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 아무튼 시리즈 55

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 아무튼 시리즈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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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_어떤 동네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소설, 에세이, 논픽션을 오가며 새로운 사회와 사상에 대한 상상력을 집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장강명 소설가가 이번에는 자신이 살고 싶은 동네에 대해 썼다. 55번째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 현수동』에서 장강명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동네를 좋아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동네에서 살고 싶나요?”
늘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질문이다. 보통 교통이 편하고 교육 여건이 좋은 이른바 ‘비싼’ 동네가 살기 좋은 동네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집세 시세에 따라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 하는 현대인에게 ‘내 동네’, ‘우리 동네’라는 마음을 품는 일 자체가 애당초 어색한 일일지도 모른다.

“현수동이라는 동네는 실존하지 않는다”라는 첫 문장의 당황스러움에 이어, ‘어떻게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동네를 애호한다는 것일까’ 의문이 떠오른다. 사실 장강명 작가는 ‘현수동’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다. 다시 말해, 상상했다. 작품에도 자주 현수동을 출연시켰다. 아예 제목에 현수동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현수동에 사는 청년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는가 하면 작품 속 가상의 소설 제목에 현수동을 넣기도 했다. 작가는 현수동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점점 더 그 상상에 빠져들고, 마침내 현수동을 사랑하게 되었다. 장강명 작가는 이 작은 책에서 도시공학자와 향토사학자와 인문주의자, 무엇보다 이야기 수집가의 옷을 부지런히 갈아입으면서 꿈과 가능성으로서의 동네를 현수동이라는 이름으로 차근차근 펼쳐 보인다.

저자

장강명

연세대공대졸업뒤건설회사를다니다그만두고동아일보에입사해11년동안사회부,정치부,산업부기자로일했다.기자로일하면서이달의기자상,관훈언론상,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대상등을받았다.장편소설『표백』으로한겨레문학상을받으며소설가로데뷔했다.장편소설『열광금지,에바로드』로수림문학상,장편소설『댓글부대』로제주4·3평화문학상과오늘의작가상,『그믐,또는당신이세계를기억하는방식』으...

목차

블라디미르일리치레닌은어떤동네에살고싶었던걸까

고향이없는사람이쓴현수동의역사
권력이없는사람이쓴현수동의인물
무속을질색하는사람이쓴현수동의전설
밤섬에가본적없는사람이쓴현수동의밤섬
차를두려워하는사람이쓴현수동의교통
맛을모르는사람이쓴현수동의상권
게임에서툰사람이쓴현수동의도서관

삶을사랑한다는것,사랑하는동네가있다는것

출판사 서평

걷기편한길,이야기가가득한골목,다정하고신실한상점들

현수동은가상의동네이지만비교적구체적인위치를갖고있다.대략서울지하철6호선광흥창역일대로,실제로작가는삼십대중반의6년을이일대에서살았다.작가는현석동에살때집에서밤섬을자주내려다보다가문헌자료를뒤적이면서한강의역사를공부하기시작했고,수첩을들고골목골목을다니면서표지판이나표석을들여다보았으며,민담의배경이되는장소들을샅샅이훑으며스마트폰앱을켜고찾아가사진을찍었다.

작가가꿈꾸고상상하는현수동은먼저역사가있는곳이다.허허벌판위에지은신도시나과거와현재가으르렁거리며대치하는곳이아닌,오래전나와비슷한사람들이그곳에서괜찮게살았고,얼마전에도나와비슷한사람들이그곳에서괜찮게살았으며,그래서나도그곳에서괜찮게살수있을것같다는안전하고희망적인느낌을주는곳.

작가가현수동에서특별히사랑하는점은골목마다촘촘히서린이야기이다.책에는작가가수집한이지역의민담과설화와미신등의온갖이야기가흥미진진하게펼쳐지는데,특히밤섬의폭파를둘러싼저자의집요한추적과사랑은눈길을끈다.밤섬은작가에게바로가까이에있는아름다운수수께끼이며“오래되었으면서도여전히진행중인,기묘하고아련한서사시”이다.비극적이면서신비롭고경이로운밤섬의지난역사를일별하면서작가는지금의사람들에게없는것,인간의권리외에도우리가공경하고두려워해야할가치가무엇인지생각해보자고제안한다.

삶을사랑한다는것,사랑하는동네가있다는것

어떤동네를오래상상하고,계속해서세부사항을덧붙이고,그곳을움직이는힘을궁리한다는것이과연의미가있을까?저자는그렇다고말한다.“당신은어떤동네에서살고싶나요?”라는질문바로옆에는“당신은어떤삶을살고싶나요?”라는질문이있기때문이겠다.내가살고싶은동네의골목과거리는어떤풍경일까.그곳사람들은어디로출근하고생활용품을어떻게살까.어떤길에서개를산책시키고,저녁을먹고나면어디에갈까.주말에는뭘할까.아이들은어디에서놀까.일하고쇼핑하고식사하고수다를떨때그곳사람들은어떤표정을지을까.그런궁리를하다보면어떤삶이내게좋은삶이될지구체적으로생각하지않을수없다.

이모든궁리를얼토당토않은공상이라고생각할지도모를독자에게저자는프랑스철학자앙리르페브르의말을빌려힘있게외친다.“도시에사는사람들에게는자신들이원하는도시를만들권리가있다고합니다.”

책속에서

국가나역사가아니라거리의아침을,골목의저녁을상상하면그안에있는사람들이엄청나게다채로운표정을지을거라는사실을저절로깨닫게된다.그표정들아래자리한,어떤한기관이일괄조율할수없는복잡한욕망의부글거림도.그런사실을깨달을수록그골목과거리를모두포괄하는깔끔한이념은그만큼더불가능하게여겨진다.
---p.15

현수동은낙원은아니다.이곳에서사람들은서로갈등하고,배우자몰래바람을피우며,병에걸린다.법을슬쩍,혹은대담하게어기는사람도있다.그럼에도불구하고현수동은풍경이아름답고,선량하고양식있는사람들이사는,사랑스러운동네다.그런동네의골목과거리는어떤풍경일까.그곳사람들은어디로출근하고생활용품을어떻게살까.어떤길에서개를산책시키고,저녁을먹고나면어디에갈까.주말에는뭘할까.아이들은어디에서놀까.일하고쇼핑하고식사하고수다를떨때현수동주민들은어떤표정을지을까.
---pp.16~17

현수동의길을걷다보면‘이곳은무척오래되었구나,아주예전부터지금까지이곳에서살다간사람들의흔적이쌓여있구나’라는기분이든다.그런곳에서는자연스럽게수백년전과수백년뒤라는시간을의식하고,자신이그일부라고여기게된다.거리와골목을함부로대하지않게된다.자기존재가깊은뿌리,또먼미래와이어져있음을믿게된다.현수동에서는과거와현재가서로존중하고대화한다.
---pp.23~24

광흥창터는와우근린공원이시작되는곳인데,이곳에는와우시민아파트19개동이있었다.1970년4월8일새벽한동이무너졌고,34명이사망했다.부실공사가원인이었다.무면허건설업자가철근70개가들어가야하는콘크리트기둥에5개만썼을정도로황당하게지었다(이후1990년대까지한국에서는이와비슷한붕괴사고들이반복된다).그러나와우근린공원에는이사고를추모하는조형물이나희생자를기리는위령비가없다.적어도내가광흥창역일대에살았던2014년까지는그랬다.?
---p.47

밤섬은그모든것의상징이고,우리는자연의힘을,우리안에있는파괴적인욕망과우리가소유하게된기술을,인간의강함을,인간의약함을,사람들의고통을,과거를,현재를,미래를,시간이해내는일들을,아이러니와불가사의를,복잡하고연약하고중요한연결들을,세계의질서와그에대한우리의무지를무섭게여겨야한다는게내대답이다.
---p.88

이제대부분의아이들은부모가어떻게일하는지보지못하며자란다(나는어린아이들이부모가일하는모습을보면저절로예절을익히고가족애가깊어질거라고생각한다).일과삶의공간이멀어지고,각각의공간이규정한목적에맞춰행동하는동안일과삶의의미는양쪽모두협소해진다.자신이사는동네를자세히알아야할필요가없으며,이웃은층간소음이나일으키지않으면다행인존재로전락한다.
---p.98

그래,나또거창해졌다.아직방법도모른다.하지만사막한가운데높이5백미터,길이170킬로미터인직선도시를세우겠다는빈살만이나화성에백만명이거주하는식민지를건설하겠다는일론머스크보다내가더황당한소리를하는걸까.
---p.104

현수동상권은아마존과쿠팡,밀키트,에어프라이어의시대에가능할것같지않은꿈이다.그곳상인들이뭘어떻게팔기에인스타그램인증숏명소가되지않고도총알배송에맞서안정적인수익을올릴수있단말인가?현수동이뭘해도장사가잘되는지역이라면유통대기업들은왜그곳땅을사들여지점이나가맹점을내지않는단말인가?건물주들이왜상점을쫓아내지않는단말인가?
---p.116

요즘은이사를가면,아니이사를가기도전에먼저앞으로살게될동네에도서관이어디에있는지찾아본다.웬만한책은전자책으로읽는데도불구하고도서관은자주다닌다.공공도서관은점점책을대출해주는시설이상이되어가고있다.서강도서관을예로들자면사서들이팟캐스트를운영하고,주민들이참여하는바자회와낭독회가정기적으로열린다.
---pp.131~132

『아무튼,현수동』원고를붙들고있는동안광흥창역일대와현수동에대해하고픈말이처음에예상했던것보다많아서놀랐다.그리고약간이나마나자신을다시보게되어놀라기도했다.자신이사는마을을사랑하는사람은자기삶을사랑하고또인류를사랑하는사람이라고생각한다.어떤사람이자기삶을사랑하지않으면서자기가사는마을만사랑할수있을까?어떤사람이인류애없이자기가사는마을만사랑할수있을까?그런데나는분명히광흥창역일대를사랑했다.
---p.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