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글 쓰는 여자들 : 규방가사로 들여다본 전근대 여성들의 삶과 생각

조선의 글 쓰는 여자들 : 규방가사로 들여다본 전근대 여성들의 삶과 생각

$17.50
Description
안방에 갇힌 조선시대 여성들의 생생한 일상
세계사에서 드문 전근대 여성들의 글쓰기와 문학
규방가사(혹은 내방가사)는 조선 후기 여성들이 쓴 한글 문학을 말한다. 당시 여성의 역할은 오로지 길쌈과 바느질 같은 집안일에 힘쓰고 시부모를 봉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읽는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삶과 생각을 4음보 운율에 담긴 가사에 담담하게 풀어냈다. 가사를 지어 시집가는 딸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사연을 풀어내기도 하고, 마음 아픈 이를 위로하기도 했다. 규방가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생생하고 솔직했다. 여성들은 공감하는 가사를 베껴 쓰거나 고쳐 쓰면서 널리 퍼뜨렸다. 꾸밈없고 진솔하게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성찰한 규방가사 덕분에 우리는 전근대 시기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기쁨과 슬픔, 꿈과 좌절은 무엇인지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근대 이전에 여성이 주체가 되어 문학을 발전시킨 사례는 세계사에서도 매우 드물다. 이러한 이유로 규방가사는 202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되었다.
저자들은 규방가사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알리는 데 오랜 시간 매진한 연구자들이다. 이 책은 그동안 연구실과 학술서로만 존재하던 규방가사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 쓴 최초의 교양서이다. 저자들은 분야별로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하면서 그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의미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덕분에 그동안 지워졌던 우리나라 전근대 시기 여성의 생활사와 문화사가 복원되었다.
저자

서주연,정기선

국립한글박물관학예연구사.서울학연구소연구원시절‘한양도성유네스코세계유산’등재추진에참여하면서우리문화유산을세계에알리는일에관심을갖게되었다.대학원에서고전문학을공부한인연으로한국국학진흥원과국립한글박물관이공동으로추진하는내방가사(규방가사)의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업무를맡았다.이를위해조선후기여성의삶과여성글쓰기의의미를연구했고,《여성,한글로소통하다》의공동저자로참여했다.내방가사속여성들의주체성을조명하는국립한글박물관기획특별전〈이내말삼드러보소,내방가사〉를기획했다.2022년에는내방가사를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아시아태평양지역목록에등재하여내방가사의기록유산적가치를전세계에알렸다.

목차

들어가는글_여성이글을쓴다는것은

1부귀한딸을위한노래
귀하디귀한우리여아
글배우는귀녀
죽고없는아내를대신하여,아버지가딸에게
그리운아내,남겨진딸자식
딸에게주는경계의말
아버지가널키울적에
시집간딸을그리워하며
귀녀에서부녀로의꿈과욕망
파혼을권하는오빠,파혼을거부하는부녀
부녀,부자가되기로결심하다

2부세상밖으로
변화를마주한여성들
가사,구여성의목소리를세상으로
시골여자는무엇이그리서러웠을까
남편의사랑을갈구하는여성주체의등장
시골여성의억울함은여성모두의문제
신문물에대한구여성의냉소
신여성,가사로근대서울을묘사하다
근대의낯선풍경,그저바라보고기록할뿐

3부독립을위한열망은남자와다르지않다
독립을위해이주하는여성들
만주로가는길,고생길의시작
가족의정으로고단한삶을견디며
독립에대한여성들의열망

4부우리들의연대,여성으로산다는것은
인생의전환점,여성들의시집가기
시댁을바라보는여성들의시선
여성을위로하는여성들
시집살이에대한여성들끼리의공감
여성의존재감,시댁의일원되기
눈오는날봄바람같은친정나들이
노래지어위로받고
노래로대신한바깥나들이

출판사 서평

규방가사,세계적으로희소한전근대여성문학
안방속여성들이기록한생생한일상
규방가사(혹은내방가사)는조선후기여성들이쓴한글문학을말한다.여성을위한교육기관도없고,글을배워도사회적인활동을할수없었던시절이다.당시여성의역할은글을읽고쓰는것이아니라오로지길쌈과바느질같은집안일에힘쓰고시부모를봉양하는것이었다.하지만“여성은허랑하게글을지어퍼트려서는아니되니”라는사회적분위기에도불구하고글을쓰고읽고여성들이있었다.
여성들은자신의삶과생각을4음보운율에담긴가사에담담하게풀어냈다.가사를지어사랑하는마음을전하기도하고,고통스러운사연을풀어내기도하고,마음아픈이를위로하기도했다.규방가사는화려하지는않지만생생하고솔직했다.여성들은공감하는가사를베껴쓰거나고쳐쓰면서널리퍼뜨렸다.꾸밈없고진솔하게자신의삶을기록하고성찰한규방가사덕분에우리는전근대시기여성들이어떻게살았는지,그들의기쁨과슬픔,꿈과좌절은무엇인지생생하게알수있게되었다.

근대이전에여성이주체가되어문학을발전시킨사례는세계사에서도매우드물다.“특히18~20세기동아시아남성중심주의문화권에서여성의자발적이고주체적인문학활동은18세기서구에서벌어진여성참정권운동과비견된다.서구여성과방식은다르지만,가부장제사회에서동아시아여성들은그들만이할수있는최선의방식으로자신이살아온역사를글로증언하며주체성을획득하기위해노력했다.”_‘들어가는글’중에서
이러한이유로규방가사는2022년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아시아태평양지역목록에등재되었다.이처럼값진기록을남긴주인공들은대단한여성들이아니었다.할머니,어머니,며느리,시누이,올케,딸이라고불리는평범한여성들이었다.
저자들은규방가사를발굴하고,그가치를알리는데오랜시간매진한연구자들이다.이책은그동안연구실과학술서로만존재하던규방가사를대중의눈높이에맞춰풀어쓴최초의교양서이다.저자들은분야별로대표적인작품을소개하면서그작품이나오게된배경과의미를상세하게들려준다.덕분에그동안지워졌던우리나라전근대시기여성의생활사와문화사를복원할수있게되었다.

감정의공유를넘어선위로와연대의문학
이책에서는규방가사를네부로나누어소개한다.1부‘귀한딸을위한노래’는조선시대에도부모의관심과사랑을듬뿍받고자란딸들이있었다는사실을보여준다.〈귀여가〉는자식이없어오랫동안치성을드린끝에귀한딸을낳고지은작품이다.이작품에대해저자는이렇게설명한다.
“딸에대한사랑이얼마나지극한지화자는고픈배도부르고,없는재미도절로난다고말한다.사랑하는자식이기고걷는모습을볼때부모라면누구나느꼈을감정이여과없이표현되어있다.이부분만을놓고보면조선시대에도딸에대한사랑은요즘부모가보여주는사랑과별반다를것이없다는생각이든다.”_‘귀하디귀한우리여아’

규방가사는주로여성들이창작하고향유했지만여성의전유물은아니었다.일찍세상을떠난아내를대신해아버지가시집가는딸에게주는작품도있다.〈교녀가〉를쓴아버지는시집가는딸에대한염려,사랑과그리움을절절하게표현하고있다.

2부‘세상밖으로’는개화기이후급격한변화를맞이한여성들의모습을보여준다.신여성이라불리는여성들은신문과집지를통해‘여성해방’을외치기시작했다.이러한흐름속에서규방가사에서도남녀평등과여성의교육받을권리를주장하는내용이담기게되었다.

때가왔네때가왔네남존여비없어지고
남녀평등때가왔네칠야의깊이든잠
날샌줄모르고서잠꼬대로알지말고
어서바삐꿈을깨어사람노릇하여보세_〈해방가〉중에서

〈해방가〉는여성이구질서,구도덕에서깨어나야사람구실을할수있다고말한다.신식교육을받은신여성뿐만아니라구여성이쓰는규방가사에도여성의교육받을권리와남녀평등을주장하는내용이담기게된것이다.
한편같은시기60대여성이사호는〈생조감구가〉라는작품에서신여성과모던보이에대해신랄한냉소를보내는가사를지었다.“일제강점기라는국난의시기에제역사를바로알지못하는이들이세계를돌아다니며배운것을자랑하는것이작자의눈에가소로워보였는지,신식을배울것이아니라오랜역사를다시익혀국난을극복할지혜를모아야한다고말한다.세계를돌아다니지않고규중에있어도구식부녀가천추사적을다익히고있다는자신감은단순한허세가아니다.외국어를하고신식기술을익힌사람들이대접받는세상,일본사람밑에서일하며월급을받아배를채우며사는소위변절자들을비판하며,옛것을통해국난을극복할것을가사를통해강조하고있다.”_‘신문물에대한구여성의냉소’

당시에는조혼을한뒤홀로서울로유학을간남편이아내에게갑자기이혼을통보하는경우가많았다.연애결혼바람이불면서‘무식한여자’와결혼생활을유지할수없다며이혼을요구하자시골에서오매불망남편을기다리던여성들은인생최대의위기를맞게된다.〈시골여자서러운사연〉같은작품에는한남자의아내로서사랑받기를갈구했으나느닷없이이혼통보를받은여성들의아픈사연이담겨있다.시골여자는참고인내하며살았던지난세월을돌아보며자신이처한문제를탐색한다.

가련하다우리여자이팔청춘허다풍상
믿을곳이거의없다
(중략)
원통하다우리신세아내되어남편에게
사랑한번못하고산들무슨일이있나
염라대왕원망일세나를어서데려다가
평화를알려주소못잊을세우리부모
금옥같이날을길러만복을바랐건만_〈시골여자의서러운사연〉

“시골여자가자신의처지만한탄하지않고‘가련하다우리여자’라고하는것은자신과같은처지의구여성이많이있음을알고있기때문이다.시골여자는남편에게사랑받지못하는아내는살가치도없다고느끼고염라대왕께목숨을걷어가길청해보기도한다.그와중에자신을금과옥같이키워준부모님이생각난다.부모님무릎아래구슬같았던존재였고,결혼해서는최선을다해시집살이를했다고이야기한다.자신의삶을회고하며자신이귀한존재였고열심히살아왔음을새삼깨달으며시골여자는자신을새롭게각성하는계기를갖게된다.”_‘시골여성의억울함은여성모두의문제’

3부‘독립에대한열망은남자와다르지않다’에서는일제강점기독립투쟁을하는남편이나아버지를따라망명길에오른여성들이쓴가사를소개한다.일본의감시가심해져국내에서는독립운동을계속하기가어려워지자많은이들이가족들을데리고만주,상해등지로이주하여독립투쟁을이어갔다.여성들은넓은집과하인들을두고떠나낯설고열악한환경에서독립운동가들을지원하면서견뎌야했던시간을가사에세세하게기록했다.
“가족을따라만주로간여성들은독립운동가들의강력한조력자였다.만주에서여성들은농사를지어독립운동가들을먹이고,해진옷을기워주었다.전쟁터에서총칼을들고싸우는이들은남성이었지만,총칼을들수있도록뒷바라지하는일은여성들차지였다.”
처음에는‘여필종부’라는명분으로망명길에올랐으나독립운동현장에서운명을함께하면서이들의의식은점차변해간다.처음에보여준소극적인지지와달리세상에대한인식이넓어지면서굳은결의에찬강인한여성으로변화한다.

내가비록여자이나이목구비남자와같고
심정도남자와같이행하지는못하오나생각이야없을소냐
......
이시대이십세기문명한빛을얻어
남의뒤를따르지말고만주일대부인이왕성하여
독립권을같이받고독립기를같이들고
압록강을건너갈때승전고를울리면서
좋은노래부를적에대한독립만만세요
대한부인들도만세를높이부르면서
고국을찾아가서풍진을물리치고
몇해동안그리던부모동기친척들과상봉하고
그리든정나누며회포풀고만세영락바라볼까_〈원별가라〉중에서

이들이남긴가사가있어서만주에서벌어진항일운동속여성들의노고가알려졌다.총칼을들고직접나섰던여성들은우리에게알려졌지만,뒷바라지하며조력했던여성들의희생은알려진지얼마되지않았다.

4부‘우리들의연대:여성으로산다는것은’에서는어린나이에시집을가서친정나들이한번하기도힘들었던여성들의이야기를만나본다.가부장제사회에서여성이온전한사람으로살기위해서는혼인이필수였다.아버지,남편,아들에따라인생이결정되었으니여성에게결혼은사회의구성원이되느냐,되지못하느냐를결정하는생존의문제였다.〈노처녀가〉는혼기가찾으나시집을가지못한노처녀의심정을노래하고있다.나의혼인문제를내가결정하지못하는가부장제시대에무능한아비지를탓하는내용을해학적으로표현하고있는작품이다.

인간세상사람들아이내말씀들어보소
인간만물생긴후에금수초목짝이있다
인간세상생긴남자부귀자손같건마는
이내팔자험궂어나같은이또있든가
....
적막한빈방안에적적하게홀로앉아
뒤척이며잠못이뤄혼잣말들어보소
이미늙은우리부모나를길러무엇하리
죽을때날길러서잡아쓸까구어쓸까_〈노처녀가〉중에서

〈신행가〉는시집가는딸을위해시집살이에대한가르침을주는내용이있고,시집간딸이친정부모를그리워하는마음을적은내용도있다.시집을간다는것은부모형제와어쩌면영원히이별할수도있는일이었다.그러니〈신행가〉에는고향을떠나낯선시집으로떠나는서러움이절절하게표현된다.시집살이에대한어려움을털어놓은〈여자탄식가〉,혹독한시집살이를견디려면“벙어리삼년,귀머거리삼년을해야한다”라고말하는〈부여교훈가〉를통해당시여성들이겪었던고통이실감나게다가온다.
여성들은시집살이의고단함과단절감을규방가사를쓰고읽으면서달랬다.〈사모가〉는시집아주머니가친정에가지못한종손부를위로하며지은가사이다.부모형제를그리워하며시집살이를견뎌야하는심정은여성이라면누구나겪는아픔이었다.여성들은무수한불행과고난을겪으면서도자기와남의고통을저울질하지않고,다른이의슬픔에공감하고회복을돕는다.규방가사가단순히감정의공유가아니라위로와연대의문학으로나아갔음을알수있다.

“이내말삼들어보소”
방안에갇힌여성의적극적인말걸기
규방가사는“이내말삼드러보소”라며독자에게말을건네는식으로이야기를시작한다.홀로읊조리는독백이아니라바깥으로향하는말하기였던것이다.여성은중문‘안’에갇힌존재였지만사회적으로고립된존재는아니었다.
고된시집살이에외출한번하기도힘든삶이었지만규방가사에서는자유롭게자신의생각과느낌을표현했다.그들은억울한삶을글로호소하기도하고,때로는자랑을적어자부심을드러내기도하고,오랜만에나들이를함께하고나서여성들간의유대와연대를소중히기록했다.또한여성을위한교육이존재하지않던시절에여성들은규방가사를읽고지으면서지식과교양을터득하고전수했다.규방가사는이처럼글쓰기를통해위로받고공감하고자신을성찰하고성장해간여성들의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