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먹는것이나다’,
‘내가행하는것이나다’라는진리처럼
나는‘글은곧글쓴이다’라고생각한다.
아니,글만큼그사람자체인것도없다.”
정희진은《침묵의세계》에관해쓰면서침묵이란자기와나누는대화이며,자신과의만남이존재를뒤흔들수도있다는사실을발견한다.《근대초극론》을읽으며약자의자기찾기는비서구,여성,장애인등나를만든이들을모두거쳐야하는멀고복잡한과정임을떠올린다.《제2의성》을읽으면서여성주의란,‘인간’과‘인간의여자’로나누는권력에대해질문하는인식론임을깨닫는다.프랑스혁명기의페미니스트올랭프드구주의전기《올랭프드구주가있었다》에서는위대했지만알려지지않은사람의역사는‘없는역사’이며,‘있었다’는결국‘없었다’는뜻임을깨닫는다.
장르를불문하고모든글은글쓴이자신의이야기이다.이야기를쓰는형식이다를뿐이다.영화든소설이든논문이든신문기사든,모두그글을쓴사람의이야기다.……
자기이야기를쓴다는것은경험을쓰는것이아니다.경험에대한해석,생각과고통에대한사유를멈추지않는것이다.그자체로쉽지않은일이고,그것을표현한다는것은또다른형태의산을넘는일이다.-‘심리적허기’·246,247쪽
“살아내는대로쓴다”
‘나’에게돌아오는글쓰기
글을쓰고자하는많은사람이흔히하는고민중하나는‘어떻게하면글을잘쓸수있을까?’다.이질문에대한정희진의답은‘살아내는대로쓴다’이다.이는‘몸으로쓴다’는표현과가장가깝다.그에게‘몸으로쓰는글쓰기’란,자신이겪은경험과이야기를자기만의언어로보여주는것이다.
《나를알기위해쓴다》에는정희진이읽고만난,자신에대한의문속으로뛰어들어글을쓴사람들에관한이야기로가득하다.‘글쓰기는삶과분리될수없다’는것을보여준뇌성마비장애여성운동가해릴린루소,생사를넘나드는우울증경험을씀으로써고통받는몸에대한새로운사유로나아간작가엘리자베스워첼,인종주의·외모지상주의사회에서뚱뚱한흑인여성이겪는일상에관해기록한작가록산게이,쓴다는것에대한막막함과아득함,그리고그고통이글쓴이에게오히려위안이될수있음을알려준소설가정찬…….
글은아는것을쓰는것이아니라아는것을버리는과정이다.앎이란,지식의습득이아니라지식을다르게배치하는것이다.지식이자료에불과함을증명하는일이다.그래서진보(進/步)의방식은계속걷기고,보수(保/守)의도구는과거를지키는익숙함(진부함)이다.쉬운말은지배자,사기꾼,게으른이들의언어다.한국사회처럼스트레스가많은곳에서는선호될수밖에없다.생각은엄청난노동이기때문이다.
자기모순은언어를빼앗긴이들의운명이다.이것이지배와피지배관계의핵심이다.강자의삶과기존의언어는일치하지만약자의삶과언어는불일치한다.
-‘길에서살고길에서죽다’·165쪽
우리사회에는장애,성별,이성애제도에대한지식이없다.나는‘정상인’들의무지가차별의엔진이라고생각한다.당하는입장에서는매번대응할수도없고,교정을요구할수도없는고단한삶이다.무지를부끄러워하기는커녕나서는사람들이있다.이유는간단하다.그래도되기때문이다.세상에서가장무섭고해결하기어려운권력은‘몰라도되는권력’이다.……세상에서가장어려운글쓰기중하나는사회적약자의자기재현이다.
-‘무지는어떻게나댐이되었나’·178,179쪽
‘여성주의’와글쓰기
저자는이책에서‘여성주의’를틀로삼아기존의인식체계를질문하는‘여성주의글쓰기’가무엇인지보여준다.
정희진은“내게‘여성’은고통이자자원”이라고말한다.여성에관해서,여성의삶에관해서쓴다는것은때로는그를자기혐오와연민,피해의식,분노로가득차게한다.하지만그는글쓰기를멈출수없다.여성에관해쓴다는것은나자신을아는일과맞닿아있기때문이다.
나도믿기지않는이야기를타인에게어떻게설득할까.사람들이믿지않을까봐경미한사례만간략하게인용하고분석에집중했다.그러나많은이들이“과장이심하다.”,“〈주부생활〉표절한거아니냐.”는독후감을말할때두번째좌절이왔다.“어머니가맞고사시냐.”,“매맞는남편도있다.”,“폭력가정은극소수다.”처럼여기다적을수없는내용이세번째좌절이다.왜여성의경험을,말을,생각을믿지않을까.
-‘임신중구타가유아사망의주원인’·212쪽
단도직입적으로여성주의만큼글쓰기에도움이되는학문은드물다.아니,글쓰기와여성학의인식론,방법론은거의같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인문학은언어의역사이고,여성주의는언어의역사가형성된과정에대한질문이기때문이다.언어를자명하게받아들이지않고,그것이만들어지는과정에개입된권력관계를질문한다면,기존여성주의를포함해세상의모든언어는상대화와붕괴(의미의다변화)의운명을타고났다고할수있다.따라서여성주의와글쓰기공부는별개의실천이될수없다.-머리말·15,16쪽
내용구성
1장몸에서글이나온다
-‘나’에게돌아오는글쓰기
1장은‘어떻게글을쓸것인가’에관한정희진식글쓰기방법론을보여준다.정희진에따르면,좋은글쓰기란통념과상식,기성의것과상투성에머물지않고텍스트를나만의것으로재해석하는것이다.이러한글쓰기과정을통해나는어떤사람인지,나는어떤위치에서있는지알수있다.이것이‘나’에게돌아오는글쓰기다.
나는누구인가.모든사람이이질문을하는것은아니다.이물음은내경험과사회의시선이일치하지않을때,타인이멋대로나를규정할때솟아난다.나는누구인가를고민할수밖에없는상황은“넌누구냐?”라는심문(審問)에대한일차적반응이다.……
저자가일관되게문제삼는것은이러한상황이피억압자의삶을내내뒤덮고있는신문(訊問)의정치라는사실이다.‘여성’,‘아줌마’,‘성골(聖骨)과진골(眞骨)’이아닌사람,식민지사람은이중메시지상황에서늘자기를설명하라는요구에시달린다.
-‘나는누구인가를묻는저들’·25,26쪽
유럽의역사가인류의역사가된것은근대에이르러서다.서구가비서구를규정하기시작했다.그러므로서구를열심히연구하다보면질문은결국자신에게로돌아온다.나를알려면나를만든이들을거쳐야한다.비서구,여성,장애인…….모든타자들에게인생이란이렇게멀고복잡한우회로이다.이는피식민자의자기찾기는전통으로돌아가는것이아니라새로운사회로의이행,자신을다시구성하는과정임을깨닫게해준다.-‘끝을보고야만자의씁쓸함’·38쪽
진저리는몸이해체되기시작할때뼈와근육간의연결이이탈되기전단계의몸이다.진저리의최후는몸과영혼의분리,죽음이다.진저리치는글을쓰는작가는여러번죽었다깨어난다.……독자역시최소한의비슷한경험,진저리의연대가필요하다.그래서특정작가의작품을좋아하는것은개인의취향이아니라정치적선택이다.인간의변화는진저리를동반한다.독서에는반드시몸의반응이따른다.가벼운바람도있고통곡할때도있다.어쨌거나읽기전으로돌아갈수없다.여성들이여성학책을읽을때가대표적인경우다.-‘진저리를쳤다’·59쪽
2장우리는타인을위해산다
-‘너’를만나는글쓰기
2장은‘타인을만나는글쓰기’란무엇인지보여주는글을모았다.저자는더나은사람이되고싶은자기변화,타인을온전히이해하는것이삶의의미가되어야한다고말한다.“인생의절정은성별,계급,나이,심지어정치적입장을넘어서상호성장을위해자기가알던유일한세계를포기하는순간”에있다.자기중심성에서벗어나는것이야말로모든사유의시작이다.
호소하고싶은사연,모순된자기행동을이해받고싶은마음,몸에서말을내보내야만생존이가능한상태를수치심과상대방에게판단당하는걱정에시달리지않고말할수있는관계가얼마나될까.내가택한안전한관계는나자신과의대화인데,이방법은정신이분열될위험이있다.혹은신이나절대자와대화할수있다.하지만이역시결국은자신과의대화다.우리에겐타인이필요하다.타인과의상호작용은소중한차원을넘어존재양식과생사의문제다.
-‘안전한관계’·109쪽
나의바닥을드러낼수있는상대.아무리세게부딪쳐도흔들리지않고그자리에있는벽,나도믿기어려운경험을당연한듯믿어주는사람,내안의고통을비워줄수있는사람.‘진정하고무조건적인사랑’이필요한시간이있다.이사랑은말을들어주는것이첫째다.상대방의경험에대한수용력,호기심을품지않는예의,취약한상대방을조종하거나동정하지않는사랑.깊고신중한배려속에나를넣어주는사랑이다.-‘사랑은말하고싶음,말할수있음이다’·124쪽
자신을버리고언제나상대방이되는삶.바울은‘주인,이스라엘인,남자’가되기를버리고‘여자와노예’가되기로하지만실패한다.물론우리가아무리간절히타인이되고자해도진정타인이되지는못할것이다.요지는,바울의제안이다.타인이됨으로써약자의저항과융합을강조하는,공동체의윤리를발전시키자는것이다.
내가타인이되고자함은‘복음’때문이라기보다는다른세계로가기위해서이다.타인을수용하고온전히이해하고이해받을때우리는어떻게변형될까.-‘될수없는자’·169쪽
3장내게‘여성’은고통이자자원이다
-창의적글쓰기의가능성
3장은‘여성주의글쓰기’란무엇인지생생하게보여주는글들을모았다.‘#나는_잠재적_가해자입니다’해시태그운동,‘강남역10번출구’사건,‘남성페미니스트’의등장,‘가스라이팅’폭력등한국사회의젠더관련이슈를여성주의의관점에서다시쓴다.성차별과여성혐오,데이트폭력과살인(femicide)이일상인현실에서여성의이야기를쓴다는것은분노와고통이따를수밖에없다.여성에대해쓴다는것은여성,여성의경험,여성이처한현실에대해상상력이없는이세계에숨을불어넣는일이다.
헬렌켈러를다룬책중에서가장실체적진실에가깝다고평가받는도로시허먼의《헬렌켈러》를읽으면서위인전에는어떤종류의‘19금’이필요한가에대해생각했다.……위대한인물은부정의한사회와투쟁한사람들이다.그렇다면헬렌켈러가헌신했던사회운동에대한내용은언급되지않고,주류사회가인정한성취전달하는것이바람직한교육일까.
(이책의)가장큰장점은이렇게박제된인식에대한교정이자도전에있다.3중장애여성은공산주의자,페미니스트이면안되나?박제는생각보다무서운말이다.‘박(剝)’은벗기다,깎다,찢다라는뜻.그러니까아예다르게만들어버리겠다는의지다.
-‘사회주의자헬렌켈러’·193,194쪽
사실나를가장놀라게한사건은“나도잠재적가해자입니다.”라는‘운동’이다.잠재적가해자라니?남성이잠재적가해자라면,여성의현실적,현재적,일상적피해는누가저지른일이란말인가.물론‘선의’겠지만무지에서나온선의는지배세력의관용과성찰로둔갑하기쉽다.사회적모순에‘잠재’라는말은있을수없다.빈부격차를‘잠재적’이라고하는가?지역차별,장애인차별도일상적이고노골적이지잠재되어있지않다.성차별은더욱그렇다.따라서“나는잠재적가해자입니다.”는“나는성차별구조에서가해자의위치에있습니다.”로바꿔야한다.
-‘잠재적가해자?’·218,219쪽
여성의처지는같지않다.수많은차이가있다.계급,인종,나이,성정체성,지역,장애…….이것은단순한다름이아니라적대적모순관계다.그러나이런차이를여성으로일반화해버릴수있는권력이가부장제다.……여성이라는‘작은’공통분모하나때문에일상과목숨을잃는세상에서,여성은일시적으로“너는나다.”라는정체성의정치를주장한다.여성의저항은그자체로보편적인사회정의다.이들의목소리가가시화되면여성의복종으로성립되어온가부장제는이전과같을수없다.-‘네가나야’·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