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신곡』(지옥의문)에서‘나를거쳐가는자는일체의희망을버리라’라고적고있다.희망이없는곳이바로지옥이라는것인지?
우리인간들은모두인종과성별에관계없이‘지구’라는학교의동창생들이다.인간들은앞서거니뒤서거니아름다운지구행성학교를졸업하게된다.그리고그졸업이영원한마지막이될것인지또는새로운시작이될것인지는,단테가노래한‘희망’이그순간우리에게있는가에달려있다.나는지구학교의동창생모두가매순간순간그리고언제까지나기대와희망속에살아가기를원한다.
한편으로우리는신을완전히알지도,충분히설명하지도못한다.다만신비의숲이있었다.
나는소설가라는기성복에나의몸을맞추어넣었다.비교적만족한다,세상에내걸린모든옷들가운데나에게가장편한옷이었다.나에게는헐렁하고고독한자유가있다.그리고공감하기를원한다.그래서나는편지를보낸다.새롭게집필을시작할때마다습작이아닌완주를기원하지만,나는절반의성취에만족한채,또다시다음항해를기약하곤했다.목적지에도착하였을때에도,나는항구에잠시기항할뿐그항구에영원히귀속되기를바라지않았다.
오늘도힘을내어나의마음속전지전능한제독에게타전한다.내가사랑하는사람들에게열한번째편지를부쳤습니다.
[책속으로추가]
감수성은이렇게중얼거렸다.노숙자그누구라도자신과입장을바꾸어살아가기를원한다면감수성이가진재산을모두내어준다고한들무슨대수이겠으며,생명을단하루라도더연장할수만있다면,현재그들의초라한처지나모습도,나아가그어떤악마적제안이라도받아들일수있다는생각이었다.그러나억만장자이며영화제작자인감수성이한갓노숙자인허상의처지를그토록부러워한다는것을허상이꿈엔들알수가있었을까?
감수성이그가걸어가는모습을멀리서내려다보고있다는사실도모른채,노숙자허상은예술대학의지하푸드코트에서풍겨나오는구수한빵냄새가코에스며들자신음하듯말했다.
“배가고파,속이너무나쓰려오는군.”
며칠전,허상은빵대신위스키를사서외투주머니에넣었다.데생모델료로받은돈을몽땅털어술을사버리고말았다.그러고나서는번번이이렇게후회를하는것이었지만,돈이생기면허상박사는우선적으로위스키를구입했다.그는무의식중에외투안주머니에꽂혀있던위스키병을꺼내서입에까지가져갔다가꾹눌러참았다.이런행동이야말로허상이초인적인인내심을발휘한것이었다.그나마유일한수입원인미술대학누드드로잉모델자리만은반드시지키기위해서였다.그가위스키병을꺼내서입에대었다가흠칫놀라며다시낡은외투안주머니에꽂는광경을병원의창을통해바라보고있던감수성감독이말했다.
“그는먹고싶은것을먹을수있어,술도마실수가있지,나와는비교할수도없어!돈이많아도나는아무것도먹을수없고단지링거를맞을뿐이야.젠장,링거액이온통위스키라면좋으련만.”
이제노숙자,허상은감수성의부러움을뒤로한채시야에서사라지고말았다.허상이예술대학의건물안으로들어가버렸기때문이었다.
최근감수성은한가지의문이생겼으며그것은온통그의마음을사로잡았다.‘신은왜인간에게고통을주는가?’라는것이었는데,그것은무엇때문에죄없는자신을고통스럽게하는지에대한불만이었다.감수성은하루에도서너번씩극심한통증에시달렸다.진통제의기운이떨어지는순간,고통에몸부림치며신을원망하는것이었다.감수성의얼굴은점점새까맣게타들어갔고몸은말라갔다.그러나이런외모의변화에못지않게,죽음을피할수없다는자각에서비롯된우울증이그의마음을송두리째갉아먹고있었다.
감수성의담당의사,닥터최면이회진을할시간이었다.최면박사가했던말이감수성의귓전에울렸다.
“신은축구경기의규칙을정해주고는인간들에게인생이라는축구경기를뛰게하는거예요.저마다최선을다하겠지요.”
그는또감수성의눈을보며말했다.
“공정한경기를치르기위해서는한사람만을특별히도와줄수는없어요,경기가끝날때까지지켜보는겁니다.인간의자유의지는중요하니까요,인간은결코신의마리오네트가아니라는거죠,”
바로며칠전이었고,감수성은‘그는왜이다지도쌀쌀맞고차가운가?’라고생각했다.굳이하지않아도될말을하는그에게감수성이이런대답을했다.
“그렇다면,신이정해준축구경기의규칙은대단히중요하겠군요?”
“아마그럴겁니다.규칙들로인해신이인간을방치하거나섭리하지않는다는오해는받지않게되었어요.그래서말인데요,당신이인생이라는축구경기에선수로참가하여시합을벌이는중에혹시라도경기의진행에대한의문이나회의가생겼을때에는그규칙들을꼼꼼히적어둔약속의책을다시한번살펴보라고권해드리고싶네요.”
“하지만경기도중치명적인부상을입었을경우에도,경기규칙을정해준이는그냥바라보기만할뿐이라는사실도알게되었어요.나는단지그것이불만이라는겁니다.”
최면박사는세상에불치의병이존재한다는점에서,의사로서자신의입장이불리해질수도있다는걸알았는지더이상감수성과의대화를이어나가지않았다.감수성이보기에그는출간된지오래된약속의책이중요하다는것에대해꾸준히설득하려는것이겠지만,그런말이감수성의귀에들어올리가없었다.죄없는자를고통에빠뜨리는것은단지불합리할뿐이었다.그리고그절망과고통의한가운데빠져버린자가바로감수성자신이었다.그결과감수성은절망으로흠뻑젖었고회한과고통의눈물을줄줄흘렸다.그리고그는미쳐가고있었다.
감수성의머릿속에떠오르는경기의규칙이있었다.그것은최면박사의진료실,그의의자바로뒤벽에걸려있어서그를만나러갈때마다어쩔수없이보게되는것이었다.‘항상기뻐하고,쉬지않고기도하며,모든처지에서감사하라’(데살로니카1서,5,16∼18).그러나그것이감수성에게어떤도움을준다는것인지,정말로그를고통에서벗어나게해줄것인지에대해서는회의적이었다.감수성은주치의최면박사의권고를일단무시하기로했다.‘폐질환의전문의인그가주제넘게도인간의정신마저치료하려는것인가?’감수성이이렇게반감을가지는배경에는닥터최면이결국감수성을살려낼수없다는데서오는강한불신이도사리고있었다.그리고절대로포기하지말라는말까지덧붙이는최면이얄미웠다.‘최면박사의능력으로는감수성을살려낼수없으니스스로초인적인힘을발휘하여살아나든말든마음대로하라는것이나무엇이다르단말인가‘감수성은이렇게마음속한가득불만을품었다.감수성은돌이킬수없는부상을입은채절룩거리며그라운드를기어다니는중이었다.감수성은신이마지막으로선의를베풀듯그에게준추가연장시간을뛰고있었다.그가병에서회복될수없다는선고를받는그순간,정규시간은이미끝이나버렸다.그리고시시각각경기의마지막을알리는최후의호각소리가울릴시각이목을조이듯숨막히게다가오고있었다.
감수성은최면박사가회진할시간이되었는데도병실로돌아가지않고병원과인접한시립도서관으로향했다.감수성은이때마치블랙홀로빨려들어가는기분이었다.시간은멈추었고공간은낯이설었다.그는휠체어를병실의복도에그대로놓아둔채비틀거리며승강기까지걸어갔고마치다른차원으로넘어가는자처럼승강기에올랐다.승강기의문은‘블랙홀의문’처럼소리없이열렸다.잠시뒤,승강기가1층에도착하자그는블랙홀의이면을통하여다른차원으로나가는사람처럼병원의출입구를향해걸어나갔다.병원과도서관을경계짓는담장에는또하나의문이있었다.이좁은문은시간과공간그리고4차원의또다른경계였다.
같은시각,미술대학의실습모델인노숙자허상이소묘실습실의문을열고들어서자학생들이손으로는바삐화구를챙기면서도눈으로허상을맞이했다.노숙자허상은대기실에서이미탈의를하고알몸위에바바리만걸친상태였다.실기학점을취득하기위해학생들은실습에매달렸다.허상의경우는다른모델과는다른면이있었다.학생들은그가저명한양자물리학자라는것과,비록미쳐버렸다는이유로학계에서퇴출되었지만데생을하는동안그에게서돈을주고도들을수없는유익한물리학강의를덤으로들을수있다는것을경험으로알고있었다.노숙자허상박사가자세를잡고앉자학생가운데한사람인신비가보온병에넣어두어아직도온기가그대로남아있는우유를그에게권했다.이런행동은양자물리학이나천문학에대해이야기를들려달라는부탁이었으며,학생들은데생과아울러그의물리학강의를들을준비가되었다는신호를보내는것이기도했다.신비는허상의얼굴윤곽이뚜렷한점이데생을하기에좋다고생각했다.허상이너무나여윈탓도있었지만원래부터그는광대뼈가솟아오르고눈은움푹들어가서비록태생적으로는한국인이었지만서양인의골격을가지고있었다.더욱이갈비뼈가앙상해서학생들사이에서‘미스터해골’이라는별명으로불리어졌다.신비는종합예술대학의미술단과대학과대표로서드로잉실습모델을선정할권한을가지고있었다.그리고허상박사는신비의친구인이미지의아파트에간혹머무는자이기도했다.허상은스티븐호킹박사의말을자주인용했다.그러나그는영국에한번도가본적이없는아이비리그출신,우물안개구리였다.
“당신들은자신들이하고있는예술작업을좋아하나요?여러분들이좋아하는일을하세요.”
이에신비는회화뿐만아니라변호사가되어안정적인생활을할수있는법학도너무나좋아하는분야라고스스로에게주문(呪文)을걸었다.신비는돈벌이가안되는천직(天職)인화가를계속하기위해서로스쿨에진학하려는것이었다.
크로키데생최강의모델,허상이앉은자세로강의를시작했다.그는독배를들기직전의소크라테스와흡사한모습이었다.신비는허상박사가무엇때문에과학자로서의명예를굳이마다하고노숙자가되었는지궁금했던적도있었다.허상이입을열어말하기시작했다.
“여러분은지금무언가를보고있어요,그게뭔가요?아마도좀더주의깊게나를바라보고있을거라여겨지는데,데생을하기위해서는그럴필요가있으니나무랄생각은아니야.하지만여러분들이보고있는나는,허상(虛像)일뿐입니다.”
허상의이야기는늘이런식이었다.물질을구성하는기본적인입자인원자는실제로는입자가아닌단지파동이므로인간은‘없는것’을‘있는것’으로착각하는것이며,그래서결국모든인간은허구의세계에살고있다는것이그의요지였다.
“모든물질은원자로되어있고,원자의구성요소의하나인전자는입자처럼행동하며인간들의눈을속이지,하지만그건단지파동에불과해.우리가눈으로보고있는사물은실제로는없는거야,단지있는것처럼보일뿐이라는말이야.”
학생들은반신반의하는쪽과,그의말에아랑곳하지않고실습에만열중하는두가지부류로나뉘어졌다.누군가가물었다.
“입자처럼행동한다는건무슨뜻인가요?”
“우리가의식하며지켜보고있을동안은입자,즉,물질의알갱이인척하다가지켜보지않으면이내파동으로변해버린다는거지.”
신비의의식속에서허상의언어는들렸다가멀어지기를반복했다.신비가데생에집중하여그의말에귀를기울이지않는동안은아무말도들리지않았다.이와같이,신비가주의를기울여무언가를듣거나보지않으면아무것도눈에들어오지않는그순간,실제로도물체가파동으로변해사라져버렸다는것인가?하지만허상박사는조현병력을가진자이기도했다.그는학생들이듣건말건강의를계속했다.
“물질을구성하는원자는태양계와비슷한구조를가지고있어,원자는태양같은원자핵과그주위를도는행성같은전자들로구성되지,하지만문제는이거야,한개의원자를축구장이라고가정한다면,원자핵은하프라인중심에놓인축구공이고전자는거대한축구돔구장의바깥저멀리에떠도는먼지정도라고할까,결국한개의원자는너무나성긴,텅빈구조를하고있어.더욱이전자는너무나작아서있는지없는지의심이될정도라면문제는더욱심각해지고말아.세상이파동이아닌입자,즉,물질이라고할지라도결국헐렁하게비어있다는것을알수있어.”
그의말을듣고있자니신비의머릿속도텅비어버린느낌이었다.신비는허상박사의현재처지나모습에대해같은한국인으로서안타까움이있었다.그래서그를원래의상태로되돌릴수있는능력이그녀에게주어진다면허상을물리학과교수이며과학기술원종신회원의위치로되돌려놓고싶다는허황된꿈을꾸었다.초라한순례자같은허상의모습은누가보아도안타까운몰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