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상

작은 세상

$15.00
Description
여기 단편들은 1933년에 출간된 헤세의 단편집 『작은 세상』(Kleine Welt)의 총 일곱 편 중에서 네 편을 골라 옮긴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초기작품에서 대체로 성장하여 완숙단계에 이른 화자가 자신 내지 3인칭 주인공의 입을 통해 유소년과 청년 시절을 회상한다. 헤세 연구가들은 헤세가 이 이야기들의 소재 대부분을 자신의 과거에서 끄집어오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초기작품 대부분이 그리고 후기작품의 일정 부분이 자전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4반세기만에 출간된 단편집 『작은 세계』에서는 타인의 삶이자 곧 우리의 이웃 또는 우리 자신의 삶, 즉 타자 속의 자아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작품을 형상화한다.
예컨대 「문명과 야만의 이중주」에서는 칠순을 바라보는 포목점 주인 안드레아스 온겔트가 35년 전에 겪었던 ‘사건’, 즉 그의 약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착하고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잘 타는 온겔트는 노령의 고모로부터 결혼하면 가게를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결혼상대를 찾지만, “그에게 손을 내미는 아가씨는 한 명도 없었다.” 키 작은 그가 마음에 둔 “예쁜 아가씨들에게 그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일 뿐이었다.”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배우자를 찾지 못하자 온겔트의 어머니는 아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여자들과 사귀는 법을 익히게 해주기 위해” 교회성가대에 가입시킨다. 그는 예쁘고 명랑한 여자성가대원 마르그레트 디얼람을 사랑하게 되지만, 스무 살 안팎의 디얼람은 다른 성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노리개로 대할 뿐이다. 그는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짝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다가, 결국 젊은이들 중 가장 당돌한 약국조수의 도에 넘치는 장난을 계기로 그녀를 포기한다. 어느 날 성가대가 야유회를 가는 길에 전봇대만큼 키가 큰 약국조수가 온겔트를 번쩍 들어서 높이 솟은 떡갈나무의 맨 아래 가지를 잡게 하고 손을 놓아 버리자 온겔트는 속수무책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발을 허우적거린다. 이 모습을 본 청년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환성을 질러댄다. “자신이 깡그리 무너져 내린 채 영원한 조롱의 대상이 돼버렸다”고 절망하는 온겔트를 향해 디얼람이 소리친다. “혼자서 뛰어내려 봐요!” 결국 온겔트는 나무에서 떨어지고 만다.
짝사랑을 포기하고 슬픔과 절망에 빠진 온겔트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 여자는 다름 아닌 파울러 키르커, 그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눈여겨보던 그녀가 마침내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별로 예쁘지도 젊지도 않은, 자신보다 몇 살 연상인 그녀에게서 온겔트는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고 그 열매를 맺게 된다.
저자

헤르만헤세

(HermannHesse,1877~1962)
독일의시인이자소설가.15살무렵부터오로지시인이외에는아무것도되고싶지않다고생각하여학교를자퇴하고자살을기도하며,시계공장의견습공,서점의견습점원을거치는등젊은날갖가지방황과어려움을겪었다.마침내첫번째시집『낭만의노래』를스물한살에출간한이후현재까지전세계의수많은독자들로부터여전히사랑받고있는『데미안』『유리알유희』『나르치스와골드문트』『싯다르타』등오래도록기억될시와소설을남겼다.또한타고난평화주의자로서제1차세계대전당시에는전쟁을비판하여나치정권으로부터‘매국노’라는비난을받기도했다,노년을스위스의한적한시골마을에서보내며수채화를즐겨그리고정원일을매우좋아했다.

목차

문명과야만의이중주
사랑과우정의변주곡(라디델)
사랑의허상과실상(약혼)
운명의수레바퀴(발터굄프)

옮긴이의말
헤르만헤세의연보

출판사 서평

독일작가들중에서헤세만큼우리에게친근감을주는작가도드물것같다.헤세의이친근감을무엇보다도그의인도(동양)사상에서찾는연구가들이많다.그가살던시기(1877?1962)만해도유럽에서는이른바오리엔탈리즘이횡횡했다.이를테면서양은합리적이고성숙한국가들인반면동양은비합리적이고열등하며도덕적으로타락한국가들이라고매도하던시기였다.그러나헤세는일찍이,에드워드사이드의『오리엔탈리즘』(1978)이나오기훨씬이전에이런편견타파에앞장섰다.그는인도를비롯해서세일론,싱가포르등지를여행하면서동양의속살을들여다보고,동양인들의문화와전통이결코서양의그것과우열을가릴수없다는것을몸소경험했다.그러한경험이가장두드러지게나타난작품이장편에서는『싯다르타』(1922)를,단편에서는『소시민의일상』에수록된「로버트아기온」을꼽을수있을것이다.
이단편의도입부는다음과같은화자의서술로시작된다.

18세기에대영제국에서는새로운기독교가번성하면서새로운기독교활동이활발하게전개됐다.이기독교활동은[...]오늘날엔이교도개종을위한선교라는이름으로여러사람들에게널리알려졌다.
[...]학식이있고기독교신앙을지닌유럽인들이아메리카와아프리카,인도에서마치닭장을침범한담비처럼행동한것이다.[...]원주민들은아주거칠고,추잡하게유린당했다고해야할것이다.선교사들은이교도들에게희망을주기위해[...]왔다고했지만,토착민들에게는이들의선교운동도치욕감과분노를자아내게했을뿐이다.

「로버트아기온」은작가가이도입부에‘피와살’을붙여형상화한작품이다.젊은선교사아기온은이교도들을개종시키기위해인도로파견된다.그러나포교보다도자연에관심이더많은그는인도인들의원시성내지야만성을부정적으로보는것이아니라자연친화적으로,즉긍정적으로본다.화자는아기온의눈에비친인도인을“동물처럼온유한반라(半裸)의인간들이낙원의원시인이아니라수천년전부터사고(思考)하고,신과예술과종교를지닌사람들”이라고설명한다.그런가하면야만인들의이교와문명인의기독교를다음과같이비교한다.“아무도그이름을모르는신들과귀신들에게작은사발에든제물이봉헌되고,수백가지제식과수백개의사원그리고승려들이이곳에서는서로사이좋게공존하고있었다.고향인기독교의나라에서는한쪽교파가다른교파를적대시하고살해하는일이다반사였는데말이다.”여기서우리는화자가갈등하는기독교보다는화합하는이교를더긍정적으로파악하고있음을간파할수있다.종교의우열을거부하는법정스님은어느글에서다음과같은일화를가정법으로소개한다.“어느우연한기회에예수와석가가우연히만났다고가정하자.두성현은어떻게행동했을까?...두성현은아무말없이서로잔잔한미소만띠었을것이다.”
본작품에서이른바문명인을대표하는영국인브래들리에게서우리는저오리엔탈리즘이타파하기힘든편견임을확인하게된다.사업차인도에주재하는브래들리는지신의신념과일치하는정보만받아들이고그렇지않은정보는무시하는확증편향에사로잡힌위인이다.인도인들은“모두가거지요추잡한악마집단으로,점잖은영국인들은아예상종하지말아야한다”,라고역설하는그에게아기온이“하지만그런길잃은사람들을올바른길로인도하는것이바로제사명입니다!그러기위해저는그들과친밀하게지내야하고,그들을사랑하고,그들에관한모든것을알아야한다고생각합니다”,라고대꾸하자“조금지나면당신이사랑스럽게생각했던것보다그들에관해더많은걸알게될거요.[...]그들을사랑하게되기는힘들거요”,라고응수한다.
인도의벽지(僻地)소녀,천진난만한자연인나이사에매혹된아기온이그녀와장래를함께하겠다고하자브래들리는“난그들을항상일종의귀여운동물이라고만생각하오.재미있는염소나예쁜노루같은동물말이오.나와같은인간으로는보지않는단말이오”,라고대답한다.여기서우리는인종차별주의의전형을만나게된다.
인도에서밝은미래를찾은아기온은그의내적사명과성격에부합되지않는선교사임무를박차고자신의천성에맞는일자리를찾아나선다.

「발터?프」는19세기말에슈바벤의게르버자우라는소도시에거주하는주인공발터?프의삶을그리고있다.(게르버자우는독일슈바벤지방에실재하는소도시가아니라ㅡ고트프리트켈러가그의단편집『젤트뷜라의사람들』에서젤트뷜라라는스위스의가상지역을설정했듯이ㅡ헤세가꾸며낸가상의도시로그가유년시절에인상깊게경험한사건들을형상화할때작품의무대로즐겨사용하는장소이다.)헤세는이작품에서성실하고호의적인젊은청년?프의비극적인운명을묘사한다.?프의아버지후고?프는조부로부터물려받은가업을성실하게이어왔으나,일찍이불치의병에걸려죽음을앞에두게되자부인의만류에도불구하고외아들?프가가업을이어주기를바란다.어질고착한?프는죽어가는아버지의‘간곡한’요청을뿌리치지못한다.그러나자유로운영혼의소유자인그에게잇속내지이문을챙겨야할이직업,즉장사는어머니의우려대로기질에맞지않는다.정신적지주였던어머니가생존해있을때만해도그런대로성실하게가게를운영하던그는어머니마저여의자거의자포자기의심정으로장사에임한다.“가난한아낙네들에게는정량보다무게를두배로달아주거나아예돈을받지않았고,장날엔마부들에게팁을두둑이줬으며,농부의아내들이장을보러오면장바구니에치커리를덤으로넣어주거나건포도를한줌씩넣어줬다.”이렇게장사를거꾸로하는그를아버지의친구들과친척들이걱정하고만류하지만,그는자신의천성을배반하지못한다.끝내파산직전에가게를접고조그만땅을구입하여밭일을시작하지만그의외로움과허탈감,좌절감은더욱깊어진다.그는어머니처럼자기를돌봐주던가정부홀더리스에게자신의헛된인생을다음과같이토로한다.

어떤사람이먼곳에아름답고화려한도시가있다는얘기를들었어요.멀기는하지만그는그곳에가기를간절히바랐어요.그리하여마침내그는가지고있던모든것을버리거나남에게주고,모든친구들과작별을고하고떠났어요.멀리멀리힘이닿는한몇날몇개월쉬지않고갔어요.그리하여더이상돌아갈수없는곳까지갔을무렵,그는멀리있다는그화려한도시가실재(實在)하지않는신기루였다는사실을깨달았어요.그도시는현재도없고과거에도없었던도시였어요.

결국그는주위사람들로부터경원당하며정신병자로낙인찍히고,끝내스스로삶을마감한다.
우리는이작품에서자기정체성을상실한인간의몰락(個人史)과선의가왜곡되는사회(社會史)를목격하면서이런비극이19세기에국한된것이아니라오늘날21세기에도일어날수있고,목하일어나고있음을통감하게된다.같은맥락으로헤세는작품의마지막단락에서다음과같은경구를던진다.

한동안사람들은그의최후에대해많은이야기를했다.하지만그의운명이어떤것이었는지에관해서이야기하는사람은거의없었다.그리고발터?프가길을잃고헤매던어둠,우리모두가그어둠가까이에살고있다는것을생각해본사람은그리많지않다.

1909년에처음출판된「알프레트라디델」은이른바높은등급에서낮은등급으로간주되는직업으로‘퇴출’된젊은라디델의삶을조명한다.공증인이되기위해공증인사무소에서조수로일하는라디델은순진무구하고소심하지만,멋을알고,음악을좋아하는청년이다.그의기타솜씨는타의추종을불허했고,그가기타반주에맞춰노래를부르면동료들은앙코르를외치며환호한다.
공증인이란직업은그의취향에별로맞지않았지만,대학에갈실력이모자라담임선생과부모의권유에따라이른바중위권에속하는직업으로공증인을택한것이다.그러나우연한기회에옛학우프리츠클로이버를만나면서그의운명은바뀐다.프리츠는이발사조수로라디델보다‘낮은등급’의일에종사하기때문에친구를우러러본다.그러나여자친구가없는라디델은약혼녀가있는프리츠를부러워한다.라디델은프리츠와함께그의약혼녀집에갔다가그녀의언니마르타를만나사랑에빠진다.하지만두연인은예기치않은오해로헤어진다.
두문불출하며외로운나날을보내던프리츠는어느날모처럼집을나섰다가때마침시작된축제분위기에이끌려축제장에가게된다.젊은연인들이쌍쌍이축제를즐기는것을보면서외로움과“슬픔이북받쳐절망으로빠져들무렵,문득그의옆에서나직하게‘혼자세요?’하는음성이들려”온다.얼굴을들어보니“이마와깊은두눈에는곱슬머리몇가닥”이나풀거리는예쁜처녀파니가“연분홍빛을띤입으로웃고”있다.착한라디델은그녀와함께춤을추고,사랑에빠진다.하지만그녀는그의사랑을받아들일수없다고말한다.다음날까지100마르크를마련하지못하면병든어머니와함께거리에나설운명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
그는자기가그돈을마련해보겠다고감당하기어려운약속한다.그런커다란액수의돈을마련할길이없던그는회사사장이부치라고준지폐일곱장중에서한장을훔친다.이렇게범죄자가되면서까지마련한돈이었지만,이튿날약속한장소에서한시간늦게도착한그는그녀가전날자기에게그랬던것처럼다른남자와사랑의밀어를속삭이는것을목격하게된다.파니는‘꽃뱀’이었던것이다.
뒤늦은후회와더불어100마르크를다시사장에게돌려준그는사장의배려로감옥신세는면하지만회사에서쫓겨난다.고민끝에그는친구프리츠에게자초지종을고백한다.라디델못지않게마음씨착한친구는한참망설이며주저하던끝에그에게이발기술을배워보라고권한다.그렇지않아도공증인업무보다는머리손질에더즐거움을느끼던그는친구의제안을감사히받아들이고,친구가근무하는이발소에서도제수업을받기시작한다.이어서마르타와의오해도풀리고,“두친구는두여자와함께이무렵이면물이풍성해지는라인강폭포로산책을”나간다.
“면도를잘하고쪽머리를잘엮는것을최고의목표로삼는사람을자상하게묘사하는따위의허접스런일에왜당신같은작가가훌륭한재능을낭비하느냐?”는비평가들의질문에헤세는다음과같이대답한다.“나는어릴때부터욕심이없는소시민,이를테면라디델같은사람의삶을유머러스하고부럽다고생각했습니다.[...]솔직히말해서나에게는사랑에빠진어린남자직공과여자점원이영웅이나예술가혹은정치가나파우스트못지않게대단히흥미롭습니다.왜냐하면이들은드물고예외적인존재로고고한삶을살지않기때문입니다.[...]이따금나는이세상엔조연들만존재하는것처럼생각됩니다.파우스트와햄릿을포함해서말입니다.”
헤세의이대답은라디델에게만해당되는것이아니라,『작은세상』에등장하는주인공모두에게해당되는얘기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