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존엄 사이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

폭력과 존엄 사이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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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폭력과 존엄 사이》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을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간첩 조작 사건을 통해 국가폭력의 야만성을 조명하는 책이지만, 그보다 피해자들의 삶과 일상의 이야기에 훨씬 더 큰 강조점을 두는 르포르타주 작업이다. 《글쓰기의 최전선》(2015) 등을 통해 르포와 인터뷰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글쓰기 작업을 진행해 온 작가 은유가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7명(위의 표 참조)을 만나 인터뷰했고, 그 기록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가공되지 않은 생생한 언어로 풀어냈다.

이들은 간첩 조작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됐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분모를 갖지만,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 가족관계, 유년시절의 기억 등을 축으로 저마다 독특한 삶의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지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화두가 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제목을 구성하고, 7명 각각의 이야기를 한 장씩 담았다. 이들의 생애 서사는 폭력과 존엄 사이를 ‘눈물’, ‘연민’, ‘인식’, ‘성찰’, ‘화해’, ‘신의’로 가득 채우고 있다. 작가가 인터뷰 내용을 보충·정리하는 식으로 이따금 서술에 개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이들의 말투와 언어 습관, 제스처가 녹아 있는 ‘말들’로 구성된다.
저자

은유

저자은유는글쓰는사람.2011년연구공동체‘수유너머R’에서글쓰기강좌를시작했고현재학습공동체‘말과활아카데미’와글쓰기모임‘메타포라’에서정기적으로강좌를진행하고있다.이밖에도성폭력/가정폭력피해여성들,마을공동체청년들,시민사회단체활동가들과글쓰기워크숍을연다.우리사회에서목소리가들리지않는사람들의이야기를들리게하는인터뷰등르포르타주작업에뜻을두고있다.<쓰기의말들><글쓰기의최전선><도시기획자들>등의책을펴냈다.

목차

들어가는말
잠깐내린눈

나도인간,지도인간
동등하게말해야한다
김순자

동물살리는의사에서사람살리는의사로
‘광주교도소슈바이처’
이성희

날알아주는사람이있는
그곳에가고싶다
박순애

배운사람들하는짓보고
못배운걸한탄하지않았다
김흥수

아버지는빨치산한테죽고
아들은간첩으로잡혀가고
김평강

자기생각없인못사는사람,
꼭지켜주고싶었다
이정미,고심진구

열네살납북어부,
억울해서공부하고돈벌어남주다
김용태

출판사 서평

“이것이국가인가?”
어느날갑자기간첩이되었다.
국가는처음부터끝까지‘간첩이기를’강요했다.
그날이후,삶은돌이킬수없는엉터리소설이되었다.

간첩조작사건의피해자7인,‘시효없는역사’를말하다


김순자(71)
1979년강제연행(징역5년)→2013.11.14.무죄확정
이성희(90)
1974년강제연행(징역16년)→2014.12.무죄확정
박순애(86)
1977년연행(징역15년)→2015.11.7.무죄확정
김흥수(80)
1977년강제연행(징역15년)→2014.10.10.무죄확정
김평강(76)
1981년강제연행(징역7년)→2014.11.13.무죄확정
고심진구
1986년강제연행(징역2년,자격정지2년)→2013.7.11.무죄확정
김용태(57)
1984년강제연행(징역13년)→2014.6.26.무죄확정

누가이들을간첩으로만들었나?
《폭력과존엄사이》에등장하는이들은박정희·전두환정권의국가폭력에의해간첩으로조작돼오랜세월육체적,정신적고통을겪어왔다.국가를장악한권력자들은자신들이불리한국면에있을때마다간첩을만들어냈고,공포분위기를불러일으키며통치를해왔다.검찰,경찰,안기부,사법부등의국가기관도공범이었다.이런시대적맥락속에서이들은‘임의로’끌려가한순간에간첩조작사건의피해자가되었다.국가입장에서간첩사건은공안의명목으로실행한단순한조치들중하나에불과했지만이들에게간첩조작사건은씻을수없는상처이자끔찍한분기점이되었다.
국가가사건을날조하는방식은대단히교묘하면서도간단했다.

“모든폭력이발생하는원리가그렇듯이가해자는‘그래도되니까’조작한것이고,피해자는‘그래도되는사람들’이니까조작대상이됐다.(…)영장도없이국가기관에끌려가발가벗겨진채발길에차이고매질에피를쏟고전기의자에앉는고문을당한다.초인적힘으로버티던그들은‘가족을데려다똑같이고문하겠다’는협박에무너지거나고립의공포와밤낮없는가혹행위에심신이허물어져거짓자술서에손도장을찍는다.“(서문,p.8~9)

여기에각분야의전문가들도총출동했다.“사람을사람아닌상태로비틀어버리고없는사실을있는사실로만들어내는고문기술자”“그고문으로혼절하면언제든지달려와죽지못하게살려두고다시고문받을수있도록내버려둔의사”등소위‘배웠다는’사람들이모두간첩만들기라는무시무시한연극에참여했다.심지어는법조계인물들도주연배우로동원됐다.무엇보다도사법기관만큼은국가권력을견제하고정의에위배되는폭력에이의를제기해야했지만,그들은그저권력의꼭두각시가되어하달받은명령에복종했다.헌법기관만큼은다르지않을까,법정에서는진실을구할수있지않을까기대했던그들은이내그믿음이모두헛되다는것을확인했다.

“모든것이애매합니다만사형에처해주십시오.검사가이래요.아니모든게애매한데어떻게사형이냐고.”(김평강,p.9)

“뭘시인해요.다조작인데.배운사람들이그러는걸보고못배운걸한탄하지않았습니다.”(김흥수,p.10)

말할권리는곧들릴권리이다.
간첩조작사건은역사적이고정치적인문제인동시에삶의심층에맞닿는문제이기도하다.이말은정치적차원과분리된개인의삶같은것이존재한다는말이아니라,사건이정치적으로나법적으로‘해결’된다고할지라도당사자에게는결코‘해소’되지않는지점이남겨진다는것이다.피해자들이법적인절차를통해자신의무고함과억울함을밝힌다고해도,간첩으로몰려살아온지난시간들은결코사라지지않는다는문제가남는다.이는근본적으로보상이불가능한시간이다.《폭력과존엄사이》는그간극을마주하고자한다.간첩사건에대해서는많은것을이야기할수있을지몰라도정작그사람들과그들의삶에대해서는도대체무엇을말할수있는지.

“2016년초인터뷰집발간제안이들어왔을때난정중히거절했다.간첩조작사건피해자란존재가너무낯설었다.그간살면서직간접적으로접점이없었기에아무런상이잡히지않았다.내게간첩조작사건이란군부독재시대를휩쓴광풍으로,현대사역사책에누워있는단어일뿐이었다.그런데인터뷰작업이국가폭력에초점을맞추는게아니라피해자의사는이야기,즉삶의질곡을견디며살아온일상그리고끝내무죄를밝혀내고존엄을회복하는이야기를담는다는것,그리하여몹시도팍팍한현실을살아가는젊은세대들에게힘과용기를주고싶다는기획의도를듣고조심스레용기를냈다.”(서문,p.15~16)

이러한문제의식속에서이책은무엇을말하기보다‘듣기를’자처한다.기본적으로는르포르타주의범주에들어가지만,좀더정직히말해이책은‘듣는작업’에해당한다.말하고자했던,즉자신의말이누군가에게들릴수있기를오랫동안바라왔던사람들의말에귀를기울이는작업말이다.국가가지급하는형사보상금과위자료로도보상될수없고돌이킬수도없는‘시간’.어떤면에서그들이가장희망했던것은시스템내에서이루어지는보상이라기보다자신들이‘말할권리’,그리고그말이많은사람들에게있는그대로‘들릴권리’였는지모른다.

“말을할수있다는게너무좋은거예요.말을하니들어주는사람도있고그걸로책을쓰려는사람도있고우리를이렇게이해하는사람도있다,암울하게만살았는데힘이나더라고요”(김순자,p.41)
실제로그들이겪은고통중그들을가장괴롭게한것은고문으로인한육체적고통만이아니었다.그들의말을듣고믿어준사람들의부재와가족을포함한주변사람들의등돌림은그들에게감당하기힘든정신적고통을주었다.어느날갑자기강제로끌려가감금된그들은외부세계와철저히단절돼가족들에게조차억울함을말할길이없었다.그리고감옥에서보낸세월은그어떤끈끈한관계와신뢰도희미해질만큼의오랜기간이었다.그렇게오랫동안그들은목소리를낼수없었다.

여전히삶은그들의것이다.
이책은간첩조작사건에관한책이아닌‘그사람들의책’이다.간첩사건피해자들의목소리를담아내고는있지만,사건자체에관한이야기는일부분에불과하다.간첩사건이이들의인생을송두리째뒤흔든파국그자체였을것이라는얄팍한예상과달리,이책에서그당시는피해자들이자신의뜻으로오롯이살아낸삶의‘한때’로서등장할뿐이다.국가는폭군처럼등장해그때껏그들이일구어온모든것들을앗아갔지만,그럼에도삶은여전히그들의것이었다.감옥에서도삶은결코중단되지않았고,때론새로운생명력으로꽃을피웠다.삶이중단되지않았다는것은너무나당연한말이지만,하나도당연하지않다.누군가의불공정하고무자비한폭력으로삶이짓밟힌상황에서도대체어떻게삶을자신의것으로만들수있단말인가.

“내별명이책할머니야.유명했어.책담당하는일.책목록이있어.그걸각방에넣어줘.내가가면나한테뭔책읽는다고말하면책을줘.나중에회수하고몇번이뭔책가져갔다적어놓고.독방에있는사람하고도나는말을할수있어.책을주고받으니까.”(박순애,p.97~98)

“건축기사2급취득하고2년간경력쌓으면서건축기사1급을봤는데필기실기다한번에붙었어요.수능시험공부하면서는옆에사람들빨래를한달동안해주고책한권구하고그랬어요.광주교도소에서는자리가잡히니까모범수한명선정하는데내가뽑히고.그때되니까내가필요한책을구하기가수월했죠.”(김용태,p.216)

“그안에안죽고산것이참말로,아이고나는이판결나기전에죽을줄알았어.무엇을가지고저세상으로떠날수없으니까있는걸베풀고살아야해.형사보상금나와서자식들나눠주고감옥에서30년살다나온사람들에게도100만원씩보냈어.”(이성희,p.77)

우리는차마상상할수도없을고통의시간을이들은공부의계기로,자신을돌아보는계기로,자신보다더안쓰러운사람을돕는계기로오롯이채워냈고,결과적으로는다른세상으로건너가게됐다.자신의인생역정을한바탕풀어놓으면서그들은하나같이사건을겪기전에는미처보지못했던것들에눈을뜨게되었다고말한다.또한겪지않았으면좋을끔찍한시간이었다고이야기하면서도새로운나를발견한나쁘지않은시간이었다고회상한다.뼈아픈이별을경험한만큼그들은자신에게든든한힘이되어준새로운인연들도얻었다.그렇게자신의말을온전히듣고믿어준소중한사람들과함께다시일어설수있었고,풍랑속에서도삶을이어갈수있었다.

“이는감옥도살만하다는말이아니라,사람을살게하는것은장소의여건보다관계의질이라는사실을말해준다.아무리궁궐같은집이라도자신을알아주는사람이없을때인간은불행을느낀다.그러나자신의결백함을알아주는동료가있고,말이통하는벗과책이있고,내가가진것을남들과나눌수있을때그들은감옥이지만살만하다고느꼈고인간으로서존엄을지켜낼수있었다.”(서문,p.16~17)

그들이예전의삶으로돌아갈수없는것은간첩의누명을썼기때문이아니라,이제완전히새로운세상에눈떴기때문이다.그들은제도에는시효가있어도진실을향한투쟁에는시효가없음을깨닫고,나아가서는이름이다른수많은참사들의본질이결코다르지않음을,그렇게자신과다른사람들이연결되어있음을느낀다.

아직도끝나지않은투쟁,보이지않는투쟁과함께살아가는이들의서사는대문자역사가미처담아내지못한개인들의역사이다.이들은화자이면서자기삶의소설가이자역사가가된다.국가가함부로난입해엉망으로만들어버린삶의서사를다시쓰고자한다.《폭력과존엄사이》라는책으로결실을맺은이인터뷰작업이나름의의미를갖는다면,형편없이날조된엉터리소설을고쳐쓸수있는하나의장이자방편이되었다는것에서그의미를찾을수있지않을까.

책속으로추가

“김용태는30년만에명예를되찾았다.그보상금을자신을의심하고외면하고지켜주던사람들에게고루돌려주었다.자신을위해서는마산에집한채마련하고노후대책삼아버섯농장을만들었다.건축일은이제몸이힘들어서서히내려놓는중이다.그래도그아니면안된다고간청하는이들을위한집짓기는계속한다.힘닿는데까지돈을벌어서절반은아내에게주고반은장학재단을차릴까생각한다.‘직업은삶의척추’라는어느철학자의말대로유난히부침이심하던그의삶의중심을,건축일은잡아주었다.사람을만나고살게했다.일에서얻은귀한인연의씨앗을그는장학재단을차려세상에다시돌려놓고싶다.”(223쪽-김용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