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북노마드 일본단편선 여섯 번째 주인공은 호리 다쓰오의 『늦여름』이다. 호리 다쓰오의 문학은 ‘삶과 죽음과 사랑의 문학’으로 정의된다. 그만큼 이 주제를 고민하고 소설에 포개었다.
호리는 일본 근대소설을 지배했던 ‘사소설’이라는 영역을 벗어나 말 그대로 ‘이야기’를 짓는 ‘소설’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소설을 쓰는 주체가 사람인 만큼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짓기란 어려운 일이다. 호리 역시 ‘삶과 죽음과 사랑’이라는 개인적 경험을 문학에 투영했다.
1904년, 호리는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호리는 적자로 인정받았지만, 첫 번째 부인이 있는 상황에서 아들과 떨어질 수 없었던 어머니는 1906년 호리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2년 후 재혼했으나, 1910년 호리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받게 된 연금을 아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했다.
호리가 고등학교에서 보낸 마지막 해인 1923년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해였다. 이 해에 호리는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일본의 소도시 ‘가루이자와’를 알았고, 문학의 동반자이자 스승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만났다. 같은 해 9월 1일에는 간토 대지진이 발생했다. 호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어머니는 강물에 빠져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호리가 겪은 첫 죽음이었다.
이러한 사건은 호리 문학의 바탕으로 자리 잡았다. 「얼굴」에서 루이가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 헤매는 장면은 호리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며칠간 강물을 헤맨 일을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를 잃은 충격과 수색의 피로로 호리는 늑막염에 걸렸고, 이후 흉부 질환이 평생 그를 괴롭혔다.
삶, 죽음, 사랑, 그리고 여행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심신의 허약을 호리는 독서, 글쓰기, 문인과의 교류, 가루이자와 여행으로 이겨냈다. 교내 잡지에 투고한 산문 「쾌적주의(快適主義)」에서 그는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쾌적하게 보내는 법’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이렇게 해답을 제시한다. 빨간색은 고통, 흰색은 쾌적함이라고 가정한 그는 “우선 빨간색 부분은 명확하게 빨간색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흰색 물감을 가지고 그 빨간색 부분을 하얗게 칠한다”라고 적은 그에게서 고통을 피하지 않고 즐기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1924년과 1925년, 호리는 두 번에 걸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가루이자와 여행을 떠났다. 1925년에는 대학에 진학해 나카노 시게하루(소설가, 시인), 고바야시 히데오(문예평론가) 등과 교류를 이어갔다. 그리고 소설을 썼다.
1927년 7월의 어느 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자살한다. 그를 스승처럼 따랐던 호리가 받았을 충격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29년, 호리는 졸업 논문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1929)」을 제출한다. “저에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논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가 제 안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라는 서문에서 그가 겪었던 고통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뿌리가 잘린 듯한 고통 속에서 호리는 다음과 같이 답을 내렸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제 눈을
‘죽은 자의 눈을 감겨주듯이’
조용히 뜨게 해주었습니다.”
호리가 평생에 걸쳐 여닫은 ‘삶과 죽음’이라는 관문에 당도한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던 호리는 아쿠타가와의 죽음 앞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삶의 눈으로 죽음을 바라보기, 그 과정은 불안으로 가득했지만 결국 ‘살아 있다’는 증명이었다.
아쿠타가와를 논하며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본 호리는 아쿠타가와의 죽음을 모티프 삼은 소설 『성가족(聖家族)』(1930)을 발표했다. 소설은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호리는 탈고 이후 각혈을 일으켜 요양 생활을 피할 수 없었다.
유약했던 호리에게 가루이자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시절에도 이미 유명한 휴양지였던 가루이자와로 호리는 요양을 떠난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그곳에서 호리는 야노 아야코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가루이자와에 있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요양을 왔음을 의미할 터. 두 사람은 함께 병원에 입원하고, 아야코는 호리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와 스승은 갑작스럽게 떠났지만,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 아야코와의 이별은 분명 달랐다. 호리는 소중한 하루하루를 함께하며 죽음 너머의 삶, 운명 바깥의 삶을 확신하게 해주는 ‘사랑’의 위대함을 대표작 『바람이 분다』(1937년)에 그려냈다.
어머니, 스승, 연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계속해서 지켜본 호리에게 죽음은 늘 곁에 둬야 하는 존재였다. 역설적으로 호리는 죽음에서 강렬한 생명을 느꼈다. 호리가 시대의 유행이나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학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죽음을 똑바로 마주해야 하는 운명 덕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죽음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호리 다쓰오의 작품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명백히 다를 것이다. 두렵고 피해야 하는 개념이 아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어둠을 정면에서 바라보고(「잠든 사람」), 나이 듦(죽음)과 젊음(삶)은 공존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우치기(「늦여름」). 호리 다쓰오의 문장이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호리는 일본 근대소설을 지배했던 ‘사소설’이라는 영역을 벗어나 말 그대로 ‘이야기’를 짓는 ‘소설’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소설을 쓰는 주체가 사람인 만큼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짓기란 어려운 일이다. 호리 역시 ‘삶과 죽음과 사랑’이라는 개인적 경험을 문학에 투영했다.
1904년, 호리는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호리는 적자로 인정받았지만, 첫 번째 부인이 있는 상황에서 아들과 떨어질 수 없었던 어머니는 1906년 호리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2년 후 재혼했으나, 1910년 호리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받게 된 연금을 아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했다.
호리가 고등학교에서 보낸 마지막 해인 1923년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해였다. 이 해에 호리는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일본의 소도시 ‘가루이자와’를 알았고, 문학의 동반자이자 스승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만났다. 같은 해 9월 1일에는 간토 대지진이 발생했다. 호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어머니는 강물에 빠져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호리가 겪은 첫 죽음이었다.
이러한 사건은 호리 문학의 바탕으로 자리 잡았다. 「얼굴」에서 루이가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 헤매는 장면은 호리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며칠간 강물을 헤맨 일을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를 잃은 충격과 수색의 피로로 호리는 늑막염에 걸렸고, 이후 흉부 질환이 평생 그를 괴롭혔다.
삶, 죽음, 사랑, 그리고 여행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심신의 허약을 호리는 독서, 글쓰기, 문인과의 교류, 가루이자와 여행으로 이겨냈다. 교내 잡지에 투고한 산문 「쾌적주의(快適主義)」에서 그는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쾌적하게 보내는 법’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이렇게 해답을 제시한다. 빨간색은 고통, 흰색은 쾌적함이라고 가정한 그는 “우선 빨간색 부분은 명확하게 빨간색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흰색 물감을 가지고 그 빨간색 부분을 하얗게 칠한다”라고 적은 그에게서 고통을 피하지 않고 즐기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1924년과 1925년, 호리는 두 번에 걸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가루이자와 여행을 떠났다. 1925년에는 대학에 진학해 나카노 시게하루(소설가, 시인), 고바야시 히데오(문예평론가) 등과 교류를 이어갔다. 그리고 소설을 썼다.
1927년 7월의 어느 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자살한다. 그를 스승처럼 따랐던 호리가 받았을 충격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29년, 호리는 졸업 논문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1929)」을 제출한다. “저에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논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가 제 안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라는 서문에서 그가 겪었던 고통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뿌리가 잘린 듯한 고통 속에서 호리는 다음과 같이 답을 내렸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제 눈을
‘죽은 자의 눈을 감겨주듯이’
조용히 뜨게 해주었습니다.”
호리가 평생에 걸쳐 여닫은 ‘삶과 죽음’이라는 관문에 당도한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던 호리는 아쿠타가와의 죽음 앞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삶의 눈으로 죽음을 바라보기, 그 과정은 불안으로 가득했지만 결국 ‘살아 있다’는 증명이었다.
아쿠타가와를 논하며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본 호리는 아쿠타가와의 죽음을 모티프 삼은 소설 『성가족(聖家族)』(1930)을 발표했다. 소설은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호리는 탈고 이후 각혈을 일으켜 요양 생활을 피할 수 없었다.
유약했던 호리에게 가루이자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시절에도 이미 유명한 휴양지였던 가루이자와로 호리는 요양을 떠난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그곳에서 호리는 야노 아야코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가루이자와에 있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요양을 왔음을 의미할 터. 두 사람은 함께 병원에 입원하고, 아야코는 호리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와 스승은 갑작스럽게 떠났지만,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 아야코와의 이별은 분명 달랐다. 호리는 소중한 하루하루를 함께하며 죽음 너머의 삶, 운명 바깥의 삶을 확신하게 해주는 ‘사랑’의 위대함을 대표작 『바람이 분다』(1937년)에 그려냈다.
어머니, 스승, 연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계속해서 지켜본 호리에게 죽음은 늘 곁에 둬야 하는 존재였다. 역설적으로 호리는 죽음에서 강렬한 생명을 느꼈다. 호리가 시대의 유행이나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학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죽음을 똑바로 마주해야 하는 운명 덕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죽음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호리 다쓰오의 작품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명백히 다를 것이다. 두렵고 피해야 하는 개념이 아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어둠을 정면에서 바라보고(「잠든 사람」), 나이 듦(죽음)과 젊음(삶)은 공존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우치기(「늦여름」). 호리 다쓰오의 문장이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늦여름 : 호리 다쓰오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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