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납치하다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1

시로 납치하다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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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당신을 시로 납치할 거야. 시어와 운율로 당신을 사로잡고, 제비꽃으로 당신을 노래하고, 이마에서 녹는 눈으로 당신의 감정을 위로하고, 내 시를 완성하기 위해 바람 부는 해변에 당신을 혼자 서 있게 할 거야. 당신의 이름을 시에 쓸 때마다 행갈이를 할 거야…’

이 시집을 펼쳐 읽는 순간 조심해야 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부터 프랑스의 무명 시인, 아일랜드의 음유시인, 노르웨이의 농부 시인과 일본의 동시 작가가 당신을 유혹할 것이다. 그럼 당신은 시의 해변에서 홀로 비를 맞아야 하고, 감정의 파도로 운을 맞추며 시의 행간을 서성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인들의 물음에 답해야 한다. 인생은 물음을 던지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처럼 살라.’고.

마음의 무늬를 표현하기 위해 전 세계 시인들이 수없이 고쳐 쓴 시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새롭게 다가오는 시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투명한 감성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좋은 시 모음집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이은 새로운 인생 처방 시집. 류시화 시인의 해설과 함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5년 동안 ‘아침의 시’라는 제목으로 많은 독자들의 아침을 깨운 시들을 모았다.
짧은 문장으로 이마를 상기시키고 머리를 뜨겁게 하는, 시. 삶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거나 상실감과 무력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우연히 읽은 시 한 편에서 우리는 빛을 발견하기도 한다. 멈춰 서서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일상을 시어로 바꾸는, 한 편 한 편이 물방울처럼 마음의 호수에 떨어져 파문이 번지는 그런 좋은 시들을 모아 엮은 이 책에서 시에 담긴 진실과 조언을 들으며 지금까지 인생에서의 상처와 두려움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선정 및 수상내역
- 2020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루이스 글릭의 시 〈애도lament〉 수록
저자

류시화

시인이자명상가.경희대학교국문학과를졸업했으며1980년한국일보신춘문예시부문에당선된바있다.1980~1982년까지박덕규,이문재,하재봉등과함께시운동동인으로활동했으나1983~1990년에는창작활동을중단하고구도의길을떠났다.이기간동안명상서적번역작업을했다.이때『성자가된청소부』,『나는왜너가아니고나인가』,『티벳사자의서』,『장자,도를말하다』,『마...

목차

두사람_라이너쿤체
내심장은너무작아서_잘랄루딘루미
숨지말것_에리히프리트
봉오리_골웨이키넬
그렇게못할수도_제인케니언
공기,빛,시간,공간_찰스부코스키
더푸른풀_에린핸슨
고독_엘라휠러윌콕스
그겨울의일요일들_로버트헤이든
사랑받으려고하지말라_앨리스워커
원_애드윈마크햄
서서히죽어가는사람_마샤메데이로스
격리_이반볼랜드
동사‘부딪치다’_요시노히로시
천사와나눈대화_윌리엄블레이크
한가지기술_엘리자베스비숍
첫눈에반한사랑_비스와바쉼보르스카
나와작은새와방울_가네코미스즈
같은내면_안나스위르
생활비를벌기위해하루종일일한후_찰스레즈니코프
어딘가에서누군가가_존애쉬베리
사막_오르텅스블루
절반의생_칼릴지브란
사랑이후의사랑_데렉월컷
사라짐의기술_나오미쉬하브나이
역사책읽는노동자의의문_베르톨트브레히트
선택_니키지오바니
평범한사물들의인내심_팻슈나이더
모든진리를가지고나에게오지말라_올라브하우게
방문_H.M.엔첸스베르거
생에감사해_메르데데스소사
눈사람_월러스스티븐스
넓어지는원_라이너마리아릴케
꽃피우는직업_드니스레버토프
어머니는최고의요리사_리아마치오티길란
잔디깎는기계_필립라킨
내가사랑한다는걸몰랐던것들_나짐히크메트
편집부에서온편지_헤르만헤세
자화상_데이비드화이트
사금_호세에밀리오파체코
그는떠났다_데이비드하킨스
블랙베리따기_셰이머스히니
어떤것을알려면_존모피트
너무많은것들_앨런긴즈버그
사랑시_로버트블라이
왜_야마오산세이
모두다꽃_하피즈
비_레이먼드카버
어떤사람_레이첼리먼필드
보나르의나부_레이먼드카버
지구에서우리는무엇을하고있는가_앨런와츠
먼지가되기보다는재가되리라_잭런던
층들_스탠리쿠니츠
위험_엘리자베스아펠
납치의시_니키지오바니
시가그대에게위로나힘이되진않겠지만_류시화

출판사 서평

시인이될수없다면시처럼살라

이상하다,시는.짧은문장으로이마를상기시키고머리를뜨겁게한다.노벨문학상수상시인토머스트란스트뢰머는"숲한가운데에는길을잃은사람만이발견할수있는빈터가있다.”라고말했다.어쩌면삶에서길을잃는사람만이시를찾을수있는지도모른다.우리는자주‘적절한세계속의적절하지않은나’를느낀다.다른어느곳도없고다른누구도없을때,그럴때시가있다.시인의능력을타고나지않은사람도‘시인의마음’은누구나소유하고있다.

좋은시는잠깐멈춰서서인생을돌아보게하고일상을시어로바꾼다.자신을존경했던스무살이채안된시인지망생프란츠카푸스에게보낸편지들(『젊은시인에게보내는편지』)에서릴케는‘내가하는말이그대에게위로나힘이되진않겠지만’이라고쓰곤했다.그러나릴케의편지가그런역할을했듯이,우리는함께질문하고공감함으로써위로받고강해진다.

삶에서갑자기희망이보이지않을때,상실감과무력감에서헤어나지못할때,우연히읽은시한편에서빛을발견한다.시는어디선가떨어진채발견된깨달음의한조각이다.


인생학교에서시읽기-삶이던지는물음에시로답하다

『지금알고있는걸그때도알았더라면』『사랑하라한번도상처받지않은것처럼』을통해좋은시들을소개해온류시화시인이이번에는해설과함께‘인생학교에서시읽기’라는부제로시엮음집을출간했다.한편한편의시가물방울처럼마음의호수에떨어져파문이번지는그런좋은시들을모았다.

초대의글에서류시화시인은말한다.
“독일시인파울첼란은,시는‘유리병편지’와같다고했다.그것이언젠가그어딘가에,어쩌면누군가의마음의해안에가닿으리라는희망을품고시인이유리병에담아띄우는편지.여기소개한시들은내인생의해안에도착한시들이다.나는내가누구이며어디쯤서있는지알기위해시를읽는다.삶은불가사의한바다이고,시는그비밀을해독하기위해바닷가에서줍는단서들이다.그러므로시인이아니어도시인의눈으로세상을바라봐야한다.나는당신이더많은시를읽고,머리가뜨거워지고,인생의해변에서시를낭송하기바란다.어디선가시가당신을기다리고있다.아직아무도발견하지않은유리병편지처럼.”

필립라킨,셰이머스히니,요시노히로시,니키지오바니,나오미쉬하브나이,스탠리쿠니츠등현대의대표시인들에서부터하피즈,잘랄루딘루미,헤르만헤세에이르기까지때로는낯설고때로는반가운시인들의대표시들이존재와삶의의미를일깨운다.

시인들은‘웃어라,세상이너와함께웃으리라.울어라너혼자울게될것이다.’라고진실을말하고‘너자신을사랑하라.그런다음그것을잊으라.그런다음세상을사랑하라.’고조언한다.그리고지금까지내인생에서의상처와두려움이나만의것이아님을깨닫게한다.


<책속에서>


두사람


두사람이노를젓는다.
한척의배를.
한사람은
별을알고
한사람은
폭풍을안다.

한사람은별을통과해
배를안내하고
한사람은폭풍을통과해
배를안내한다.
마침내끝에이르렀을때
기억속바다는
언제나파란색이리라.

-라이너쿤체

현존하는독일최고의서정시인라이너쿤체(1933~)의대표시중하나로,결혼축시로자주낭송되는시다.배,별,폭풍이라는평범한세단어가인생의드넓은바다로의미를확장하면서심오한메시지를전한다.한배에탔다는것은운명공동체이다.별은목적지이고,폭풍은그곳으로가는여정에서맞닥뜨리는예기치않은일이다.

두사람은부부일수도있고,연인이나동료,혹은내안의두자아일수도있다.신과인간일수도있다.한사람은‘어디로’가야하는지알고,한사람은‘어떻게’해야하는지안다.한사람은지혜를,한사람은강인한정신을가지고있다.그리고그밑바탕에는서로에대한신뢰가있다.그때두사람은어떤어려움도헤쳐나갈수있다.‘함께’라는단어가좋은이유이다.

언어의절제는오히려언어에더많은비중과암시를부여한다.따뜻한언어에깊은통찰을담는쿤체의시는압축과간결이특징이다.단어수가적은만큼독자의상상력을자극하는잠언풍의시가많다.사회주의국가였던구동독작센주에서광부의아들로태어난쿤체는대학에서철학과언론을전공했으나연애시를썼다는이유로퇴학당해공장의보조기계공이되었다.

28세에쿤체는체코프라하에사는젊은여의사엘리자베스리토네로바를알게되었고,두사람은편지로서로의이야기를하기시작했다.암흑의시간을견디며400여통의편지를주고받던어느날쿤체가청혼을하자엘리자베스는주저없이동독으로건너왔다.독재정권에대한굴하지않는저항으로작가동맹에서퇴출된쿤체는엘리자베스와함께서독으로망명했다.그렇게둘이서인생의폭풍우를헤쳐나갔다.

삶의지혜는파도를멈추는것이아니라파도타기를배우는것이다.우리는파도를멈추게할수없다.관계의절정은함께힘을합해파도를헤쳐나가는일이다.이시의독일어원제는<두사람이노를젓다>이다.한사람(dereine)과다른사람(derandre),별(Sterne)과폭풍(Stuerme)이반복되며한편의노래로들린다.

그렇다,함께노저어가는두사람의리듬이맞으면인생은노래가된다.두사람은삶이선물하는아름다움(별)을경험하면서고난(폭풍)을극복해나간다.그리하여수많은파도와암초들의밤바다를통과하지만두사람의기억속바다는언제나파란색이고화창할것이다.힘들었던시기조차웃으며회상할것이다.삶의여정이어느목적지에이를지는알수없지만,마지막에는지난날을돌아보며파란바다를기억하리라.

-p.10~13



그렇게못할수도


건강한다리로잠자리에서일어났다.
그렇게못할수도있었다.
시리얼과달콤한우유와
흠없이잘익은복숭아를먹었다.
그렇게못할수도있었다.
개를데리고언덕위자작나무숲으로산책을갔다.
오전내내내가좋아하는일을하고
오후에는사랑하는이와함께누웠다.
그렇게못할수도있었다.
우리는은촛대가놓인식탁에서
함께저녁을먹었다.
그렇게못할수도있었다.
벽에그림이걸린방에서잠을자고
오늘과같은내일을기약했다.
그러나나는안다,어느날인가는
그렇게못하게되리라는걸.

-제인케니언



시인이며번역가인제인케니언(1947~1995)이백혈병으로세상을떠나기1년전쓴시다.대학생시절,문학을강의하던19살연상의시인도널드홀을만나결혼한제인은뉴햄프셔의농장에서스무해를살았다.제인과도널드의삶은다큐멘터리<함께한삶ALifeTogether>으로제작되어에미상을수상했다.도널드홀도자연과인생에대한경이감을시와산문으로표현한미국계관시인이다.그는죽어가는아내를보살핀경험을이렇게토로했다.‘아내의죽음은내게일어난최악의일이었고,아내를보살핀것은내가한최고의일이었다.’

우리가누리고있는것들-가벼운산책,함께하는식사,그림감상,정겨운포옹,내일을기약하며잠드는일등이얼마나큰축복인지우리는사실잘모른다.그것들은그냥일상일뿐이다.그러나그일상은얼마나많은사고,갑작스러운병과재해에가로막히는가?

몇해전,나는갑자기쓰러져몸을움직일수없게됐었다.말을하고눈을깜박이는것외에는목아래로완전히마비되었다.강아지가얼굴을핥아도쓰다듬어줄수가없었다.마비의이유는알수없었지만,사흘뒤몸이정상으로돌아왔다.새벽에혼자힘으로일어나마당으로걸어나갈때의기분이아직도생생하다.갑작스러운마비에서회복된것이기적이아니라일상의모든활동이기적이되었다.지금나는건강한다리로잠자리에서일어나고,개를데리고산책을나간다.인도여행을하고,히말라야트레킹을간다.웃고,농담하고,감동하고,연필쥔손으로글을쓴다.“삶의마지막순간에바다와하늘과별과사랑하는사람들을마지막으로한번만더볼수있게해달라고기도하지말라.지금그들을보러가라.”엘리자베스퀴블러로스가『인생수업LifeLessons』에서한말이다.

놀랍지않은가.그해에막뉴햄프셔주의계관시인으로선정된시인이48세에생이끝나가는것을절망하거나비관하는대신삶의사소한행위들을특별한것으로만들고있다.두다리로걷고,우유에시리얼을타먹고,복숭아의둥근맛을깨무는것까지.그것들이곧불가능하게되리라는것을알기때문이다.

그렇다,우리의소소한일상은얼마나축복된시간인가.살아있다는것은큰기회이다.그‘특별한’일상들이사라질날이곧올것이기때문이다.물위를걷는것이기적이아니라두발로땅위를걷는것이기적이다.삶은수천가지작은기적들의연속이다.그것들을그냥지나쳐선안된다고시인은말한다.시에는적혀있지않지만행간마다‘늦기전에깨달으라’라는말이숨어있다.
-p.24~27



더푸른풀


건너편풀이더푸른이유가
그곳에늘비가오기때문이라면,

언제나나눠주는사람이
사실은가진것이거의없는사람이라면,

가장환한미소를짓는사람이
눈물젖은베개를가지고있고

당신이아는가장용감한사람이
사실은두려움으로마비된사람이라면,

세상은외로운사람들로가득하지만
함께있어서보이지않는것이라면,

자신은진정한안식처가없으면서도
당신을편안하게해주는것이라면,

어쩌면그들의풀이더푸르러보이는것은
그들이그색으로칠했기때문이라면.

다만기억하라,건너편에서는
당신의풀이더푸르러보인다는것을.

-에린핸슨


어떤사람이늘웃는다고해서그에게는울일이없다고생각하지말라.그의인생에는눈물흘릴일이없었을것이라고.용기있게살아가는사람이라고해서두려움이없다고추측하지말라.그가절망의밧줄에묶인적이없을것이라고.늘사람들과어울리고즐거워보인다고해서외롭지않을것이라고단정지어선안된다.불면의밤이그를비켜갈것이라고.그리고당신에게많은걸나눠준다고해서그에게모든것이넘쳐난다고오해하지말라.당신을위해자신의몫을양보하는것일수도있으니까.

에린핸슨(1995~)은호주브리즈번출신으로어려서부터글쓰기를시작했으며,열아홉살때인터넷에시를발표하면서이름이알려졌다.『언더그라운드시집thepoeticunderground』등세권의시집을출간했다.평범한단어들로시적운율을살리는시를써서독자에게다가간다.또다른시<모든가슴에태풍이있다Everyheart’sahurricane>에서핸슨은썼다.

모든가슴에태풍이있고
모든영혼에별이빛나는바다가있고
모든마음에중력에서해방된별똥별이있다.
모든삶은번개를가지고있다.
하지만모두가아니라고말한다.

우리는삶에게무엇인가를기대하지만,삶이자신에게기대하고있는것은간과한다.삶이우리에게기대하는것은영웅이되거나불멸의인간이되라는것이아니다.두려움으로마비되어도한걸음씩내딛고,외로워도사람들과함께하라는것이다.가진것이없어도나누라는것.

어떤사람의풀이푸르다고해서그집정원은언제나화창할것이라고,흐린날이없을것이라고가정해선안된다.당신역시종종눈물로베개를적시면서도누구보다환하게웃지않는가?자신의인생이더는자신의손에달려있지않다는걸뼈저리게느끼면서도용기를내어세상에손을내밀지않는가?절망에빠지거나‘풀이죽으면’밝게색을칠해서라도…….그래서당신의날들은매일화창하고당신의풀이자신들의풀보다더푸르다고사람들은믿지않는가?
-p.3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