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 : 주체와 타자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에 관하여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 : 주체와 타자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에 관하여

$27.00
Description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길어 올린 레비나스 철학의 정수
모국어를 배우듯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읽는 『시간과 타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 그의 대표작 『시간과 타자』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뒤 파리 철학학원에서 이뤄진 네 차례 강연(1946~1947)을 토대로 엮은 책이다. 레비나스 저작 가운데 가장 얇고 원서로도 80쪽밖에 되지 않지만, 난해하기로 이름 높아 도중에 책장을 덮고 만 독자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시간과 타자』를 일본의 지성 우치다 다쓰루가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충실히 새기면서” 6년간 독해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레비나스가 전후(戰後) 시공간에서 굳이 시간론을 꺼내 든 건, 깊은 고통의 시간을 겪은 사람으로서 자신이 몸담은 유대인 공동체에 ‘희망의 시간론’을 들려주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레비나스에게 시간이란 주체와 타자 사이에서 익어가는 어떤 것임을, 주체와 타자의 관계임을, 얼굴과 얼굴이 서로 마주하는 가운데 미래가 현재 속에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임을, 저자는 처음 모국어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천천히 더듬어 간다.
저자

우치다타츠루

‘거리의사상가’로불리는일본의철학연구가,윤리학자,무도가.도쿄대불문과를졸업한뒤에마뉘엘레비나스를발견해평생의스승으로삼고프랑스문학과사상을공부했다.도쿄도립대를거쳐고베여학원대학에서교편을잡고있다가2011년퇴직하고명예교수가되었고현재는교토세이카대학의객원교수로있다.글을통해70년대학생운동참가자들이나좌익진영의허위의식을비판해스스로를‘업계내에서신보수주의...

목차

한국어판서문
들어가며

예비적고찰
1.살아남은자
2.후설의현상학
3.현상학과성서
4.신앙과시간
5.유책성(1)
6.유책성(2)
7.유대적인앎

1강읽기
8.레비나스를해석하는규칙
9.‘실존’의고독
10.‘실존자’없는‘실존’(1)
11.‘실존자’없는‘실존’(2)
12.‘실존자’없는‘실존’(3)
13..‘실존자’없는‘실존’(4)
14.‘실존자’없는‘실존’(5)
15.‘실존자’없는‘실존’(6)
16.‘실존자’없는‘실존’(7)
17.‘실존자’없는‘실존’(8)
18.위상전환(1)
19.위상전환(2)
20.위상전환(3)
21.위상전환(4)
22.위상전환(5)
23.위상전환(6)
24.위상전환(7)
25.고독와위상전환/고독과질료성

2강읽기
26.일상생활과구원(1)
27.일상생활과구원(2)
28.세계에의한구원―양식
29.빛과이성의초월(1)
30.빛과이성의초월(2)

3강읽기
31.노동
32.고뇌와죽음
33.죽음과미래
34.죽음과타자(1)
35.죽음과타자(2)
36.죽음과타자(3)
37.외부적인것과타자
38.시간과타자

4강읽기
39.얼굴을감추는신
40.권력과타자관계(1)
41.권력과타자관계(2)
42.원초적인뒤처짐(1)
43.원초적인뒤처짐(2)
44.시간의식의성숙(1)
45.시간의식의성숙(2)
46.응답책임(1)
47.응답책임(2)
48.응답책임(3)
49.응답책임(4)
50.에로스(1)
51.에로스(2)
52.에로스(3)
53.주인과노예의변증법그리고타자의부재
54.로젠츠바이크(1)
55.로젠츠바이크(2)
56.로젠츠바이크(3)
57.로젠츠바이크(4)
58.에로스(4)
59.에로스(5)
60.에로스(6)
61.에로스(7)
62.타자와외부적인것
63.풍요로움(1)
64.풍요로움(2)
65.풍요로움(3)
66.풍요로움(4)

맺음말

약호

옮긴이의말:오래된악보를연주하는생명의시간

출판사 서평

살아남은자의책임
―레비나스그리고『시간과타자』

20세기유대인철학자에마뉘엘레비나스는철저한‘이방인’의삶을살았다.1906년리투아니아에서태어난레비나스는러시아혁명으로유대인박해에시달리다가독일과프랑스에서수학하고,2차세계대전당시프랑스군이되어독일군의포로로잡히고만다.친척대부분을강제수용소에서잃은뒤파리에돌아온어느날,그는철학학원에모여든청중을향해이런요지의말을남긴다.‘타자는이방인이자과부이고고아이며,그들을환대하는것은나의책임이다.’실제로그의아내와딸은나치점령아래파리에서말그대로과부이고고아인처지였다.다행히이들세사람은간신히살아남긴했지만말이다.
살아남았다는것.이에대한인식은전후레비나스의삶에서떼놓을수없는화두가된다.‘나자신이살아남은의미’를생각하는일이야말로,수많은친족과동료를강제수용소에서잃은홀로코스트생존자로서그가마땅히져야할의무이기도했다.하지만생각하면할수록다른누군가가죽고자신이살아남은데에는어떠한필연성도없었다.남들보다덕을쌓아서도아니고,신앙이두터워서도아니고,일부러누가살려준것도아니었다.그가죽고다른누군가가살아남았다해도이상할게없었다.“‘살아남은자’와‘살아남을수없었던자’사이에는실은결정적인경계선이존재하지않는다.그것이홀로코스트에서살아남은사람들이직면하게된비극이다.”(30쪽)
그리하여다시금레비나스는살아남은자로서,살아남은자만이이행할수있는책무를지기로한다.이것이훗날그의대표작으로손꼽힐『시간과타자』의출발점이었다.

시간은너와나사이에서흐른다
―우치다다쓰루가읽는‘희망의시간론’

『시간과타자』(1979)는장앙드레발이주관하는철학학원(Collegephilosophique)에서1946년부터1947년에걸쳐네차례이뤄진강연을토대로한책이다.강연당시레비나스에게는청년을대상으로한교육을통해,홀로코스트로해체위기에놓인프랑스유대인공동체를영적으로재생하게하는과제가주어졌다.
그런데왜하필‘시간론’이었을까.전쟁전의레비나스는강연에서후설의현상학과하이데거의존재론을논하기는했어도시간론을본격적으로꺼내든적이없었다.우치다다쓰루는“레비나스가철학학원강연주제로선택한‘시간론’이란깊은고통의시간을살아낸유대인에겐곧희망의시간론이었을것”이며“그점말고는레비나스가이시점에굳이시간론을논할까닭이없었다”고본다.(13쪽)
먼저『시간과타자』는다음과같은문장으로시작한다.“이강연의목적은시간이란고립한단독의주체와관련된일이아니라주체와타자의관계그자체라는것을증명하는데있다.”(13쪽)
여기서‘고립한단독의주체’라는것은하이데거의존재론을염두에둔말이며,더나아가서는플라톤이래서양철학의기본토대가되어온‘자기동일적인주체’개념을겨냥한말이다.정신에는외부가없고미래도없다는것,모든것은‘어수선하기는하지만’기지라는것,인간에게는타자가없다는것이오랫동안서양철학을지배해온관념이었다.(87쪽)그런데레비나스는그런고립된주체에게는시간이흐르지않으며,시간이란주체와타자의관계그자체라고말한다.이는자기동일적인(자기자신에게묶여있는)‘나’로부터벗어나그바깥을사유하는것이곧레비나스의시간론임을암시하는문장이다.
젊은날레비나스는후설문하에서박사논문을쓰고,당대독일최고의지성하이데거를상세히연구한바있었다.그러나하이데거가나치즘에복무한뒤로레비나스는더이상그의조술자노릇에머물수가없었다.단순히하이데거가나치스에입당한사실때문만은아니었다.고립된주체를내세우고타자를무화해버리는하이데거의존재론자체에,어쩌면오랫동안서구인들의의식을지배해온사상전반에홀로코스트의씨앗이뿌려져있을지모른다는의혹을품게되었던것이다.
레비나스는‘나’아닌것을상상할수없고‘지금/여기’에만묶여있는사람들,과거를‘조금전의현재’로또미래를‘조금후의현재’로밖에보지않는사람들,누구에게도‘뒤처짐’과‘죄의식’과‘응답책임’을느끼지않는사람들,즉하이데거존재론의권역으로부터나올수없는사람들손에서홀로코스트가만들어졌으리라고여겼다.(289쪽)
‘시간과타자’강연무렵집필한『실존에서실존자로』를통해레비나스는기존서양철학의권역으로부터이탈하고싶은깊은욕구를이야기한다.(103쪽)타자,미지(未知),현재/현전,책임(유책성)등레비나스시간론의중심을이루는개념들은바로그욕구에서파생한‘어휘꾸러미’라고볼수있다.여성과비체(卑體),퀴어,장애,비인간동물등을둘러싼소수자담론이달아오르고있는오늘날,우리가레비나스시간론에특히주목해야하는이유다.

모국어를배우듯레비나스언어에다가가기
―우치다다쓰루식독해법

『시간과타자』는짧고도난해한책이다.40년가까이레비나스를연구해온우치다다쓰루역시몇몇개념에대해서는“끝끝내그것을‘습득’할수없었”다고고백한다.(448쪽)그럼에도『시간과타자』를붙드는이유는분명하다.책이그에게말을걸어왔기때문이다.이는책내용을이해한다는것과는다른의미다.
어떤메시지의의미를잘모르더라도그메시지가나를향해말을걸어온다는것,말하자면메시지의수신처가나라는것은알수있다.성서속하느님이“아브라함아!”하고불렀을때“예,여기에있습니다”하고답하는아브라함처럼,부름에응답하는것이곧나의책임임을『시간과타자』는줄곧강조해왔다.응답함으로써비로소타자와나의관계가생성되고거기서부터사건이발생하며시간은흐르기시작한다고말이다.
그리하여우치다다쓰루는‘레비나스처럼레비나스읽기’를시도한다.의미를모르더라도,모른채로읽어나가는것.이는어린아이가모어를습득하는방법과도유사하다.아이는엄마가들려주는말을,그뜻은모를지언정한글자한글자따라발음해가며언어를배운다.우치다다쓰루는그렇게더듬더듬‘레비나스어’에다가갈것을권한다.
요컨대이책『우치다다쓰루의레비나스시간론』은레비나스어초급자(한때『시간과타자』를읽으려다낙오한독자들,혹은어디서부터손을대야할지모르는초심자들)를위한독본이다.저자는다음규칙에유념해집필했음을밝히고있다.

1.‘알다시피’같은말을사용하지않는다.
2.‘모르는것’은그대로‘모른다’고쓴다.
3.한참진행하고나서“앞에쓴것은틀렸습니다”하며앞서서술한이야기를철회하는경우도있다.

이책이,혹은『시간과타자』가말을걸어오는듯한느낌을받는독자가있다면,부디저자의안내에따라끝까지,함께책장을넘겨나가자.미지의어휘가손끝에닿는경험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