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왕릉실록 (삼국사기보다 더 재미있는 한국 고대사)

삼국왕릉실록 (삼국사기보다 더 재미있는 한국 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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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역사를 깊이 천착하다 보면 알 수 없는 그 무엇의 힘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신비함을 느끼게 된다. 역사는 반복되고 문명은 이동하는 것이다. 이념보다 훨씬 우월한 게 역사다.
한민족의 역사는 유장하다.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건국한 지가 올해로 4354년째다. 한반도의 역사는 고대로 소급될수록 미궁에 빠지고 만다. 그 당시 역사적 사실을 입증할 사료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한국사 영역은 고려 중·후기에 쓰여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존해 왔다. 오히려 중국 변방 역사서에 우리 고대사의 언급이 잦아 곧잘 인용되기도 한다. 역사서 〈발해고〉를 찬술한 유득공이 “고려시대 역사가들이 통일신라ㆍ발해를 남·북국 시대로 구분하는 국사 체계를 바로 세우지 않아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는 명분을 상실했다.”고 했다. 왜 우리 선조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집필하며 인용했던 《신라본기》, 《고구려본기》, 《백제본기》, 《가락국기》, 《화랑세기》 등의 소중한 역사서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못했을까.
하지만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추적하고 규명함에 있어 좌절할 일만도 아니다. 바로 그 당시를 살다간 임금들이 묻힌 왕릉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1971년 공주에서의 백제 무령왕릉과, 1973년 경주 천마총이 발굴돼 공개될 당시의 흥분과 환호를 잊지 못하고 있다. 발굴 유물을 통해 1500여 년 전의 왕실 문화와 생활·시대상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라는 BC57년 박혁거세가 나라를 건국한 이래 56명의 왕이 992년 동안 왕권을 유지했다. 따라서 신라사는 고구려·백제·가야를 포함한 4국의 역사까지 아우르게 된다. 신라 임금 56명 중 묘호가 비정된 왕릉 수는 37기에 이른다. 36기가 경주에 있고 1기는 경기도 연천에 있다. 이 밖에도 경주에는 발굴만 하면 임금의 실체가 밝혀질 수 있을 왕릉 규모의 무덤 수십 기가 산재해 있다. 그러나 고구려·백제·가야 왕릉은 거의 멸실돼 3~4기만 전해 올 뿐이다. 이 책《삼국왕릉실록》이 신라 역사를 중심으로 집필한 까닭이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엄혹한 현실이다. 백제의 ‘요서경략’은 백제가 중국 대륙에 진출해 국가를 경영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가야국 조정의 신료는 일본 규슈의 고대국가 축자국(筑紫國) 조정에 진출해 핵심 요직을 수행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할 수 있는 사실적 대응 논리가 절실하다.
교육은 곧 우리의 미래다! 삼국의 왕릉을 통해 고증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 한반도 삼국 고대사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미래의 한국사를 바로 세우는 작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

이규원

충남홍성에서태어나홍성중,예산농고를거쳐대학에서는중국어와장례풍수학을전공했다.〈종교신문〉취재부장,〈세계종교신문〉주필,월간〈광장〉편집장과〈세계일보〉문화부장·논설위원을역임했다.고교시절유효동선생과의인연으로풍수학에입문한뒤화엄학의태두탄허대종사로부터주역과명리를인가받고황진경조실스님에게서사찰풍수를전수받았다.현역취재30여년간종교와풍수전문대기자로서다양한기사와글을집필해왔다.
1995년〈문예사조〉시부문신인상을타며문단에등단한후제6회부원문학상과제27회한국기자상본상(출판저작부문),제34회한국출판문화상을수상했다.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제56호종묘제례와제111호사직대제전수교육을이수했다.〈온세종교〉신문을창간해발행인겸편집국장을역임했고사단법인한국언론인연합회부회장및〈조선일보〉789사진클럽회장으로재임중이다.저서로는《조선왕릉실록》,《명당은살아있다》,《우리가정말알아야할우리전통예인백사람》,《대한민국명당》,《풍수로읽는인물열전》,《한국사찰순례》(공저),《한국의차세대》(공저)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며

ㆍ삼국문화역사를걷다
한반도의고대국가형성과민족이동,한민족의역사를재정립하다
신라의장묘제도와사생관,이승과정반대로저승을인식
신라왕릉의비밀,천마총발굴로세계고고학계경악

ㆍ신라1대박혁거세거서간
나정의알에서태어나육촌장의추대로왕위에오르다

ㆍ고구려1대동명성왕
활을잘쏘아주몽이라불리니고씨로창시해고구려시조되다

ㆍ백제1대온조왕
100가구가서해를건너니백제라,잦은전쟁치르며최강군으로무장

ㆍ신라2대남해차차웅
비명에간부왕에죄책감,권력투쟁에절망하다

ㆍ신라3대유리이사금
혹독한제왕수업으로조정장악,태평성대를구가하다

ㆍ가야연맹가야6국
아홉간의추대받아여섯사내가여섯나라를건국하니가야라

ㆍ가락국금관가야김수로왕
황금상자에서태어나성이김이라가락국왕으로추대하다

ㆍ가락국금관가야허황옥
아유타국에서배타고온공주를왕비로삼다

ㆍ고구려6대태조왕
한민족최대의영토제국실현,아시아대륙의맹주로부상

ㆍ신라4대탈해이사금
권력암투와소국간영토전쟁,격동의세월을살다

ㆍ신라경주김씨시조김알지
경주김씨의시조김알지,천년왕국신라절반넘게지배

ㆍ신라5대파사이사금
장가잘가서왕이되니24년만에박씨왕권회복

ㆍ신라6대지마이사금
조상복타고나왕좌에올랐으나후사없어수심이가득하니

ㆍ신라7대일성이사금
생명보존위해왜국으로망명,우여곡절귀국해왕이되었지만

ㆍ신라8대아달라이사금
족내혼인으로왕권유지코자했건만불륜파장으로왕조사다시쓰다

ㆍ신라9대벌휴이사금
어부지리로왕좌얻으니다시석씨왕조를열다

ㆍ신라10대내해이사금
왕족지지속에석씨왕실의만년대계공고히하다

ㆍ고구려6대동천왕
내우외환정세에도영토확장,죽어서도만백성의존엄받다

ㆍ신라11대조분이사금
백성을자상히보살피고국가발전에기여조분이라칭하니

ㆍ백제8대고이왕
중국요서산동반도에백제대국건설,한반도한성백제오가며양국통치

ㆍ신라12대첨해이사금
반정으로왕위에올랐으나자업자득반정으로마감하니

ㆍ신라13대미추이사금
경주김씨가전면에부상,신라최초수호신으로신격화

ㆍ신라14대유례이사금
이복동생을부마삼으니김씨에서석씨로왕권이넘어가

ㆍ신라15대기림이사금
출신성분미천한사생아,평생병약하고전쟁혐오해

ㆍ신라16대흘해이사금
왜에철천지원을품었지만결혼동맹으로화친유지

ㆍ고구려16대고국원왕
종묘사직수호못해민심이반,전쟁중목숨잃고영토도빼앗겨

ㆍ신라17대내물마립간
왕의칭호를마립간으로교체,경륜부족국가위기초래

ㆍ고구려19대광개토왕
영토확장외문치에도탁월한업적,고구려가천하의중심임을자부

ㆍ신라18대실성마립간
인질원한보복으로국정소홀,복수의화신되어원수도못갚고피살

ㆍ백제18대전지왕
외척간권력다툼으로국정마비,왜왕녀와결혼해정통성상실

ㆍ고구려20대장수왕
98세로장수하며영화누리고고구려최대전성기를이끌다

ㆍ신라19대눌지마립간
살해당할위기넘겨왕되니,김씨왕실장자승계정착시켜

ㆍ신라20대자비마립간
왜와는강경노선펴전쟁수행,국정혁신하여행정체계보완

ㆍ백제22대문주왕
외척간권력투쟁의희생양,부자가비명에생을마감하다

ㆍ신라21대소지마립간
화평을우선과제삼았지만내우외환으로악재이어져

ㆍ백제24대동성왕
왜에서성장후귀국즉시등극,탁월한국제감각으로외교술발휘

ㆍ신라22대지증왕
국명을신라로통일국정에몰두,우산국정벌후독도복속

ㆍ백제25대무령왕
백척간두에서왕좌에올라섭라편입영토사에변화부르다

ㆍ신라23대법흥왕
가야병합국력신장하고불교공인말년에승려되다

ㆍ금관가야10대구형왕
신라에조공외교로위기모면,법흥왕에게망국후보전책흥정

ㆍ신라24대진흥왕
풍월도정비화랑으로개편,확장영토순행하며순수비건립

ㆍ백제27대위덕왕
자신의실수로비명에간부왕,책임론대두로왕권축소되니

ㆍ신라25대진지왕
정사를맡기고색탐에만몰두,강제폐위되어생을마감하다

ㆍ신라26대진평왕
끊임없는영토확장전쟁에시달려,중원과연대외교전으로나라경영

ㆍ백제30대무왕
왕자이나미천한신분으로숨어살아,폭력정권타도후왕으로추대되니

ㆍ신라27대선덕여왕
신라최초의여군주로용상에올라왕권행사의시험대에오르다

ㆍ신라28대진덕여왕
주변국의여왕경시적극대응,당과외교관계통해통치기반닦아

ㆍ신라29대태종무열왕
폐왕손자라는고립무원극복,능란한외교책사로왕권장악

ㆍ신라추존왕김유신
가야인으로삼국통일주역되어신하로서세계최초왕으로추존

ㆍ백제31대의자왕
충신은내치고간신무리만넘쳐,왕의방종으로700년사직무너지다

ㆍ백제부흥운동
왕과권력자들은나라를내쳤으나민초들이봉기해부흥군이끌다

ㆍ고구려28대보장왕
정변으로용상에올랐으나허수아비로살다망국왕되다

ㆍ신라30대문무왕
죽어서도용이되어나라지키리,동해에수장된세계최초수중릉

ㆍ고구려부흥운동
고구려유민들이봉기하나역부족,30년만에발해로거듭나다

ㆍ삼국연대표

출판사 서평

삼국고대사정립으로
민족정체성을확립하자!

한민족의역사는유장하다.단군왕검이아사달에도읍을정하고고조선을건국한지가올해로4354년째다.그역사적행간을이땅에서존재하다명멸한나라들을열거해보자.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한·삼국시대,고려,조선,일제강점기,미·소군정기,대한민국이다.1919년중국상해에서수립된임시정부로부터대한민국의역사를기산하면햇수는훨씬소급된다.
지구상에존재하는모든나라의역사가그러하듯이대한민국또한결코순탄치만은않았다.반만년역사를영위해오는동안국가주도세력은수시로교체됐고,국경마저도국력의성쇠에따라수없이바뀌었다.
고대국가인고조선당시만해도촌락이나부족집단이소국가의형태를이뤄끊임없이다투며이합집산했다.그같은다국가형태의극점을이룬게바로삼한시대부터삼국시대에이르는군웅열국시대다.
삼국시대를논함에있어가야도신라·고구려·백제와어깨를겨눈비중이대등한나라다.김수로왕이서기42년금관가야를개국한이래서기562년까지전·후기로나눠서부경남지역을통치했던연맹국가다.521년을존속했다.가야사는기록으로전하는사료가적어사학계를안타깝게하고있다.
한반도에서다국가시대를종결짓고통일국가시대로견인한게신라의삼국통일이다.30대문무왕8년으로고구려는28대보장왕27년이었다.고구려가차지했던만주일대가아닌대동강이남의강토였지만당시의신라로서는국체를지켜내기위한고육지책이었다.
이후고구려유장대조영이발해를건국하며228년간고구려의옛땅을다스렸지만926년거란에멸망하기까지의역사가불분명하다.

한반도고대사사료부족하나
삼국왕릉을통해역사규명!

한반도의역사는고대로소급될수록미궁에빠지고만다.그당시역사적사실을입증할사료적근거가희박하기때문이다.현재까지한국사영역은고려중·후기에쓰여진《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의존해왔다.오히려중국변방역사서에우리고대사의언급이잦아곧잘인용되기도한다.왜우리선조들은《삼국사기》와《삼국유사》를집필하며인용했던《신라본기》,《고구려본기》,《백제본기》,《가락국기》,《화랑세기》등의소중한역사서를후손들에게물려주지못했을까.
하지만우리고대사를새롭게추적하고규명함에있어좌절할일만도아니다.바로그당시를살다간임금들이묻힌왕릉이있기때문이다.우리는아직도1971년공주에서의백제무령왕릉과,1973년경주천마총이발굴돼공개될당시의흥분과환호를잊지못하고있다.발굴유물을통해1500여년전의왕실문화와생활·시대상이고스란히드러났기때문이다.세계고고학계와문화계도한국의찬란한고대문화에경악했다.
세계어느나라에서나왕릉조영은장묘문화의정수다.아직도우리나라에는경주·공주·부여·김해등각지에왕릉으로비정되는거대한무덤들이많다.남한소재조선왕릉40기는2009년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등재된바있다.왕릉의역사와문화속에인류문명의공감대가담겨있다는국제적가치를인증받은것이다.북한과만주지역에도왕릉으로추정되는무덤들이소수있다.

천년왕국신라통해삼국역사고증
경주36기왕릉을통해역사규명!

신라는BC57년박혁거세가나라를건국한이래56명의왕이992년동안왕권을유지했다.박·석·김의세성씨가왕위를번갈아이어오긴했지만세계왕조사에서도드문천년왕국이었다.따라서신라사는고구려·백제·가야를포함한4국의역사까지아우르게된다.
신라임금56명중묘호가비정된왕릉수는37기에이른다.36기가경주에있고1기는경기도연천에있다.이밖에도경주에는발굴만하면임금의실체가밝혀질수있을왕릉규모의무덤수십기가산재해있다.그러나고구려·백제·가야왕릉은거의멸실돼2~3기만전해올뿐이다.이책《삼국왕릉실록》이신라역사를중심으로집필한까닭이바로여기에있다.

왕릉답사로삼국역사재조명
땅의이치담은왕릉풍수도풀어내

역사를기술함에있어동시대를살아보고쓰는사람은아무도없다.당시대사서를저본삼아후일에쓰여진방계서적을섭렵해재구성하는것이다.
이제까지의역사서는방대한삼국의역사를따로따로써서이해가더뎠고읽는불편도뒤따랐다.이책《삼국왕릉실록》은통사적서술기법을활용해한지면에서삼국의역사를일목요연하게파악할수있게했다.여기에다신라초기의자생풍수와통일신라이후성행한왕릉풍수까지쉽게풀어내자연과땅의함수관계를추적해냈다.
이책의역사적시대배경이고대영역이다보니피장자의신분이확실치않은왕릉이부지기수였다.발굴유물의출처와확인에도한계가허다했다.사서와실증사학사이간극을채울수있는건오직현장확인뿐이었다.계절마다모습을달리하는사진취재를위해왕릉과고분이있는곳이라면전국방방곡곡을가리지않고일일이답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