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선택 : 사람을 살찌우고, 인재를 발탁하고, 문명으로 나아가는 길

세종의 선택 : 사람을 살찌우고, 인재를 발탁하고, 문명으로 나아가는 길

$18.00
Description
역사가 백승종이 선입견 없이 살펴본 세종의 진면모!
처음으로 만나는 ‘입체적인’ 세종
세종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 성군이라 불린다. 간혹 세종으로 인해 노비 인구가 급속히 팽창했고, 기생제도가 창출되었으며 사대주의가 극심했다며 세종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세종에 대해 완전무결한 영웅 혹은 조선 사회의 폐단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미화되거나 폄훼된 상을 갖고 있다.

이 시대 대표적인 역사가 백승종이 정치가 세종의 진면모를 선입견 없이 들여다보았다. 저자는 세종을 한 사람의 정치가로서 바라본다. 세종이 중요하게 생각한 몇 가지 사업을 검토하면서 세종이 어떤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견지했는지, 어떻게 신하들을 설득하고 협상했는지, 세종이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유능한 정치가였던 세종이 복잡다단한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톺아보는 일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주력한 부분은 “세종의 언행을 선의로든 악의로든 함부로 과장하지 않으려고 애쓴” 점이다. 그 결과 우리는 납작한 세종의 얼굴이 아니라 ‘입체적인’ 세종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세종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결함이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다만 그에게는 범인이 따르지 못할 큰 포부가 있었고, 웬만해서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성실성이 있었다.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백승종

저자:백승종
정치,사회,문화,사상을아우르는통합적연구,통사와미시사를넘나드는입체적접근으로다양한주제의역사를쓰는보기드문역사가이다.동서양역사에폭넓은식견을가지고있으며,지식을시민과공유하는활동을활발하게하고있다.
독일튀빙겐대학교에서가르치기시작해서강대학교,독일보훔대학교,베를린자유대학교,독일막스플랑크역사연구소,경희대학교,건국대학교,풀무학교,한국기술교육대학교등에서역사,문화,종교,문학등을폭넓게연구하고가르쳤다.
한국사와서양사를비교분석해《상속의역사》,《신사와선비》,《도시로보는유럽사》등을집필했고,한국의전통사상을재해석해《문장의시대,시대의문장》,《중용,조선을바꾼한권의책》,《동학에서미래를배운다》,《조선의아버지들》등20여권을저술했다.
깊은안목과섬세한해설,깊이있는통찰로독자와학계의호응을얻어《금서,시대를읽다》,《정조와불량선비강이천》으로각각한국출판평론학술상,한국출판문화상을받았다.

목차

프롤로그|세종과그의시대는우리에게무슨의미가있는가

제1부경제:사람을살찌우는[富民]길
1.아무도굶지않는나라를위하여
2.강한의지로심각한치안문제를해결하다
3.세제개혁으로세마리토끼를노리다
4.북방영토확립한‘파저강정벌’100일의기록
5.남쪽백성이주‘사민정책’,조선의북방을지키다
6.시대를앞서간화폐정책의교훈

제2부정치:인재를발탁하는[擇賢]길
7.전염병,의약전문화로대응하다
8.유난했던화포사랑
9.집현전과함께새시대를열다
10.세종이인재를관리한네가지방식
11.믿음직한조력자들
12.안숭선이라는이름의프리즘
13.왕에게도실수는있었다

제3부문화:문명(文明)으로나아가는길
14.‘성리학적전환’이라는깃발
15.훈민정음:백성이글을배우면세상이밝아진다
16.맨처음에독서가있었다
17.명나라사신에게재갈을물리자

후세의평가:역사의이정표
18.조광조는세종의시대를되찾고싶었다
19.큰선비들의눈에비친세종

출판사 서평

“세종처럼소수자를살뜰하게챙긴왕은없었다”
약자를배려한진정한성리학자
이책의1부에서는세종의경제정책에대해알아본다.세종즉위당시조선의농업생산력은매우낮아서굶주리는백성이많았다.게다가이상기온으로가뭄과홍수가극심했다.먹고살길이막막해사방으로떠도는이들이부지기수였다.연쇄방화사건도자주일어나치안문제가심각했다.세종은농사기술을보급하고치안문제를해결하기위해근본적이고체계적으로해결책을찾아나갔다.
세종은세금제도를개혁하기위해전국규모로여론조사를실시할정도로신중하게개혁정책을폈다.“여론을존중하면서도소신을굽히지않고공정한조세제도를마련해나간세종의정치적조치는현대적”이었다고저자는설명한다.

세종은정책을실행하는데있어서장애인,여성,노비,아이,노인등사회적약자를먼저배려했다.관비의출산휴가를7일에서100일로연장해주기도하고,옥에갇힌죄수들의건강을살피기위해전국의조옥도를작성하기도했다.전염병이유행할때는천민과백성을구제하는데역점을두다보니관리들이역차별이라고하소연을할지경이었다.이처럼세종은기득권층보다는소외된이들의안위를먼저챙기고약자를보호하는일에적극적이었다.
유교는백성이먹고입는걱정없이편안하게살게하는것이왕의책무라고가르친다.조선의왕과재상은이것을모두알고있었다.“하지만그들가운데누구도세종처럼백성을살뜰히보살피지않았다.알면반드시실천해야한다고생각한점에서,세종은진정한성리학자였다.”
유교의가르침을세종처럼철저하게실행한왕은없었다.그런데성리학이더깊이뿌리내린후대에는이러한정신이오히려사라지고말았다.저자는이에대해“이데올로기가과잉된사회의공통된특징”이라고설명한다.

세종의독특한인재관리방식과정치력
이책의2부에서는인사정책을중심으로세종의정치적능력을알아본다.세종은백성이편안하게사는나라를만들기위해서는인재를양성하고등용하는것이중요하다고믿었다.
세종대에전염병이크게유행했다.당시의료수준으로는전염병을근본적으로퇴치할수없었다.그러나세종은손놓고있지않았다.우선의료전문가를양성하는데주력했다.피해규모를조사하고구제대책을마련하는가하면약방문을모든백성에게나누어주기위해노력했다.도성은어느정도관리가되었지만지방민은의료혜택을받을수없다는것을알고지방에의원을별도로배치했다.
전염병에맞서노력한결과조선의의약수준은한층높아졌고,질병관리능력도나날이향상되었다.의학서적도간행했다.그결과당시세계어느나라와비교해도뒤지지않는의학수준을갖추게되었다.
세종은전문가를양성하는일이중대하고시급하다는사실을일찍이깨닫고인재양성에주력했다.세종시대에는유교경전전문가뿐만아니라공학자,수학자,통역관등다방면에서전문가들이활약했다.실용주의자세종이신분보다능력을중시했기에가능한일이었다.집현전은국가를이끌어갈다양한전문가를길러낸산실이었다.집현전은설립초기에는개혁을주도했으나시간이지나면서오히려세종의개혁정책에걸림돌이되었다.우리가이제까지알지못했던집현전의실체를이책에서확인할수있다.

“세종곁에는믿음직한조력자들이있었다.황희,맹사성,허조,최윤덕등인데,세종은이들의장단점을정확히알고각자장점을발휘하도록했다.그때문인지당시에는대신들간에갈등이있었으나당파싸움으로악화되지는않았다.”
세종이조정대신을감독하고설득하는방법은특이했다.저자는왕의총애를가장많이받았던안숭선의행적을면밀하게검토한다.황희와세종의관계도각별했다.조속히개혁을완수하고자했던세종과속도를조절하는역할을한황희는조화롭게팀워크를이루었다.안숭선과세종,황희와세종의관계를통해세종의통치스타일을이해할수있다.

이념에사로잡히지않은실용주의자세종
조선을성리학의나라로만들기위한대형프로젝트를시작하다
3부에서는세종이이루고자한유교적문명화과정을살펴본다.세종은어려서부터성리학공부에매진했다.철저한성리학자의눈으로바라본조선은문명과는거리가멀었다.15세기에는가족을살해하거나막심한불효를저지르는사건이많았다.늙은부모를내다버리는고려장이횡행했고,근친상간,동기간의재산다툼도흔했다.세종은조선을성리학적인이상사회로개조하고자했다.
세종은《삼강행실도》와《국조오례의》등의책자를편찬해백성을교육하고자했다.간통사건을조사해처벌하고,근친간의결혼을엄금하고,이혼을막았으며,조혼제라는법률을만들었다.이러한조치를통해조선의문명화를반드시실현하겠다는사명감을갖고있었다.

사실상훈민정음창제도문명화를위한노력의일환이었다.세종은교육의힘을굳게믿었다.백성에게도덕을가르치고싶어도백성이글을모르니방법이없었다.배우기쉬운우리문자가꼭필요했다.이런신념이있었으므로어떠한반대에도굴하지않고한글을창제할수있었다.
우리는‘글자를몰라서억울한일을겪는백성을불쌍히여겨’한글을창제했다고간단히설명하고만다.하지만저자는“한글창제는‘문명화’,즉성리학적전환이라는대형프로젝트의일부”였다고분석한다.

“세종의끈질긴노력덕분에조선에새로운사회질서가등장했다.유사이래성리학이념에가장충실한나라가조선이라는데이론이있을수없는데,성리학국가라는새패러다임은세종에게서나왔다.후세와차이가있다면왕의태도는경직된이념과는거리가멀었다는점이다.그에게는맹목적으로이념을지키기보다는실용적인쓰임새가더중요했다.유학에밝았던성종,선조,영조,정조등과는현격한차이가있었다.”

세종에게도한계와실수가있었다
저자는세종의실수와한계도짚고넘어간다.세종의자녀사랑은지나쳤고,대군들의사치가심했다.친인척의비리도눈감아주기일쑤였다.세종은며느리를4명이나내쫓았다.역사상찾아보기힘든경우였다.세종이별세하자영응대군은부왕이쫓아낸송씨를다시데려왔으니세종의이혼결정이강압적이었다는것을방증한다.반면신하의이혼은용납하지않았다.이름난학자김숙자는집안어른들의강요로이혼을했는데,왕은벌을주고재결합을명령했다.김숙자는이혼사건때문에끝내관직에오르지못했다.
“세종은이른바성군도아니었고,완벽한인격체도아니었다.그에게도실수는있었고판단착오도없지않았다.우리의지레짐작과는달리왕은가정을화목하고공평하게다스리지도못했고,정실에끌려오류를범하기도했다.여러대군을조정에함부로끌어들여훗날의분란(세조의왕위찬탈)을자초한점도허물이라면허물이었다.우리는이런사실을직시할필요가있다.”
매사에공정하고결함이하나도없는사람은없다.세종은뛰어난왕이었음에틀림없다.그런세종에게도인간적인한계나판단착오는있었다.완전무결한성군이나현왕은현실에서존재할수없지않겠는가.

개혁정치가조광조는세종의시대를되찾고자했다
4부에서는세종에대한후세의평가를소개한다.유교적이상정치를꿈꾸었던개혁정치가조광조는세종을어떻게바라보았을까?저자에따르면조광조와그의동지들은세종을모범으로삼았다.저자는조광조일파의육성을통해이러한사실을들려준다.
“그들이가장주목한것은왕과대신의상호보완적이고유기적인역할이었다.짐작하건대,조광조는자신의미래역할을황희정승에게서발견했고,중종에게는세종을배우라고요구하고싶었던것같다.그러나이것은불가능한주문이었다.중종에게는세종과같이너른포부도깊은학식도없었고,조광조에게도황희의단호하면서도유연한도량이있었을지모르겠다.”

조선후기의큰선비들도세종의시대를다양한관점에서평가했다.많은학자중에매사에가장비판적인인물로꼽히는농암유수원은세종에대해이렇게생각했다.“세종은그공적이동방의요순에해당했다.그시절에는백성도평안했고물자도풍성했다.풍속이아름다웠으며교화가크게이루어졌다.”유수원은세종을극찬했다.유수원은세종이인재를등용하는데재능이있었다고평가했다.또한노비를살뜰하게돌본점도높게평가했다.
다산정약용을비롯해많은선비도세종에대해호평을했다.일부비판적인견해도있었다.이책에서자세한내용을만날수있다.

우리시대에세종은어떤의미를갖는가
너무나당연한말이지만,우리가살고있는이시대의문화는역사의산물이다.우리가지나칠정도로공부를중요시하는것,남녀를유별하다고여기는것은세종이남긴유산이라고할수있다.따라서세종과세종의시대를균형잡힌시각으로바라보는일은우리자신을제대로알고더나은세상을만들어가는데필요한일이다.
이를테면,세종을순진한사대주의자였다고비판하기에앞서실상을자세히들여다보면생각이달라진다.세종은사대의중요성을강조하고,명나라가요구하는조공을성심성의껏준비했다.그러면서도명나라사신들의무리한요구와횡포를효과적으로통제할방법을궁리했다.저자는“겉으로보기에는사대적이었으나실상을알고보면세종의사전에무조건적인사대주의는없었다”라고분석한다.
우리는여전히강대국의틈바구니에서눈치를살펴야하는처지이다.지나치게미국과일본에의지하려는이들도있고,국수주의를외치는이들도있다.우리가세종의균형감각과정치력을배워야하는이유는여전히너무나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