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 전 국가의 병영화, 총력 안보 앞세운 독재의 광기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 전 국가의 병영화, 총력 안보 앞세운 독재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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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애인도, 친척도, 이웃도
간첩인지 의심하라는 무서운 세상

휴일 없는 총력 안보 궐기 대회, 4대 전시 입법과 학도호국단, 반상회, 극단적인 반공 운동, 긴급 조치 9호 발동, 야당의 무력화, 3차에 걸친 200여 곡의 금지곡 선정과 대마초 사건, 두 차례에 걸친 재일 교포 유학생의 간첩단 사건…… 국민들의 입을 철저히 봉쇄한 전 사회?국가의 병영화

인도차이나 사태와 중동 건설 특수,
유신 체제를 구해준 뜻밖의 구원자
저자

서중석

저자서중석은1948년충남논산에서출생했다.서울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연세대학교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79년부터1988년까지동아일보기자로재직했으며,6월항쟁당시《신동아》취재기자로역사적현장에서그날의사건들을생생히목격하고기록했다.현재성균관대학교사학과명예교수이며역사문제연구소이사장,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상임공동대표,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을맡고있다.
주요저서로《80년대민중의삶과투쟁》《한국근현대민족문제연구》《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1·2》《신흥무관학교와망명자들》《남북협상:김규식의길,김구의길》《조봉암과1950년대》(상·하)《비극의현대지도자》《배반당한한국민족주의》《이승만의정치이데올로기》《한국현대사60년》《이승만과제1공화국》《대한민국선거이야기》《지배자의국가민중의나라》《6월항쟁》《사진과그림으로보는한국현대사》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연표

첫번째마당:
흔들리는유신체제를구원한건
인도차이나사태와중동건설특수였다

두번째마당:
4대전시입법,학도호국단,반상회…
총력안보내세워병영·감시사회구축

세번째마당:
이승복의비극활용해
아이들에게증오심을불어넣다니…

네번째마당:
북한은사람사는곳이아니다?
심각한후유증남긴극단적반공운동

다섯번째마당:
간특하게집대성한긴급조치9호,
민초들도주요표적이었다

여섯번째마당:
박정희라이벌장준하는왜
의문의죽음을맞아야했나

일곱번째마당:
재야의반유신운동중최대규모였던
3·1민주구국선언사건

여덟번째마당:
박정희거짓말에
깜박속은김영삼

아홉번째마당:
김옥선파동과
들러리로전락한야당

열번째마당:
죽이고고문해서조작간첩양산,
만만한표적이된재일동포의비극

열한번째마당:
조국찾은재일교포짓밟은
모국유학생간첩단사건

열두번째마당:
애인·친척·이웃할것없이전국민을
간첩으로서로의심케한유신정권

열세번째마당:
석유나와라뚝딱?
유신독재다진‘포항석유’거짓말

열네번째마당:
백지로끝난임시행정수도건설계획,
남은건천정부지로치솟은땅값

열다섯번째마당:
전쟁위기부른판문점미루나무사건,
다시잿더미로변할뻔했던한반도

열여섯번째마당:
판문점미루나무사건을통해본
한반도전쟁문제

열일곱번째마당:
박정희의이중잣대,국민에겐남침공포
외국언론엔“北,쉽사리전쟁안할것”

열여덟번째마당:
식민사관에빠졌던박정희
왜유신체제에선민족주체성강조했나

열아홉번째마당:
앞에선이순신성웅화하고
뒤에선기생관광부추기고

스무번째마당:
엄숙주의내세워대중문화짓밟고
환락의장소에서종말,박정희아이러니

스물한번째마당:
독재권력과저급한기성문화에맞선
대항문화의탄생

나가는말

출판사 서평

유신체제는1972년부터1979년까지7년동안존속했다.이기간동안유신체제를존속하게해준것은무엇이었을까?유신체제에저항하는움직임이연이어나타나자박정희정권은민청학련·인혁당재건위사건을조작해사법살인을저질렀고,갖은저항운동을잔인하게짓밟았다.그러나그것만으로유신체제를지키기는쉽지않았을것이다.1975년사법살인이일어난후유신체제는4년이나더존속했다.이를가능하게만든계기는무엇이었을까?
박정희1인강권체제를연장시켜준것은인혁당재건위사건관계자등8명을사법살인하고고려대에긴급조치7호를발동하는등의초강경조치가아니었다.두구원자가해외에서나타나1인강권체제를연장시켜줬다.그것은인도차이나사태(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공산화)와중동건설특수였다.전자는박정희가열망하던이른바총력안보체제구축에이용할수있는여건을제공했고,후자는1976,1977년의경제호황을가져왔다.
특히1975년인도차이나사태가일어나자박정희는과거어느때보다도총력안보체제구축에총력을기울였다.4대전시입법과학도호국단,반상회등을통해기민하게학원의병영화뿐아니라전사회·국가의병영화를이뤄냈다.그와함께긴급조치9호를선포해국민들의입을철저히봉쇄했고,5·21영수회담등야당회유·분열공작을통해야당을무력화했다.또한끊임없는남침주장,전국민적인간첩신고운동,이승복동상의전국화등전체주의방식의반공운동을대대적으로,이전과는차원이다르게전개했다.이런것들을통해유신정권은국민들의입을통제했고,일상적으로감시하고통제할수있었다.이러한총력안보체제,국가의병영화와경제호황으로반유신민주화운동은별다른관심을끌지못하고고립될수밖에없었다.《서중석의현대사이야기》13권은유신체제시기박정희정권의‘전국가의병영화’를다루고있다.
이시기박정희는유신체제유지를위해서라면‘포항에서석유가나왔다’와같은거짓말도서슴지않았다.그리고무고한사람들을간첩으로내몰면서공포감을조성했고,긴급조치9호를발동함으로써국민들을일상적으로통제했다.또한반공운동과간첩잡기운동을벌이면서국민들끼리서로를의심하게만들기도했다.그야말로총력안보를내세운독재의광기를맘껏내세웠던시기였던것이다.

숨막힐듯한전사회·국가병영화

1975년4월에들어와인도차이나3국상황은결정적인국면에들어섰다.4월17일캄보디아에서크메르루즈가프놈펜에들어갔고,4월30일에는베트남의사이공이공산주의자들에의해함락됐으며,라오스도파테트라오가장악하기에이른다.이렇게세나라가공산화되는사태가벌어진것이다.이즈음에연이어땅굴이발견된다.
박정희은인도차이나사태를자신의체제유지에적극이용하게된다.박정희는1975년북한이“금년에무모한불장난을저지를가능성이농후하다”는내용을담은특별담화를발표한다.인도차이나가공산화가되었으니한국도공산화가될지모른다는공포감이조성되면서전국곳곳에서엄청난규모의안보궐기대회가열렸다.유신정권은이궐기대회를뒤에서조종하면서자신들의체제를유지하는데이용했다.특히반유신민주화운동을하는저항세력은‘북한을이롭게하는자들’인‘비국민’으로만들어이들을일반국민들로부터철저히격려시키려고했다.안보총궐기대회이면에는위기에처한국가를대통령이총력안보로이끌어달라는의미가담겨있었다.곧안보궐기대회는박정희의1인강권체제를지지하는시위이기도했다.
이런분위기를통해박정희정권은숨막힐듯한전사회·국가병영화를만들어갔다.1975년5월긴급조치9호가선포되고,그런속에서4대전시입법(민방위법,사회안전법,방위세법,교육관계법개정법안)이이뤄진다.민방위법은민방위대를구성하게하는법으로17세이상50세이하의남성중에서군,경찰,향토예비군,학도호국단에소속되지않은사람들가운데심신에결함이없는이들을대상으로해서지역,직장단위로민방위대를창설했다.민방위법이생겨남으로써1968년향토예비군창설,1975년학도호국단부활과더불어온나라의병영화가이뤄진것아니냐고얘기하기도한다.
사회안전법은인권침해문제가심각한법인데,반공법,국가보안법위반자들이출옥후보안처분을받도록한것이다.2년단위로계속보안처분을할수있게돼있었는데,그중문제가심각하다고공안당국이생각하는사람에대해서는보안감호처분을할수있었다.방위세법은국방력강화를위해필요하다며또하나의세금을부과한세법이며,이법으로국민들의세금부담이적지않게증가했다.교육관계법개정은대학에서반유신민주화운동과관계있는이른바문제교수들을축출하기위해서집어넣은것이었다.

반공운동과간첩잡기운동

인도차이나사태이후박정희는총력안보체제다지기에총력을기울였다.그러한총력안보체제를다지는데반공운동처럼유효한것은없었다.1975년부터굉장히강화된반공운동은전체주의적인방식으로전개됐다.이승복을앞세워반공교육을강화한것이대표적이다.이승복동상세우기,이승복추모제,장학사업,영화제작,이승복기념웅변대회,이승복을생각하는글짓기대회,달리기대회등을연것이다.반상회를활용하기도하고대한뉴스,영화,드라마를활용하기도했다.곧유신권력은국민들이일상적으로접하는거의모든것을반공교육의장으로활용했다.
또한간첩을잡자는운동이그야말로범국민운동벌어지듯광범위하게벌어졌다.온국민을감시하라는것은불온한사람을감시하라는말이기도하다.“부질없는유언비어는국가안보를해친다”,“잘살기위해스스로의자유를제한하자”같은포스터도여기저기나붙었다.유신체제에서‘부질없는’얘기를하고다니는,‘정화’되지않은,정부에복종하지않는수상한사람,불온한사람은간첩으로몰리거나간첩과동일시됐다.이로써애인도,친척도,이웃도간첩이아닌가의심하는사회가조성됐고,이는한국인에게‘반공주의’가내면화하는계기가되었다.

긴급조치9호,전국민을감시·통제하다

1975년총력안보궐기대회가최고조에이르렀을때인5월13일,박정희는긴급조치9호를선포했다.긴급조치9호는여러면에서그이전긴급조치와구별된다.첫번째,총화단결로유신체제를지지한다는운동이거세게벌어질때선포됐다.두번째,1호나4호와다르게유신헌법반대운동만표적으로삼지않았다.유신체제뿐만아니라박정희정권을비난하고불평불만을얘기해도걸리게돼있었다.그뿐아니라삶이고달파서불평해도유언비어로몰려걸려들수있었다.세번째,긴급조치9호는반유신민주화운동세력을일반사람들로부터격리하는데중점을뒀다.유신반대저항세력뿐만아니라일반국민들도쉽게통제하고감시할수있는긴급조치9호는박정희1인권력체제를수호하는데결정판으로,다른긴급조치와다르게유신체제가붕괴할때까지장기간지속됐다.

체제유지위해간첩단사건조작

이런분위기에서1975년11월22일유신권력은학원침투북괴간첩단을일망타진해21명을구속송치했다고발표하는등여러간첩단사건이터진다.그러나이시기간첩단사건은후에대부분조작된것으로밝혀졌다.1973년유럽거점간첩단사건,1974년문인간첩단사건,울릉도간첩단사건등이대표적이다.특히재일교포유학생들,납북어부등이간첩조작에많이이용되었다.간첩으로조작하기위해무지막지한고문이가해지고,심지어집단성폭행도이뤄졌다.“1970년대에많은재일한국인청년들,똑똑하다는젊은사람들이조국에대한뜨거운열정과유달리큰기대,희망을가지고공부를하러왔다.얼마나벅찬마음으로조국을찾아왔겠나.일본에서는사귈수없는좋은친구를많이사귀고싶다는기대,그러면서공부도열심히해서민족을위해정말뜻깊은일을해보고싶다는큰뜻을품고오지않았겠나.그런데이사람들이대거간첩으로체포돼버렸다.그래서사형선고도받고지독한고문도당했다.그때이사람들의심정이어떠했겠나.”

온국민을속인‘포항석유설’

1975년에는인도차이나사태와관련해총력안보체제가아주강고하게자리를잡았다면,1976년에는박정희가포항에서석유가나왔다고얘기한것이유신체제를굳건히다지는데큰역할을했다.그발표에상당히오랫동안온국민이들뜰수밖에없었고,그로인해유신반대운동을어렵게만들었다.
박정희는1976년연두기자회견에서“포항에서석유를발견했다”고발표했다.그러나이건명백한거짓말이었다.석유가나오지않은걸뻔히알면서도그렇게기자회견장에서석유가나왔다고말한것이다.이런박정희의말을듣고국민들은‘우리도이제잘살게됐다’고큰희망을품게됐다.그렇다면박정희는왜이런거짓말을했을까?서중석교수는이렇게말한다.“1975년인도차이나사태를계기로일어난총력안보운동을통해박대통령은유신체제안정이라는엄청난효과를거두지않았나.포항석유에대한발언도그러한역할을했다.1975년은인도차이나사태로유신체제가평온하게됐고1976년은이석유발언으로평온하지않았느냐고볼수있다.그정도로포항석유발언은국민을정치로부터멀어지게했고유신체제자체에대한관심을갖지않도록했다.그와함께유신체제에대한비판이나유신반대움직임을무력하게하고잠재우는데대단히위력적이었다.”