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문턱이낮아지고여행이보편화된시대지만,모든사람이예술을즐길수도,여행을갈수있는것도아니다.특히세계여행은비용과시간의문제를넘어쉽게선택할수없는일이다.그래서랜선여행이니현지인들의대리여행으로아쉬움을달래는경우가많아졌다.그렇다면책을통해떠나는여행은어떨까?게다가위대한예술작품의탄생배경과작가의비하인드스토리까지곁들여진다면?예술적감수성과교양을높일수있는것은물론이고언젠가작품속에등장한,작품을탄생시킨그곳에직접가볼꿈을꾸어보는것도좋지않을까.
이책은특히감성적이고화려하며아름다운삽화로예술가들의집과작업실,그들이사랑했던도시와시골,여름휴양지와가장소중히여긴풍경을재현함으로써,마치그장소에있는듯한느낌은물론,여행지의그림엽서책을보는듯한즐거움도선사해준다.
<책속에서>
32쪽)세인트아이브스에터전을잡은헵워스는주변의풍경을열정적으로묘사하기시작했다.여성예술가가드물던시대에그녀는폭넓은소재를활용하고재료의질감과네거티브스페이스(형상의뚫린공간혹은형상으로둘러싸인내부공간-옮긴이)를적극적으로실험하는한편,조각물과주변경관이서로소통하게함으로써창의적인아이디어를발전시켜나갔다.
헵워스의조각은대체로추상적이지만자연의형상을담고있는경우가많았다.그녀는“내조각은전부자연경관에서나온것”이라며,“갤러리에들어앉은조각품들에신물이난다…풍경과나무,공기,구름으로돌아갈때조각품은비로소진정한생명을얻는다”라고주장했다.
52쪽)달리는어린시절카다케스에서가족들과휴가를보냈으며,훗날이곳을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마을이라고칭송했다.수려한해안과구불구불한오솔길이펼쳐져있고,사방에부겐빌레아꽃이만발하며,흰벽에푸른대문과창문이달린산뜻한집들이사파이어빛깔의바다를배경으로눈부시게반짝이는곳이다.20세기에들어카다케스는문인과화가들의휴양지로각광을받았다.달리는물론이고르네마그리트,앙리마티스,호안미로,마르셀뒤샹,루이스부뉴엘,파블로피카소등이이곳을즐겨찾았다.카다케스와인근해안의경관은달리의대표작인‘섹스어필의환영(1932)’과‘기억의지속(1931)’등에녹아들어가있다.
136쪽)1900년여름,화가구스타프클림트(1862~1918)는친구에게이런편지를보냈다.“빈에서지내는건너무지겹고끔찍해.모든것이말라비틀어지고,뜨겁고,불쾌하거든.”이하소연이통한덕분에그는도시의더위를피해처음으로아터제호수를방문하게되었다.클림트는그후15번의여름을이곳에서보내며,제발헨,리츨베르크,바이센바흐등작은호숫가마을에서그가평생그린50점의풍경화중45점이상을제작했다.그는이곳에서지낼때면절친인에밀리플뢰게의가족과어울렸다.처음에는바이센바흐에서가까운플뢰게가족의별장에서지냈고,나중에는올레안더별장을거처로삼았다.
에밀리의언니헬레네가클림트의남동생에른스트와결혼한사이였지만,에른스트는1892년에28세의나이에세상을떠났다.그때부터클림트가헬레네와조카딸을부양하게되면서에밀리와도가까워졌지만,두사람이연인사이였는지는확실치않다.
156쪽)20세기초,아방가르드야수파의창시자앙리마티스(1869~1954)는새로운방향성을모색하던중탕헤르를찾았다.그는이대도시의밝고풍부한빛,선명한색채,다채로운햇살과독특하고이국적인건축물에깊이매료되었다.페르시아예술품을광적으로좋아했고들라크루아의북아프리카그림에찬사를보냈으며폴고갱에게색채에관한조언을받았던그는탕헤르의풍경에크게만족했고,이방문은그의작품과화가경력에중대한영향을미쳤다.
마티스는탕헤르의빛이‘다정하’고이도시는‘화가의낙원’이라면서,풍부한안료와생동감있는붓놀림,대조적인패턴으로이곳을화폭에담았다.
164,168쪽)전체46개의판화중가장널리알려졌고호쿠사이의이름을세계적으로유명하게해준작품은단연‘가나가와(神奈川)해변의높은파도아래’이다.집채만한파도가세척의배를집어삼킬듯이높이솟아있고,바다너머아득한곳에후지산이보인다.안정적인구도를파괴하기직전인커다란파도는자못긴장감을자아낸다.그리고그파도속에이즈(伊豆)와보소(房?)반도에서잡은생선을에도만까지운반해오는‘오시오쿠리부네(급송화물선)’세척이떠있다.각배에서는여덟명의사공들이노를붙들고있고,그앞으로승객두명이앉아있다.배와사람들의모습이거대한파도와대비되어자연의강력한힘이더욱도드라진다.
179-180쪽)아이티와푸에르토리코혼혈인바스키아는두나라의문화에서영감을받아그라피티를예술의영역으로들여놓는데결정적인역할을했다.그가일찍부터예술적감수성을갖게된데는부모님의도움이컸다.특히어머니는어린바스키아를뉴욕최고의미술관(메트로폴리탄미술관,뉴욕현대미술관,구겐하임미술관,브루클린미술관등)에데리고다니며,6세때부터여러미술관에회원으로등록시켜주었다.
비록정식으로미술교육을받지는않았지만,바스키아는1970년대에친구인알디아즈와로어맨해튼일대에낙서를하고다니며SAMOⓒ라는태그를남겼다.SameOldShit(뻔한짓거리)의약자였다.스프레이페인트로그린이들의낙서에는정치적인시구절이나랩가사,구호등이들어있어서,동시대예술가및언론인들에게큰주목을받았다.담벼락이나지하철에그린이들의낙서는곧뉴욕이라는도시의일부가되었다.
201쪽)프리다칼로(1907~1954)가자란일명‘파란집(라카사아술LaCasaAzul)’이바로이코요아칸에자리잡고있다.1904년에지어진‘파란집’은인근의다른건물들과마찬가지로중앙뜰과정원을중심으로지어졌다.거주공간은2층짜리파란색건물로,침실과작업실,넓은부엌과식당을갖추고있다.사방에밝고선명한색상이칠해져있고,현관홀에는모자이크가장식돼있다.이곳은프리다가사망하고4년이지난1958년에미술관으로개조되어,현재까지프리다칼로미술관으로운영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