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테크놀로지와 기술제국 소련의 몰락)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테크놀로지와 기술제국 소련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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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은 왜 소련이 근대 산업국가가 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목표다. 논의는 표트르 팔친스키라는 러시아 엔지니어의 인생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소련 산업화 초기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그것들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사람이다. 팔친스키의 이야기는 이 책 후반부에 다루게 될 산업과 기술을 대하는 소련의 태도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우화로 활용될 것이다.
저자

로렌R.그레이엄

저자로렌R.그레이엄은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학ㆍ기술ㆍ사회프로그램명예교수.컬럼비아대학교에서역사학으로박사학위를받았으며,1960~1961년에최초의미소교환학생프로그램을통해모스크바대학교에서공부했다.첫단독저서인《소련과학아카데미와공산당,1927~1932》를출간한이래《소련에서의과학과철학》(1972),《처형당한엔지니어의유령》(1993),《우리는러시아의경험으로부터과학과기술에대해무엇을배웠나》(1998),《외로운아이디어:러시아는경쟁할수있는가?》(2013),《뤼센코의유령:후성유전학과러시아》(2016)등20세기러시아과학기술의여러측면에대해다루었다.그레이엄은1996년에미국과학사학회에서수여하는조지사튼메달을받았고,미국철학회(AmericanPhilosophicalSociety),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AmericanAcademyofArtsandSciences),러시아자연과학아카데미(RussianAcademyofNaturalSciences)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옮긴이서문
지은이서문

1장.급진적엔지니어
2장.정치범,소비에트의컨설턴트가되다
3장.소련의초기산업화
4장.소련식테크노크라시
5장.최근의엔지니어링재난들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추가]
팔친스키의목소리는21세기한국의과학자,엔지니어,그리고위정자들에게도중대한함의를갖는다.최근한국사회는테크놀로지를둘러싼각종논쟁들을효과적으로종결시키는데어려움을겪고있다.4대강사업의효과,정부의탈핵정책,초미세먼지의원인등다양한기술적문제들에대해대중들은물론전문가들도제대로합의에이르지못하고있다.이와같은난맥에서벗어나기위해서는전문가들이권력으로부터독립적인위치에서있음을사회적으로설득하는과정이필수적이다.그러기위해서는위정자들역시전문가집단을시녀로부리려는시도를중단해야할것이다.권력과전문가의결탁은단기적으로는효과를볼수있을지모르지만,장기적으로는사회통합의근간을해치는일이기때문이다.

이렇게볼때《처형당한엔지니어의유령》은공학교육의방향을제시하고있기도하다.소련의기술교육에서나타났듯이세부적인전문분야에대한좁은교육방식은테크놀로지를둘러싼복잡다단한사회적문제를살피지못하는협소한엔지니어를배출할뿐이다.(이책에등장하는“제지공장용볼베어링엔지니어”를생각해보라.)적어도대학을졸업한엔지니어라면자신의전공분야에대한지식과함께그것을폭넓은사회적맥락속에서이해할수있고(예비)전문가로서의윤리의식을갖춘교양인으로만드는교육과정이중요할것이다.현재한국의공학교육은인증사업을통해일부이러한교육을실시하고있기는하나,대부분의대학에서관련된교육과정이부족한실정이다.1960~1970년대에기술선진국을추격하기위해구성된패러다임을전면적으로전환해야한다면,한국에서엔지니어를양성하는체계를구축하기위한준비가그첫단계일지도모른다.

이렇듯《처형당한엔지니어의유령》은현재의한국사회와시공간적으로동떨어진이야기를다루고있지만,사실우리의이야기이기도하다.독자들에게이책이보다깊이있는논의로나아갈수있는계기가되었으면하는바램이다.
마지막으로이책을내게처음소개해준마이클앨런(MichaelThadAllen)교수와,번역과정에서초고를꼼꼼하게읽고수많은오류를바로잡아준서울과학기술대학교김남섭교수께깊이고개숙여감사드린다.

[지은이서문]

이책은왜소련이근대산업국가가되지못했는지를설명하는것이목표다.논의는표트르팔친스키라는러시아엔지니어의인생이야기로부터시작한다.그는소련산업화초기의오류들을지적하고그것들을고치기위해끊임없이노력했던사람이다.팔친스키의이야기는이책후반부에다루게될산업과기술을대하는소련의태도를분석하는데있어서하나의우화偶話로활용될것이다.기술오용과인간에너지의낭비에대한팔친스키의비판은소련이1991년패망할때까지이나라를끊임없이괴롭혔다.나는위와같은논의두개를전개하면서개인경험담도끼워넣을것이다.나는지난30년동안팔친스키가소련의산업화과정에서담당했던역할을알아내기위해노력했는데,그과정에서몇가지수수께끼에봉착했다.소련의역사교과서는대개1930년에러시아엔지니어여럿을기소했던산업당IndustrialParty재판을언급하고있다.하지만교과서에서는산업당당수로지목된표트르팔친스키가누구인지밝히지않고있다.나는1960~1961년에모스크바대학교에서대학원과정을밟으면서그의이름을처음듣게되었다.하지만그에대해더알아보려는시도는곧소련식비밀주의에가로막히고말았다.그에대한정보를담고있는문서보관소들은나뿐만아니라소련의연구자들에게도닫혀있었다.하지만1960년대이후나는팔친스키에대해구할수있는소소한정보들을수집하기시작했다.문서보관소가열리기훨씬이전부터나는소련을오가면서그에대한몇가지새로운사실을알게되었다.이는동시에소련인민들을‘위해’복무하지못하는소련식기술문제를직접목격할수있는기회이기도했다.

한가지중요한발견을했던것은1980년대초의일이었다.내가소련엔지니어들에게관심이있다는것을알고있던MIT의동료실라피츠패트릭SheilaFitzpatrick은소련사회과학학술정보연구소INION에산업당사건에대한비밀경찰의보고서사본이보관되어있다는사실을나에게알려주었다.이보고서를살펴보기위해내가겪었던여러어려움들은소련체제하에서연구자를옭아매던여러장애물들을잘보여준다.이와같은민감한보고서를소련도서관의공개서고에서발견하는것은대단히드문일이었다.대개민감한자료들은특별서고pecialCollections,spetskhran에보관되어있는경우가많고,공개된문서목록에도나오지않았다.그리고소련에서‘민감한자료’란대단히광범위한것이었다.예를들어,나의저서들은협소한주제를다룬학술서적이었음에도소련최대의도서관인레닌도서관도서목록에수록되어있지않았다.소련체제의공적인니콜라이부하린NikolaiBukharin이나레프트로츠키같은인물의저작들은당연히찾아볼수없었다.(1970년대에레닌도서관도서목록에서‘L.트로츠키’라는항목을발견하고는순간깜짝놀랐다.하지만이트로츠키는브레이크설계에종사하는자동차엔지니어였다.)INION도서관은학술원에적을두고있는연구자들에게만공개된다.나는소련과미국학술원사이의공식교류프로그램에참여하고있었으므로그자격으로출입증을발급받을수있었다.이도서관은내가그동안소련에서가본도서관들과는매우달랐다.훨씬깨끗하고,밝았으며,분위기도자유로웠다.놀랍게도나는도서목록에서나의저서두권을포함해러시아및소련학분야를연구하는서구학자들의책을여러권발견할수있었다.부하린과트로츠키의저작몇권도포함되어있었다.1920년대에대한문서들도레닌도서관에공개된목록에비해훨씬다양하고상세했다.INION문서보관소가비교적원칙주의에얽매이지않게된이유는다음과같다.이도서관의장서는스탈린이소련지식인사회를통제하기시작하기전인1920년대에융성했던공산주의학술원CommunistAcademy의도서관을물려받은것이다.마르크스주의학자들은공산주의학술원회보에다양한논문을게재했는데,그내용과관점은나중에비판대상이될만한것들이었다.이러한분위기속에서만들어진도서관은전형적인소련의도서관에비해훨씬다양한정치적입장을포괄할수있었다.

나는산업당이라는주제어로카드목록을검색하다가곧OGPU(KGB의전신)가초기엔지니어들에대해작성한비밀보고서를발견했다.이보고서는1930년6월26일부터7월13일까지열린제16차공산당대회를맞아공산당중앙위원회위원들에게제출된것이었다.당시는산업당재판이열리기불과몇달전이었다.보고서를잠시훑어보기만해도민감한자료라는것이분명해보였다.나는보고서를통째로복사하고싶었지만,사서에게복사요청을하면보고서원본마저압수당해버릴것만같았다.그래서우선보고서에서꼭필요한부분을필사한후INION의복사실로가져가니나스미르노바NinaSmirnova라는담당직원에게복사해줄것을요청했다.놀랍게도스미르노바는제목을보지도않은채나의신청을접수했다.그로부터1주일후나는복사본이담긴마이크로필름을받자마자미국대사관을통해미국으로보냈다.이후귀중한자료를잃어버리지않을수있게되었다는안도감에편안한마음으로보고서원본을자세히살펴볼수있었다.내가가졌던우려는근거가있었다.며칠후스미르노바는도서관에서나를찾아와보고서를반납하라고요구했다.나는그녀에게원본을주었지만사본은이미미국으로보냈다고말했다.그녀는당황한기색이었다.그녀에따르면INION공산당조직이내가어떤연구를하고있는지알게되었고,내가미출판사료들을열람하는것을금지했다는것이었다.그녀는내가비밀경찰보고서사본을미국으로부쳤다는사실을아무에게도이야기하지말아달라고부탁했다.나는무려50년이나지난사건에대해이토록우려하는것이이상해보인다고대답했다.또한,그보고서는INION자료목록에공개적으로수록되어있었으므로내가잘못한것은아무것도없다는점을강조했다.그녀는“이제는더이상공개적으로수록되어있지않아요”라고대답했다.내연구활동으로말미암아그녀가어려움에처하지않았으면좋겠다고말했다.그녀는나만입을다문다면아무일없을것이라고했다.우리는그렇게헤어졌다.내자리로돌아와서목록을다시찾아보니어느새해당항목이사라지고없었다.서랍밑바닥에는조그마한마분지조각이남아있었다.누군가다급하게목록카드를찢어갔던것이다.1980년대가되자내가표트르팔친스키와관련된자료를찾는것을소련정부가훼방하는일이잦아들기시작했다.점점더많은자료를입수하게되면서나는그의생각이사후에도여실히살아있었을뿐만아니라,소련의패망이후에도힘을발휘했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표트르팔친스키의‘유령’은나로하여금소련기술이어떻게실패했는지이해할수있게해주고,산업화가소련인민들에게부과한거대한비용에대해서도인식할수있게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