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오래남아스스로역사가되다”
밀라노두오모대성당에새겨진2020년의기억
하늘위에서카메라로내려다본도시의골목,광장,도로에서사람의모습을찾기어렵다.평소라면인파로가득차생기넘쳤을테지만,지금은어딜둘러보아도정적만흐른다.이제카메라는밀라노두오모대성당을비추다가점점멀어지면서성당내부로화면을전환한다.텅빈성당에서<생명의양식>이오르간연주와함께흘러나온다.
2020년4월12일부활절을맞이해이탈리아출신테너안드레아보첼리가진행한‘희망을위한음악’공연은코로나바이러스로어려움을겪고있는전세계사람들을위로했다.특히<어메이징그레이스>가울려퍼지는가운데화면을가득채운웅장하고화려한자태의두오모대성당은수많은사람들에게강렬한인상을남겼다.앞으로사람들은밀라노두오모대성당을보면2020년한해의모습을떠올리게될것이다.
돌·물·피·돈·불·발·꿈7코드×7갈래로풀어낸
유럽도시역사속49가지결정적장면들
사람들은죽고사라져도그자리에남아스스로역사를증명하는도시들이있다.사람들이유럽도시를사랑하는이유는아마이때문일것이다.하루가멀다하고새로운건물이들어서는곳에서는도시의이야기도단절된다.하지만오래된유럽도시에는그위,아래,곁을떠돌며과거의기억을불러오는흔적들이남아이야기를전한다.이책은과거의역사를밝혀줄흔적들을찾아기원전5세기부터2020년현재까지시대와공간을넘나들며유럽도시를여행한다.이여행길에서독자는영광과수치,쾌락과고통,아름다움과추함,건설과파괴,문명과야만이만들어낸49가지의유럽도시풍경과마주친다.
여행의발길은한시대한공간씩머문다.특정장소를찾아가현재의모습을바라보며과거의모습을떠올린다.이책의저자윤혜준은이것을‘유럽도시시간여행’이라부른다.독자들은지금눈앞에있는성당,교회,다리,강물과거리에서과거의모습을보게될것이다.우리의여행을이끌어줄‘가이드의깃발’은불·불·피·돈·불·발·꿈의7개코드다.영문학자인저자는유럽도시역사의결정적장면들을한편한편의짧은이야기로담아냈고,그이야기를풀어낼열쇠로7개코드를설정했다.유럽도시를읽는방법은수도없이많겠지만,이처럼독창적이고흥미로운방식은지금껏없었다.
유럽도시에서는발걸음의속도를늦춰야한다
눈에보이는것만이다는아닐테니!
[CODE1돌]유럽도시의가장큰자랑거리는석조건물의우아한자태다.철근콘크리트의고층건물에서는느낄수없는역사와전통이고스란히배어있다.한때로마의신들이주인이었으나그리스도의십자가에쫓겨자리를내주어야했던로마판테온,신분을초월한황제와황후의사랑이모자이크에새겨져1,500여년간이어져오고있는라벤나산비타레성당,바르셀로나시민에게치욕이었으나지금은관광명소로변신한스위터델러공원등유럽도시의석조건물들은수없이주인과용도는바뀔지언정그자리에남아역사를기억하게한다.
[CODE2물]물없이는그어떤것도살아남기어렵듯도시또한그러하다.물하면떠올릴수밖에없는도시베네치아에서상업과종교의상관관계,로마에그토록아름다운분수가많은이유,당쟁으로망명생활을떠나평생피렌체로돌아올수없었던단테에게산조반니세례당이갖는의미를물과함께도시들을돌며찾아본다.
[CODE3피]산자들의몸에는피가흐르고살기위해피를흘리며,자유와정의를위해,분노와욕망으로피를낸다.물은제공할수없으니피로써민심을달래려한로마의콜로세움,가축들의피비린내가진동하고오물로가득찬런던시민의필요악이었던스미스필드축산시장,국가의폭력에맞서싸운부다페스트시민들의피가스며들어있는벰광장까지도시의역사에는언제나피의기억이존재한다.
[CODE4돈]돈과도시는떼려야뗄수없는관계다.도시에서는구원조차돈으로살수있다.돈을따라가면역사속수많은죄와벌의장면들을엿볼수있다.수도자이자르네상스화가였던프라안젤리코는후원자코시모데메디치의빈곤한영혼을위해피렌체산마르코수도원기도실에그만을위한벽화를그려놓았다.15세기베네치아귀족가문들은엄격한규율로뇌물과사치,부패와권한남용을금했으나도시를아름답게장식해줄화려한저택건축만은허용했다.콘타리니가문의‘카도로’역시한때황금빛으로찬란하게빛났으며지금도아름다운모습으로남아있다.
[CODE5불]물이그렇듯불도인간의생과사를좌우한다.유럽도시의역사에서불은‘죽음’에좀더깊이관여했다.프라하베틀렘스카예배당에가면교회의타락을비판하다가불길속에서한줌의재로변한얀후스의흔적을쫓을수있고,런던블룸스버리의거리에서는19세기에버려지는석탄재로만든벽돌로지은집들을만날수있다.물론석탄재를마셔가며벽돌을만들어야했던건가난한노동자들이었다.
[CODE6발]유럽도시에서는발걸음의속도를늦춰야한다.바르셀로나의바리고틱,파리퐁뇌프다리,로마아피아가도는천천히걸으며과거그거리에서들려오던소음,풍기던냄새까지떠올릴수있는산책자를위한여행지다.
[CODE7꿈]도시에서사람들은꿈을꾼다.산미니아토알몬테에서내려다본피렌체처럼소박한정의가살아있는도시를꿈꾼단테,인간최후의그날을바티칸시스티나경당천장에그려놓은미켈란젤로,빈케른트너토에극장에서<합창>을초연하며화평한이상사회의꿈이유효함을선포한베토벤,그리고마지막으로2020년4월12일부활절에밀라노두오모대성당에서전세계를향해희망을노래한안드레아보첼리까지.사람들은도시에서꿈을꾸고,도시는그꿈을품는다.
코로나19로전세계의발이묶인지금,
도시가들려주는이야기를들어야할때
이책의주인공은사람이아니다.도시그자체다.오랜세월인간의삶을지켜보며간직해둔이야기를풀어놓는다.도시의역사에는수치와영광,추함과아름다움이공존하지만좋은것만보여주지않는다.있었던사실그대로를담담하지만묵직하게들려준다.
최근들어1년가까이발이묶여버린사람들이이맘때나는어디에있었는지를추억하며개인SNS에여행사진을올리는것을많이볼수있다.여행에서내가무얼먹었고,어디에갔고,무엇을했는지를이야기한다.우리는앞으로도당분간멀리떠날수는없을것이다.그렇다면지금은차분히앉아유럽도시들이들려주는이야기를들어보는건어떨까?언젠가다시그곳을찾게될때더많이반가워할수있도록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