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데미안》때문에책방을열게되었다고?
2021년여름강화도농가주택에평화책방이란간판을단저자에게사람들이묻는다.어쩌다이곳에서점을내게됐나요?이런저런외면적인이유를들어설명하던저자는자신에게‘책방을내게된내면적인이유는무엇일까?’라는질문을던진다.그러던어느날빛바랜표지의책이눈에들어왔다.‘맞아바로저책때문이었어.’라는결론을내린다.
“바로《데미안》과바로이문장이나로하여금강화도에책방을열게했다.
‘새는알을깨고나오려고투쟁한다.알은세계다.태어나려는자는한세계를파괴해야만한다.새는신에게로날아간다.그신의이름은아프락사스다.’의심할여지가없었다.그것은데미안의답장이었다.”(본문10p)
의심할여지없이《데미안》때문에책방을열게되었다고?중고등학교시절에감명깊게읽었던《데미안》,그책의주인공처럼알을깨고나오려고몸부림치던소년은몇십년을날아서지금강화도북단철책선가까운곳에서점을열었다.그것은어찌보면우연한일이었지만필연적인사건이기도했다.
2.인생의사다리,도끼역할을한책들
저자는이후책방에꽂혀있는책중에《데미안》뿐만아니라인생의고갯길,두갈래길에서영향을받은책을골라서다시살펴봤다.어떤책은친구나스승역할을했다.한권한권의책이따로떨어진것같지만그것을꿰맞추는독자에의해하나의세계로연결된다,그리고누군가가떠나보낸헌책이누군가에게는새로운복음서가되기도한다는사실을확인했다.
저자는이런발견을할때마다한편의글로남겼고,수십편의글이쌓였다.이를연결해서엮은《알을깨고나온새는철책위로날아가고》(이하‘알을깨고나온새’)는한평범한독자의,책벌레는커녕그흔한문학소년에도끼지못한저자의정신적성장기이자,시대의정치적단면을보여주는미세한자료가되었다.《알을깨고나온새》는과거에읽은책이안개처럼사라진게아니라여전히현재,미래와함께세줄의새끼가되어인생의드라마를엮는다는것을보여준다.그리고독자는설령자신이뚜렷한목적을갖고읽지는않았더라도책으로놓은징검다리를건너고,책으로만든사다리를밟고진리와역사의탑을올랐다는것을보여주고있다.이때책은얼어붙은바다를깨는사회적투쟁과영적각성의도끼역할을하기도한다.
3.내인생에서우러나온나만의말은무엇인가?
저자는급류가흐르는인생의강을건널때책으로다리를만들고징검다리를놓았다.사람마다징검다리로쓸책은저마다다르다.그런데설령똑같은책을읽었다하더라도그것을소화해서영양분을섭취하는방식은상이하다.예를들어한국의중년남자가가장좋아하는책이《그리스인조르바》라고하는데,그책의독자가저자인카잔차키스처럼사회주의자로살지는않는다.《그리스인조르바》를읽고조르바가추구하는자유를자기인생의지침으로삼았다해도,어떤사람은자유민주주의자이거나자유주의자,어떤이는사회민주주의자이거나사회주의자,또어떤이는반공주의자나보수주의자로살아간다.
10대의애독서중첫번째로손꼽을수있는《데미안》을읽은독자역시마찬가지다.청소년기에모두가알을깨기위해분투했지만그들이날아간방향은모두다르고,인생의깃발도다르다.심지어는《데미안》을읽고나서알을깨는방식으로자살을선택하는경우도많았다.이책에서소개한전혜린작가의여고생친구도그렇다.전혜린에게《데미안》을빌려간친구는자살했고,가족들은그녀가읽고있던《데미안》을무덤속에같이넣었다고한다.
《알을깨고나온새》의저자는‘《데미안》때문에책방을만들었다고?’라는제목의글을시작으로수십권의책에얽힌이야기를쓰면서,한마디의말을찾으려했다.저자는《데미안》의첫문장이“나는정말나자신으로부터저절로우러나오는인생을살려고했을뿐이다.그런데그것이왜그렇게도어려웠던가?”라는사실에놀란다.이의미심장한첫문장을기억하지못했다는것,수십년이지나서다시읽으니가슴을세게두들기는말이라는데놀란것이다.
내인생에서우러나온나만의말은무엇인가?그것이있다면억지로만들어지는게아니고저절로드러날것이라여겼다.저자는헤세,루이제린저,김소월,김수영,레닌,붓다의말이아닌나만의말을찾았다.그런데그것이왜그렇게도어려운일일까.자기의말을찾기전까지는아무리달변가라도정신적벙어리라할수있다.어쩌면자신의인생에서저절로우러나온말을하는것은마치선사가불현듯언어가끊긴길에서오도송을부르는것처럼희귀한일이아닐까싶다.
4.대립물의통일과투쟁,그리고정치적자유
저자는자신만의말을찾기위하여,인생의오솔길,고갯길,언덕길에읽은책을소환했다.평화책방에있는헌책을다시읽고,분실하거나내다버린책중에다시보고싶은책은인터넷중고서적에서구해살펴보기도했다.저자는이렇게되돌아본인생의여정과책에얽힌이야기를네개의장으로나누어구성했다.
1장.책방이된집이야기에서는강화북단해안철책에서가까운곳에위치한농가주택에평화책방을만드는과정과이에얽힌책이야기,2장.인생의두갈래길에서읽은책에서는주로청소년시기에정치적,종교적각성을불러일으킨책이야기,3장.아침책저녁에읽다에서는과거에읽은책이지만현재에다시곱씹어보면서교훈을얻을책을주로다뤘다.그리고4장.통일희년,통일회귀에서는이시대의주요모순이라할수있는분단현실,국가보안법문제를드러내는책에얽힌이야기를소개하고,이와함께분단현실을극복하기위한통일이념의하나로단군민족주의를제시했다.
독자인저자와책(주인공),현실세계의3자는서로영향을주고받으며대립물의통일과투쟁을벌여나가는데,첫번째기본축은정치적자유이다.저자는고등학교시절〈4·19혁명1주기기념문집〉과김수영시집을통해4월혁명에눈을뜬뒤민주와정의를억압한군사정권에반감을지니게되고,정치적자유를인생최고의가치로여기게된다.1980년광주항쟁발발직후의식은높았으나조직적으로정치적실천을하지못해생긴정신적혼돈과분열증세를치유해준책은대학교입학후만난한완상교수의글〈민중의흑백논리와지배자의흑백논리〉이다.저자는이책과의만남을“한마디도과장하지않고표현해서사막에서만난오아시스고,정신분열증직전의뇌를치료한묘약이었다.”라고표현했다.그밖에도《철학에세이》,《죽음을넘어시대의어둠을넘어》,이산하시인의《한라산》,남정현의소설《분지》등의책이저자에게정치적‘세례’를주었는데,이런책에서얻은힘으로분단의철조망을오른다.이럴때책은역사의탑을오르는사다리의역할을하기에충분했다.
두번째축은정신적각성을도와준책이다.《성서》,《라즈니쉬명상록》,대행스님의《한마음요전》,헬렌니어링의《아름다운삶사랑그리고마무리》와같은책이여기에해당한다.저자가과거에는제대로감응하지못했는데,수십년만에다시읽으면서그의미를재발견한책도있다.《데미안》을쓴헤세의《싯다르타》를읽으며,10대에는들여다보지못한작가의작품세계를알게된다.헤르만헤세가전에는멀리떨어진곳에사는이방이고동경의대상이었다면,나이먹은지금에와서는고뇌를함께나누는친구이자도반이된것이다.헤세의방황과지향점을살펴보면서,그와정신세계를함께했던칼융,그리고니체에친밀감이생기고이들의책을다시살펴본다.특히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와그의어록을읽으면서,10대시절엔뜬구름잡는것같았던니체의잠언을꼭꼭씹으며그맛을음미하게된다.
이처럼젊은시절에읽은책을다시읽으면,예전에는몰랐던의미를재발견하거나전혀새로운경지를느끼게하는것이있다.이는어찌보면책이독자를다시태어나게하는것이면서동시에독자가책속에새생명을불어넣는것이라할수있다.
《알을깨고나온새》는저자인생에영향을미친책을통해인생을돌아보는자전적인요소도많다.박정희의10대,전두환의20대를통과하고,이후형식적민주주의로전환했다는문민시대를살아온자신의삶을“금지와위선이주류인시대와의불화는숙명이었다.”(본문443P)라고요약하기도했다.여기서불화는단지불평과자학으로끝나는게아니라저자가첫번째의식화도서로꼽은《철학에세이》에서말하는대립물의통일과투쟁의법칙을실현하는과정으로서의불화로해석하는게맞다.
5.어릴때읽은책을다시읽을수있어너무행복하다
이책곳곳에담겨있는저자의고뇌중의하나는생로병사중노이다.저자가강화도에책방을만들고,이책을쓸때의나이가61세인데,그는이를‘환생’으로여기기도했다.저자가태어난1961년신축년에는2월에〈민족일보가〉창간했고,5월에박정희가군사쿠데타를일으켰다.그리고1961년10월17일,프랑스경찰은파리에서가두행진하는알제리인수백명을학살했다.그후로60년동안국내외엔수많은사건이벌어졌고,그물망같이연결된세상에서영향을받으며살아왔다.과거를회상하면누구나그렇듯이개인적으론후회스러운일도많을것이다.그런데저자는환갑을통과하는것에대해“60년을지구에서살다인간으로다시한번태어났다생각하니일단안도의마음이생긴다.어느정도시간을번셈이다.”라고소감을밝힌다.
과거에교우했던책을다시만나서교제하게됐다는점에관해서는행복감마저느낀다.첫사랑의대상을다시만나는것은어려운일이고,대부분은실망으로끝나게된다는경험담이많지만,다시만난책은그렇지않다.수십년전에읽었던책장을다시넘기며마음이설레기도하고죽어가던고목나무가소생하는느낌을받기도한다.10대때빠져들지못했던《싯다르타》의구절구절에서헤세의의도와고뇌를느끼며,인간적매력을느꼈던루소의《참회록》을읽으며,10대시절저자가몰입했던이유를다시한번떠올려보면서,과거에읽은똑같은책에서새로운의미를발견할때진심으로60이상살게된것에행복한마음을갖는다고고백한다.
“수십년전에읽은책을다시뒤적거리다‘61세까지살아있어서너무행복하구나’라는생각이들었다.10대나20대초반에는헤세나루소를높이우러러볼수밖에없었고,책에써진활자를이해하기에급급했다.교과서,세계위인전에나오거나노벨문학상을탄그들은범인과는다른존재였다.그러나이제는그들도인간과짐승사이에서수시로공포와좌절감에휩싸이며줄타기하는,삶과죽음사이에서고뇌하던불안한존재였음을알게됐다.이제는활자에녹아있는그들의희열과번민을느끼며독서할수있게됐다.”(본문319P)
6.평화책방과통일회귀선
저자가이책을쓰면서목표로삼은것중의하나는자신속에서우러나온,자기만의말을찾는것이었다.그러나결국자기만의말을찾지못하고니체의어록을읽다가‘영원회귀’에서‘통일회귀’를떠올렸다고말한다.그리고평화책방이나해안철책선이통일회귀선이거나분단회귀선이걸쳐있는곳일수도있다고생각했다.니체는인간은짐승과초인사이에놓인밧줄과같은존재라했는데,저자는“휴전선철조망이있는나라의인간은분단과통일사이에서줄타기하는존재”(본문421p)가아닌가싶다고썼다.
통일운동을하다국가보안법으로구속된경험이있는저자의살아온인생과정때문인지,책방이철책선근방이라그런지,이책에실린54편중상당수글의소재와결론은‘분단과통일’이다.저자는북녘산하가마주보이는해안철책선에서가까운평화책방에서선과악,전쟁과평화,주체와사대사이에서줄타기하는초인을떠올린다.그는“어쩌면이곳(책방)이통일회귀선이거나분단회귀선이걸쳐있는곳일수도있다는생각이들었다.”라고말한다.늦은가을해질녘,평화책방에서가까운해안철책을걷다보면수천마리의기러기가떼를지어한강하구너머로월북하는장면을목격할수있는데,이들은남북의분단과국가보안법으로부터자유로운존재이다.저자는이를바라보며10대시절알을깨고나온자신의새가철책위로날고있다고생각한다.
헤세의《싯다르타》에서싯다르타가깨달음을얻은곳은강물이었다.모든고통,쾌락,선과악이뒤엉켜흐르는강물을보며,강물에투신하려던싯다르타는자신의운명에맞서싸우며,고통스러워하기를끝내고“사건들의흐름과삶의강물에동의하는,흐름에맡긴채통일성에귀속되는깨달음”(본문337P)을얻었다.저자는《알을깨고나온새》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