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또 전쟁을 벌이고 있다. 둘 사이에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 전쟁은 규모가 커서 사람들의 걱정과 주목이 집중되고 있다. 관련국들과 국제기구가 중재에 나섰지만 좋은 결과를 낳을지는 확실치 않다. 이 분쟁의 뿌리는 매우 깊다. 정교분리가 현대사회의 원칙이지만 중동국가들에게는 종교가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그런 나라에 속한다.
두 나라 간의 분쟁이 본격화된 때는 1948년에 시온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했던 때다. 이스라엘이 느닷없이 몰려 들어와 깃발 꽂고 나라를 세웠으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종교가 국가와 손잡으면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유대교는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유대인은 ‘타낙’이라고 부른다)에 따르면 야훼 신이 지금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거기 살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그 땅은 빈 땅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헷 족과 기르가스 족과 아모리 족과 가나안 족과 브리스 족과 히위 족과 여부스 족이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구약성서 여호수아서는 야훼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했고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그대로 실행했다고 적었다.
이 이야기에는 역사성과 윤리성,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역사성 문제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고, 윤리성 문제는 어떻게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이 종족말살을 명령할 수 있냐는 데 있다. 성서학자들은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다양한 답을 내놓았는데 대부분 성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변증적이고 호교적 성격이 강했다.
이 책은 그것과는 다른 답을 내놓는다. 저자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생산한 세대가 왜,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서술했는지를 텍스트를 근거로 해서 개연성을 갖고 추정한다. ‘추정’해야 하는 이유는 근거가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에 다양하게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맞춰보면 저자의 추정에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그 동안 이 이야기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야훼 신이 그렇게 명령했다고 하니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학자들과 반대로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이 이야기는 픽션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로 나뉜다.
저자는 둘 다 문제라고 본다. 전자는 맹목적이어서 문제이고 후자는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성서가 그렇게 서술하기 때문에 그걸 읽는 신자들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문제다. 저자는 그 동안 학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이 책은 여호수아서가 전하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가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쓰였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이 그 세대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기능을 했는지를 추정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오늘날에는 어떻게 읽고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가나안 정복 이야기의 비윤리성에 곤혹스러워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두 나라 간의 분쟁이 본격화된 때는 1948년에 시온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했던 때다. 이스라엘이 느닷없이 몰려 들어와 깃발 꽂고 나라를 세웠으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종교가 국가와 손잡으면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유대교는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유대인은 ‘타낙’이라고 부른다)에 따르면 야훼 신이 지금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거기 살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그 땅은 빈 땅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헷 족과 기르가스 족과 아모리 족과 가나안 족과 브리스 족과 히위 족과 여부스 족이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구약성서 여호수아서는 야훼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했고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그대로 실행했다고 적었다.
이 이야기에는 역사성과 윤리성,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역사성 문제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고, 윤리성 문제는 어떻게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이 종족말살을 명령할 수 있냐는 데 있다. 성서학자들은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다양한 답을 내놓았는데 대부분 성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변증적이고 호교적 성격이 강했다.
이 책은 그것과는 다른 답을 내놓는다. 저자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생산한 세대가 왜,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서술했는지를 텍스트를 근거로 해서 개연성을 갖고 추정한다. ‘추정’해야 하는 이유는 근거가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에 다양하게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맞춰보면 저자의 추정에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그 동안 이 이야기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야훼 신이 그렇게 명령했다고 하니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학자들과 반대로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이 이야기는 픽션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로 나뉜다.
저자는 둘 다 문제라고 본다. 전자는 맹목적이어서 문제이고 후자는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성서가 그렇게 서술하기 때문에 그걸 읽는 신자들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문제다. 저자는 그 동안 학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이 책은 여호수아서가 전하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가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쓰였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이 그 세대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기능을 했는지를 추정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오늘날에는 어떻게 읽고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가나안 정복 이야기의 비윤리성에 곤혹스러워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정말 야훼가 다 죽이라고 명령했을까 : 여호수아서의 가나안 정복 이야기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