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대학교의문예창작과교수이자,미국에서는단편소설작가로이미입지를굳힌찰스백스터는말한다.“이책을비밀의문,숨겨진계단,공들여감춘지하동굴,그리고그아래에서신음하는유령을찾아서돋보기를들고자세히관찰하는사립탐정의보고서로생각했으면좋겠다”고.그가『서브텍스트읽기』에서펼치는문학비평의방법론은단순히책읽기뿐만아니라우리가듣고말하고생각하고살아가는모든순간순간을다르게받아들이도록만들어준다.
“우리는읽지만,사실은읽지않는다”
책은,이야기는어디에있는가?
1.들리지않는이야기
저자와독자사이에는엄청난비대칭,간극이있다.생산(저술)과소비(독서)라고하는역할의차이는차라리사소하다.더큰차이는바로책에들이는시간이다.책한권을쓰는데짧게는몇개월에서몇년,몇십년이걸리기도하지만읽는것은그렇지않다.글을쓴사람이온기력을쥐어짜내썼다고해서읽는사람도그러라는법은없다.좀지루하다싶은부분에서독자는하릴없이딴생각을하고과감히건너뛰기도한다.작가입장에서는조금억울한노릇이다.읽는데고작1,2분걸릴그부분을쓰기위해작가는얼마나숱한불면의밤을보내야했던가.
그러나본인이십여권이넘는소설과소설집을내온작가이자문예창작을가르치고있기도한찰스백스터는글쓴이만큼,어쩌면글쓴이보다더공을들여문장과문장너머를읽는다.『서브텍스트읽기』는글의표면과표면아래의영역까지를읽고자하는책으로,보이지않는것과들리지않는것을보고들으려는시도이다.“고래를잡으려는에이해브의이야기”이기만하다면그저두꺼운책으로만그쳤을『모비딕』,우리가익히알고있는해피엔딩을의심케하는『위대한개츠비』….그는줄거리와플롯을넘어,드러나지않는것을볼때비로소이야기가보인다는이야기를한다.물론,보이지않는것을보고들리지않는것을듣는다는말은찰스백스터본인의말마따나말장난으로느껴지긴하지만그의설명을따라가는순간그것이수사가아님을우리는직감한다.
2.어떻게볼것인가
그렇다면,불가능한과업으로느껴지는‘안보이는것보기’,‘안들리는것듣기’는과연어떻게가능한가.로버트프로스트의「가족의매장」이라는시를살펴보자.
…그녀는두려움으로뒤돌아보며
계단을내려오려던참이었다.
주저하면서한발을떼다가말았고
몸을세우고다시쳐다보았다.
그는말을하면서그녀쪽으로향했다.
“그곳에서늘보는것이무엇이오,알고싶군.”
…“이제알아야겠어-여보,말을해봐.”
그녀는도움을거부하고꼼짝도하지않은채
자세를누그러뜨리고침묵을지켰다.
그녀는그가보지못할것이라생각하며보게내버려두었다.
눈먼인간-참으로그는한동안보지못했다.
그렇지만마침내중얼거렸다.“아.”그리고다시한번“아.”
아내가계단을내려오는참이고,둔하다면둔하다고할수있는남편은올라가고있다.계속창밖만보는아내에게묻는다.무엇을보느냐고.남편은이질문이처음이아니다.그리고아내의회피와침묵도처음이아니다.그래서남편이이번엔꼭답을들어야겠다며거듭묻는다.말해줘도어차피모를거라며알려주는아내.아내의시선을따라창밖을본남편이신음소리를내는데,한번이아니고두번을낸다.아내는아이의무덤을보고있었던것이다.
이런장면을영화에서본다고하면주의를기울이기힘든짧은순간에지나쳐버릴것이다.그러나20초남짓이될이상황과장면에로버트프로스트는왜시하나를할애했을까?보여지는건계단과창문과아내와남편의짧은대화가다이지만,우리는이시를통해보이지않는것을보고또듣는다.두사람의냉랭한사이는오래되었을것이고,아마그것은아이의죽음으로부터비롯되었을것이며,아이의죽음을남편이비교적잘넘긴것과는달리아내는아직극복하지못하고있다는것을알수있다.
“이장면전체는보이지않거나제대로표현할수없는것에관한것이다.부부의모든행위는서로에게결여된것을가리키고있으며,그차이는적의와분노에불꽃을일으킨다.이두사람은적절한말이무엇인지미처알지도못한채,다시말하자면언쟁을왜하는지도모른채서로통로를막고격렬한논쟁을벌이는여느부부나연인일수도있다.그들은아무준비도없이언쟁을시작하고또그때문에자신들의말과행동에당황한다.몇번을다시읽어도이장면은긴장감이생생한데,어쩌면두사람이시간을초월해언쟁을끝없이계속할것만같아서그런느낌이드는지도모르겠다.”(본문34~35쪽)
단어와문장에서보여주는것말고,그사이,그아래,그너머,그이후의것들이우리의감정을흔든다.이것이서브텍스트이고,또서브텍스트가하는일이다.
같은맥락에서서브텍스트는결정적인말한마디보다,결정적인말한마디가나올찰나에침묵하는그고요에자리한다.평소에는그렇게말도잘하고시끌벅적한주인공이왜정작그의언변이필요한때에는아무말도하지않는가가중요하다.역설적이게도,말해진것보다말해지지않는것이더많은말을한다.또한말해도듣지않는다는것이들려주는바가더많다.
“언젠가한번은남자친구와헤어진여자와대화를한적이있었다.그녀는끈덕지게남자친구의잘못들을내게말했다.근본적인잘못을상세히말한뒤그다음에는기꺼이눈감아줄수있는정도의부차적인잘못을말했고,이에나는공감의‘소리’를제공했다.그러자그녀는근본적인것과부차적인그의잘못들을,마치내가그녀의지루한설명을전혀듣지않았던것처럼처음부터다시이야기했다.그러고나서나는내가목격하고있는것이무심함보다더복잡할수도있다는사실을깨달았다.그녀는너무고통스러운나머지자신이무엇을말하는지를듣고있지않았던것이다.자신의대화를관찰할수없는상태로그녀는자신이무슨말을했었는지기억할수없었다.그녀의생각은고막을찢는듯큰소리로들려서아마그러지않을때도생각이큰소리로말하고있었다고생각했을것이다.그러는동안그녀의말은어떤까닭인지그녀자신에게들리지않았던것이다.”(본문103~104쪽)
사람들은이제더이상서로의이야기를듣지않는데,더놀라운건,자기자신이하는말에도귀를기울이지않는다는사실이다.같은말을반복하고,그말이어떤의도와의미를지녔는지는이미중요하지않게된다.이것은현대에오면서두드러지는인간삶의현상이고문학에서도마찬가지로반영되어있다.19세기,20세기소설에서인물들은상대방의말을오해는할망정듣지않는일은없는데,지금은왜그럴까.현대인들은자신들의삶으로쏟아져들어오는광고들속에서귀를막고관심을끊고듣지않는훈련을자기도모르게하게된건아닐까.
동시대의작가라면,무조건서로가서로의이야기를듣고또이해에가닿도록하는것뿐만아니라,이렇게서로의말을듣지않는것에대해,모두가기이할정도로관심을두지않는어떤것에대해,지금도벌어지고있는바로그것에대해써야한다.―찰스백스터가‘서브텍스트의기술’(TheArtofSubtext―이책의원제)로꼽는것중하나다.
“‘하지만우리호텔숙박료는가장합리적인데말이지.’긴이빨사이로그녀의마른입이움직였다.”
저자가『서브텍스트읽기』에서탁월한효과가발생하는예로다루고있는캐서린앤포터의「기울어진탑」일부이다.화가난여주인의불안과분노를드러내는부분인데,장면의속도를늦춘것뿐아니라저‘긴이빨’도효과를내고있다.그녀는무엇인가를물어뜯고있는것이다.늑대처럼말이다.(본문121쪽)
그러나이늑대같은느낌은책어디에도문자로적혀있지않다.바로이런느낌이보여지는텍스트(text)아래에(sub)있는것들이고,우리가책을읽고쓸때서브텍스트(subtext)를의식해야하는이유이다.
3.현실의서브텍스트읽기
그러나비단책뿐일까?저자가들려주는현실에서일어나는일들과대화,사람들의서브텍스트읽는법을통해우리는우리를둘러싼모든서브텍스트를의식하게된다.
“오늘아침,자동차엔진오일을교환하기위해정비소에갔다.차를점검해준남자는흰셔츠에회색면바지를입고있었다.꽤짧게이발을했고,큰덩치는고등학교시절풋볼선수였거나,혹은대학에서풋볼선수로뛰며정비소에서아르바이트를하는사람의모습이었다.그는잘정돈된금색의턱수염도있었다.착실해보였지만,최근에와서야그런인상을갖춘듯했다.흰셔츠의깃은목에너무꼭끼었다.그의말투는분명했으며문장을마칠때마다고개를뒤로젖히는버릇이있었다.질문을할때는나를똑바로쳐다보았다.이사람을판단할이유는없지만,그것은내버릇이기때문에어쨌거나나는사람을가늠해본다.사실진짜로내눈을끈것은그의얼굴이아니라오른손두꺼운집게손가락이었다.왜냐하면거기에머리칼을흩날리며비명을지르는해골이새겨진작은문신이있었기때문이다.”(본문189쪽)
남자를본다.버릇을눈치챈다.의복,문신,장신구를본다.그러나이것들은관찰에따른사실일뿐별다른의미가없다.이런것들이의미를갖게되는것은불균형,긴장,사건사고이후이다.긴장감이고조되거나사랑에빠질때,혹은위협적인순간에우리는비로소사소함을보게된다.세부사항이너무나중대해진다.현실에서우리도사실은서브텍스트읽기를해온셈이다.다만,주의를좀더기울이면된다.
찰스백스터는이책을존치버일기의한대목으로끝맺는다.일기는한못생긴젊은이가머리빗는장면을목격한것에대한것이다.누군가를기다리며빗을꺼내머리를빗는청년.그를보며문득전율하는작가.누군가는보지않는것,볼필요조차느끼지못하는것,사소함,아무것도아님,그태연자약함.그것들에대한이해없이우리는삶을이해할수없다.
“여기,이머리를빗는이몸짓안에는태연자약함이라는경이가있다.그리고그로인한전율은상호적인것으로,내보기엔바로그것이삶을이해하는방법인것같다”(『존치버의일기』)
책도,이야기도그렇다.
4.읽기와활용―서브텍스트를읽는것은삶을사는것이다
아무리그렇다한들,대관절‘읽기’가우리사는데무슨구체적인효용이있나.서브텍스트를읽는다고갑자기사는게까무러치게재미있어지나?우리가‘먹고살기위해’일을하는거라는사실이달라지나?사실은변하지않는다.그러나사실을인식하는우리의감각이달라진다.책은그대로인데,몇년후책을다시읽었을때전에보이지않던게보이는경험을하는것과마찬가지다.책은변하지않는다.텍스트와콘텍스트,서브텍스트를읽는우리가변할뿐.그렇다면‘읽기’라는것은우리삶을전혀다른차원으로만들수있는가장쉬운활동이아닐까?
사람들은서로말을하지만서로를듣지않는다.어쩌면들을줄모르기때문일지모른다.사람들은책을읽지만읽지않는다.텍스트너머에또다른읽을거리가있음을모르기때문일지모른다.그러나보이는것너머에다른영역이있음을아는순간,사소한짜증과성가심으로가득한우리의일상은더이상전과같지않게된다.책이건현실이건,서브텍스트를읽지않는한우리가『율리시스』를읽는다한들,밀림에간다고한들모든건시시하다.조금유난스러울수도있지만,그런의미에서이작은책『서브텍스트읽기』는인생의비밀을담고있는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