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序文)
해미국제성지에는매일11시에미사가있다.
성당안에는순교자(殉敎者)들의온몸이묶인채땅속에묻힌장면과물웅덩이에빠진장면,커다란돌에떨어지는장면,큰나무에상투가묶여매달려있는장면까지네개의벽화가걸려있다.
처참한모습은바라볼수록그냥스쳐버릴수가없다.
평소에나는순교자들을생각하면막연하고암울하게느껴지는공포가두려웠고,행여라도이런고통이닥칠까하는염려까지파고들어알아보고싶지가않았다.때론누군가가나에게“성녀되세요.”라고말하는사람들이더러있었다.그때마다순교자들의그림자가아른거려그말을하는사람이얄밉다는생각마저들었다.결혼하고부터불치병과동행하며얼룩진운명앞에무탈하게하루하루를살아갈수있기를소망하며살았다.
40여년의투병생활로생사의길목에서죽음의강도몇번건넜는데,그때마다죽지않고이승에서좀더살기위해최선을다했다.그래서해미국제성지에있는네개의벽화가나에겐더욱예사롭지않게보였는지도모르겠다.어떤믿음이었기에저런죽음까지도감당할수있었을까?아무리그렇더라도가족들이있는데오열하는통곡소리뒤로하고어떻게죽어버릴수있었을까?
.도대체저죽음을어떻게바라봐야하나?성지에있는벽화를볼때마다그날의통곡소리가귓전을맴도는듯해서괴로웠다.이마을에사는사람들을통해해미국제성지에서순교하신분들의이야기를전해듣고혼자서곰곰이생각해봤다.아마모르긴해도조선시대에는굶주림등여러가지면에서열악한환경이었다.대지위를기어다니는숱한고통탓에사는것자체가고행이었기에,‘죽으면천국이있다던데거기나가버려야겠다.’고생각하며죽음을택하진않았을까?그리고는순교자들에대한생각을이어가기엔농촌들녘은환상이었다.어릴적시골마을에서살았던추억이그립고한가한여유로움이좋아,프란치스코교황님이방문(2014년)하셨던해미국제성지마을로이사를왔다.들판가득넘치는곡식들과들풀이자라는하루하루는새로웠다.찬란한태양빛은그대로대지를향했고,서녘하늘로떨어지는석양은마을전체를붉은장미색으로물들였다.참새들재잘대는소리가아침잠을깨우면개구리소리,풀벌레소리는밤하늘의달과별을이야기했다.계절을따라수많은생명은잉태되어열매맺고사라져갔다.여름날드넓게펼쳐진푸른들판은생명의색채였고,벼가익은황금들녘은생명의양식이었다.여린모가자라탈곡하기까지모든벼농사는기계가사람손을대신했다.흙을감싸며색채를달리한구름과바람과햇살과비는분주했다.
변화무쌍한날씨속저항하는대지에서농부들은겸손을배웠고,자연과동화된그들의순수한미소는내가숨쉬고살아있음을생생하게알렸다.힘이들때마다그토록애절하게찾아도침묵하신창조주하느님은대자연속에서들리지않고보이지않는얼굴로선명하게그냥계셨다.시골에서의호기심은1년을살고나니까많이사라져갔고해미국제성지에걸려있는벽화들에자꾸만다시마음이갔다.
순교자들에대해서좀더알아보기로하고접한순교자들이야기는나의편협함과무지를완벽하게
일깨웠다.그동안순교자들의믿음을너무나몰랐고잘못알고있었다.아니알아보려고도하지않고거부만했다.
순교자들의이야기는흐릿한정신이깨어나게하는청량제같았다.
우리신앙선조들은그옛날어두운시절이었지만세계사에서는유일하게선교사도없이교회가설립되고,수많은분이기꺼이목숨까지도바치는순교의길을걸었다.그래서한국천주교회를평신도교회,기적의교회라고부른다.순교자들의흔들리지않는순수한믿음이가슴가득파문을일으켰다.순교자를그시대만의이야기,그들만의특수한상황에서발생했던가슴아픈이야기로만여겼다.심지어《한국천주교회사》책을접할기회가더러있었으나재미가없어서항상뒷전으로밀어두고보지않았다.목숨바쳐순교하신우리나라신앙선조들께진심으로사죄드리며.....
그분들의경건한믿음이너무나자랑스럽다.한분한분을떠올릴때마다순교하기까지의당당한신앙인의모습을알아갈수록존경스럽다.
“나의주님,나의하느님!”을처절하게외치던전설같은조선의별들이야기가굴곡진개개인의삶으로간단하게그려질것이다.역사는계속된상호작용속에서현재와과거의끊임없는대화이다.
우리가역사를통해서알아보려는것은과거의사실을비추어현재상황을이해하고보다발전적미래를준비하기위함이다.
한국천주교회사,조선의역사,예수님의수난고통을통해현재를살아가는우리는무엇을추구해야하고,어떤점을고뇌해야하는가?21세기를살아가는우리는다원화된가치가공존하고온갖정보는진실과거짓이서로뒤엉켜넘쳐난다.모든것위에물질만능이되어버린세상에서경쟁에밀리면낙오자가되고,성실하게일만해선경제적자유가주어지지않는혼돈의세상이다.지구상의모든나라는하나로묶여과학기술,경제,사회문화,외교,의료,국방이라는방대한영역에서의각국의안보가,강대국을중심으로첨예하게부딪히며보이지않는곳에서치열하게싸우고있다,총성없는전쟁터와도같은국제사회에는강자가약자를집어삼키는정글의법칙이존재한다.
-----저자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