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1: 유신 쿠데타(3) 뿌리는 일본 군국주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1: 유신 쿠데타(3) 뿌리는 일본 군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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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제9권~제11권의 주제는 ‘유신 쿠데타’이다. 서중석 교수는 3권에 걸쳐 ‘유신 쿠데타 왜 일으켰나’, ‘유신 쿠데타 왜 막지 못했나’, ‘유신 쿠데타의 배경과 뿌리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1910년대 일제의 무단 통치에 비견할 만한 암흑의 15년”의 시작점, 그렇게 지독한 폭압 정치가 있게 된 배경과 성립 과정을 자세히 살펴야 지금의 한국 사회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퍼져 나가기 시작해 박근혜 정부에서 정점에 다다른 박정희 신드롬의 폐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박정희 신드롬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에 미래가 있을 수 있겠나?” 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국 사회를 배회하는 ‘박정희 망령’을 하루속히 없애려면 박정희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박정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유신 쿠데타가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그 배경까지 쭉 훑어보는 것이 각별히 필요하다. 이 책은 박정희의 맨 얼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책이다. 유신 체제는 흘러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자세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취지이다.
저자

서중석

저자서중석은1948년충남논산에서출생했다.서울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연세대학교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79년부터1988년까지동아일보기자로재직했으며,6월항쟁당시《신동아》취재기자로역사적현장에서그날의사건들을생생히목격하고기록했다.현재성균관대학교사학과명예교수이며역사문제연구소이사장,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상임공동대표,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을맡고있다.
주요저서로《80년대민중의삶과투쟁》《한국근현대민족문제연구》《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1·2》《신흥무관학교와망명자들》《남북협상:김규식의길,김구의길》《조봉암과1950년대》(상·하)《비극의현대지도자》《배반당한한국민족주의》《이승만의정치이데올로기》《한국현대사60년》《이승만과제1공화국》《대한민국선거이야기》《지배자의국가민중의나라》《6월항쟁》《사진과그림으로보는한국현대사》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연표

유신쿠데타의배경

첫번째마당
5·16쿠데타때부터비상대권지향,
독재추진할때만드골찾은박정희

두번째마당
1967년대선은동서선거,
야당이지리멸렬인데도서쪽에선승리

세번째마당
3선개헌포석,
국민양심마비시킨6·8망국선거

네번째마당
곳곳에서투·개표도부정,
전국각지에서분노한학생시위

다섯번째마당
한국이낳은예술거장들을
고문실로보낸동백림사건

여섯번째마당
3선개헌에대한김종필계의저항
박정희,당내반대세력가차없이숙청

일곱번째마당
장기집권반대는정부불신임?
박정희의기묘한7·25특별담화

여덟번째마당
일요일새벽3선개헌안전격날치기,
장기집권의문열어젖힌박정희

유신쿠데타의뿌리

첫번째마당
《우리민족의나갈길》에서역설한
박정희의식민사관

두번째마당
유신체제의기본골조,
5·16쿠데타때이미세워져있었다

세번째마당
일본국수주의장교에게
심취한박정희

네번째마당
유신체제에짙게드리운
일본2·26쿠데타의그림자

나가는말

출판사 서평

“박정희신드롬이있는한한국에미래가없다!”
유신쿠데타-철권,강권,폭압정치의시작
왜일으켰나?왜막지못했나?그배경과뿌리는무엇인가?

일제의무단통치에비견할만한암흑의시대
유신체제,오직한사람만을위한시대

1972년10월17일유신쿠데타가일어났다.박정희는그날쿠데타를일으키고한사람이모든권력을거머쥔유신체제를탄생시켰다.유신쿠데타가일어난지45년이지난지금한국사회는어떻게되었을까?1979년박정희가김재규의총탄에쓰러지면서유신체제는막을내렸지만,이어서등장한전두환·신군부체제또한유신체제의연장이었다.곧한국사회는1987년6월항쟁이일어날때까지유신체제의그늘에가려제대로된민주주의를한번도펼쳐보지못했다.그기간동안대한민국에살고있는시민들은개인의판단과비판,선택권을가질수없었다.체제를비판하기만해도소리소문없이잡혀가던시기였고,실제로수많은사람들이목숨을잃기도했다.서중석교수는1972~1987년까지의15년을“철권,강권,폭압,그리고민주공화국헌법을유린한통치”기라고말하고있다.“1972년10월17일유신쿠데타가일어난후그아류내지유신체제의서자라고볼수있는전두환·신군부체제가1987년6월항쟁으로크게바뀔때까지15년걸렸다.15년은우리현대사에서엄청나게긴기간이다.1945년부터1987년까지를놓고보면더더욱긴기간이다.그15년간철권,강권,폭압,그리고민주공화국헌법을유린한통치가이뤄졌다.전두환·신군부통치는유신쿠데타의연장아닌가.”
한국현대사연구의권위자서중석교수의<서중석의현대사이야기>9~11권의주제는‘유신쿠데타’이다.서중석교수는3권에걸쳐‘유신쿠데타왜일으켰나’,‘유신쿠데타왜막지못했나’,‘유신쿠데타의배경과뿌리는무엇인가’를주제로이야기하고있다.서중석교수는“1910년대일제의무단통치에비견할만한암흑의15년”의시작점,그렇게지독한폭압정치가있게된배경과성립과정을자세히살펴야지금의한국사회도이해할수있다고말한다.그리고1990년대중반부터퍼져나가기시작해박근혜정부에서정점에다다른박정희신드롬의폐해에대해서도언급하고있다.그폐해중하나가‘성장제일주의’이다.민주주의와인권보다는경제성장이중요하다는생각이한국사회에횡행했다는것이다.또유신체제를떠받쳤고나중에는박근혜를대통령으로밀어올린그세력들이아직도살아남아한국사회를좌지우지하고있는현실도지적하고있다.민주주의,인권,자유,한반도평화등어느면에서보나박정희는한국사회의걸림돌이지영웅으로떠받들어야할사람이아니다.그래서서중석교수는“박정희신드롬이사라지지않는한한국에미래가있을수있겠나?”하고단호하게말한다.한국사회를배회하는‘박정희망령’을하루속히없애려면박정희를제대로보는것이중요하다.박정희를제대로보기위해서는유신쿠데타가어떻게일어난것인지그배경까지쭉훑어보는것이각별히필요하다.<서중석의현대사이야기>9~11권은그박정희의맨얼굴을적나라하게파헤치는책이다.유신체제는흘러간옛이야기가아니라지금현재에도지속되고있는문제이기때문에더자세히살펴야한다는것이이책의취지이다.

모든권력을1인이거머쥔‘총통제국가’
유신쿠데타는어떻게일어났나?

1972년10월17일오후6시경탱크부대가중앙청으로가고계엄군이태평로,중앙청일대에포진했다.동아일보사,조선일보사를접수한계엄군은곧공화당사도접수했다.그리고이날오후7시박정희는라디오를통해“국회를해산하고정당및정치활동의중지등현행헌법의일부조항효력을정지시킨다.일부효력이정지된헌법조항의기능은비상국무회의에의하여수행되며비상국무회의의기능은현행헌법의국무회의가수행한다”고특별선언을발표했다.비상국무회의에서의결한유신헌법은1972년11월21일국민투표를거쳐확정되었다.국민투표에서투표율은91.9퍼센트였고찬성이91.5퍼센트,반대가7.6퍼센트로압도적인찬성률을기록한것으로발표됐다.계엄을선포한10월17일부터국민투표일이던11월21일까지계엄하의살벌한분위기에서모든매체가‘유신만이살길이다.유신아니면우리나라는이제안된다’고역설한결과였다.12월27일박정희는드디어통일주체국민회의99.9퍼센트의지지로장충체육관에서대통령으로선출되었다.이로써모든권력을한사람이거머쥔유신체제가탄생했다.
9권에서는박정희가왜그시점에유신쿠데타를일으켰는지를중점적으로살펴보고있다.이에대한연구자들의견해는굉장히엇갈리는데,유신쿠데타를국제정세변화와연결해파악하는사람도있고,1968년과1969년에북한이펼친잇단무력공세에주목하는사람도있다.또중화학공업화를비롯한경제문제와연결해설명하는연구자도있고,노동문제때문에유신쿠데타가일어났다고하는사람도있다.서중석교수는이런여러의견들을면밀히살펴보면서하나씩반박하고있다.그러면서당시는유신쿠데타를초래할만큼심각한경제위기도,노동운동도없었다고말하고있다.곧쿠데타가일어날아무런이유가없었기때문에중앙정보부의대다수고위간부들조차전혀예상하지못했다는것이다.
서중석교수는다른연구자들과는달리박정희가유신쿠데타를일으킨이유를‘영구집권욕’과‘한국적민주주의의구현’에서찾고있다.박정희는5?16쿠데타를일으킬때부터민간인이나다른누군가에게정권을이양할의사가전혀없었고,지도자가강권통치또는강력통치를해야한다는정치이념을가지고있었다.그리고초지일관‘한국적민주주의를실현하기위해서는유신체제가불가피하다’고강조했다.‘현재처럼비생산적이인정치,야당의구태같은것이계속나타나는정치를해서는안되고능률을극대화하는정치가필요하다’는것이었다.그렇다면한국적민주주의란무엇일까?한국적민주주의는서구적민주주의에대한반감에서나온것이지만,서구적민주주의가한국인에게적합치않다는논리와연결되어있다.그리고그러한논리에는일제가주장한식민주의사관이깔려있다.서중석교수는‘한국적민주주의’를포함해박정희의정치이념의뿌리는일본군국주의와연결되어있다고분석한다.

격동의1971년,한국사회에무슨일이있었나?
왜아무도유신쿠데타를막지못하고,저항하지못했나?

10권의주제는‘유신쿠데타를왜못막았나’이다.당시사법부,정치권,군부,언론,대학가등은어떤상태에있었기에쿠데타를막지못했을까?그리고유신쿠데타가일어난뒤한동안왜저항하는움직임이없었을까?10권에서는그궁금증을하나씩파헤치고있다.이와더불어유신쿠데타가일어나기전해인‘격동의1971년’을자세히다루고있다.1971년에는대통령선거를비롯해총선,언론자유운동,사법부파동,광주대단지사건,실미도사건,163명이사망한대연각호텔화재등굵직굵직한사건이연이어발생했다.1971년에일어난이런일련의큰사건들이유신쿠데타를일으킨이유로작용했다고보는학자들도있다.즉1970년에일어난전태일열사의분신사건을필두로해서,1970년과1971년의노동운동과노사분규,그리고여러사회적갈등과민주화운동,도시빈민운동이유신체제의성립의원인으로작용하지않았겠느냐는주장이다.
그렇지만서중석교수는그어떤세력도정권을직접적으로위협할만큼조직화됐거나광범위한대규모행동을보이지못했다고말하면서일련의주장들을반박한다.곧박정희정권은1971년을전후해있었던사회적갈등이나민주화요구를그다지심각하게여기지않았다는것이다.그랬기때문에박정희는과감하게유신쿠데타를일으킬수있었다는것이서중석교수의주장이다.자신에게저항할세력이하나도없을것이라는자신감이쿠데타를일으킬수있는원천이었다는것이다.“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유신쿠데타를일으킬만한이유가없었는데도박정희대통령은유신쿠데타를일으켰다.그밑바탕에는그러한쿠데타를일으켜도저항할수있는세력이없다는판단이깔려있었다.유신쿠데타를이해하는데이점이대단히중요하다.박정희는10·17계엄을선포해야할만한이유가있어서군을동원한것이아니라,유신쿠데타를일으켜도그것에저항할수있는세력이없을것이라고자신했기때문에그런국가변란을일으킨것이다.”
그렇다면박정희는어떻게그런자신감을가질수있었을까?도무지있을수없는쿠데타인데도그것에저항하고투쟁할수있는세력이없을것이라고본이유는무엇일까?그이유는이미그세력들을철저하게탄압해서짓뭉개놓았기때문이다.이미사법부는정권에의해장악되었고,같은공화당국회의원마저도항명기미가보이면고문으로다스렸으며,야당의원들또한유신쿠데타이후끌려가혹독한고문을당하던시절이었다.군부또한윤필용사건후에정권의눈치만볼수밖에없었다.언론은또어떤가?제대로쓰면끌려가고테러를당하는것은물론폭행과협박에시달려야했다.그결과언론은비판기능을상실했고,침묵하기만했다.학생운동세력쪽도유신쿠데타가일어날무렵에는학교에운동권이더이상존재하기어려울정도로심하게타격을입은상태였다.미국또한당시에는한국의민주주의에관심을두지않았다.사회각부문들이이런상태에있었기때문에박정희는과감하게유신쿠데타를일으켰고,자신만을위한1인체제를구축할수있었던것이다.
10권에는서중석교수의개인적인이야기도조금담겨있다.민청학련사건으로옥살이를하기도했던서중석교수는당시인간의존엄성을파괴하는심한고문을당하기도했다.“나도중앙정보부와보안사,양쪽에서다맞아봤는데보안사쪽은정말무지막지한자들이었다.보안사쪽은대개젊더라.20대들이더라.그에비해중앙정보부쪽은30대,40대,50대로노련한자들이었고고문을해도방법이달랐다.”

유신체제의실체는무엇인가?
“일본극우가꿈꿨던쇼와유신의한국형변종일뿐”

11권의주제는‘유신쿠데타의배경과유신쿠데타의뿌리’이다.우선배경부분에서는1961년5·16쿠데타때부터비상대권을강하게추구한박정희의행적을되짚었다.이어서1967년대선과망국부정선거로알려진6·8총선을거쳐3선개헌을하기까지의과정을짚었다.서중석교수는1969년추진한3선개헌이“강권체제,장기집권을위한박정희의권력의지가구체화되는징검다리”였다고말한다.1961년5·16쿠데타를일으켰을때부터한번쥔권력은내놓을생각이없었던박정희는3선개헌을통해그러한욕망을구체화하고확실하게했다는것이다.결국3선개헌은9월14일새벽에날치기로통과됐고,이로써박정희는영구집권을위한권력의지를만천하에드러냈다.당연하게도이에반대하는세력들을철저하게탄압했고,그렇게우격다짐으로열어젖힌장기집권의문은결국유신쿠데타로이어졌다.
‘유신쿠데타의뿌리’부분에서는박정희의역사관과정치이념을파헤쳤다.이를위해서중석교수는식민사관으로점철된박정희의두저서《우리민족의나갈길》과《국가와혁명과나》를세세하게분석한다.서중석교수는그두권의저서를분석하면서박정희의정치이념이일본군국주의에서비롯되었다는것을밝힌다.곧박정희의유신체제는일본극우가꿈꿨던쇼와유신의한국형변종일뿐이라고단언한다.
박정희는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만주군시기에1936년일본군국주의자들이일으킨2·26쿠데타에상당히많은영향을받았던것으로보인다.2·26쿠데타를일으킬당시일본청년장교들은자본가와민간인정치인에대한강한불신,국가의유일영도자인천황의권위에의존해국가를개조하자는사고,사회또는국가가안고있는문제나모순을쿠데타라는수단으로일거에해결하려는생각,자신들의행동만이위란에처한국가를구할수있다는신념을갖고있었다.그리고그것의연장선상에‘사해에위엄을떨칠,세계에군림하는대일본제국건설’이자리잡고있었다.박정희는2·26쿠데타를일으킨청년장교들이야말로위기에처한국가를구하고개조하려는사명감이투철한,올바른군인정신의소유자들이었다고보았고,그래서2·26쿠데타에대한강한공감을피력한바있다.
서중석교수는박정희가주장한‘한국적민주주의’또한2·26쿠데타와쇼와유신의영향을받았다고말한다.한국적민주주의는서구의민주주의가한국에맞지않으니한국에맞는효율적인정치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