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웃음의미학’
《남정현의삶과문학》은한국현대문학사에서,특히풍자문학과반미문학(민족문학)에서독보적인위치를차지하는소설가남정현(1933~2020)의생애와문학세계를총체적으로조명한책이다.저자는남정현문학의내적동력이되는‘부활과웃음’의미학에주목하며,시대의금기와억압에맞선작가의치열한삶과예술적실천을생생하게복원했다.
904쪽에달하는이책에는유소년시절여러차례죽음직전까지갔다가깨어났던작가의투병생활과독서편력,1958년등단직후어울리던문우,지인과의인터뷰를담았다.그리고1958년등단작〈경고구역〉부터78세에쓴마지막작품〈편지한통〉(2011)을포함하여거의모든작품과사건을역사적맥락속에서꼼꼼하게기록했다.이와함께남정현문학을다른석박사논문과평론수십편을소개하고이를비판적으로고찰했다.
《남정현의삶과문학》에는남정현작가와그의작품에대한여러평판이실려있는데,오랫동안친분을나눈김병걸평론가는반공과친미가국시와도같았던1960년대박정희군사정권시절에발표한〈분지〉는“하늘에서뚝떨어진소설”이라평했다.임유경은박사논문〈1960년대‘불온’의문화정치와문학의불화〉(2013)에서남정현은‘반미가아니다’라는사상의바리케이드(금기의선)를넘어선작가’이며,필화소설〈분지〉(1965)이전에쓴〈누락인종〉,〈기상도〉,〈자수민〉,〈사회봉〉등도이미불온한소설이며,반정부,반미성향을띄는작품이라고평했다.남정현의소설이단지반미성향이고불온하다는점에서만문학적으로높게평가한것은아니다.소설가장정일은“단언컨대남정현은1960년대에가장재미있고독창적인소설을썼던작가다.이때그의대표작으로내세우고싶은것이첫창작집의표제작〈너는뭐냐〉다.”라고평했다.《작가연구》는2001년하반기호에남정현작가를특집으로다뤘는데,채호석편집인은머리말에서“한국문학사에서앞도없고,뒤도없는자리가바로남정현소설의자리가아닐까.”라고썼다.
저자는서문을통해《남정현의삶과문학》에서독자에게전달하려는주요한사항세가지를요약해서정리했다.그것은첫째부활과웃음의미학,둘째평생반공법(국가보안법)과미국에맞서대결한작가,셋째남정현작품비평에관한분석(누가제국의논리를그대로반복하나?)이다.
첫째부활과웃음의미학.
저자는남정현의풍자문학속에담긴근본정신으로‘부활과웃음의미학’을꼽았다.핵무기로무장한미군엑스사단의공격을10초앞두고〈분지〉의주인공홍만수가어머니를향해외치는호언장담속에서도부활의미학을찾을수있다.만수(萬壽)라는이름자체가부활을연상시킨다.
“믿어주십시오.어머니,거짓말이아닙니다.아,그래도당신은저를못믿으시고몸을떠시는군요.참딱도하십니다.자,보십시오.저의이툭솟아나온눈깔을말입니다.글쎄이자식이그렇게용이하게죽을것같습니까,하하하.”
남정현이직접작성한‘작가연보’에도‘부활’을거론하는대목이여러차례등장한다.그는열두살되던해인1944년에는“단원중저명한마법사의지도로불에타완전히죽었다가다시살아나는신기(神技)를몸에익히게되어부활의명수(名手)가됨.”이라고적었다.1945년에는“8·15해방과함께‘민족대부활전문학교(民族大復活專門學校)’설립구상”에들떠지냈다.그리고1958년에는“곡마단시절의부활의신기가그리워우연히〈경고구역〉이란제목의소설을써본것이《자유문학》지에추천됨”이라고썼다.쉽게믿을수없는이런환상적인약력은1970년대발간된단행본《허허선생》이나문학전집작가연보에실렸다.
남정현이어릴적생사를몇차례넘나든경험도부활의미학과무관하지않다.유년시절누나가놀아주다남정현을바닥에세게떨어뜨린적이있는데이때뇌진탕으로생사를오간적이있다.초등학교때는칡뿌리캐는것을구경하다곡괭이에머리가찍혀여러날의식불명상태에빠지기도했다.그리고중학생무렵부터는폐결핵,장결핵,임파결핵등수많은결핵균
이일시에덮쳐서뼈만남은가사상태에서만삼년인가를움직이지못하고누워만지냈는데,구사일생으로살아났다.
유소년시절여러차례죽었다가살아난남정현은그후유증으로몸무게40kg을간신히유지한채평생살아야했다.그는이허약한몸으로중앙정보부에두차례나끌려가가혹행위를당했고,그런고초를겪으면서도평생을반외세문학의최전선에서문학과이데올로기의초병으로살았다.살아있는것자체가기적같다고할수있는남정현은그의삶과문학,말과글,
몸전체로부활의미학을완성했다.
황도경은〈역설의미학,풍자의언어-‘분지’론〉(2001)에서“홍만수의비극적종말로처리된이야기끝에서오히려웃음으로부활하는홍만수를만나게”된다고결론짓는다.어머니에게“글쎄이자식이그렇게용이하게죽을것같습니까.하하하.”웃는홍만수,그는바로이웃음과함께부활했다.
둘째,평생반공법(국가보안법)과미국에맞서대결한작가.
남정현작가가평생붙들고씨름하던화두는미국(외세)과국가보안법(반공법)이었다.흔히남정현하면〈분지〉의작가,반미소설의대표적인작가로불리는데,그가집요하게붙들고늘어진또하나의괴물은반공(법)이었다.남정현작가가보기에미국과반공법은한몸이다.그때문에반공법을넘어서야미국을물리칠수있고,미국을넘어서야반공법을잡을수있으며,그래야진정한민족의부활,해방을이룰수있다고본것이다.
남정현이초기작품에서부터보여준주제나표현은‘우리는반미가아니다’라는타협의선을깬것이었다.작가는국시가친미반공인시대에글로바늘만한틈새라도내보려고몸부림쳤다.그는《남정현대표소설선집》(2004)의책머리에서“나는사실그동안소설을썼다기보다는어찌보면소설을빙자하여뭔가가슴속에서부글부글끓고있는그갖가지울분을조금씩토해내기위해내이만만한펜대하나만을붙잡고만날캑캑하며사뭇몸부림을친격이라는것이솔직한심정일것같다.”라고쓰기도했다.
표현의자유가극도로제한된이승만,박정희군사정권치하에서미국과반공(법)을비판하기위해몸부림치던남정현은78세되던해인2011년에그의마지막작품인〈편지한통-미제국주의전상서〉를발표한다.1965년에서른두살의젊은남정현작가는“누구라도한마디해야지견딜수가없어서,어떻게써야할까고민고민하다가〈분지〉를썼다.”라고했다.그런데노인이된소설가는21세기에들어선뒤에도여전히국가보안법과미국이판을치는‘가짜세상’에답답해하며,“누구라도한마디해야지견딜수가없어서,고민하다가”〈편지한통-미제국주의전상서〉를썼다.저자는〈편지한통〉발간직후남정현작가와이작품에관해인터뷰했는데,그내용도이책에실려있다.
셋째,작품비평분석-누가제국의논리를그대로반복하나?
남정현의작품에대한한국문학계의평가는반미,민족에초점이맞춰져있다.충남서산중앙고에세워진남정현문학비에는“민족자주를열망한‘분지’의작가”라고적혀있다.남정현관련학술논문도반미,미국,민족,필화를주제로하거나풍자기법에주목한경우가많았다.그런데2000년대이후에는여성주의(페미니즘)가확산하면서〈분지〉를‘여성’‘젠더’의관점에서다루는논문과평론이부쩍늘어난추세이다.시대의흐름에맞게다양한관점에서작가와작품을비평하는것은긍정적인현상이겠으나이런현상에서저자는한가지심각한문제점을발견했다.그것은남정현과그의소설(특히〈분지〉)을‘여성혐오’의대표작가,남성중심적좌파민족주의소설로규정하는논조였다.
젠더입장에서남정현소설을부정적으로평가하는대표적인논문은여성학자정희진의〈반미문학을통해본식민지남성성의형성〉(이화여대여성학과박사논문,2019)이다.정희진은반미문학에대해서주된구조가“국가주의,이항대립논리,서구중심의근대성,여성에대한폭력,외세에대한피해의식,배타성”등으로이루어져있다고평하면서,특히남정현의〈분지〉는처음부터끝까지‘섹스(폭력)스토리’이며,반미가아니라음란물과폭력물의요소를모두갖추고있는섹스에대한작품이라고혹평했다.이와유사한논리에기반한논문이여럿제출되었는데,이들논문은남성적민족주의,식민지남성성비판에골똘하다보니식민지남성과제국주의남성이연대한다는식으로논리를확장한다.그들은반미소설의주인공인식민지남성(지배자인지민중인지에대한구별도없다)이제국주의,국가주의논리를모방했다고비판한다.이에대해저자는오히려이들연구자들은현실의구체적인상황에맞는학술적개념을찾지못하다보니제국주의,가해자의논리를모방하고,본의아니게그이념의대변인역할을하고있다며역비판을가한다.
반미소설,민족주의소설을향해‘남성중심적좌파민족주의’라는식으로비판하는경향은뉴라이트성향의국문학자,미국의한국학연구자들의논문에서도찾아볼수있다.이들이공유하고있는논리를한마디로정리한다면저항적민족주의를추구하다가제국주의닮아가고,모방하며,그과정에서여성을식민화,타자화한다는논리다.이런주장에대해저자는당대의정치적상황을외면한매우도식적이고안이한결론이거나의도적폄훼라고비판한다.
남정현작품관련연구논문을분석한장에서저자는1)〈분지〉주인공홍만수의‘강간’논란과오독2)여성학자정희진의〈반미문학을통해본식민지남성성의형성〉(2019년)과〈분지〉비판3)인종적민족주의의병리적증상-뉴라이트계열김철교수의〈분지〉비판4)‘분지사건’과〈1960년대‘불온’의문화정치와문학의불화〉(임유경)5)남정현의소설개작과초기소설의반미성향연구검토6)남정현문학의그로테스크기법과허허선생7)〈반공주의와검열그리고문학〉과남정현의화두‘반공’등의주제를다뤘다.“〈분지〉주인공홍만수의‘강간’논란과오독”은그동안진보나보수를막론하고대다수연구자가홍만수의행위를‘강간’‘겁탈’로단정하고비평하는평단에대한저자의공세적인문제제기라할수있다.
남정현은시대의금기와억압속에서도‘웃음과부활’의미학으로민중의비참을전복하려했던문학적모험가였다.저자는남정현의소설과생애,주변인물,시대적배경,그리고그의작품을다룬주요논문과비평을소개하면서,남정현의문학이왜오늘날에도여전히유효한지증언한다.이책은한국문단최초의필화소설인〈분지〉발표60주년을맞이해그가남긴외세에관한근본적질문을오늘의시각으로성찰하는데도움을주는지침서다.저자는《남정현의삶과문학-부활과웃음의미학》출간을계기로남정현문학이새롭게읽히고‘부활’하기를기대한다.이책의맨끝에실린‘작가연보의’마지막구절은이렇다.
“2021년-모란공원묘지에서열린1주기모임에서추모사를읽은전덕용사월혁명회상임
의장이민족의해방과남정현의부활을기원하며‘홍만수만세!’라고외침.”
남정현소개
남정현(1933~2020)
1933년12월13일충남서산(현당진)에서출생.작가의말로는“곡마단시절의부활의신기가그리워우연히〈경고구역〉이란제목의소설을써본것”이단편소설〈경고구역〉인데,안수길의추천을받아《자유문학》(1958년9월호)에실리면서등단했다.중편소설〈너는뭐냐〉로1961년제6회동인문학상(후보작)을수상.1965년《현대문학》에발표한소설〈분지〉가북한의〈통일전선〉과〈조국통일〉에연이어실리면서반공법을위반했다하여재판을받았고,이후대한민국필화사건1호소설가라는칭호를얻음.
1970년대까지본인의‘작가연보’에“1942년온양도고소학교3년재학시자칭신령이라는노인의꾐으로가출,유랑걸식하다한만韓滿국경근처에서붙들려고아원에수용됨.1943년고아원탈출,유랑생활중곡마단단장에게발탁되어곡마단단원이됨.1944년단원중저명한마법사의지도로불에타완전히죽었다가다시살아나는신기神技를몸에익히게되어부활의명수名手가됨.”이라고써넣곤함.
필화사건22년만에해금된〈분지〉가포함된소설집《분지》가1987년세상에나왔고,2002년에소설·산문·연구논문을엮은《남정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