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배려의 책읽기 (니체에서 장자까지 은행원철학자의 철학책 읽기)

자기배려의 책읽기 (니체에서 장자까지 은행원철학자의 철학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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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읽을 수 없던 것을 읽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읽고 있는 것이다!”
철학 원전으로 ‘단숨에’ 뛰어든 직장인이 말하는 철학의 쾌락!!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저자는 11년 전 어느 날 철학을 만난 후 술과 담배에 찌들었던 그때까지의 삶을 뒤로하고 책읽기와 글쓰기로 충만한 새로운 세계에 들어섰다. 이 만남의 과정을첫번째 책(『자기배려의 인문학』)에 담은 이후, 저자는 5년 동안 철학책 원전들을 읽고 사유하면서 쓴 41편의 서평을 담아 새로운 책 『자기배려의 책읽기』를 선보인다. 서양 현대철학(니체와 푸코, 들뢰즈 등)과 고대 그리스철학(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탈레스와 파르메니데스 등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유학(공자, 맹자, 주자)과 불교(용수)와 도가(장자), 성서 등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저자의 책읽기는 경이로울 지경이다. 특히 시중은행의 자본시장부장으로 일하면서 읽고 쓰고 사유하기 위한 여가를 마련하려는 필사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라는 점이 더욱 놀랍다.
이 특별한 철학책 서평집은 ‘나’(1부), ‘관계’(2부), ‘일’(3부), ‘정치와 사회’(4부) 등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문제의 현장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돌파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공부’(5장)와 ‘철학’(6부)을 통해 어떻게 ‘자기배려’의 삶을 만들 수 있는지를 저자의 경험과 더불어 알려 주고 있다. 특히 각 서평의 ‘후기’로 수록한 글들은 저자가 해당 책과 어떻게 만나고 공부했는지, 그 만남이 어떻게 삶의 실천과 다른 공부로 확장되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어, 철학이나 인문학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연했던 독자들에게 유용한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강민혁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은행에서 자본시장부장으로 일한다. 철학에 빠져 읽고 쓰는 일은 밥벌이인 은행일과 더불어 늘 내 생활의 양 날개이다. 11년 전 철학을 만난 뒤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술과 담배에 빠져 있을 그 시간에 이제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동안 친구들과 함께 니체, 푸코, 루쉰 등을 읽고, 함께 글을 썼다. 최근에는 내 밥벌이를 둘러싼 정치경제학에 관심이 커져, 뒤늦게 경제학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평생 철학과 친구들 곁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파국이 내게 도래해도 이 은밀한 해방구를 파괴하지는 못하리라. 지은 책으로는 『자기배려의 인문학』이 있고, 친구들과 함께 『인물톡톡』, 『우정은 세상을 돌며 춤춘다』, 『감히 알려고 하라』, 『독학자의 서재』를 썼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_ 정확한 정신, 정확한 쾌락???읽기란 무엇인가

1부 _ ‘나’를 생각하는 책들
자기 삶의 연구자 _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①
우울한 방문객, 병 | 몸, 타자들의 공동체 | 위대한 건강, 병을 환대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후기

푸코와 마르크스 : 훌륭한 영혼은 나쁜 영혼에서 온다 _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①
뱅센 시절??좌파에 둘러싸여 | 해석학자 마르크스 | 규율권력과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 영성, 주체의 변형 | 영성주의자 마르크스
『주체의 해석학』 후기

자기 밖으로 나가기 | 뤼시앵 페브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할아버지의 세례 | 수도사 루터, 신을 찾다 | 신을 경유해 찾아온 새로운 자기 | 대항품행과 자기배려 | 자신 밖으로 나가기
『마르틴 루터???한 인간의 운명』 후기

여가, 자기를 만드는 시간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미래의 아이에게 쓰다 | 자기 자신에게 쓰다 | 자기 자신을 응시하라 | 자기를 만드는 시간, 여가
『명상록』 후기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하다 | 맹자, 『맹자』
낭송, 정신을 바꾸다 |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 우리가 우리를 바꾼다 | 자기가 변하면 사회가 바뀐다
『맹자』 후기

양지, 내 마음의 온당쾌락처 | 왕양명, 『전습록』
용장으로 가는 지혜의 길 | 용장오도, 진리는 내 마음에 있다 | 양지는 사리에 맞고 즐겁다
『전습록』 후기

자유로운 운명, 그럭저럭 돌파! |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긴긴 겨울, 돌멩이의 삶 | 그림, 차이를 산출하는 행위 | 차이는 미분이다 | 미분, 자유로운 운명을 살다
『차이와 반복』 후기

2부 _ ‘관계’를 생각하는 책들

다른 관계, 다른 자기 |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② / 세네카, 『자연에 대하여』
단일재배, 단일품종 | 자기가 자기에게 예속되다 | 철학, 정신의 등산
『주체의 해석학』, 『자연에 대하여』 후기

걷기, 증여의 마음을 연습하다 | 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고향이 증여한 기쁨 | 걷기의 다른 이름???일탈, 다이너마이트, 치료 | 걷기, 나를 증여하는 시간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후기

일상의 독재 |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퇴락, 빈말에 빠지다 | 타인의 통치, 존재를 빼앗다 | 독재의 기원??빈말과 호기심 | 자기배려의 정치
『존재와 시간』 후기

마음을 움직이는 자 | 손자, 『손자병법』
자네의 약점은 기술이 아니야! | 형세, 승리는 나와 적 사이에 있다 | 기정상생, 마음이 현장과 함께하다
『손자병법』 후기

새로운 물신, 혁명의 순간 | 데이비드 그레이버, 『가능성들』
보이지 않는 손???영구불변한 체계? | 상상력이 필요하다 | 몽상의 즐거움, 소비를 창조하다 | 혁명적인 순간, 상상이 바뀌다
『가능성들』 후기

동물이 되는 순간 | 고쿠분 고이치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지루한 너무나 지루한 | 지루함의 계보학 | 동물-되기, 새로운 것에 압도되다 | 새로운 사고가 불법침입하다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후기

마지막 거처 | 에드워드 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마지막 거처로 밀어 넣었다 | 새로운 아포리아, 말년성 | 자신과 반대로 쓰다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후기

3부 _ ‘일’을 생각하는 책들

공생, 감각을 공유하는 공동체 | 린 마굴리스, 『공생자 행성』 /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①
강한 규율, 강한 조직? | 공생하다, 감각을 공유하다 | 공생하다, 세상을 창조하다
『공생자 행성』, 『천 개의 고원』 후기

삶의 새로운 규칙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밑바닥까지 설명하였다. 그러나… | 규칙 따르기는 실천이다 | 규칙이 신체에 스며들다
『철학적 탐구』 후기

새로운 도주선, 새로운 철학 |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②
다른 하나와 함께, 다른 하나의 안에 | 거시정치인 동시에 미시정치 | 내게 다가온 새로운 도주선
『천 개의 고원』 후기

중국이 부르주아 경제를 다루다 | 원톄쥔, 『백년의 급진』
언제나 시작부터 모순이 | 혁명 이데올로기가 자본을 축적하다 |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다루다
『백년의 급진』 후기

잊어야 하는 것으로부터 배우기 |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마르크스가 벤치마킹하다 | 벤치마크는 거짓환상이다 | 두 개의 현실, 새로운 현실 | 뒤로 돌아가기?이론을 위해 훈련하다
『마르크스를 위하여』 후기

4부 _ ‘정치와 사회’를 생각하는 책들

생각하기, 모든 것이 무너지는 자리 | 용수, 『중론』
생각한다고 세상이 바뀌나? | 운동은 없다! | 독단적 주체, 고정된 인연 | 현실적인 것이 잠재적인 것이다
『중론』 후기

우리의 농단과 싸우자 | 장자, 『장자』
농단, 세금의 계보학 | 무한한 앎, 유한한 우리 | 우리는 언제나 농단에 서 있다
『장자』 후기

‘우리, 인민’이 형성되다 | 알랭 바디우 외, 『인민이란 무엇인가』
국가소추주의에서 깨닫다 | 도래할 인민, 새로운 인민 | ‘우리, 인민’, 무기력을 파괴하다
『인민이란 무엇인가』 후기

텅 빈 것들의 합창 | 조르조 아감벤, 『왕국과 영광』
현대 학문은 권력-실천학이다 | 권력-실천의 기원, 오이코노미아 | 오이코노미아, 일을 배치하는 실천 | 오이코노미아, 삼위일체를 연결하다 | 오이코노미아, 하느님이 되다 | 경제, 인간의 오이코노미아 | 오이코노미아, 텅 빈 왕을 대리하다 | 영광의 오이코노미아, 민주주의의 기원
『왕국과 영광』 후기

도취의 기술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숨은 세상이 흘러나오다 | 감각이 전송되다 | 도취한다, 혁명한다 |
『일방통행로』 후기

반복되는 상처가 새로운 삶을 만든다 | 주디스 버틀러, 『혐오 발언』
X 가진 놈이 누구보고 X 같은 년이라는 거지요? | 카운터펀치, 말은 행위다 | 모든 말은 ‘exitable speech’이다 | 포르노그래피가 저항이다 | 반복된 상처가 세계를 돌파한다
『혐오 발언』 후기

5부 _ 읽고 쓰고 공부하는 책들

읽기는 창조다 | 장 폴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은폐된 기원, 사르트르 | 인간은 본래적으로 자유롭다 | 섬기는 말, 사용하는 말 | 자유, 미래로 자신을 던지다 | 글쓰기, 총을 쏘다 | 최초의 용자,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후기

읽기의 역량이 우주를 만든다 | 이반 일리치, 『텍스트의 포도밭』
문자문화의 세계 | 읽는 자는 망명자다 | 우주를 만드는 역량
『텍스트의 포도밭』 후기

경계인의 해방감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삶의 대차대조표 | 낯선 친숙함, 혼자 돌파하다 | 마키아벨리는 마르크스다
『군주론』 후기

플라톤의 반플라톤주의 |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니체, 행복을 말하다 | 플라톤, 덕을 질문하다 | 영성 없는 순수 인식 | 플라톤이 플라톤을 배반하다
『프로타고라스』 후기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마르크스가 전해 준 단테 | 절망한 자, 지옥부터 가라 | 연옥, 자신을 바꾸는 자유의 길 | 천국, 자기의 주인이 되다
『신곡』 후기

전락의 수련, 철저한 제로 | 나쓰메 소세키, 『갱부』
‘나’는 단지 연속된 의식이다 | 소세키 안에 숨겨진 죽음 | 의식이 0이 되다, ‘나’가 사라지다
『갱부』 후기

과학 밖 세계, 과학 밖 서사 | 퀑탱 메이야수,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
어쨌든 과학으로 통한다? | 습관이 미래를 추론한다 | 과학에게 밖이 있다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 후기

번역, 타자가 들어오는 관문 | 조재룡, 『번역하는 문장들』
에크리튀르와 글쓰기 | 번역, 원문을 원문이게 해주는 힘 | 번역의 인식론, 새로운 감수성의 발명
『번역하는 문장들』 후기

살덩이의 순환 |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살덩이가 모였다, 흩어졌다 | 신체는 카오스에서 솟아났다 | 신체는 다시 빠져나가려 한다
『감각의 논리』 후기

6부 _ 철학을 향유하는 책들

나는 다른 행성에서 왔다! | 미셸 푸코, 『성의 역사』와 『지식의 고고학』
침묵과 변형 | 어떻게 나는 나를 바꾸는가? | 지식은 자명하지 않다 | 친숙한 광경들의 바깥으로
『성의 역사』, 『지식의 고고학』 후기

영원회귀는 두 번 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②
훌륭한 유럽인, 니체 | 힘에의 의지, 모두 선이자 악이다 | 영원회귀, 나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후기

소크라테스 이전, 그 오래된 현대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악의에 찬 책들의 운명 | 탈레스??천문학 오타쿠 |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운동하는 신과 아에르 | 피타고라스???공동체주의자의 아름다운 우주론 | 헤라클레이토스??나는 나 자신을 탐구했다 | 엠페도클레스??리좀, 만물의 네 뿌리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후기

중국 ‘철학’의 모험

출판사 서평

『자기배려의 책읽기』 지은이 인터뷰

1. 이번 『자기배려의 책읽기』는 굉장히 많은 책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루고 있는 책들이 분량이나 난이도 면에서 만만치 않은 책들인데요. 보통 직장인들은 소설 한 권 읽기도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바쁜 은행에 근무하시면서도 철학책들을 꾸준히 읽으시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시간 활용은 어떻게 하시는지, 특별한 요령이 있으신지도 듣고 싶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직장 생활은 직급이 낮으나 높으나 버겁습니다. 그러나 밥벌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은 언제나 밥벌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저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니까, 온종일 회사 일에 집중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항상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해서 6시 반 이전에 집을 나섭니다. 지금은 차를 몰고 회사에 가지만, 팀장 때까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반가량 걸려 출근했습니다. 출근하면 7시 반이 넘어 있는데, 그때 시장 단말기를 통해서 간단하게 간밤의 시장 상황을 점검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침 8시 반이면 본부 직원들이 모인 '모닝 미팅'에 참석해서 딜러들과 함께 시장 리뷰를 하고, 오늘을 어떻게 대응할지 마음을 가다듬지요.
그리고 9시에 한국 시장이 시작되면 정신없이 시장 움직임을 파악하고, 때때로 들어오는 리스크 요소를 판별해서 의사결정 해줘야 할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합니다. 그러느라 온종일 딜링룸을 돌아다닙니다. 또 내부 행정이나 기획 업무와 관련해서도 계속 의견을 주고받으며 때론 전화로, 때론 회의로 온종일 정신이 없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오후 시간도 다 갑니다. 오후 네 시가 되면 한국 시장도 마무리가 되고, 이어서 유럽 시장이 시작됩니다. 이즈음에 한 번 더 시장 체크를 하는데, 그때도 우리 부서 포지션에 영향이 없을지 리뷰하고 필요하다면 의사결정을 해줘야 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북(book)을 운용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직원들과 함께 진땀을 흘리며 상황수습에 온통 정신을 빼앗깁니다.
그러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 다시 한 시간 반 걸려 성남 집으로 돌아가면 대개 저녁 아홉 시에서 열 시가 됩니다. 그러나 그즈음 뉴욕 시장이 시작되므로 핸드폰의 블룸버그 어플에서 손을 떼지 못합니다. 미국 트레저리 채권이나 에스앤피(S&P)지수 움직임뿐 아니라, 스왑(Swap)과 원자재 가격들, 그리고 시장의 중요 뉴스들이나 코멘트·분석들은 사실상 이때 마구 쏟아지니까, 가능한 현지 기사나 메시지를 여러 개 찾아 읽어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지요. 혹시 리스크에 노출된 오버나잇 포지션이 좀 있기라도 하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입니다. 제가 술을 전혀 안 마셔서 그렇지, 술까지 많이 마셨으면 삶은 더 피폐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평일 아침 6시부터 최소 저녁 9시까지 제 시간은 촘촘하게 일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선 감당할 수 없지요. 하긴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 시간 동안엔 전혀 다른 짓을 하지 못합니다. 회사에서도 저는 굉장히 전투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그래야 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수련을 받아 온 사람입니다. 그래야 마음도 편안하고요.
그러므로 제 입장에서 여분의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시대 스토아주의 정치가들은 ‘여가’(Otium)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냐, 그리고 그 시간에 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공부(글쓰기나 책읽기)를 하고 있느냐로 사람들을 평가했다고 합니다. 그것 자체가 역량이었죠.
꼭 그 관점이 아니더라도 제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사활이 걸린 일입니다. 저는 회사일을 제외하고는 필사적으로 글쓰기와 책읽기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팀장 때까지는 출퇴근 시간만큼 중요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현재 제가 읽은 것들과 쓴 것들은 거의 모두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출근 전 짜투리 시간에 저의 모든 전투력을 쏟아서 나온 것들입니다. 아주 보잘것없는 것들도 저에겐 제 모든 것을 걸고 획득한 것입니다. 글도 순간순간 스마트폰 메모앱을 이용해 조각조각 정리한 것을 모아다가, 주말이나 저녁에 조그만 틈을 내 단락문장과 에세이 형태로 바꾸어 냅니다. 어디 발표할 것도 아니면서, 이런 생활방식은 거의 10년에 걸쳐 형성되어 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장이 되고, 차를 몰게 되었는데도 집에 가면 반드시 한두 시간은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그게 제 공부의 전부입니다.
어떤 분야이든 객관적으로 훌륭한 방법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좋은 방법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가끔 ‘방법’에 대한 인식의 계보학을 추적해 볼만 하다고 여기고 있지요. 무슨 일에 닥치면, 왜 우리는 방법이 있는지 먼저 생각할까요? 방법을 찾다가 정작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우리는 무의식중에 무언가 하려면 그것에 대한 방법이 무조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 양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보면, ‘방법’은 어디에도 없을지 모릅니다. 사실 살아 보면 우리는 방법을 모른 채 이미 할 일을 하고 있지요. 모든 것을 다 하고 나서, 그것들을 소급하여 그럴듯하게 재구성하여 말한 것을 ‘방법’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을 뿐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담론에 대해서 저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나름 철학책을 읽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심이 가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주요한 텍스트들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글을 쓰다 보니 쓰기 위해 텍스트를 집중적으로 분해하고 사유하는 버릇도 어느 정도는 형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두,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제가 하고 있는 이 방식이 옳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누가 하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철학이나 글쓰기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철학이 정말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내 식대로 읽어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쓰기를 통해 사용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쾌락입니다. 쾌락이 있기 때문에 아주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내서 이 책들을 읽고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철학만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그렇지요.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을 왜 하겠습니까. 어떤 일이든 기쁨이 행동을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책 독서도 그런 쾌락 때문에 하게 됩니다. 아침부터 오늘 나의 쾌락을 이끌 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혹시 읽지는 못하더라도 그 책을 들고 다니며 읽어 내고, 때때로 글을 쓸 요량으로 여백이나 메모앱에 메모를 하면서 글감들을 모으는 일, 그것은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쾌락입니다. 그게 완성된 글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과정 자체가 쾌락입니다. 이 쾌락 때문에 읽고 씁니다. 간단합니다.
아이들도 보면 게임을 하는 쾌락을 획득하기 위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시간을 확보해 내지요. 즉, 어떤 행위에 위험과 벌이 뒤따르더라도 쾌락이 있다면 그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시간을 확보하여 해내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 흐름 속으로 들어가면 시간이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오로지 욕망을 따라서 어떠한 행위든 해내고 있는 것이죠. 저의 책읽기나 글쓰기도 그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고상한 목표가 있거나,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 읽고 쓰는 게 아닙니다.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철학책을 읽고, 그런 글을 쓰는 것이 제게는 최고의 쾌락이기 때문에 온갖 방식을 동원해서 읽어 내고 쓰고 있을 뿐인 겁니다. 정해진 아무런 방법도, 단계적 과정도 없습니다. 어느 누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일단 저는 술·담배를 하지 않으니까, 회식이 있든 없든, 퇴근하고 나면 정신이 멀쩡하기 때문에 단 1시간이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출근하기 전에도 1시간 정도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지요. 회사에서는 책을 차분히 읽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틈틈이 스마트폰의 메모앱을 이용해서 때때로 머리에 잡히는 생각들을 몇 문장으로 정리해 둘 수는 있습니다. 이런 게 모두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이 이것을 중심으로 계획되어지고 실천되어집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버릇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을 좇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쾌락을 좇아 자동으로 구성된 버릇입니다. 이제는 그냥 그것이 생활이 된 것 같습니다. 이게 대단한 것도 아니므로,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2. 2014년에 『자기배려의 인문학』 이후 두번째 책입니다. 첫번째 책이 인문학과의 만남, 그리고 인문학적 글쓰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이번 『자기배려의 책읽기』는 주로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첫번째 책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일단 차이보다 그때와 같은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에피멜레이아 헤아우투’(Epimeleia Heautou), 그러니까 ‘자기배려’라는 말을 책 제목에 다시 내걸었다는 점에서 첫 책과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이제 저에게 ‘자기배려’는 매우 중요한 용어이자 개념이 되었습니다. 물론 현대의 교육자들이 공자왈 맹자왈 하듯 이 개념이 지배했던 고대의 윤리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주장했다면 다시 공자가 주장한 ‘인’(仁)의 정신을 되살리자고 말하는 교육자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이 개념은 푸코가 ‘주체변형의 구조’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개념이고, 푸코는 이 개념으로부터 자기가 자기와 관계를 맺는 구조라는 새로운 대상을 발굴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듯이 개별자인 주체 밖에만 관계와 장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 안에도 수많은 관계와 장치가 존재하고, 그것은 자기와 자기의 관계라는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우리가 흔히 “내 자신과 대화한다”고 할 때, 그것은 정확히 이 사태를 알려 주는 일상화된 문구일 것입니다. 나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