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문화를음에서양으로끌어내는일은
우리사회의낡은믿음을뒤엎는시도다!
동아시아부적문화의최고봉이‘태극기’라는사실을사람들은알까?마찬가지로우리삶과떼려야뗄수없는24절기가운데입춘날‘입춘대길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이라는글귀를붙이는세시풍속역시오랜부적문화에서비롯되었다는사실을아는사람들은많지않다.
이렇듯우리가평소에잘의식하지못할뿐우리삶곳곳에는부적문화가보편적가치로두루녹아있다.이책은인간의행복추구와삿된기운을막고싶어하는우리민족의간절한염원이각종생활도구와의복,건축,문헌,그림,풍습,종교등문화사전반에서오랜시간우리와함께살아숨쉬고있음을하나씩밝혀나간다.
그동안주술의상징이라고무조건폄하해온우리의부적문화에대해거부감부터드는것은어찌보면당연하다.과학이발달하기이전민속신앙과미신이지배적이던시대에부적문화가자리잡다보니주술성짙은부적(종이)의형태만부각되고,그안에깃든상징성은철저히외면당했기때문이다.저자는이책에서부적을음에서양으로끌어내는작업을통해우리사회에만연한낡은생각들을뒤집는다양한시도를보여준다.
“몸에‘왕(王)’자를새기고,중요한날붉은속옷을입는이유는?”
『동의보감』에도수록된부적의효능
부적에는유독‘왕(王)’자와‘일(日)’자가많이쓰인다.이는왕조국가에서절대적군주권을의미하는권위와나쁜기운을혁파하는태양의밝은기운을통해모든문제가잘해결되기를기원하는의미에서다.이런이유로승리를기원하는부적에는‘임금왕’자가,시험합격을기원하는부적에는‘날일’자가많이등장한다.그렇다면부적의글씨는왜붉은색일까?
『동의보감』에따르면부적을쓰는재료인주사(朱砂)는“불의성질을띠어서색이붉으므로심(心)에들어가마음과정신을조절한다”고쓰여있다.또“정신을기르고혼백을편안하게하는데,오래복용하면천지신명과통한다”라고도한다.우리가과학적의서라고여겨온『동의보감』에이런주술적인내용이쓰여있는게놀라울따름이지만,실제로주사의성분에는마음과정신을진정시키는효능이있을뿐더러과거에는부적을태운재를물에타서먹는일이흔했기에한의학에이런내용이수록된것일테다.
이런주사의효능은곧부적의영험함으로연결돼,오늘날형식만다를뿐운동선수들이중요한경기날붉은속옷을입는것도이와무방하지않다.즉붉은색이좋은기운을가져다준다는믿음의상징으로서,붉은속옷은부적의다른의미인것이다.
하지만부적에서나볼법한내용들,이를테면귀신을보는방법인‘견귀방(見鬼方)’,남성태아를여성태아로바꾸는‘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아이를빨리낳는‘최생부(催生府)’같은처방이부적책이아닌동아시아최고의의서이자2009년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지정된『동의보감』에수록되어있다면,우리는이를어떻게바라봐야할까.
『부적의비밀』이궁극적으로말하고자하는핵심도바로여기에있다.『동의보감』에서다루는의학의범주가현재우리가생각하는것과차이가있는것처럼,한의학보다연원이오래된부적역시인간의모든요구에대응하기위한당대의고민과생활상을반영하는문화적산물로서시대를읽는코드로볼수있어야한다고말이다.이런시각에서부적을바라본다면부적의효능이얼마나허황한지를논하기에앞서,그옛날부적에라도의지해야했던사람들의애환과설움을먼저헤아릴수있지않을까.
“시대에따라미의기준이바뀌듯,부적역시당시의주된문제의식을공유한다.과거에는임신과출산에따르는위험이현재보다현저히컸기때문에이에관한부적이상당했던반면,오늘날큰비중을차지하는불임문제를해소하는부적은상대적으로적었다.(…)또첩과관련한부적은사랑을잃은부인들의애환과극심한스트레스를받은정황을방증하고있다.물론이런부적들이얼마나효과가있었을지짐작해보는것은그리어렵지않다.그러나이를통해단순히웃고넘기기보다는이렇게라도부적에의지해야했던당시‘웃픈’현실을이해해볼수있다는점이중요하지않을까.”_99~100쪽(‘사회상을담고있는부적’중에서)
“애플,스타벅스같은현대적로고와우리‘처용도’의공통점은?”
인류문명과함께해온부적의매력
부적이문화를읽는코드로시대를반영해왔다는사실을우리는지금이순간에도수없이목격하고있다.예컨대애플(Apple)사의로고인‘한입베어문사과’모양은전세계에서가장영향력있는마력의상징이며,스타벅스의로고는‘사이렌’이라는정령을차용해대중들을커피의매력에빠지게한다는점에서현대판주술과다르지않다.이처럼현실에기반한상징과간략화한추상적기호를통해신비한에너지를끌어내는방식은분명부적과직결되는측면이있다.
그렇다면예부터악귀를물리치는부적으로사용되어온우리나라벽사계의신화‘처용’은오늘날어떻게인식되고있을까.기원이천년이넘은처용설화는2009년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에등재된‘처용무’를비롯해‘처용가’와‘처용도’가발생한배경이되지만,우리에게는교과서에서나봤음직한이야기에그칠뿐이다.
이책은,부적의기원을찾아거슬러올라가는과정에서우리가전혀생각지도못한다양한신화와만나는즐거움을누리게해준다.나아가한국의옛문헌과예술작품들곳곳에부적이사용되어온방식을통해서,그리고동아시아전통과그림문화,종교적세계관을통해서인류와오랜시간을함께해온부적이문화사적으로얼마나매력적인아이템인지일깨워줄것이다.
특히이책(4부)에는옛날부터전해내려오는부적은물론이고,시대흐름에따라의미가재해석된재미있는부적들을밝고유쾌하게담았다(당시부적에의지할수밖에없었던사람들의다양한사연과고충을상상해보는것은덤이다).아울러책사이사이김재일작가가그린‘현대판’부적은이책독자라면누구나소장할수있도록QR코드와함께실어전연령층이부적을이모티콘처럼밝고유쾌하게접할수있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