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안송 (정율성 이야기)

옌안송 (정율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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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음악 (律)으로 성공 (成)하라!
항일 투쟁과 탁월한 음악적 업적을 인정받아 조선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최고의 음악인 반열에 오른 인물이자 조국인 대한민국에서는 낯설지만 13억 중국인들에게는 추앙을 받고 있는 작곡가 정율성(鄭律成)의 발자취를 밟아 엮은 그래픽노블!

[옌안송: 정율성 이야기]는 항일 투쟁과 탁월한 음악적 업적을 인정받아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최고의 음악인 반열에 오른 인물이자 조국인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13억 중국인들에게는 추앙을 받고 있는 작곡가 정율성(鄭律成)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정율성은 191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명 정부은, 이명 유대진(劉大振)으로도 불렸던 그가 태어났을 당시 조선은 이미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였다. 그의 가족은 형들(효룡, 인제, 의은)이 모두 독립투사로 헌신하였고 누이(봉은)의 남편(박건웅)도 항일투쟁을 벌인 열혈 혁명가 집안이었다. 자존감 높고 일제를 부정했던 그 역시 광주 숭일소학교를 졸업한 후 전주 신흥중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1933년 19세의 나이로 셋째 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저자

박건웅

홍익대학교에서회화를전공하였고,1997년부터만화를시작하였다.주로한국근현대사를소재로만화작업을하고있으며최근에는시사풍자의영역으로확대하여만화의자유로운상상력을즐기고있다.문화체육부장관상오늘의우리만화상,부천만화대상을수상했다.

목차

서문
의열단/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카루소/해륙풍/노래의도시/옌안송/설송/강철도시/샹첸샹첸샹첸/물속의소금/조선의용군/소제/조국/어머니/노래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음악(律)으로성공(成)하라

중국난징에서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입학한정율성은의열단원으로훈련을받으면서도청정보수집등본격적인항일투쟁을전개하기시작한다.그러나다른독립운동가들과비교해남다른차이가있다면,그에게는음악적역량이풍부했다는것이다.그는항상만돌린과바이올린을몸에지니고다녔고피아노와성악을열심히공부했다.정율성의음악적조예를높이산의열단장약산김원봉은그에게음악으로성공하라는의미로율성(律成)이란이름을지어줬으며,그는아름답고힘찬음률을이뤄인민에게봉사할것을다짐했다고한다.김원봉은그에게상하이에있는러시아인크리노바교수에게음악을배울수있는기회도제공해주었다.타고난음악성을인정받은정율성은크리노바교수로부터성악의본고장이탈리아로유학갈것을제의받지만,겨레를위한독립운동의신념과의지가컸던바,그는결국이탈리아행을거절하고만다.

주옥같은작품의탄생

중일전쟁발발후정율성은김원봉의의열단을뒤로하고1936년10월중국공산당본부가있는옌안으로간다.당시옌안은중국각지로부터많은사람들이찾아오는항일혁명의성지로서,중국인민에게있어희망의도시였다.옌안에서의생활은몹시궁핍하고어려웠지만,이곳은그의음악적자질이본격적으로발휘되기시작한곳으로,옌안의들끓는혁명적분위기는정율성의마음에창작의불씨를타오르게만들었다.섬북공학을거쳐루쉰예술학원에서수학하던그는당대최고의유행가인[옌안송]을만들어이름을알린다.서정적이면서도웅장한전투적기개가물씬풍기는이곡은중국인들은물론심지어일본인들조차도따라부를정도로그인기가실로엄청났다.국공합작이후옌안과태항산에있는팔로군본부를오가며항일운동을하던그는인생최대의역작[팔로군대합창]을작곡하게된다.총8개곡으로구성된[팔로군대합창]중특히날개돋친맹호가전진하듯힘차고장엄하게시작되는[팔로군행진곡]은중국군가로채택되었고1988년중국군사위원회로부터정식으로인민해방군가비준을받게된다.

국적을초월한인간애

음악적성취의이면에는조선인으로서중국에서살면서맞게되는어려움도많았다.그러나그는한국인특유의성실함으로중국인들의면면을몸소배우고그들과동화되어음악적감수성전달에있어서언어차이가주는어려움을극복할수있었다.옌안생활당시그는저우언라이의양딸이자항일군정대학여학생대대장이었던정설송을만나사랑을나누게된다.두사람은국적도서로달랐거니와율성이정신적으로따르던장명(김산)이일본스파이혐의를받아처형되는일을겪으면서자신도그와친했다는이유로의심을받는가운데둘의사랑은결코순탄해보이지않았다.그러나무정장군의도움과주변의격려덕분에두사람의사랑은결실을맺을수있었고슬하에딸을두게된다.책의첫장에등장하는정소제여사가바로그의딸이자유일한혈육이다.그녀의이름은바이올린을뜻하는중국어‘소제금(小提琴)’을모티브로한것으로,생계유지가어려웠던시절모유가나오지않아정율성이아끼던바이올린을팔아야했던가슴아픈사연을품고있다.

해방된조국,계속되는혼돈

해방이후정율성은북한으로귀국해황해도해주에서황해도도당위원회선전부장으로활동하며음악전문학교를창설하고인재를양성했다.그러나아내가한국말이서툴러고초를겪는가운데6.25전쟁이발발하자그는중국으로돌아간다.한국전쟁당시다시고국으로돌아와전선에서[조선인민유격대전가],[중국인민지원군행진곡]등을창작하기도했던그는1951년중국으로다시돌아가는데,이는김일성의옌안파숙청과관련이있음을짐작할수있다.한국전쟁이끝난후에는마오쩌둥의문화대혁명시대가찾아온다.갈수록독재화되고사상문화계지식인들이숙청되는것을바라보는그의시선은곱지않았다.이러한시련은그에게도역시감내해야할몫으로다가왔으며그는‘이것은문화대혁명이아니라,문화대학대이다.’라고탄식했다고한다.이러한혼돈의시대속에서도정율성은중국전통음악및동요등을작곡하며중국음악을한단계발전시키는데큰공헌을한다.

자연을사랑하고사냥과낚시등수렵에도능했던정율성은중국정치계의거장마오쩌둥과저우언라이가사망한해인1976년,베이징에서낚시를하던도중돌연쓰러져62세의나이로파란만장했던예술적삶을마감하게된다.

중국대륙에서항일전사이자혁명음악가로활동했던정율성의삶을그린그래픽노블[옌안송:정율성이야기]는박건웅작가특유의따뜻하고정감어린그림과손글씨를통해독립운동가이면서도이념대립의그늘속에서국내에잘알려지지않은정율성이라는한인간의삶의전반을마치한편의흑백장편영화처럼그리고있다.일제에맞선독립운동가하면총,칼,폭탄,암살등의무력항쟁이먼저떠오르는가운데‘예술’로도항일투쟁을벌일수있다는부분이새롭게다가온다.또한이책에서는우리에게이미익숙한인물들인김구,김규식,김산,무정,윤세주,주덕해,박건웅(정율성의매형),그리고당대중국을책임졌던마오쩌둥,저우언라이등걸출한중국정치인들까지도한눈에볼수있어보는재미를더한다.

정율성은사회주의자인동시에독립운동가였다.국내외에서활동하던독립운동세력의대다수가사회주의계열이었음은이미공인된역사적사실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들의실존했던항일업적과노고는사회주의자란낙인아래금기시되고역사의사각지대에묻혀왔다.일제에의해이역만리중국으로내몰리고,조국의독립을위해젊음을불살랐음에도정작자신은해방후에도조국땅에살수없었던정율성.남과북의체제경쟁의승패가이미결정난지금,그리고남북간종전과평화및화합으로매진해야하는오늘날,[옌안송:정율성이야기]는이념을넘어우리의기억속에서지워진독립운동가를재조명하고기리는것이야말로후세된자로서응당취해야할온당한일이아닐지생각해보게해주는책이다.

감수자의말

1919년11월중국길림시의반(潘)씨성을가진중국인집에서단장김원봉을비롯한13명의투사들이의열단을조직하였다.그후의열단은여러차례변모하면서1932년난징에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설립하였다.이듬해이곳에자신을단단한독립투사로만들기위해한청년이입학하였다.바로정율성이다.중국의국민가요[옌안송]을만들었으며,정식군가인[인민해방군가]를작곡한그는지금도한국과중국인들이음악으로소통하는중요한교량역할을하고있다.한반도의남부에서태어나대륙을누비며독립운동을전개한그는해방후한반도북부에서도생활하였다.하지만끝내자신의고향으로귀환하지못한채생을마감했다.이책은20세기를관통한‘작은영웅’정율성의이야기를의열단100년에소환해서기억하는‘작은발걸음’의시작이며,이것이고향을뒤로하고조국의독립을위해일생을바친정율성에대한작은예의가아닐는지.

-김주용원광대학교한중관계연구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