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마키노 신이치 단편선)

손톱 (마키노 신이치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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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무 생각 없이 손톱을 톡톡 잘랐다.
손톱이 화로 안으로 튀어 들어가
파사삭 타올랐다.
“어머, 오빠! 손톱을 태우다니,
진짜 미친 거야?”
미치코는 당황해서 얼굴색이 변했다.
그의 손을 꼭 붙들었다.
미치코의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레몬』(가지이 모토지로), 『호랑이 사냥』(나카지마 아쓰시), 『비용의 아내』(다자이 오사무), 인간의자(에도가와 란포)』…… 일본의 근현대 단편소설을 묶는 ‘북노마드 일본단편선’의 다섯 번째 주인공은 마키노 신이치의 『손톱』입니다.

마키노 신이치는 일본에서도 그다지 인지도가 높은 작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 문인에게 인정받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일본 근현대문학사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자아내는 작가임에는 분명합니다. 마키노 신이치를 대표하는 수식어는 ‘그리스 마키노’인데, 1896년에 태어난 일본인 작가에게 붙은 애칭치곤 특이해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마키노에게 ‘부모’의 존재는 특별했습니다. 우선 아버지. 마키노의 아버지는 말 그대로 ‘자유인’이었습니다. 방랑자 기질을 타고났을까요, 아니면 지방 소도시의 답답한 삶을 견디지 못했을까요. 그는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10년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교감하지 못한 채 유년 시절을 보낸 마키노에게 아버지와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미국으로부터 날아오는 편지, 사진, 동화책, 망원경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낯설고도 신기한 ‘미제(美製) 물건’을 접하며 마키노는 자연스레 영어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소학교 교사였던 마키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반대였습니다. 남편 대신 가정 경제를 책임진 어머니는 유독 교육만큼은 엄격했습니다. 작문 숙제는 물론 편지 같은 사소한 글에서도 마키노를 호되게 몰아붙였습니다. 그때마다 마키노는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을 그대로 쓰면 안 되는 걸까? 정해진 형식에 맞춰 미사여구를 동원해 쓴 글이 무슨 의미일까?’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키노 문학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은 희한하게도 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1905년, 할아버지의 죽음을 추념하기 위해 아버지가 귀국했습니다. 10년 만의 귀환. 그러나 마키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마키노 역시 사진으로 기억했던 남자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곳은 ‘미국’이었으니까요. 그곳에 가면 늘 아버지의 미국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대화하며 마키노는 아버지와 가까워졌습니다. 일본어로 말할 때면 갑갑하게 느껴졌던 감정이 영어로 전달하면 유독 쉬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마키노 부자도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와 일본어로 대화하며 속박당했던 마키노의 감정은 아버지와 영어로 대화하며 해방되었습니다.

초기 사소설, 중기 환상소설, 후기 다시 사소설로의 복귀…… 마키노 신이치의 작품 활동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대학에 진학하며 도쿄로 올라온 마키노는 동료들과 함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웁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탐미주의 소설에 흠뻑 빠진 그는 1919년 동인지 《13인(十三人)》에 단편소설 「손톱(爪)」을 발표합니다. 미치코라는 인물과 대화하며 자의식의 변화를 예민하게 그려낸 「손톱」은 마키노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꼽힙니다.

아버지의 죽음, 결혼, 간토(関東) 대지진,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융성…… 마키노의 중기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신경쇠약 증세가 심해지며 고향 오다와라에서 이루어집니다. 1927년 발표한 「수박을 먹는 사람」, 이번 단편선에 실린 「제론」에서 그는 상상의 공간 혹은 고향을 배경 삼아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분위기의 작품을 여럿 남깁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전래동화와 유럽 동화를 뒤섞은 듯한 「제론」은 ‘일본판 『돈키호테』’로 불리기에 충분합니다.

후기로 접어들며 마키노는 신경쇠약 증세가 재발하고,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며, 급기야 아내와도 별거합니다. 「박제」 「병세」 등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증적인 작품에서 그 시기 마키노의 초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병세」는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 예민한 감성, 심한 감정 기복 등 마키노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읽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듭니다.

속박과 자유의 끊임없는 갈등. 마키노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자, 작가 사카구치 안고는 이렇게 그를 추모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꿈을 꾸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은 문학을 섬기는 것이었다.”
저자

마키노신이치

저자:마키노신이치
1896년가나가와(神奈川)현오다와라(小田原)시에서태어났다.자신이태어난이듬해미국으로떠났다가십년만에귀국한보헤미안아버지,소학교교사로일하며엄격한훈육을고집한어머니사이에서갈등을겪으며성장했다.1919년와세다대학영문학과를졸업하고열세명의동인을모아『13인(十三人)』이라는잡지를창간해첫작품「손톱(爪)」을발표했다.이작품은당시자연주의문학의대가시마자키도손(島崎藤村)에게극찬을받았다.이후부모형제를혐오하는신변잡기사소설을쓰던초기를지나,중기에이르면고향오다와라의풍토에고대그리스나유럽중세이미지를중첩해꿈과현실을오가는환상문학을개척했다.「제론」은이런환상성이돋보이는대표작이다.후기에해당하는1931년부터는신경쇠약징후가심해지며사소설경향으로회귀했는데,더욱어두워진작풍이「병세」에드러나있다.1936년자택에서스스로목숨을끊었다.평생자유와속박사이에서생겨난상처를극복하지못한마키노의문학은창백한자의식,신경증,비애감으로우리에게남아있다.

역자:안민희
동덕여대일본어과,한국외대통번역대학원을졸업했다.일본및한국기업에서통번역직으로근무하고,현재통번역프리랜서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손톱19196

IAmNotAPoet,ButIAmAPoet.192024

제론193130

병세193470

옮긴이의말 100

작가연보109

출판사 서평

“아무생각없이손톱을톡톡잘랐다.
손톱이화로안으로튀어들어가
파사삭타올랐다.
“어머,오빠!손톱을태우다니,
진짜미친거야?”
미치코는당황해서얼굴색이변했다.
그의손을꼭붙들었다.
미치코의손끝이덜덜떨리고있었다.”

『레몬』(가지이모토지로),『호랑이사냥』(나카지마아쓰시),『비용의아내』(다자이오사무),인간의자(에도가와란포)』……일본의근현대단편소설을묶는‘북노마드일본단편선’의다섯번째주인공은마키노신이치의『손톱』입니다.

마키노신이치는일본에서도그다지인지도가높은작가는아닙니다.그러나여러문인에게인정받은데서알수있듯이일본근현대문학사에서독특한존재감을자아내는작가임에는분명합니다.마키노신이치를대표하는수식어는‘그리스마키노’인데,1896년에태어난일본인작가에게붙은애칭치곤특이해서더욱기억에남습니다.

누구나그렇듯이마키노에게‘부모’의존재는특별했습니다.우선아버지.마키노의아버지는말그대로‘자유인’이었습니다.방랑자기질을타고났을까요,아니면지방소도시의답답한삶을견디지못했을까요.그는아들이태어나자마자홀로미국으로건너가10년간돌아오지않았습니다.

아버지와교감하지못한채유년시절을보낸마키노에게아버지와의유일한연결고리는미국으로부터날아오는편지,사진,동화책,망원경이었습니다.아버지의‘선물’이라고할수있는낯설고도신기한‘미제(美製)물건’을접하며마키노는자연스레영어공부에매진했습니다.

그리고어머니.소학교교사였던마키노의어머니는아버지와정반대였습니다.남편대신가정경제를책임진어머니는유독교육만큼은엄격했습니다.작문숙제는물론편지같은사소한글에서도마키노를호되게몰아붙였습니다.그때마다마키노는‘내가생각하고느낀것을그대로쓰면안되는걸까?정해진형식에맞춰미사여구를동원해쓴글이무슨의미일까?’라는의문을품었습니다.아이러니하게도마키노문학의시작이었습니다.

어머니로부터의‘해방’은희한하게도아버지덕분이었습니다.1905년,할아버지의죽음을추념하기위해아버지가귀국했습니다.10년만의귀환.그러나마키노의아버지와어머니는함께살지않았습니다.마키노역시사진으로기억했던남자를‘아버지’라부르지못했습니다.그래도아버지집에가고싶었습니다.그곳은‘미국’이었으니까요.그곳에가면늘아버지의미국인친구들이있었습니다.그들과대화하며마키노는아버지와가까워졌습니다.일본어로말할때면갑갑하게느껴졌던감정이영어로전달하면유독쉬워지는기분이었습니다.마키노부자도영어로대화를나누었습니다.어머니와일본어로대화하며속박당했던마키노의감정은아버지와영어로대화하며해방되었습니다.

초기사소설,중기환상소설,후기다시사소설로의복귀……마키노신이치의작품활동은크게세단계로구분됩니다.대학에진학하며도쿄로올라온마키노는동료들과함께문학에대한열정을불태웁니다.다니자키준이치로의탐미주의소설에흠뻑빠진그는1919년동인지《13인(十三人)》에단편소설「손톱(爪)」을발표합니다.미치코라는인물과대화하며자의식의변화를예민하게그려낸「손톱」은마키노를대표하는수작으로꼽힙니다.

아버지의죽음,결혼,간토대지진,프롤레타리아문학의융성……마키노의중기는자신을둘러싼환경과신경쇠약증세가심해지며고향오다와라에서이루어집니다.1927년발표한「수박을먹는사람」,이번단편선에실린「제론」에서그는상상의공간혹은고향을배경삼아‘현실인지꿈인지알수없는’분위기의작품을여럿남깁니다.그중에서도일본의전래동화와유럽동화를뒤섞은듯한「제론」은‘일본판『돈키호테』’로불리기에충분합니다.

후기로접어들며마키노는신경쇠약증세가재발하고,경제적궁핍에시달리며,급기야아내와도별거합니다.「박제」「병세」등날카롭게곤두선신경증적인작품에서그시기마키노의초상을엿볼수있습니다.그중에서도「병세」는글을써야한다는압박,예민한감성,심한감정기복등마키노의삶이고스란히투영되어읽는이의마음을애잔하게만듭니다.

속박과자유의끊임없는갈등.마키노가‘스스로’세상을등지자,작가사카구치안고는이렇게그를추모했습니다.

“그의인생은꿈을꾸는것이었다,그의인생은문학을섬기는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