훠궈(火鍋,신선로)’와모양이비슷했다.

회랑형저장고외에주곽실에서출토된유물도고고학팀을기쁘게했다.주곽실서쪽에서인물형상이그려진칠기병풍세트가출토됐다.제자(題字)부분에어렴풋하게‘공자’와‘안회’등의이름을식별할수있었고“성밖에살며서낳았다(野居而生)”라는자구가분명히눈에들어온다.또한전문가들은지금까지중국에서발견된가장이른공자의초상화일것이라고추측했다.이는또한중국서한통치계급이유가만을숭상한다는‘독존유술(獨尊儒術)’의역사기록을증명한것이다.병풍과멀지않은서쪽방에서는놀랄만큼많은금기(金器)가무더기로발굴됐다.

5년여의발굴을통해고고학자들은진귀한유물1만여점을출토했다.청동기,금은기,철기등이3천여점,옥기가5백여점,목재칠기가3천여점,도자기가5백여점,죽간과편독(片?)수천여점이출토돼한나라문물에대한사람들의인식의한계를뛰어넘었다.

고고학팀이주곽실에서마제금(馬蹄金)상자를꺼냈는데,마제금은보통황제가제후왕에게하사하는하사품이다.끊임없이발굴되는유물이고고학자들에게더많은증거를주었다.고고학팀은고분에서거마갱을발견했다.여기에서목재채색마차5대,순장된말20필이발견됐는데,뼈대는이미다부패된상태였다.정교한청동거마기(車馬器,마차나말의장식)3천여점도발견됐다.이는중국장강(長江)이남에서수레와말이순장된유일한고분이었다.한나라때에는거마갱에대한규정이엄격했기때문에고고학자들은이를감안하면무덤주인이1대해혼후유하일가능성이높다고판단했다.이후무덤에서결정적인단서를발견했다.내관(內棺)에남아있던무덤주인의유해허리부분에서‘유하’라는이름이새겨진옥도장이발견된것이다.

1대해혼후유하는우여곡절이많았던전설적인인물이다.유하는중국역사상가장위대한제왕중한명인한무제의손자로33년을살았다.그는한때제위에올랐지만27일만에폐위되어한나라에서재위기간이가장짧은황제로기억된다.폐위후산동창읍으로내려갔고다시강서남창으로사는곳을옮겼다.

이책은한나라시대황제를지낸인물의묘발굴과정과서한시대역사,출토된유물의복원,그리고출토된유물에대한연구과정과그가치를시간순서에따라쉽고흥미진진하게읽을수있도록서술한역사다큐멘터리이다.

유물의발굴과정치적인뒷이야기사이에유하의전기적일생을삽입하여한편의소설을읽는듯구성했다.컬러화보사진및본문의이해를돕는여러자료는독자들의이해를돕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