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라는 시대. 1 유신과 천황 그리고 근대화

메이지라는 시대. 1 유신과 천황 그리고 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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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도널드 킨의 <메이지라는 시대>는 이 세계사적으로 흥미로운 시간을, 유신의 주도 세력들이 어떻게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추구해 나갔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무수한 시행착오와 오류들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하고 일본의 문화, 예술에 정통한 서구인의 시각으로 비서구 세계에 속한 일본의 근대화 경험을 객관적이고도 균형 잡힌 필치로 생생히 그려냈다.
저자

도널드킨

도널드킨은일본문학과일본문화연구의일인자로손꼽히는문예평론가.뉴욕브루클린에서태어나컬럼비아대에서일본어를공부했다.하버드대를거쳐,케임브리지대에서강사로있었고교토대에서유학했다.고전시가부터현대문학에이르기까지일본문화전반에대한폭넓은그의연구는전체5천페이지에달하는필생의역작『일본문학사』(일어판전18권)로결실을맺었다.다니자키준이치로,가와바타야스나리,아베코보,오에겐자부로,시바료타로등현대일본을대표하는수많은작가들과교우를맺었고특히미시마유키오와의깊은친교는널리알려져있다.저서로『일본의문학』,『일본인의미의식』,『일본문학을읽다』,『백대의과객』,『두개의모국에살면서』,『메이지라는시대』,『나의소중한장소』등30여권이있고마쓰오바쇼,지카마쓰몬자에몬,다자이오사무,미시마유키오,아베코보의작품등을번역해영미권에소개했다.50여년교편을잡았던컬럼비아대에1986년그의이름을딴가설립되었으며케임브리지대,와세다대,게이오대등20여대학에서명예박사학위를수여받았다.기쿠치간상,국제출판문화상,요미우리문학상,일본문학대상,전미문예평론가상,이노우에야스시문화상,아사히상,마이니치출판문화상등을수상했고2008년외국인학자로는처음으로일본정부로부터문화훈장을받았다.2011년동일본대지진을계기로일본에영주하기위해일본국적을취득했고한자로키누도나루도(鬼怒鳴門)라는이름을스스로지어사용하고있다.

목차

저자서문
서장
제1장고메이천황
제2장사치노미야의탄생
제3장개국필지(開國必至)
제4장타운센드해리스
제5장불충지배(不忠之輩)
제6장무쓰히토
제7장황녀가즈노미야
제8장“정이대장군!”
제9장합어문(蛤御門)의변
제10장천황가의저주
제11장책사이와쿠라도모미
제12장재원하루코황후
제13장마지막쇼군요시노부
제14장도망친쇼군
제15장무쓰히토의행차
제16장첫개선
제17장천황가의반란
제18장동쪽의도읍도쿄
제19장검소한천황
제20장에딘버러공알현
제21장시독(侍讀)모토다나가자네
제22장번(藩)을폐하고현(縣)으로하다
제23장천황사절단
제24장상장군(上將軍)소에지마다네오미
제25장에토신페이의목
제26장궁중제일의현부인(賢婦人)
제27장서쪽의불만세력
제28장공신인가적신인가사이고다카모리
제29장오쿠보도시미치암살
제30장류큐왕퇴위
제31장그랜트장군의휴가
제32장교육칙어탄생전야
제33장다루히토의헌법초안
제34장카라카우아왕일행
제35장자유민권운동
저자주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추가]
그전해,조선에서프랑스인선교사아홉명과미국상선의수병몇명?그중에는영국인승무원도있었다?이살해되는사건이일어났다.프랑스함대가출격하는등조선과열강들사이에긴장이높아졌다.일본내에서는조선과연맹을맺어구미에대항하자는의견도있었으나,막부는조선에사절을보내구미열강과전쟁을하게될경우의불리한점을설명하면서이분쟁의중재역할을자청하고나섰다.또한막부는1867년4월에로주세명이연서한서한을미국공사에게보내만일조선이태도를바꾸어미국과의강화에...
[책속으로추가]
그전해,조선에서프랑스인선교사아홉명과미국상선의수병몇명?그중에는영국인승무원도있었다?이살해되는사건이일어났다.프랑스함대가출격하는등조선과열강들사이에긴장이높아졌다.일본내에서는조선과연맹을맺어구미에대항하자는의견도있었으나,막부는조선에사절을보내구미열강과전쟁을하게될경우의불리한점을설명하면서이분쟁의중재역할을자청하고나섰다.또한막부는1867년4월에로주세명이연서한서한을미국공사에게보내만일조선이태도를바꾸어미국과의강화에동의한다면미국은조속히이에응하라고종용했다.2세기반에걸쳐서양과의접촉을끊어온일본이국제사회에서인정받는적절한방법으로다른나라에조언하는입장에서려한것은놀라운일이라하지않을수없다.
뼈아픈패배를맛본이날저녁,요시노부는막부의중신과각부대대장을오사카성에불러들여대책을강구했다.모두들장병의사기를높이기위해요시노부가직접나서기를바랐다.요시노부는쾌히이를승낙했고대책회의는돌연활기를띠었다.하지만그날밤,요시노부는몰래오사카성에서도망쳤다.덴포산앞바다에서막부군함가이요(開陽)호를타기위해서였다.하지만가이요호는아직도착해있지않았다.요시노부는잠시미국군함일로쿼이호를타고,가이요호가도착하기를기다렸다.다음날인7일아침,요시노부는마쓰다이라가타모리등몇명만을데리고가이요호에승선해8일,에도를향해출범했다.성에남아있던막부군이요시노부가사라진사실을안것은7일아침이었다.그들은성을버리고탈주했다.
1875년,이미도쿄는완전한일본의수도로서기능하고있었다.도쿄는황궁과모든정부기관의소재지일뿐아니라외국공관의소재지이기도했다.그러나정부는이사실을공식적으로발표하지않았다.어쩌면교토시민의반응을염려했는지도모르겠다.메이지천황은사후교토에안장되었고,다이쇼(大正)천황의즉위식도1915년교토에서거행되었다.이일은교토가어떤의미로는아직도수도라는신념이뿌리깊이남아있음을보여주는증거다.그렇지않다는반대성명이나오지않는한지금다시교토가일본의수도라는주장이나온다해도조금도이상할것이없다.
젊은천황은치가떨리도록원통했을것이다.일본이법과질서를존중하는문명국이라는것을엄청난노력을기울여가며서양제국에게납득시키고있는터에,겨우2년사이에세명의정부요인이암살되었던것이다.그리고이어진30년동안수많은암살사건과암살미수사건이빈발해서서양제국에부정적인인상을심어주게되었다.서양제국이치외법권을포기하도록설득하기가곤란해졌다.
그러나그런와중에도일본은근대화를향해빠른걸음을내딛고있었다.철도와전신은전국구석구석까지뻗쳤고새로운서양문물은매일도입되었다.그것에는의료품,식료품,기계같은것은물론이고사진도있었다.그러나아직은사람들이막부말의소란스러운시대에마음을흔들어놓았던정열에가끔씩몸을떠맡기는것을저지할수없었다.
개혁파들로서는조금이나마자치권을지닌번을현으로바꿔중앙정부지배아래두는일을유일한해결책이라여겼다.그러나그일이그리쉽지만은않았다.무사계급은자신들의권리를위해투쟁할것이고대다수의평민은번주를최고의권위자로알고있었다.만일번주가천황에게순종하지않는다면평민역시천황의뜻을따르기어려울것이다.번주의영향력은영지의구석구석까지침투해서영민의일상생활을지배하고있는터였다.이미폐번치현이후120년이경과된오늘날까지도가나자와(金澤)를방문하는사람은으레가가(加賀)의마에다(前田)가를떠올리게마련이다.수백년동안이나번을지배해온마에다가의문장(紋章)이가나자와거리곳곳에서살아숨쉬고있기때문이다.
궁중의급격한변화에어리둥절해진사람은결코하시모토한사람뿐이아니었다.그러나이에아랑곳않고5월23일오전4시,천황은순행에나섰다.이때천황이처음으로입은연미복스타일의단추가있는제복은후에천황의가장전형적인복장이되었다.천황의양복차림은보수적인백성들의비난을면치못했다.천황이나가사키에체재하는동안현민(縣民)아무개는건의서를제출해천황의양복착용중지를호소했다.궁내경도쿠다이지사네쓰네는그처치를사이고다카모리와의논했고,사이고는건의서를낸자를불러“그대는아직세계의대세를모르는가”라고호통을쳤다.바로3,4년전양이를외치던무사들이있을때라면이런항의가받아들여졌을지도모른다.
일본측의불쾌감은조선측에서받은다음과같은인상에의해배가되어있었다.조선은일본과달리문명개화정책의채용을거부했다.조선은지금결정적으로시대에뒤떨어져있었다.조선은여전히서양에문호를닫고있었다.일본인의눈으로볼때,조선은바로지난날유럽인의눈에비친일본의모습이었다.그런일이조선의후진성에대한모멸감을낳았다.지난날중국문화의전파자로서조선에대해품고있던존경의마음과는현저하게대조적인일이라하지않을수없다.
사이고의서한에서각의에서의발언과같은취지를엿볼수있다.사이고는분명조선에서의자신의희생이전쟁을위한좋은구실이될것으로여기는듯했다.그러나학자가운데는주전론자라는사이고의혐의를불식하고자사이고가실은평화주의자였고조일양국관계가원만히해결되길바랐다는설을내세우는사람도있다.조선에파견되는사절은궁중의상을입어야하며군대나군함을이끌고가서는안된다는사이고의주장이그러한의도를증명한다고말하고있다.그러나어떤학자가말한것처럼이타가키에게쓴편지가사이고의진의를고의로감추고있는것이아니라면,사이고가전쟁을바라고있었다는점에대해서는이론이없다.조선에서의사이고의죽음은전쟁을가능하게할뿐아니라대의를위해죽는다는만족감을그에게줄수있었다.
전년11월의징병조서(詔書)와함께공포된징병고유문(?諭文)속에‘혈세(血稅)’라는글자가있었다.이는‘병역’을완곡하게가리킨말로‘그생피로써나라에보답하는것’이라고설명되어있었다.호조(北條:지금의오카야마岡山현)현의농민들은그것을글자그대로‘징병은백성의생피를착취한다’는의미로받아들였다.부근마을에서의사같은차림을한사람을보았다는유언비어가더큰오해를불러일으켰다.이조처에대한불만으로말미암아당장여러마을의촌민3천여명이무기를들고봉기했다.그러나그들의첫표적이된것은엉뚱하게도피차별부락?에도시대에형성된마을로,사람들이싫어하는천한직업에종사하고,일반사람들과상종할수없는천민들이모여사는마을.보통부락(部落)이라고부른다?이었다.부락은습격되고불태워졌다.이전에는순종적이던‘피차별민’이신체제를만나오만해졌다는것이습격의이유였다.분노의창끝은소학교를위한세금징수,서양풍의단발,소의도살에까지겨누어졌다.이러한특정의불만표출에서도알수있듯이?징병제에대한오해가봉기의직접원인이었지만?이는근본적으로는근대화를달성하려는정부의수많은변혁에대한불만의폭발이라고할수있었다.
그중에서도신풍련은가장극단적이었다.신풍련은서양의영향을저지하는것만으로는만족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