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 (선교사로 볼 것인가, 주체적 수용사로 볼 것인가)

한국기독교역사 (선교사로 볼 것인가, 주체적 수용사로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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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구한말 유교사회에서 잉태된 기독교공동체의 역동적인 성장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과 달리 기독교가 광범위하게 일반 민중 속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 같은 한국기독교의 특성을 일본제국주의에 맞서야 했던 우리의 암울한 현대사(구한말의 개혁운동과 일제강점기 민족독립운동)에서 찾는다. 그리고 선교사가 아닌 주체적 수용사로 해석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

박정신

저자박정신은숭실대학교,고려대학교,미국워싱턴대학교에서역사학과인접학문을넘나들며공부했다.역사학박사학위를받은후남오레곤주립대학교를거쳐오클라호마주립대학교역사학과및국제학대학원종신교수로미국학생들을가르치다가2000년숭실대학교로와서기독교와역사사회변동,한국기독교사등을가르쳤고,2014년은퇴한후숭실대학교법인이사로봉사하고있다.
국제한국사학회상임대표와한국인문사회과학회회장을지냈으며,국가보훈처공적심사위원,동북아역사재단자문위원및편집위원,한국국제교류재단자문위원,국사편찬위원회해외동포사편찬자문위원,「뉴스앤조이」편집인,『해외한국학평론』과『InternationalJournalofKoreanHistory』편집위원으로봉사하였고,현재는문화학술계간지『이제여기그너머』를펴내고있다.
저서로는『근대한국과기독교』(민영사,1997),『ProtestantismandPoliticsinKorea』(UniversityofWashingtonPress,2003),『고쳐쓴한국기독교읽기』(여울목,2004),『한국기독교사인식』(혜안,2004),『역사학에기댄우리지성사회인식』(북코리아,2008),그리고역사문화에세이를묶은『상식의역사학,역사학의상식』(북코리아,2008)등이있다.

목차

제1강왜한국기독교역사인가?7
제2강한국기독교역사:선교사로읽을것인가,수용사로읽을것인가?31
제3강구한말기독교공동체:오늘의기독교개혁본보기로?51
제4강1907년대부흥운동의텍스트와콘텍스트?73
제5강일제강점기의기독교와민족운동:그물림과엇물림의사회사?95
제6강신사참배반대운동:종교운동인가,민족운동인가?125
제7강해방,분단,6·25전쟁,그리고기독교?139
제8강오늘의한국기독교:그꼴과결의사회사?169

출판사 서평

왜한국기독교역사에관심을가져야하는가?
저자는이질문에대해“기독교사를연구하지않고는한국의근현대사를총체적으로인식할수없다”라고답한다.기독교는우리근현대사의역사변동과길이엉켜있고,기독교계인물들이좌우를통틀어한국현대사의지도적역할을담당했기때문이라는것이다.
그리고한국기독교역사에관심을가져야하는또하나의주요한이유로한국의기독교공동체가한국사회에서,특히해방이후막강한사회세력으로자리매김했음을꼽는다.실제로한국교회와교인의숫자는타종교에비해압도적으로많고,정치,경제각분야의지도적위치에있는사람의상당수는기독교인이다.
저자는이와함께한국기독교역사를연구할때기존의선교사중심의방식과는달리주체적수용사중심으로해야함을강조한다.
이런주체적수용사의시각을지닐때“조선(한국)이라는역사현장과한국근현대라는구체적시대에기독교와조선사람들이각별하게만나물리고엇물리는바로이‘각별한역사’를읽어낼수있다”고말한다.그리고저자는이한국기독교의주체적수용사를‘맞섬’과‘초월’이라는개념을중심으로풀어낸다.

초월성을상실한한국교회
저자는한국교회가종교의초월성을상실한세속적인집단으로전락했음을한탄한다.
대형교회주도아래시청앞광장등에서빈번히펼쳐진반공,친미집회와최근의친박태극기집회에주도적으로참여하는기독교인들의모습을‘초월성’을상실한대표적인예로꼽는다.저자는‘초월적존재인하나님’을믿는다는이들이빈부를초월하지못하고,그것도부자와강자의편에서서대편에게삿대질을하는모습을보며자괴감에빠진다.
저자는물질주의,이기적기복신앙,세속주의에빠져허우적대는한국교회에게초기조선기독교의초월성을회복할것을주문한다.

초기교회의공동체성회복해야
초기기독교는개종한양반과천민이함께앉아예배를보는사랑의공동체였다.이는신분구분을,나이구분을넘어서초월적인하나님께예배드리고기도하며함께성경을읽고찬송을부르는모습이다.초월에기대어세상의것들을넘어선‘초월의공동체’모습이다.
절대화된유교적신분제도와그에터한질서를세상의것,사람이만든것으로상대화시킨것이고,이는타파할수도있다고규정한것이다.이처럼초기기독교공동체는초월에기대어유교적인것,세상의것과맞서긴장을두려워하지않았던무리들의종교공동체였던것이다
이와함께저자는구한말교회지도자들의부흥운동을현실도피적신앙행위로해석하지말야야함을강조한다.그들의종말론적내세주의신학을문자적으로읽어서부흥운동을현실도피적이었다고보아서도안되고,그들의반일정치행동을그들의신앙구조와분리해서논의해도안된다는말이다.오히려일제강점기를살아간사람들에게,그래서광복을목타게그리워했을이들에게당시부흥운동의언어와상징은삶의새로운의미와새소망을주었다는사실에주목해야한다.그들이가졌던종말론적내세주의신학은그들이목메어바라던일제강점통치에서해방하는염원을표출한것으로인식해야한다는것이다.
당시기독교지도자들은“소망을가질수없는백성,이스라엘사람들이야웨에대한믿음과메시아의오심을끈질기게기림으로소망의기쁨을갖고산것처럼,조선사람들도그리스도의십자가의죽음에만얽매이지말고메시아가다시와서새하늘과새땅을열것이라는소망을가지라고설파”했다는것이다.

맞섬의신앙과반일민족운동
구한말기독교공동체는유교사회질서와정면으로맞서는집단이었다.처음에는작은종교공동체였지만유교질서와타협하거나야합하여그질서에안주하기를거부하였기때문이다.유교질서를사람이만든질서라고규정하고이를혁파하여‘하나님나라’의기준에따라새질서를만들려고했던공동체가당시의교회였다.초월에기댄,그래서세상과확연히구별되고정면으로맞선그러한종교공동체였다.유교질서와긴장하고갈등하고있었음으로이종교공동체구성원들은그만큼응집력이강했고그만큼더역동적이었다.기독교지도자들은교회안팎에서,특히진취적인개혁세력에게존경받았다.
기독교가정치집단은아니었지만,집회?결사?언론의자유를박탈당하여사회,정치조직과활동이금지되었던일제초기무단통치시기에는기독교공동체(교회,교회계통학교,교회관련기관)는조선사람들의조직공동체로기능하고있었다.그래서반일민족운동이이종교공동체와깊게이어져있었던것이다.
그런데3·1운동이전까지개혁정치와독립운동전선의맨앞줄에서있던기독교공동체는바로이시기에어떤자리에서어떤역할을하고있었는가?3·1운동이후의역사를한번훑어보면기독교는‘순수종교화’작업에열중하고교회의‘비정치화’에몰두하면서민족공동체의여러문제를외면하고있었음을쉽사리읽게된다.
이들은사회적?경제적으로기대고있는기독교가사회,정치운동에휘말려박해나탄압을받게되는상황을지극히염려하는‘지식봉급쟁이들’이었던것이다.바로이들이3·1운동후기독교를이끌면서‘순수종교화’라는깃발을들고교회안에있는사회,정치적세력을뽑아내는작업을벌였다.

조선의초대기독교인에게배우라
3.1운동이후그리고6.25전쟁을거치면서한국교회는초월성과맞섬의정신을잃어갔다.그리고초월성대신세속화된기복신앙으로,맞섬대신현실도피주의와권력에의아부의길을걸었다.지금기독교의대표적인특성세가지라할수있는천박한물량주의,이기적기복신앙,그리고전투적반공주의(친미사대주의)는바로초기기독교의맞섬과초월의정신을상실한데그원인이있다하겠다.
필자는오늘의한국기독교는천민자본주의의물질중심주의가르침,군림,경쟁,뻐김의가치와가르침에‘아니오’라고말해야함을강조한다.예루살렘질서에맞서그가르침에‘아니오’라고말했던예수처럼,유교질서에맞서그가르침에‘아니오’라고말했던이땅의초대교인들에게배우라고말한다.
필자는지금한국기독교는거대하고육중한몸을과시하려고‘시청앞광장’으로태극기흔들며무리지어나설때가아니라고말한다.중세말위클리프나후스의교회개혁의고언을듣지않다가루터나칼뱅에이르러로마교회가뒤집힌것을기억한다면,한국기독교는여기저기서들려오는갱신의외침을듣고회개의길로들어서야한다고역설한다.이를위해서는먼저팔레스타인의예수의정신을따라배워야하고,19세기말이땅의초대교회교인들의모습을본받으라고말한다.초월과맞섬의정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