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 산 70-1번지 : 나는 노동자 박영재입니다

마석, 산 70-1번지 : 나는 노동자 박영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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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소설 〈자연사박물관〉으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소환한 것으로 평가받는 작가 이수경의 첫 번째 장편소설.
한국의 진보정치와 노동자 민중의 미래를 위해 분신한 노동자 박영재의 진심을 알기 위해 그가 묻힌 마석 모란공원을 여러 차례 찾아간 작가는 이 소설 속에 마석 모란공원에 묻힌 문익환, 전태일, 박영진, 박래전, 문송면 등의 영혼을 등장시켜 “노동과 역사와 정치와 인간의 삶이 촘촘히 들어차 있는 처절하고 슬픈 서사”를 풀어갔다.
저자

이수경

본적지는대구이며,파주기지촌부근에서태어나인천과의정부에서자랐다.고궁근처의아름다운학교에다니며처음으로시를썼다.2016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자연사박물관〉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고,첫소설집〈자연사박물관〉으로2019년대산창작기금,제1회길동무문학창작기금,제13회김만중문학상신인상을수상했다.2023년5월,80년대를살아온세대와그들의자녀세대인청년의마음을쓴두번째소설집〈너의총합〉을출간했다.

목차

프롤로그유서
1부“어둠을베고유성처럼”
2부세상저편,우리의영토(塋土)
3부푸른공중전화
4부마석,산70-1번지
에필로그“노동자박영재”
추천사(문영심):끝내울음을터뜨리고마음에품게될소설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아프고두렵고무서웠습니다.그러나가장소중한것을지켜야할때,죽음으로밖엔지킬방법이없을때,누군가는목숨과바꾸기도합니다.동지가아는전태일이그랬고,이묘지의많은열사들이그랬습니다.

그들은청계천평화시장의어린노동자들을지키고싶었고,구로공단노동자들을지키고싶었고,피땀흘려만든노동조합을지키고싶었고,군대녹화사업으로강요받은프락치활동에의로운친구들을희생시킬수없다는양심의소리를지키고싶었고,민주와평화와이땅의자주를지키고싶었습니다.나는노동자민중의삶을위한진보정치의미래,당을지키고싶어서목숨을버렸습니다.
---p.50

머릿수가필요할때숫자로라도존재할수있어야했고,기득권거대정당을위해그들을희생시키지말았어야했고,난장이들이자연스럽게거리를활보하며극장에가고백화점에도가고사장과마주앉아서협상하고자신들에게필요한법을그들스스로만드는것이온당한일이라고더적극적으로믿었어야했고,키작은사람들을혐오하는세력이그들을흔들고휘청이게할때“우리도같은난장이다!”소리치며엄호했어야만했다.그러나나는그렇게하지않았고,그렇게하지않는사람들을자주목격했다.
---p.84

피하고싶지만피해지지않을때,피할수있지만피하고싶지않은일이있을때,나는종종‘운명’이라는불확실하나불가항력이라여겨지는힘에기대곤하는데,운명이란것이회피나도피,약자의순종과그들에대한지배를정당화하기위해발명된도구일수있겠으나,나에게는자신도모르는사이,오랜시간에걸쳐이루어진선택과무언가를간곡하게바라온마음의총합같은것이었다.
---p.85

추모사업회그녀는마석모란공원박영재의무덤위로쭉뻗은소나무두그루를올려다보며어느해무덤의잔디가불에탄것처럼바싹말라죽어있었는데,묘역관리인은소나무송진이떨어져서그럴지도모른다고했지만,영재형이제일좋아하는나무가무덤의풀을죽게할리는없다고말했다.동지들이감옥에가고,노동자박영재가목숨을버리며지키고싶었던진보정당이정부에의해해산당한다음해였다.
---p.117

그날,봄볕환한묘역한가운데서본모란공원묘지는우주의빛나는별같았고,그안에솟아있는열사의무덤들은어느별에서내려온크고둥근공같았다.
---p.171

목숨은모든것을다한후에야꺼낼수있는사랑의표현일것이다.가진것을다꺼내지못한사람이목숨을먼저내놓을수는없다.그러므로우리는죽음만으로그들을기억하지않는다.죽음에이르기까지그들이보여준삶,꿈꾼세상,목숨을걸고외쳤던미래가그들이고,그들의정신인것이다.
---p.185

추천사

불꽃으로가는문앞에서결코머뭇거리지않았던청년박영재의삶은숙연하다.그가남긴마지막부탁을우리는진작에귀기울였어야했다.살아있는그어떤이의이름도마석산70-1번지의묘비명보다빛날수없다는것을깨우쳐주는소설.
-이지상(가수.작곡가)

“끝내울음을터뜨리고마음에품게될소설”

딸이중학교1학년때였을것이다.어느날저녁그애가울면서내방으로들어왔다.“엄마,우리나라가그런나라였어?그렇게나쁜나라였어?”나는놀라서눈물에젖은딸의얼굴을쳐다보았다.아이는내서가에꽂혀있던『전태일평전』을읽었던것이다.그때가1997년이었던것같다.나는그때뭐라고대답했을까?잘기억나지않는다.딸아이가내대답을듣고“지금은?지금은아니지?”라고되물었던것만기억난다.이수경의소설을읽고그때가생각났다.왜냐하면이수경의소설을읽으면서어느순간부터내내울고있었기때문이다.소설의마지막문장을읽고고개를들자머리가아팠다.이작가는왜이렇게사람을울리는가?왜우리는아직도이렇게슬프고아픈이야기를읽어야할까?

이수경이노동자박영재에대한책을쓴다고했을때나는당연히소설이어야한다고생각했다.그가평전을쓸수없어서가아니라소설로써야만박영재의이야기가무한한확장성을가지고시대를가로지르는이야기가될수있을거라고믿었기때문이다.그는내가기대했던대로그일을해냈다.이수경은늦은나이에등단했지만첫번째작품집『자연사박물관』으로많은독자의사랑을받았다.그의소설들을읽고조세희선생의『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을떠올리는사람들이많았다.나역시그랬다.무려40여년이라는시간을뛰어넘어다시우리앞에난장이-약하고소외된사람들-의이야기를소환한이수경은우리가지금도조세희선생이그려낸난장이가족의소외와아픔을극복하지못한시대에살고있음을보여주었다.그리고이수경은첫번째장편소설인이작품에서전태일의시대에서박영재의시대까지,그리고오늘이순간까지끝나지않는노동자들의희생에대해서이야기한다.

이소설은2012년5월14일통합진보당중앙당사앞에서분신해같은해6월22일에숨을거둔노동자박영재의유서에서시작된다.소설가인화자는박영재의이야기를쓰는것에대해서부담을느끼고있음을숨김없이드러낸다.10년이지난현재까지언론의마녀사냥에의해덧씌워진‘종북’이라는낙인에서자유롭지못한그들,소위통합진보당당권파의입장을강변하다가죽은사람이라는박영재에대한선입견이아직도여전히이사회에남아있기때문이다.어쩌면진보정당의일에무관심한대다수사람들에게는그런선입견마저찾아볼수없을지도모른다.그들은아예그런사건이있었다는것자체를모르고박영재가누구인지도모를것이다.편견과선입견으로부터자유롭지못한사람들은외려그당시통합진보당에대해서잘알고있던사람들,진보진영의활동가들과정치인들일것이다.이소설을쓰는작가가가장힘들고괴로웠던지점도그곳이었을것이다.확증편향으로굳어진편견에맞선다는것은정말이지어렵다.

이수경은영리하게도이지점을소설만이펼칠수있는상상력과서사의힘으로돌파해나갔다.박영재에대한책을쓰는고민으로부터시작한이야기는박영재의영혼이쉬고있는그곳,모란공원민족민주열사묘역인마석,산70-1번지에서영혼으로만나서로의상처를쓰다듬고보듬는민주열사들의영혼의대화로확장되면서우리를노동과역사와정치와인간의삶이촘촘히들어차있는처절하고슬픈서사속으로끌어들인다.숨쉴틈없이몰아치는수많은열사의이야기는우리가도대체어떤사회에서살아왔고살고있는가를돌아보게하고끝내눈물을쏟게하고아무것도하지않고속수무책으로보고만있었던나자신의삶을반성하게한다.죽임을당하거나죽음을선택한그들은이제는삶의고통에서벗어나영혼들의세계에서자유롭게벗하며지내고있지만살아있을때우리와똑같이누군가를사랑하고사랑받으며꿈꾸고일하며살아왔던사람들이다.그런데죽임을당했건죽음을선택했건소설을읽는동안죽음에이르기까지그들이겪었던고통이생생하게느껴져그토록공감하고슬퍼지는것이다.

죽었다고아무나열사가되느냐고모욕하고비아냥거리는사람들이있는데나는그런이들이불쌍하다.죽음에이르는길이개인의잘못이아니라사회의문제였을때그들의죽음을기억하고책임을느끼고더나은사회를만들자고해서‘열사’라는이름을붙이고호명한다는사실을이해하지못하는사람들이기때문이다.그러나불행히도자기가족에게그런일이생긴다면그들은이사회의구성원들이모두연결되어있다는것을깨닫게될것이다.전태일열사의어머니이소선여사처럼희생된사람을내자식처럼품을수있게될것이다.

이소설에서민족민주열사묘역이등장하는것은우연이아니다.이수경은이책을쓰기전부터이곳에자주다녔다.그가열사들의삶에관심을가진것은매우오래된일이다.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부모님들과안면을익히며지내기도했다.지낸지도오래되었다.그는유가족이아님에도그들에게강한유대감과공감대를가지고있었다.그는늘그들을위로하려고갔다가오히려자신이위로받고왔다고말하곤했다.그런사람이기에소설에서자연스럽게열사들의영혼의대화가등장하게된것이다.

작가가만난사람중에“박영재당원이이제라도해방되었으면좋겠어요.”라는말을하는사람이있었다.진보정당이나박영재에게호의를가진사람이었음에도이수경은이말에의구심을품는다.과연해방되어야하는것이박영재일까?작가는그렇지않다고고개를흔든다.“아물지않은상처로,눈물을흘리면서애도할수없는닫힌슬픔으로,마주할수없는불편으로,부담으로,외면으로,오해로,과제로여전히침묵하는사람들이해방되어야하는것은아닐까.박영재가떠난지10년이지났지만누구도그때의그에게서자유로워보이지않았다.”

나는작가의말에동의한다.박영재는삶을떠나는순간해방되었다.아무계산없는순수한희생으로자신의생을던진박영재를있는그대로보지못하는사람들이아직도해방되지못하고있는것이다.그런이들이이책을읽고박영재로부터해방되기를바란다.이수경은자신이만난노동자모두가이시대의증언이고책이고전태일이고제종철이고박영재라고했다.그들속에자신이전해들은박영재의모든것이들어있다고.이수경이만난노동자들은“책잘써주세요.그사람의이야기가우리의이야기니까요.”라고말했다.그래서이수경은최선을다했다.이수경은이책이작은나침판이되고지도가되어어느한사람의마음에라도스며들었으면좋겠다고했다.그는성공했다.이책은내마음에아주깊이스며들었다.딸에게이책을읽으라고해야할까.나처럼눈물을흘리겠지.그리고생각해볼것이다.전태일의시대로부터우리는얼마나멀리왔는지,지금은그때보다얼마나나아졌는지,이제우리나라는그때처럼나쁜나라가아닌지.

이소설을쓰느라고봄을앓고여름을앓고가을을앓고겨울을앓아야했던작가에게위로와상찬의말을건넨다.몸과마음이몹시지쳤겠지만이제안심하라고,눈밝은독자들이좋은책을알아보고나처럼마음에담을테니걱정말라고.비가내린다.마석,산70-1번지에도비가오겠지.오늘밤열사들의영혼은비에젖은무덤가에서어떤이야기들을나눌까?오늘은누구를위로하고누구의이야기를들어줄까?그곳은비오는밤에도아주환하게빛날것같다.맑은영혼들이모여있으니말이다.노동자박영재와그의친구들의영원한안식을빈다.
-문영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