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8: 망가진 여행

어떤 날 8: 망가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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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여행의 시대다. 모두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떠나겠다고, 떠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한다. SNS로 여행을 ‘생중계’하는 시대에 여행은 우리 시대의 스토리텔링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여행이 우리를 흡족케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준비할 때, 출발 직전에, 여행 도중에 여행은 종종 우리를 배신한다. 여행 정보가 넘쳐나서, 일정이 완벽해서 ‘망가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믿었던 여행 동반자가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도 있다. 여기저기 넘쳐나는 여행의 판타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적지 않다. 시인, 소설가, 작사가, 영화감독 등 유난히 섬세한 이들의 여행을 담는 여행 무크지 『어떤 날』 8호는 기억에 담고 싶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망가진 여행’을 담았다. 그 망가진 여행을 회복하기 위해 그들은, 그럼에도, 다시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 어떤 모습이든, 일단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강윤정

문학편집자이다.소설리뷰웹진〈소설리스트(sosullist.com)〉의필진으로참여하고있다.

목차

실패하여지속될수있는마음/ 강윤정
여행을하는데가장필요한것/ 오은
그토록사소한기적을바랐던어느여행가의죽음/ 위서현
어떤싸움의기록/ 이현호
LastSummer/ 장연정
11월의어느겨울에낭트영화제를가는것에대하여/ 정성일
파라다이스에혼자남겨지면/ 정세랑

출판사 서평

나는여행을좋아하지않는다.여행을망쳐버리고싶다.
여행을망치기위해서여행을떠나야겠다는생각이든다.
여행을망치려면일단여행을떠나야한다.
그때는늦지않게공항에도착할것이다.

출판사서평

여행을망치려면일단여행을떠나야한다

사람들은여행을좋아한다.기회가닿는대로지금-여기를떠나고싶어한다.여행계획을짜놓고공항에가는날만을손꼽아기다리는이들이넘쳐난다.가히여행의시대다.그러나여행을좋아하지않는이도있다.일상의안정감이깨어지는게싫기때문이다.사람들은갖가지이유를들어여행을떠나지만,지금-여기를벗어나고싶은일탈의욕망을품고있지만,여행이선사하는설렘과흥분을즐기지만그러한비일상적이고극적인자극을일상에대한폭력으로여기는이도적지않다.어떤이에게여행은보통의생활에균열을일으키고,몸담고있는현실을파괴하는평지풍파다.

시인,소설가,작사가,영화감독등유난히섬세한이들의여행을담는여행산문무크지『어떤날』8호는기억에담고싶지않은,그래서오히려기억에남는‘망가진여행’을담았다.강윤정(편집자),오은-이현호(시인),정세랑(소설가),장연정(작사가),정성일(영화감독),위서현(아나운서)등7명의여행자들이자신의망가진여행을고백했다.

문학전문편집자강윤정은몇해전토리노행열차티켓을끊었다.프리모레비(PrimoLevi),유대계이탈리아인이며아우슈비츠수용소생존자인작가.그가나고자란곳,끌려갔다가돌아온곳,자살로생을마감한곳에꼭가고싶었다.그렇게레비가묻힌묘지앞에서는것을택했다.자신에게인간에대한가장깊은이해를보여준그에게고마운마음을전하고싶었다.

토리노역에도착했다.구글맵으로지도를확대-축소하며,대중교통과도보를총동원해묘지에도착했다.그러나……문이닫혀있었다.월요일에는문을닫는다고했다.공동묘지에도휴무일이있을줄이야.묘지관리인은등장하지않았다.그건영화속에나나오는일이었다.운명같았던토리노행은그렇게끝이났다.저멀리알프스산봉우리를덮은만년설이햇살에빛나고있었다.웃음이났다.신기했다.완전히다른시공간을살았던프리모레비라는사람을마음깊이,오래도록그리워하고애도할수있다는것이.돌아오는기차에서생각해보니레비의말,삶,그리고그가본세상에진심으로귀를기울였다는사실을깨달았다.그것만으로도그여행은충분하다고생각했다.

시인오은의망가진여행은친구와나눈맥주한잔에서시작되었다.“남들은좋아하는데끌리지않는게뭐야?”라는친구의물음에그는“여행”이라고말했다.시인에게여행은불편한경험에불과하다.예상할수없는일,예기치않은일이그냥싫다.그래도이번에는여행을떠나기로했다.주말을피해서2박3일,아무계획없이단지자유롭게!며칠후,두사람은서로의거주지중간에위치한용산에서만났다.까만색SUV렌터카에서친구는전국지도를펼쳤다.속초!수학여행을제외하곤가본적이없던강원도로정했다.계획이없다는것은아무것이나해도문제될게없다는말이다.그때였다.우두둑우두둑소리가났다.비였다.일기예보에서는강원도에호우주의보가내려져있다고했다.계획이어그러지고변수가등장했지만,여행은‘나도몰랐던나’를튀어나오게하는것임을알게되었다.펑크록과브릿팝을들으면서해안도로를달렸다.그날밤,‘강원도-바다’하면떠오르는횟집으로향했다.회는살살녹았고,술도달았다.하지만여행은다음날끝나고말았다.비오는날회를먹어서는안되는거였다.계획이없는여행에적응해갔지만몸은그렇지않았나보다.태어나서처음겪는배탈에두사람은고속도로휴게소에오래머물러야했다.무얼먹지도,무얼보지도않은채.비는그치고해가뉘엿뉘엿지고있었다.친구가말했다.그냥서울로돌아갈래?

비록바다에가지못하고휴게소화장실에서오랜시간을보냈지만,그래서실패한여행이었지만시인은여름만돌아오면그여행이떠오른다.무계획,날씨,과식이망친여행이지만,그여행은‘망친여행’이아니라는생각이든다.예기치않은상황에적응하는나를만들어주었으니까.예기치않은상황에처하더라도그상황을받아들이고좋아하는것을찾으면된다는걸깨닫게해주었으니까말이다.

시인이현호에게여행은‘어떤싸움의기록’이다.시인은여행을좋아하지않는다.일상의안정감이깨어지는게싫어서란다.그런시인에게도잊지못할여행이있다.4년전떠났던최초의해외여행이었다.늦깎이군생활을마치고,서른살삶을되돌아보고앞날을정비하고싶었다.무엇보다여자친구의성화도있었다.

여자친구와함께떠난2박3일의홍콩여행은시작부터삐걱거렸다.늦잠을잤고,허둥지둥공항에도착했다.“간판이중국어인거빼면서울이랑똑같네”라는말에여자친구의화를돋우었고,영화〈중경삼림〉의명소는공사중이었고,폭우도쏟아졌다.사람냄새나는곳에서밥을먹자고고집을부려찾은식당은실패였다.템플스트리트,틴하우사원,제이드마켓,침사추이……어디를찾아도그저시큰둥할뿐이었다.시인은여행을즐기는게아니라여행과대결하고있었다.감동은여행에게패배를인정하는일이었다.그렇게여행은망가졌다.그러나그여행은헛되지않았다.그여행에서시인은“여행을위해서공간을이동할필요는없다”는페르난도페소아의말을이해할수있었다.“모든것을모든방식으로”느낄수만있다면“여행을위해선,존재하는것만으로충분하다”는것을알았다.어떻게받아들이느냐에따라일상은여행이될수있음을그는알게,아니느끼게되었다.

시인은여전히여행을좋아하지않는다.여행을망쳐버리고싶다.그러나조금달라졌다.여행을망치기위해서여행을떠나야겠다는생각,여행을망치려면일단여행을떠나야한다고생각하게되었다.그때는늦지않게공항에도착할거라는시인의다음여행이기다려지는이유다.

서점에는여행서가많다.거의모든여행서가추억에잠겨행복해죽겠다는이야기다.하지만『어떤날8』은그건거짓말이라고말한다.솔직히말하건대,집떠나면고생이다.여행은그게견딜만한고생일때까지만즐겁다.함께여행을떠난상대를잘못선택해서,여행지를잘못선택해서,도착한그곳이기대보다더훌륭했음에도조금씩계획이뒤틀리면서여행은얼마든지망가질수있다.그때우리가할수있는건그리많지않다.그건『소울트립』,『눈물대신,여행』작가장연정도,영화감독정성일도,소설가정세랑도같은마음이다.무더위밖에생각나지않는싱가폴(장연정),11월의어느겨울에찾은낭트영화제(정성일),친구가떠나고홀로남은하와이(정세랑)는‘망가진’기억을남겨주었지만,그렇기에가장기억에남는여행으로그들은추억하고있었다.

여행은그런것이다.가보지못한곳,달성하지못한목표,만나지못한이,풀지못한의문,못한것투성이일수있다.그래서계속,계속,계속가고싶은것이다.모든일정이여행자의뜻대로된다면다시는찾지않았을어떤곳.그곳을이해했다고성급히생각했을지도모를일.‘망가진’여행덕분에여행자는오늘도다른여행을준비한다.여행은그렇게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