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의 그림들 (나의 생명이 그림으로 연결되어 어느 날 당신과 만날 것이다)

자금성의 그림들 (나의 생명이 그림으로 연결되어 어느 날 당신과 만날 것이다)

$35.00
Description
좋은 재료와 빼어난 기술로 만든 고대 ‘made in china’
‘조지프 니덤의 난제’에 관한 미술사적 견해 밝혀
1925년 개관한 베이징 고궁박물원은 규모 면에서나 소장품 수에서 현존 박물관 중 최고를 자랑한다. 자금성의 다름 이름은 베이징 고궁박물원이다. 주용 작가는 베이징 고궁박물원 시청각연구소에 근무하는 학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고궁에 관한 책 12권을 펴낸 고궁 전문가다. 작가는 현대인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소장품들의 내력을 소개한다.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박물관 전시실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릇과 그림, 가구와 옷들이 ‘후!’ 하고 멈췄던 숨을 내쉬고 먼지를 털고 일어나는 것처럼 다가온다. 옛 물건과 그림에 이처럼 강력한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은 주용 글체의 특장이다.

〈주용의 고궁 시리즈 2_자금성의 그림들〉은 고개지・주문구・고굉중・장택단 등 직업화가, 조맹부・황공망・예찬・당인 등 문인화가, 황제이면서 창작자였던 송 휘종, 송 고종, 명 선덕제, 청 건륭제의 작품 세계를 다룬다. 왕조로 구분하면 동진부터 청나라 시기를 관통한다.
저자

주용

祝勇
베이징고궁박물원시청각연구소소장,예술학박사.400만자이상을저술했고,〈주용의고궁시리즈〉12권을냈다.CCTV대형다큐멘터리〈신강〉을총감독했다.
대표작으로〈옛궁전〉,〈피의조정〉이있다.이책은저자가〈자금성의풍화설월〉,〈자금성의숨겨진모퉁이〉,〈자금성에서소동파를만나다〉이후선보인‘고궁의아름다움’에관한책이다.

목차

서문그림으로만남006
1장약속이라도한듯이011
2장황제의3차원공간041
3장한희재,최후의만찬073
4장장택단의봄날여행113
5장송휘종의영광과치욕151
6장화려한꽃과썩은나무195
7장풍류,오늘밤은누구와즐길까247
8장빈산299
9장가을구름은그림자가없고나무는소리가없네345
10장죽어도살아도당신과함께383
11장그가족의혈연비밀431
12장집은구름과물사이에459
13장꽃같은아름다움도물에흘러가고499
14장길위의건륭551
15장마주보기585
역자의말616
도판목록618
주석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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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화가의이름을알수있는최초의두루마리그림은〈낙신부도〉다.이〈낙신부도〉를근거로중국회화사는고개지로부터시작되었다고본다.삼국지조조의아들조식이쓴〈낙신부(낙수여인의노래)〉를그림으로그린것으로,고개지는인물화에능했으며인체의아름다움을섬세한옷주름으로표현했다.저자는왜중국그림에서수평선이중요한지,오른쪽에서왼쪽으로그림을말면서보는두루마리형태가기본이되었는지를살핀다.

“선은세계가존재하는방식이다.대지의끝은원래선이었다.우리는그것을지평선이라고부른다.세상만물은모두원래는존재하지않는선위에존재한다.최소한그림에서는그렇다.선은또한중국인이세계를보는방식이다.중국인은농부처럼땅에엎드려가까운거리에서세계를감지한다.중국인은‘하늘은둥글고땅은네모’라고말한다.땅은네모다.두루마리그림같다.산맥과강은그위를들락거리는선이다.”
-23쪽「약속이라도한듯이」중에서

오대십국시대,남당의궁정화가주문구는황제의명으로〈중병회기도(겹병풍아래바둑을두는그림)〉를그려정치적약속을증거했다.고대중국인의세계관에서우주의중심은태양이아니라북극성임을알수있는그림이다.그림에서중요한것은겹병풍이나형제들의시선처리가아니라바둑돌로그려낸북극성과북두칠성사이의역학관계라는사실이다.

정치거물한희재의대저택에서이루어진밤연회를기록한〈한희재야연도〉는중국식‘최후의만찬’으로평가받는다.현대로치면대통령의밀명을받은젊은공무원의파파라치컷인데,이그림의주인공과의뢰인인황제는곧파멸을맞는다.〈한희재야연도〉에서빼놓을수없는요소는‘암시’다.언뜻보기에그림은고상하고화려해보이지만그속에는방탕함과문란함이숨어있다.풀어헤친한희재의옷이나흐트러진침상,벽뒤에반쯤몸을내밀고비밀스러운태도를취하는기녀의모습이관음증을자극한다.

〈청명상하도〉는청명날송나라의수도변경의풍경을사실적으로그린풍속화다.당시북송의수도변경은통행금지가없는인구150만의세계최대도시였다.한림화원소속궁정화가장택단은변경시를가로지르는변하주변의시장,거리,집,다리,수레,배등일상생활에관련된모습을자세히그렸다.가로5미터에달하는두루마리에등장하는남녀노소는1,600여명에이른다.중국의많은국보급그림가운데〈청명상하도〉가여전히현대인들의뜨거운관심과사랑을받고있는이유는무엇일까?저자는그림에나타난평민들의다양한표정과역동성을꼽는다.장택단은도시의진정한매력이무엇인지를아는화가였다.

장택단과같은직업화가의시대를지나남송이후에는문인화가의시대가전개된다.대표적문인화가로조맹부,황공망,예찬,당인,류여시등이있다.문인화가들이즐겼던수묵필법은사실성보다추상성을강화하는쪽으로발전해갔다.
인물은작아지고산수와강산이그림의주제가된다.이산수는풍경이상이었고산수화도풍경화도아니었다.풍경은자기이외의사물을‘보는’대상이지만,산수는‘마음’이달려가는장소이다.
자연을‘모방’하고‘재현’하고자했던서양에비해중국산수화는과학적으로그려지지않았다.산수화에그려진자연은그자체를초월한것이다.극단적인사실이없고극단적인추상이없는2차원과3차원중간세계에머물렀다.
이렇게‘주체’와‘객체’를구분하지않은대가가17세기이후중국이서양에추월당한결과였다고저자의진단한다.

송휘종은예술의후원자이자화가·서예가로유명하다.그의대표작〈서학도(상서로운학그림)〉를보면정확한색채,정밀한표현,완벽한구성등을이루고있다.또한수금체(瘦金体)로알려진우아한서체로탁월한재능을발휘했지만정치에는무능했다.
예술지상주의자황제가물질에집착했으니사회풍조는사치하고부패했다.솜사탕처럼달콤한인생이계속될줄알았던휘종의인생의후반부는비참했다.금나라에나라를내주고포로가되어적지에서생을마감했다.송휘종처럼성공과나락,영광과치욕,재능과무능의낙차큰삶은산제왕은없을것같다.

청의건륭제도예술가가되고싶어했다.일을마치면붓을들고열심히애를썼다.4만1,863편의시를썼다.청나라때간행된당시전집인〈전당시〉에해당하는양이다.그러나송휘종과달리그의재능은평범했다.
건륭의예술적안목은‘마니아’수준이었다.그때문이었을까.건륭은‘열번의대외원정을승리로이끈’노인이되었고온전하게정치에서물러날수있었다.건륭시대는청나라발전의절정기이면서추락의시작점이기도했다.
건륭의성세중에연이은쇠약과빈곤의징후들이나타났는데예술수준의몰락도이때나타났다.〈강희남순도〉,〈옹정평화도〉,〈건륭남순도〉가모두그증거다.
이작품들은장택단의〈청명상하도〉,마화지의〈시경도〉처럼삶의원형을묘사하는흙냄새와땀자국이배어있어보통사람들의진실한정서를보여주는작품들과출발점이달랐다.

영국학자이름을딴‘조지프니덤의난제’라는것이있다.고대에중국은화약,종이,나침반등인류의과학기술발전에중요한공헌을했는데근대과학과산업혁명은왜서양에서일어났느냐는질문이다.여러가지가설을세울수있지만그누구도해결하지못한어려운질문이다.이책은조지프니덤의난제에관한한미술사가의견해로도볼수있다.

시각적표현이라는건인간이외부세계,혹은자신의내면을이해하고자신이느낀방식,생각한방식으로해석해낸것이다.따라서미술의역사는인류가해온‘생각’의역사이기도하다.중국인은농부처럼땅에엎드려가까운거리에서세계를감지했다.건축의웅장함도높이올리기보다넓이에집중했다.선위에세계를위치시키는방식은농경문화에서는유효했고물질적풍요도가져왔지만농경문화밖에서는제대로작동할수없었다.작가의결론은다음과같다.

“나는그답이중국인이사상세계가서양사람과다르고‘주체’와‘객체’를나누지않는데있다고생각한다.이작아보이는차이가17세기후에빠른속도로커져서몇백년동안발효되어중국과서양의역사가천양지차가되었다.”
-321쪽「빈산」중에서

1700년런던과파리의거리상점에서가장유행한상품은광둥산실크,난징산자기,푸젠성의차였다.당시패션의중심은파리가아니라베이징이었다.중국식이유럽을휩쓴그시절,동풍이서풍을압도하던시절,발전만이살길임을증명했던대청제국은세계최고의강대국이었다.그러나최고점에오른후더이상의새로운추동력을발휘하지못한청나라는고립의길로들어섰다.이런변화는그시대첨단발명품인거울을이용하는방식에도알수있다.중국문화열혈팬이었던루이14세는거울의방을만들어개방하고소통했다면청건륭제는배제와고립을택했다.

“483조각으로구성된17장의거울이한쪽벽면을가득채우고있는데베르사유궁전에서가장호화롭고빛났다.건륭의‘거울의방’보다훨씬넓고기품이넘친다.프랑스루이14세는이것을왕궁의‘보물’로여겼다.그거대한‘거울의방’에서무도회가열리고사람의모습이벽을가득메운거울에반사돼끝없이증폭되는광경은얼마나웅장하고환상적이었을까?그러나건륭의‘거울의방’은한사람만들어갈정도로좁다.그한사람이건륭이다.건륭으로서는충분히넓은공간이었다.건륭의공간에서그는자기만보면되었다.다른사람이있을필요가없었다.만약제3의사람이나타나면그들은(예컨대태감이나궁녀)분명두명의건륭을보았을것이다.거울속의건륭과거울밖의건륭.우리가〈홍력채지도〉,〈평안춘신도〉,〈시일시이도〉를본것처럼한화면에두명의건륭이있는것같았을것이다.”-597쪽「마주보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