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과 그의 시대 (위험한 법 기술자의 반면교사 현대사)

김기춘과 그의 시대 (위험한 법 기술자의 반면교사 현대사)

$20.73
Description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 김기춘의 어제와 오늘!

무엇이 김기춘의 성공 신화를 가능케 했나?
김기춘은 한국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우리는 왜 김기춘의 삶을 응시해야 하는가?
저자

김덕련

저자김덕련
서울대국사학과를졸업하고,2004년부터2015년까지인터넷신문오마이뉴스와프레시안에서기자로일했다.뿌리깊은나무는바람에쉽게흔들리지않는다는생각으로,현재인문기획집단문사철에터를잡고역사와사회에관한책작업을하고있다.그동안《서중석의현대사이야기》시리즈(1~11권발간,12권이후근간)를기획·공저하고《세계를바꾸는파업》,《근현대사신문》(전2권),《세계사와함께보는타임라인한국사》(전5권)를함께쓰고만들었다.

목차

책을내며
1.이종형과이근안의어제,김기춘과박근혜의오늘
연재를시작하며
2.서울법대동창회는왜김기춘궤변받아줬나
출생에서대학시절까지:뻔뻔한법기술자의기원
3.김기춘‘닭살애정’,그순간에도피해자들은고통에시달렸다
강렬한출세지향의식다진초임검사시절
4.김기춘은유신헌법에어떤식으로관여했나
유신독재와김기춘의1차전성시대(1)
5.‘유신최대조작극’때김기춘은뭘했을까?
유신독재와김기춘의1차전성시대(2)
6.대공수사국장시절대표작,학원침투북괴간첩단사건
유신독재와김기춘의1차전성시대(3)
7.박근혜·최태민문제,김기춘은어느정도알았을까?
궁정동총성으로막내린김기춘의1차전성시대
8.“5공피해자”김기춘?과장된신화에가깝다
전두환정권시기김기춘의행적
9.“괴물”검찰의출현과“정권파수꾼”김기춘
2차전성시대전반부,검찰총장시절
10.유서대필조작과김기춘,사건은끝나지않았다
2차전성시대후반부,법무부장관시절(1)
11.안기부장김기춘?정말그럴뻔했다
2차전성시대후반부,법무부장관시절(2)
12.초원복집공작과김기춘의실패한‘쥐약’
초원복집사건,1라운드
13.초원복집면죄부가북풍조작부추겼다
초원복집사건,2라운드
14.김기춘OK,최동원NO?한국야구잔혹사
KBO총재시절
15.특검구속18년전예견,김기춘“특검제=괴물”
국회의원시절(1)
16.탄핵때김기춘이노무현배려했다?
국회의원시절(2)
17.세월호도김기춘에겐‘무좀’일뿐이었을까
몰락으로귀결된3차전성시대
18.한국판‘예루살렘의아이히만’,김기춘?그렇지않다
김기춘전성시대가능케한토양을바꿔야한다

주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김기춘의삶을깊이들여다봐야할이유

김기춘은누구인가.유신헌법제작에관여했고,극우반공주의를바탕으로공안정국조성에앞장섰으며,초원복집사건으로민주주의파괴음모를꾸민사람.그러면서도40년이넘게권력의핵심부에있었던사람.그렇지만결국박근혜의국정농단사태와관련돼감옥에간사람.이런식으로김기춘이누구인가를간단히짚고넘어갈수도있을것이다.그러나김기춘이라는이름뒤에는더많은것들이숨겨져있다.김기춘이한국현대사에새겨놓은것이앞에서열거한것보다훨씬많고그악영향이만만찮기때문이다.《김기춘과그의시대》는한국현대사의문제적인물,김기춘의어제와오늘을깊이조명하는책이다.김기춘이라는이름이상징하는것을파악하고무엇이김기춘의성공신화를가능케했는지추적하는책이기도하다.더불어김기춘으로상징되는극우반공세력이어떻게한국사회를지배해왔는가를하나씩짚어나간다.
2017년,수많은시민들이촛불을들었고박근혜대통령도,김기춘도결국구속되었다.그뒤한국사회는얼마나크게달라졌을까?‘적폐청산’은이루어졌을까?뒤집힌세월호의진실은밝혀졌을까?수많은시민이함께만들어낸촛불항쟁은뒷걸음질하던역사의물줄기를되돌려놓았다.하지만여전히많은것이부족하다.더깊이한국현대사를성찰하며구석구석,켜켜이쌓인역사의오물을말끔히씻어내야한다.그렇게하려면그오물이어떤식으로쌓여오늘날에이르렀는지제대로파악해야한다.《김기춘과그의시대》는김기춘이라는인물을바탕으로한국현대사를되돌아보는작업이다.김기춘의삶을더깊이들여다봐야한국현대사에쌓인오물을더자세히파악할수있기때문이다.
저자김덕련은신문·잡지등언론보도,현대사를여러각도에서조명한책,김기춘이직접쓴글(논문포함)등그간다뤄지지않은자료들을활용해김기춘의삶전반을조명했다.김기춘개인만이아니라김기춘이살았던시대와사회를함께살폈으며,이를통해세간에잘알려지지않은사실들도상세히조명하고해부했다.
김기춘은그동안수없이민주주의를파괴해왔지만지금까지그어떤진정한사과한마디도하지않았다.오히려그는“선비로서평생명예를먹고살았다”‘국가를위해살았다’며자신의행위를정당화했다.독재정권에서전성기를누리며떵떵거리며살아도,무고한사람을간첩으로조작해도,초원복집사건을일으켜도아무런처벌을받지않고되레성공가도를달렸던김기춘의삶을보고그의후예들은어떤생각을했을까?‘저렇게해도되는구나’‘저렇게해야더크게성공하는구나’라고여기게되지않았을까?그맥은결국‘리틀김기춘’으로통하는우병우에게까지이어졌다.저자김덕련은이제는그고리를끊어야한다고말한다.지금까지그들이한국현대사에남겨놓은해악이너무도크기때문이다.“김기춘같은사람이어떻게그토록오랫동안권력을휘두를수있었는지를직시하지않는다면‘리틀김기춘’들의전성시대는이어질가능성이높다.향기대신악취를폴폴풍기는인생이지만,장목(김기춘의고향)에서감옥까지김기춘의삶을이연재에서되짚으려는것도그때문이다.”

위험한법기술자,민주주의파괴자김기춘

그렇다면김기춘은‘한국의아이히만’일까?“그도……그저자신의직무를성실히수행한것일수있다.”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한창이던2017년1월한인터넷신문에김기춘을이렇게평가하는글이실렸다.한나아렌트가《예루살렘의아이히만》에서말한‘악의평범성’이김기춘에게도나타난다는것이다.그러나나치전범아돌프아이히만처럼김기춘도과연성찰없이자신의직무를성실히수행하는데만그쳤을까?
김기춘의삶을돌아보면그는아이히만과는달리뚜렷한주관을가지고반민주행위를거듭했음을알수있다.그렇다면김기춘의이데올로기를한마디로어떻게말할수있을까?그것은바로극우반공주의다.극우반공주의는오늘의김기춘을만든토양이고,김기춘과같은사람들에게권력과부를안겨준토대이기도하다.김기춘과같은사람들이한사코민주주의를지향하고인권을옹호하는세력을짓밟으려고한것도이극우반공주의와깊은관계가있다.
김기춘은극우반공주의에바탕을둔공안통치를지향했고,그과정에서공작정치도서슴지않았다.유신헌법제작에관여하고유신독재를유지하기위해적극적으로활동했고,검찰총장과법무부장관시절비판세력을강경하게탄압하며공안정국조성에앞장섰으며,초원복집에서민주주의파괴음모를꾸몄다.국회의원시절과박근혜정권의비서실장시절에도일관되게극우반공체제를위해활동했다.
김기춘은한국의민주주의를후퇴시킨사람이자‘법비法匪’(법으로도적질하는무리)로규탄되는집단을대표하는인물중한명이다.노태우정권시절검찰총장과법무부장관을하면서오늘날안좋은의미의‘검찰공화국’을구축한주역이기도하다.그가수장으로있을때검찰은국민을위한검찰이아니라권력,자본을위한검찰이되었고,이는지금검찰이‘적폐세력’으로불리는이유이기도하다.“‘리틀김기춘’우병우가국정농단에관여한것에더해‘법꾸라지(법+미꾸라지)’행태를보일수있었던것도‘검찰공화국’이라는현실과깊은관계를맺고있다.우병우의‘법꾸라지’대선배격인김기춘이초원복집사건을일으키고도법적으로어떠한처벌도받지않은것역시‘검찰공화국’문제와떼어놓고생각할수없다.”

김기춘에게1차전성기를열어준유신독재

김기춘은1939년거제도장목면에서태어났다.거제도는한국에서유일하게2명의대통령(김영삼,문재인)을배출한고장.김기춘의집은그동네에서괜찮게사는축에들었다.공부도곧잘했던그는거제도에서초등학교를졸업하고마산에서중?고등학교를졸업했다.교육자가되라는아버지의뜻을어기고법관이되기위해1958년서울대법대에입학했다.대학에들어가자마자공부에매진해3학년때고시사법과시험을쳤고,이듬해합격자명단에이름을올렸다.김기춘은자신의대학시절을나라전체가어렵고가난했지만낭만이있던시절로묘사했다.하지만그시기(1958~1962년)는이승만정권말기,4월혁명시기,5?16쿠데타후들어선군사정권전반기에해당한다.
고시합격후해군·해병대법무관으로재직하면서군복무를마친그는1964년광주지검,1967년부산지검,1969년서울지검을거쳐1971년에법무부법무과에서일했다.그리고이듬해자신을출세의발판을마련해준유신헌법제작에관여하게된다.유신헌법을만드는데앞장선헌법학자한태연은이렇게주장했다.박정희가유신헌법의핵심내용을구상하고신직수와김기춘이그뜻을받들어안을만들었다는것이다.박정희가원하는형태로유신헌법안을만든주동인물중한명이33세의젊은검사김기춘이라는주장이다.물론김기춘은한태연의주장을부정했다.그러나여러자료를뒤져보면김기춘은평검사신분으로박정희에게직접보고를하는등유신헌법과관련해비중있는역할을한것은분명해보인다.
그뒤김기춘은1973년4월,유신쿠데타후첫번째로이뤄진대규모검찰인사에서법무부과장으로파격적인승진을했고,1974년에는중앙정보부로발령을받았다.유신독재는그렇게김기춘에게1차전성시대를열어줬다.그래서일까.김기춘은회고록에서유신쿠데타가박정희의“우국충정”의소산이며“국론을통일하여국력을결집하고정부운영의효율성을극대화하기위한목적”이었다고강변하며유신독재를비호했다.
중앙정보부로옮긴후김기춘의활동내용이분명하게확인되는시기는1974년8월이다.1974년8월15일광복절기념식이열린국립극장에서대통령부인육영수여사가문세광의총탄에맞아절명한것이다.김기춘은그문세광을직접신문해자백을받은것으로알려져있다.
문세광신문은김기춘에게엄청난출셋길을열어줬다.문세광의신문이있은지한달후인1974년9월,김기춘은중앙정보부대공수사국장으로영전했다.35세의나이에막강한권한을행사할수있는요직중의요직을차지한것이다.그리고자신에게중책을맡긴박정희정권의기대를저버리지않고,그는유신독재수호에적극나서게된다.

대공수사국장시절의대표작,학원침투북괴간첩단사건

1975년11월22일각신문1면머리기사로‘대규모학원침투북괴간첩단을적발했다’는중앙정보부발표가대문짝만하게실렸다.“북괴가그들의공작원을유학생으로가장”해한신대,부산대,고려대,가톨릭의대등학원에침투시킨것을적발해일당21명을검거하고관련용의자를계속수사하고있다는발표였다.간첩단의주축으로주로지목된사람들은일본에서유학온교포학생들이었고,이들과가깝게지낸재학생들도사건에휘말렸다.
같은날신문사회면의한쪽에이사건과관련된‘일문일답’내용이크게실렸다.이‘일문일답’을통해기자들에게사건을상세히설명한사람이바로김기춘이다.이‘일문일답’에서김기춘은이번사건이“최근수년간대학가에서벌어졌던데모가북괴간첩의배후조종에의한것임을증명한케이스”라고강변했다.그러면서“학원소요의배후에는북괴간첩이있다”는것이이사건의교훈이라고강조했다.
당시는유신독재철폐운동이활발하던때였다.박정희정권으로서는이위기를돌파해야했는데,가장손쉽게할수있는방법이‘안보불안감’조성이다.박정희정권은간첩사건을비롯한각종공안사건을터뜨리며반대세력을탄압했다.자신의정권을유지하기위해때로는없는간첩도만들어내기도했다.
후일11·22사건도당연히조작된간첩사건으로밝혀졌다.11·22사건피해자들이체포,고문,사형선고를비롯한중형,옥살이,재심을거치는동안김기춘은장관,국회의원을거쳐청와대비서실장을지냈다.김기춘에게이사건은어떤의미로남아있을까?김기춘은영화<자백>에서조작간첩제조문제에대해서“기억나지않는다”고답변했다.심지어한인터뷰에서는이렇게말하기도했다.“내가수사한사건중에과거사조사나의문사조사대상에오른게없다.권력남용해서인권유린하고고문했으면오늘날김기춘은없다.그점을자부한다.다른사람보다훌륭하다고생각한다.”

궁정동총성으로막내린1차전성기

1979년2월,김기춘은4년5개월에걸친중앙정보부생활을마무리하고청와대법률비서관으로자리를옮겼다.청와대에서박정희를보좌하게된것은김기춘에게는또한번의기회였다.유신헌법제작과정에서박정희에게직접보고하고,8·15저격사건후문세광신문을통해이미깊은인상을심어준김기춘이기에더욱그러했다.회고록에김기춘은“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많은총애와가르침,격려를받았다”고썼다.
극심한혼돈으로치닫던유신독재는1979년10·26사건으로무너졌다.김기춘이청와대로옮긴지8개월만이었다.새로운독재자전두환이등장했고,김기춘의1차전성시대도막을내렸다.김기춘은전두환이집권하던시기에청와대를떠나검찰에복귀했다.1986년대구고검장,1987년법무연수원장으로있다가노태우정권첫해인1988년12월검찰총장으로화려하게부활한다.2차전성시대가열린것이다.

중앙정보부에서갈고닦은실력,공안정국조성으로펼치다

김기춘이검찰총장이되었을때는한국사회의민주화요구가극에달했던시기였다.하지만김기춘이이끄는검찰은시대착오적인극우반공체제를수호하는데에만앞장서게된다.5공비리수사를큰틀에서일단락지으며청와대의고민을덜어준김기춘은얼마후노태우정권에큰‘선물’을안겨준다.유신독재시절4년여동안중앙정보부대공수사국장을하며갈고닦은‘실력’을마음껏발휘하며공안정국조성에앞장선것이다.1989년북한을방문한문익환,임수경등을구속한것은물론민주화운동세력들도좌경용공으로몰아광범위하게잡아들인것이다.
그결과노태우정권은안정을찾았고,공안정국조성에앞장섰던김기춘과검찰의정권내위상도높아졌다.민주화운동세력과야당에밀리며취약했던노태우정권의버팀목구실을톡톡히한김기춘은1991년법무부장관이된다.
김기춘을법무부장관으로불러들일무렵노태우정권은또다시궁지에빠져있었다.1991년4월26일명지대생강경대가시위도중백골단에게맞아죽은후거리는연일반정부시위대로뒤덮였다.그런속에서한진중공업노조위원장박창수가의문의죽음(5월6일)을맞고학생,노동자,빈민등10여명이정권퇴진등을요구하며연이어분신하면서‘5월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