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 (윤한봉 전기)

임을 위한 행진 (윤한봉 전기)

$20.08
Description
『임을 위한 행진』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이 있기 전까지 한국에서 활동하던 윤한봉, 미국 망명 후 국제연대 활동가로 살았던 윤한봉, 12년 만의 귀국 후 5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윤한봉의 모습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다. 저자 황광우는 기존에 출간된 윤한봉의 회고록과 타계 직전 남긴 구술록뿐만 아니라 미국에 직접 건너가 윤한봉과 함께 활동했던 이들의 목소리까지 담아와 책으로 펴냈다. 또한 젊은 시절 윤한봉과 함께 민주주의의 가시밭길을 함께 걸은 이들의 이야기도 생생한 날목소리로 기록했다.
저자

황광우

저자황광우는
1958년광주출생.1975년고교시절박정희독재정권에반대하는시위를예비하다투옥되었다.검정고시를거쳐1977년서울대에입학해틈틈이고전을읽었다.1978년6개대학연합시위에연루되어군사법정에서2년형을선고받았다.1980년계엄포고령위반으로두번째제적을당하면서공장에들어가노동자의길을걸었다.
1980년대군부독재치하에서부조리한현실에맞섰던곳에는언제나그가있었다.‘정인’이라는필명으로써낸《소외된삶의뿌리를찾아서》《들어라역사의외침을》은시대의나아길길을제시하여큰화제를모았다.그가서울대경제학과를졸업한것은1998년이었다.2002년민주노동당연수원장을역임하면서건강을해쳐지금은글을쓰며살고있다.2003년《레즈》를집필했고,2006년새로운철학교양서의비전을제시한《철학콘서트》를집필했다.이듬해2007년《젊음이여,오래거기남아있거라》를출간했다.
2007년담양의깊은산속에서쓰러진이후몸의반신이마비되었다.2009년전남대철학과에진학하여‘소크라테스의재판’을연구했다.2013년에는소크라테스의삶을정리한《사랑하라》를발간했고,2015년에는플라톤과호메로스의불화를다룬《철학의신전》을발간했다.2016년조선의역사를새로운시각으로조명한《역사콘서트》를출간했다.지금은광주에서고전연구원을이끌고있다.

목차

서문
프롤로그

1부.한국에윤한봉이있었다
말에대한책임
세차례결의
동지애
함평농민싸움
따뜻한밥
옥중의죄수들을돕는여성들,송백회
이념이냐현실이냐?
교수들과학생들의저항
현대문화연구소
광주민중항쟁

2부.윤한봉의망명이야기
5월광주,빛의도시
죽음의고비
시애틀의동양식품점에서일하다
천사들의도시,로스앤젤레스
광주희생자를돕기위한모금
마당집
고립
굳세게살자
촌놈
시애틀에서온편지
미국도처에한청련을세우다
헌신하는사람들
“우리가가면그들도온다”
핵무기를반대하는서명운동
폭설속의크리스마스트리
국제평화대행진
백두산에서판문점까지
뉴욕에서워싱턴까지
해방의소리
새로운노선
귀국

3부.시대와더불어살다
12년만의귀국
변함없이살다
형제나다름없는김남주가가다
아내를맞이하다
5·18기념재단
들불야학이야기
합수정신은무엇인가
진보정당만들기
반성할줄아는실천가
그리운사람

후기
합수윤한봉을추모하며
윤한봉약력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사랑도명예도이름도남김없이’
이땅의민중과한국의민주주의를위해살았던운동가윤한봉
우리는왜그를기억해야하는가?

5ㆍ18광주민중항쟁의마지막수배자로유명한윤한봉이세상을떠난지10년이지났다.많은세월이흘렀음에도사람들은여전히그를그리워한다.윤한봉은1980년5ㆍ18광주민중항쟁이일어나기전까지한국진보운동권의지도자였다.미국으로건너가서는국제연대외교운동가이자통일운동가로활동했다.그는두대륙에족적을남긴이였다.하지만우리는‘미국의윤한봉’을잘모르고미국의동포들은‘한국의윤한봉’을잘모른다.이책은한국과미국이라는두땅에서헌신적으로활동했던운동가윤한봉의삶을이야기한다.
저자황광우는기존에출간된윤한봉의회고록과타계직전남긴구술록뿐만아니라미국에직접건너가윤한봉과함께활동했던이들의목소리까지담아와책으로펴냈다.또한젊은시절윤한봉과함께민주주의의가시밭길을함께걸은이들의이야기도생생한날목소리로기록했다.영문판이함께수록된것은윤한봉이그토록사랑했던타민족형제들과미국에두고온벗,그벗들의2ㆍ3세에게윤한봉의삶을알리기위해서이다.저자는이책을읽고단한명이라도‘나도윤한봉과같은삶을살겠다’고다짐하는이가나오길바란다고말한다.
이책은총3부로나뉘어있다.1980년5ㆍ18광주민중항쟁이있기전까지한국에서활동하던윤한봉,미국망명후국제연대활동가로살았던윤한봉,12년만의귀국후5월정신을계승하기위해동분서주했던윤한봉의모습을시대별로살펴볼수있다.어린시절,윤한봉은어떤결심을하고청년운동에뛰어들었는가?미국으로망명한후동양식품점의점원으로시작해어떻게세계각국에한인단체를만들었는가?12년만에돌아온고향땅에서죽기전까지윤한봉이한일은무엇인가?그리고그의삶에녹아있는그의정신은무엇인가?

순진한‘광주촌놈’이5월광주민중항쟁의‘수괴’가되기까지

윤한봉의어린시절은평범했다.소년윤한봉은부모님말씀을잘듣고형제간의우애도돈독했던효자아들이었다.공부를곧잘하는모범생이기도했다.그러던그가대학에들어가서돌연운동가의길에뛰어든다.그날은유신헌법이통과되었다는소식을라디오로통해전해들은날이었다.“오늘부터공부는끝이다.국민을버러지취급하는저독재자,나는싸운다.”결심을굳힌윤한봉은그날로공부하던전공서적을찢어버렸다.그후윤한봉은민청학련사건으로투옥당하고인혁당사건으로무고한젊은이들이사형에처해지는과정을목도하며냉정하고엄격한투사의모습으로변신한다.
그는기존의투사들과달랐다.선배들에게교육받고,책을읽으며얻은지식으로움직이는이념형운동가가아니라그가직접본대로느낀대로움직이는실사구시형운동가였다.고구마전량수매문제를놓고농민들과정부간의갈등이벌어졌던‘함평농민싸움’이나‘추곡수매가투쟁’등을몸소체험하며윤한봉은민중의삶과유리되지않는운동을꿈꿨다.그래서그는‘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과같은전국단위의지하조직에도가입하지않고광주지역내에서‘청년운동’을시작한다.당시모두가‘노동운동’을교과서의정답처럼말하던때였지만그는그가생각하고느낀대로움직일뿐이었다.서울에서김근태씨가청년운동을시작한시점이1983년이었다.윤한봉은이미1970년대부터광주에서청년운동을시작한것이었다.

미국으로의망명,작은동양식품점점원에서한인단체의지도자가되다

1980년5ㆍ18광주민중항쟁이일어나기전까지광주운동권은서울다음으로영향력이가장컸다.그핵심에윤한봉이있었다.광주민중항쟁이터지자마자윤한봉이‘반란의수괴자’로지목된것은당연한일이었다.그는‘잡히면꼼짝없이죽을것이니도망쳐야한다’는가족과지인들의말에서울에서잠시도피생활을한후미국으로망명한다.처음미국에도착한뒤윤한봉은한동안신분을숨긴채작은동양식품점에서점원으로일했다.윤한봉은5월의그날에동료들을버리고왔다는사실과혼자살아남았다는죄책감에괴로워했다.하지만그는“광주의원혼들을잊지말자.부끄러움없이살자.조국에돌아갈때떳떳하게돌아갈수있도록철저하게운동하자.살아남은죄,도망친죄를깨끗이씻고갈수있도록철저하게운동하자.항시광주의존엄을지키자”고다짐하며미국땅에서새로이사람들을모아단체를조직하고운동을시작했다.
윤한봉이가장먼저한일은‘광주수난자돕기회’를만들어5ㆍ18광주민중항쟁의부상자와유가족들에게기금을모아송금한것이었다.그리고미국곳곳에‘마당집’을만들기시작했다.시애틀에처음으로만들어진마당집을‘민족학교’라이름붙이고그곳을미국에있는청년학생들에게민족의뿌리에대해가르치고민족문화를보급하는장으로만들었다.이후윤한봉은미국전역에‘한국청년연합(한청련)’을세웠다.그곳에서한청련회원들은함께공부하고각종수익사업을통해기금을모아한인민권의향상을위해활동했다.민청련이자리를잡아가자윤한봉은더큰꿈을꾸었다.윤한봉은타민족과연대해공동투쟁해서각국의문제를해결하는데서로돕는‘국제연대외교활동’을시작했다.그리고한국인이해결해야할역사적과제를한반도의평화적통일로보고세계적활동을시작했다.이를위해벌인일이‘재한핵무기반대서명운동’과‘국제평화대행진’이었다.윤한봉의가장큰업적이라고도할수있는‘국제평화대행진’은1989년평양에서열리는세계청년학생축전에참가한각국행사단이축전이끝난뒤백두산에서판문점까지행진하는것이었다.몇달간의준비끝에시작된7일간의행진은대성공을거두었다.
이엄청난행사에도윤한봉은이름을앞세우지않았다.그의평소소신대로‘사랑도명예도이름도남김없이’뒤에숨어지시할뿐이었다.하지만윤한봉은어느덧광주에서후배들의사랑을받던선배를넘어미국에서교민들로부터존경받는지도자가되어있었다.

5월정신을계승하고잠든합수윤한봉선생을기리며

미국에서국제적인활동가로일하면서도윤한봉은언제나조국을그리워했다.그는10여년이넘는미국생활을하는동안영어도쓰지않고혁대도풀지않고자며항시조국과그곳에잠든동료들을잊지않았다.그리고마침내문민정부가들어서고윤한봉의수배가해제되면서윤한봉은조국으로돌아올수있었다.귀국하던날,수많은기자들앞에서윤한봉은“나는도망자다.오월광주는명예가아닌멍에다.퇴비처럼짐꾼처럼살아가겠다”고한마디내뱉은후조용히광주로내려왔다.돌아와가장먼저한일은5ㆍ18기념재단을만드는일이었다.재단설립과정에불만을가진이들의온갖경계와음해,인격모독에시달려야했지만묵묵히일만했다.정계에입문하라는지인들의권유도뿌리치고모금운동등궂은일을하며5월정신을계승하는데만힘쓰다2007년폐기종으로세상을떠났다.
윤한봉의별명은‘합수(合水)’였다.그가스스로지어붙인‘합수’라는별명은똥과오줌을합쳐사용하는퇴비란뜻이다.정의로운세상에밑거름이되겠다는마음의표현은곧실천이되었다.그는5ㆍ18기념재단은물론어떤단체에서도직책이나직함을맡지않았다.미국에서민족학교를운영할때도공식직함은소사에불과했다.‘무소유’를실천하기위해몇가지생필품이든가방하나메고헌운동화를신고평생돌아다녔으며12평짜리영구임대주택에서생을마감했다.명예도,부에도욕심없이평생헌신만하다살아간이가바로윤한봉이다.그래서많은벗들이여전히그를그리워하고기억하고그의정신을알리고자하는지도모르겠다.
5ㆍ18광주민중항쟁이잊혀져서는안되듯이‘이땅에윤한봉이있었다’는사실을잊어서는안된다.헌신과열정,무소유를생의기치로삼고이땅의민중과한국의민주주의를위해살았던운동가윤한봉.그의삶이더널리알려져저자의바람처럼‘윤한봉처럼살아가겠다’고말하는이들이많아지길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