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자격 : 게으르고 불안정하며 늙고 의지 없는… ‘나쁜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의 자격

일할 자격 : 게으르고 불안정하며 늙고 의지 없는… ‘나쁜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의 자격

$17.00
Description
‘사람’이고 ‘시민’이라는 건, 그가 곧 ‘노동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노동자’라는 건 (성실한), (효율적인), (민첩한), (건강한), (규율을 따르는), (젊은) 근로자라는 의미다.
이 책은 누구나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정상) 노동자’란 위치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자격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밝힌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노동자성’에서 미끄러졌거나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 즉 열정적이고 자기관리에 능통한 청년이 될 수 없는 사람들, 정숙한 현모가 될 수 없는 여자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갖출 수 없는 사람들, 더는 젊음을 흉내 낼 수 없는 사람들, 게으름뱅이, 낙오자들…(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비추어 본다.
‘노동자’는 어떻게 ‘사람’의 자격이 되었을까? 노동할 수 있는 (생산적인) 몸·정신·생활이란 무엇일까? ‘(정상) 노동자’ 각본에 어긋나거나 길들여지지 않는 개인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노동자’가 될 자격을 박탈했거나 ‘노동자 되기’를 포기한 이들의 존재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사회에서 이 책은 이제껏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노동의 자격’을 바라본다. 우리는 지금 어떤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가? 노동자란 누구이며 세상은 왜 그것을 규정하는가?
저자

희정

기록노동자.수없이많아어느새보잘것없어진억울함들이아직도아프다.살아가고싸우고견뎌내는일을기록한다.
쓴책으로는직업병에시달리는삼성반도체노동자와가족들의이야기를담은『삼성이버린또하나의가족』,사람이일하다죽는것을당연히받아들이는우리사회의모습을기록한『노동자,쓰러지다』,이정미노동열사평전『아름다운한생이다』를썼다.함께쓴책으로는『밀양을살다』,『섬과섬을잇다』,『기록되지않은노동』,『재난을묻다』가있다.

목차

들어가며

1.생산적으로살아라?
:성실하지않은청년들의분투기
#성실한#나태한
#생산적인#쓸모없는
#열정적인#의지박약한

2.덮어놓고낳든,낳지않든
:혼자양육하는딸들의노동
#숭고한#얕보이는
#완성된#결함있는
#규범적인#난잡한

3.약봉지를흔들며걸어간곳,직장
:정신질환을겪는여성들의직장생활
#강인한#나약한
#안정적인#불안정한
#무난한#별난

4.늙은사람을돌보는늙은사람의노동
:노년돌봄노동자의자기관리
#젊은#나이든
#건강한#골골대는
#독립적인#짐스러운

5.뚱뚱해서게으르다고여길까봐
:과체중과함께살아가는사람들의공적활동
#민첩한#둔한
#지적인#멍청한
#절제력있는#무절제한

6.군대보다편하니까
:국방의의무를다하지않는이들의첫직장
#남자다운#남자답지못한
#건장한#결격사유가있는
#성숙한#미성숙한

나가며

추천의말

출판사 서평

모두일해야한다지만아무나일할수없는사회,
다가설수없는‘노동의자격’에대하여

“그러게좀열심히살지…”산업재해나과로사소식을전하는뉴스에달린댓글을심심치않게본다.너무열심히일하다다치고사망한이들에게‘열심’이란잣대를들이댄다.다치고죽은이들이행한‘열심’과세간의‘열심’은다르다.(사람들은‘열심히’살았다면지방의작은대학을졸업할리없다고생각하고,졸업후변변한곳에‘정식’취업을하지못할리없다고여긴다.)이렇듯누군가의‘열심’은‘진정한열심’이아니다.그리고‘진정한열심’을행한것이아니라면,그로부터발생하는문제는모두개인의탓이된다.

이책은누구나제밥벌이를해야한다고말하는세상,일하지않은자는먹지도말라는세상,즉‘노동자’가‘사람’의자격이된세상,‘(정상적인)사람’이라면노동시장에서소외될수없다고믿는세상에서‘일할자격’이진정모두에게보편타당한것인지를묻는다.
“당신은젊은가?몸이건강한가?외모가준수한가?신체에손상이없는가?일상생활에영향을미치는질환이없는가?의지는강한가?생활패턴이안정적인가?교우관계가원만한가?최종학력이평균이상인가?전문적인기술이나지식이있는가?”
당신은이질문들로부터얼마만큼떨어져있는가?지금의나와는관계없는이야기라고생각하고있더라도,‘(정상)노동자’로살아가는시간은우리각자에게주어진노동의시간전체에서아주잠깐일지도모른다.

일할자격이없어말할자격도없던
낙인찍힌노동자들이바라보는일의세계

‘사람’이라면‘노동자’여야한다는조건은너무도강력해서,우리는노동자가되는데도자격이필요하다는사실을간과한다.그리하여이자격에서박탈된이들의문제는‘노동’문제로여겨지지않는다.
이책은‘성실하지못한’,‘생산성없는’,‘나태한’,‘난잡한’,‘늙은’,‘불안정한’,‘골골대는’…일터에들어올자격을박탈한‘낙인찍힌’이들의시선으로일의세계를바라본다.노동자의자격을지배하는정상권력의시선에서는이러한낙인이정상성의반대항이었다면,가치의위계를뒤집어보는시선에서낙인은정상성의거울상이다.‘열정적임’이우리모두가추구해야하는‘(정상)노동자’의자격이될수록,‘의지박약하다’는낙인은꼭그만큼누군가에게서일할자격을박탈한다.이책은“낙인의기능은비정상을추려내는데에만있지않다”는것,“규율과통제를수락하고,이윤의획득을긍정적가치로이해하고,자신의몸이그가치를만들어내는데사용됨을적극적으로수락하는”노력을잠시라도게을리하는모든이들을채찍질한다는것,그리하여‘(정상)노동자’들조차도사실상일터의낙인에서자유로울수없다는사실을새롭게비춘다.

이책을쓰며“나와연결된”일터의낙인들을우선하여떠올려보았다는저자는‘성실하지않은청년들’(나태한,의지박약한),‘혼자양육하는비혼모들’(얕보이는,난잡한),‘정신질환을겪는여성들’(나약한,불안정한),‘노년돌봄노동자들’(골골대는,짐스러운),‘과체중인사람들’(둔한,무절제한),‘국방의의무를다하지않는이들’(남자답지못한,결격사유가있는)의이야기를듣고풀어낸다.
1장‘생산적으로살아라?’는성실하지않은청년들의분투기를다룬다.‘자기관리’를넘어스스로를기업처럼운용하는‘자기경영적주체’로살아가기를요청받는시기에“차곡차곡스펙을쌓지않고,취업준비를유예하고,취업해도자꾸퇴사하고,사람들이정식일자리로보지않는곳에서만일을구하는”청년들이어떻게‘일할자격’과‘스스로를설명할자격’을잃게되는지(이들에게사회는‘게으름뱅이’,‘낙오자’외다른이름을붙이지않는다)를살핀다.동시에시장의원리를내면화한‘좋은일자리’의조건과이질서안에서만의미를획득하는‘성실’이라는가치,‘성실’과한몸이된‘불안’이라는감정이일의세계를어떻게작동시키는지살펴본다.

2장‘덮어놓고낳든,낳지않든’에서는한부모가정의가장이자노동자인여성들의이야기를다룬다.‘절박하기에’직장을쉽게그만둘수없는처지라고여겨지는이들은불안정하고고된일자리에쉽게고용되고,그로인해일터에서쉽게소진되고쉽게내쳐진다.어떤결정을하든‘그러게누가낳으랬냐’라는타박의시선과‘모자란어머니’라는자책의마음으로부터멀어지기어려운이들은비혼을말하는여성들조차비혼모의삶의종착지는결혼이라고여기는사회에서‘미완성’,‘난잡함’등의낙인을쓰고노동한다.이들의이야기는‘(진정한)어머니’가될수없다는것이‘(정상)노동자’로살아갈수없는것과어떻게포개어지는지를보게한다.

3장‘약봉지를흔들며걸어간곳,직장’에서는정신질환증상을겪으면서도“매일같은곳으로출근하고,인사권을지닌존재와한공간에서일하며,평판을공유하는동료들과점심식사를하는”직장인에주목한다.“버티면베테랑이된다”고말하는사회에서,아무저항을받지않는“진공상태”에머물자원이부족한사람들은남몰래‘광인’이된다.일터에서“인정받지못할까”불안해하고,“피해를끼치고싶지않아서”약을먹는다.그러면서도질환이일의효율을방해할까전전긍긍한다.“언제까지약을먹어야할지모르겠다”는이들의막막한의문을저자는“‘일터에나가기위해’약을먹는일을우리는언제까지계속해야하는가”라는질문으로바꾸어묻는다.

4장‘늙은사람을돌보는늙은사람의노동’에는80대노인을돌보는60대재가요양보호사들의이야기가소개된다.‘어르신’을“애”라고칭하며정해진방문일이아닌날에도돌봄을자청하는이들이왜자신의노동을‘일’이아닌‘봉사’로여기는지,노인에게가장많이마음을내어주면서도‘늙음’을가장두려워하는사람이될수밖에없는지를살펴본다.“만60세정년을정해둔세상에서만61세의노인이일하지않고는살아갈방법이없”는사회에서‘늙는다는것’에대한이사회의못미더움과배제가돌보는사람과의존하는대상으로,서비스제공자와서비스소비자로노인과노인이만나는공간에서관계와노동을어떻게구성하는지들여다본다.

5장‘뚱뚱해서게으르다고여길까봐’에서는과체중인이들의공적활동을이야기한다.‘뚱뚱한’몸이‘자기관리’의실패로여겨지는사회에서날씬함은그자체로능력이된다.이장에서는‘체중’이‘일할자격’을어떻게가르는지,일터내의입지와이미지를어떻게좌우하며일하는이의능력과평판에개입하는지를알아본다.동시에“지금의몸은나의몸이아니”라고여기기에체중을둘러싼낙인은당사자에게도진지한문제로인식되기어렵다는점을함께짚으며‘살아숨쉬는몸’을바라보는일에관해서도이야기한다.
6장‘군대보다편하니까’에서는“‘군필’이라고말하는것은금기시되고‘군대’라는단어도통용되지않지만병역의의무가수행되는곳”에서첫직장(발령받은근무지)을갖게되는‘사회복무요원’들의노동에다가간다.어딘가아프고손상되었다는이유로4급판정을받지만,“건강하지않은청년을상상하지못”하는사회에서이들은“꾀병”을부리며“꿀이나빠는”“나약한”남성이된다.‘취약한’이들이소환되는‘더취약한’일터의현실또한함께짚으며거대한노동시장의하부를떠받치는무상노동과강제노동의세계를살펴본다.

자격이아닌삶으로서일터에서기

일터에서부당함을겪은사람들을긴시간취재해온저자는그간“직장문턱”을넘을수있는사람들만을만나왔다는사실을깨닫고“직장문턱”을넘을수없거나그경계에서있는이들의노동에주목하게되었다고말한다.이책은“다른노동”의가능성을믿으면서도“성실과효율”이라는이사회의노동문법을놓지못하고있음을고백하는저자희정의솔직하고섬세한탐구로쓰였다.또한,자신을‘(정상)노동자’로호명하지않는사회에서스스로를설명하며일하려는인터뷰이들의치열한고민과용기로쓰였다.

누구나노동자가될수있고,되어야만한다고말하는세상에서‘일할자격’은사실‘일할능력’으로바꾸어불러야적절할만큼끝없는노력을요한다.이를짚으며이책은자격이박탈된‘비정상’이기에누군가가소외되는것이아니라,노동의문법에소외가필요하기에누군가가‘비정상’이된다는것을밝힌다.이책이보여주듯“일의세계가차별을통하지않고는굴러가지못하”는세계라면,‘일할자격’을박탈한이들은일의세계에서벗어나있는사람들이아니라일의세계를굴리는문법을“가장먼저겪는”이들이자,우리의몸에찰싹달라붙어보이지않는‘노동의문법’을떼어내보이는사람들이라고말할수있을것이다.

이책에서일터의낙인을탐구하는과정은사회가각각‘청년’의,‘어머니’의,‘노인’의,‘남성’의,‘신체와정신’의정상성을어떻게구성하고있는지를살펴보는과정과포개어진다.이렇듯낙인과정상성이만들어지고구성되는것이라면그러한낙인과정상성으로굴러가는노동의세계역시만들어지고구성되는세계일것이다.이제우리는이책을통해‘나는좋은노동자일까?’라고스스로의일할자격을검열하던것에서벗어나질문의방향을바꾸어볼수있을것이다.일터의정상성은무엇을향해있을까?우리는언젠가자격을말하지않고일터에설수있을까?

추천사

누군가는노동의대가를따져보기전에노동자로서의자격부터검증당한다.당신은‘정상적
인’사람인가.당신은‘우리’의동료가될자격이있는사람인가.
노동시장은젊고건강한노동자를원하고,젊고건강하지못한사람은노동자의자격조차갖추기어려워더큰경제적곤궁을겪는다.그리고이경제적취약함이다시건강을위협한다.이렇듯노동자의자격을지배하는정상권력은너무도정상적이라드러나지않는인권문제다.이책에담긴다양한목소리를통해자본주의사회에서노동시장이어떻게차별을정상화하며굴러가는지들어보길바란다.
-이라영(예술사회학연구자,『말을부수는말』)

‘우리는좋은노동자인가요?’,‘나는비정상적인가요?’라는질문은이책에서무력한말이된다.작가가마주한이야기들은불성실하고절박하지않은,한사람의몫을다하지못하는절망적인개인들의서사가아니라,강박적으로사람들에게‘정상인간’,‘좋은노동자’되기를강제하고규율화하는일터의모습으로드러나기때문이다.
희정작가가그러했듯이,독자들또한자신의삶과일터에서이이야기들을마주하고연결하기를바란다.우리는어떤자격으로일터에서는게아니라,매일매일을타인의노동과만나며삶을영위할존재로그렇게살아갈뿐이다.
-천주희(문화연구자,『회사가괜찮으면누가퇴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